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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말이야 바른 말이지〉: 웃자고 하는 소리죠

by indiespace_가람 2023. 6. 5.

〈말이야 바른 말이지〉리뷰: 웃자고 하는 소리죠

 

 

* 관객기자단 [인디즈] 진연우 님의 글입니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스틸컷

 

바야흐로 환난의 시대다. 때로 모순이 사람을 다채롭게 만든다고 하지만 근래는 이 도시의 살풍경이 차라리 공해 탓이기를 바라며 자꾸만 눈을 비비게 된다. 모순이라는 게 정말 다채로운가. 속 보이듯 뻔하고 두려움이나 연약함이라는 단어와도 별반 다르지 않던데. 작가들은 소설을 쓸 때 주인공 될 인물의 모순부터 파고든다는데, 우리들의 모순에는 일말의 흥미로움도 없다. 감출 생각도 없어 보이는 천연한 속내와 지나친 정직함. 정직에는 바를 정자가 들어가니 솔직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바르지도 곧지도 않은 말들이 넘실대는데, 저마다는 굽힐 생각도 없어 보인다. 내가 하는 말이 바른 말이고. 네가 하는 말은 틀린 말이면 그러면 세상에 틀린 말이라고는 하나도 없겠다. 그런 냉소에까지 가닿을 때쯤, 곧 깨닫는다. ‘그들’ 속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고.

 

제목이 그렇듯이 영화 또한 우리의 ‘바른 말’을 어느 정도 긍정하는 투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속 여섯 편의 단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딜레마의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다. 노동자 목소리가 너무 큰 세상에서 고용주가 겪는 어려움, 헤어지는 마당에 고양이를 떠맡는 것에 대한 어려움, 광주와 브랜드 아파트로 대표되는 사는 곳으로부터 파생되는 이미지에 대한 어려움, 설령 그게 ‘남성 혐오’일지언정 브랜드 이미지에 따라붙을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해야 하는 어려움, 이 ‘지구’에서 결혼해 산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 권력형 성범죄라는 별것 아닌 실수를 무마하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직장 상사의 어려움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부하 직원의 어려움까지. 생각해 보면 각자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상황들이다. 그래서 영화의 인물들은 전부 다 상대에게 절절하게 호소한다. 네가 내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서 모른다며 너무 부조리하다는 거다. 그런 상황들에 대해 각각의 연출자들은 얼마나 어려우시겠어요, 하면서 우리의 대화에 집중하며 방언 터지듯 터져 나오는 고충들을 귀담아듣늗다. 특별한 연출적 기교 없이 오가는 말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카메라의 태도는 무섭다. 무엇을 보려는지 대화를 나누는 인물들에게서 좀체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

 

영화 〈말이야 바른 말이지〉 스틸컷

 

그런데 이 뜨거운 대화의 온도가 서늘하게 식어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열띠게 이어지고 있는 대화의 흐름을 끊고 제삼자가 툭, 튀어나오는 순간이다. 이들의 침입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제삼자들은 주로 지켜보는 입장이거나 대화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문을 열고 들어오며 상황을 교란시킨다. ‘바른 말’들의 향연을 순식간에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바로 이들의 존재다. 대화의 국면을 바꾸는 것이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제시되는 윤성호 감독의 〈프롤로그〉 속 한 이미지를 떠올려 본다. 두 명의 고용주가 카페에서 ‘요즈음 노동자’들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별안간 삽입되는 불균질한 쇼트가 있다. 희부연 유리창 속 대걸레를 쥔 채 좋다고 떠들어 대는 두 인물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카페 직원의 희미한 상이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인물들은 이렇듯 유리창에 맺힌 상처럼 희미하고 가려져 있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익숙한 풍경이기도 하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순간에는 자각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져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게 된 경험이라면 나에게는 분명히 있다. 지나온 모든 대화들에서 그런 식으로 몇 사람을 기만했을까.

 

말이야 바른 말이지〉의 이런 작업은 마치 사과 깎기 같다. 영화는 모순의 중심부에 직접적으로 칼날을 내꽂지 않고 곡선을 따라 교묘하게 칼날을 움직이지만, 각 에피소드가 끝나면 둘러친 허위가 벗겨져 맨살을 드러낸 사람들만 남아 있다. 대화를 듣고 있다 보면 스스로 훌렁훌렁 옷을 벗는 꼴이라 그게 벗겨져 가는 과정이 제법 웃긴데, 피식피식 웃고 있다 보면 뒷맛이 오묘하게 찝찝하다. 웃고 있기는 하지만 이 웃음이 도대체 내 안의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생각해 보면 부끄러워지는 것이다. 영화도 어쩌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과 비슷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말하고 싶은 바는 분명히 있지만, 돌려 말하면서, 그냥 웃자고 하는 소리라는 듯이. 그러니까 우리도 그냥 가벼운 농담이나 나누러 가자. 어차피 다 웃자고 하는 소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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