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스보이 슬립스〉리뷰: 따스한 집의 기억을 향해, 출처를 찾아 떠나는 이들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수영 님의 글입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는 호적에 올릴 수 없는 아들을 안고 머나먼 타국으로 떠난다. 영화〈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기구해 보이는 소영의 인생사를 내레이션으로 읊으며 시작한다. 광활한 대지와 산 사이로 보이는 그의 몸집은 너무나도 작아 보인다. 앞으로 소영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 예견하는 것처럼.
캐나다계 한국인인 앤서니 심 감독의 자전적 얘기를 담았다고 알려진 이 영화는 소영과 동현 모자의 캐나다 이민기를 그려낸다. 이민자와 입양아가 겪는 디아스포라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것은 그보다 보편적인 감정이다. 사회의 주류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 겪는 안정과 편안함에 대한 그리움을 찬찬히 되짚어 나가고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미나리를 필두로 이미 아시아계 이민자를 표현한 작품은 다수다. 허나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그들과 차별점을 갖는다. 보다 체험적인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단순히 어떠한 설움과 힘듦을 겪었는지 진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다양한 장치와 배열을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완전히 스토리라인에 이입하게 만든다. 일평생 살아온 한국을 이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그들이 느껴온 당황스러움과 서러움의 감정에 직접 참여하게 한다.
동현은 김밥과 국을 점심으로 싸 오지만 아이들은 쌀밥을 가져온 동현을 놀려대기 바쁘다. 선생님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발음하지 못하며, 교직원들은 소영과 동현은 아시아인(Asian)도 아닌 동양애(Orient)로 별종 취급한다. 이처럼 하나의 잘 짜인 이민자 사연처럼 보인 차별의 경험들이 동현의 어린 시절에 집중된 것은 이 영화가 체험적 이입을 의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다. 영화 내 점차 줄어드는 차별에 대한 동현과 소영의 반응은 이민자의 일상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그들은 조금씩 다름으로 인한 구분과 멸시에 무뎌지고, 더 이상 내가 차별의 대상이 되든 되지 않든 무감각해지게 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 경험하는 누군가의 악의는 이해와 반박이 아닌 감정과 각인의 영역에서 벌어진다는 점에서 흔적을 남긴다. 소영의 말대로 반항해 보았으나 인종차별이 아닌 물리적 폭력만 처벌하는 학교의 처우를 통해 동현과 소영은 차별의 감각, 더 나아가 이들과 내가 다르다는 기억을 뼛속 깊이 새긴다. 시간이 지나 동현이 더 이상 괴롭힘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아시아인이 아닌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지낸다 해도 그가 주류가 아니라는 인식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현 또한 이에 대해 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만큼 주변부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다름과 더불어 영화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개념은 집과 그리움이다. 동현은 계속해서 아버지의 모습을 좇고, 자기 뿌리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모자는 한국과 마주하게 된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관객을 동현의 시점으로 훌륭하게 참여시킨다. 영화가 그려낸 한국의 풍경이 너무나도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한 폭의 수묵화와 같은 산과 녹음을 뚫고 펼쳐지는 햇빛. 전원적인 풍경 아래 사투리를 쓰는 무뚝뚝한 사내들의 탄 피부를 보며 관객은 이토록 이국적인 강원도를 마주한 적 있는지 반문한다. 캐나다를 담아내던 빛바랜 필름 속 1.33 화면비에 익숙했던 관객은 시네마 뷰로 펼쳐지는 광활한 산맥에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심리적 거리 또한 마찬가지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동현에게 아버지의 묏자리를 보여준 소영은 나지막이 얘기한다. “집에 가자.” 그토록 그리던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한바탕 소동 끝에 소영이 하는 말은 집에 돌아가자는 것. 관객들은 이 대사에서 칭하는 ‘집’의 위치가 한국이 아닌 캐나다임을 알 수 있다. 익숙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낯섦과 이름 모를 사람들의 호의, 친구보다 멀게 느껴지는 가족들로부터 문화적 차이를 경험한 후 소영과 동현은 다시 익숙한 타국을 향해 떠나야 한다. 롱테이크로 이뤄진 샷 구성과 호흡이 길고 느린 전위적 음악은 이처럼 어디에도 마음 붙일 수 없이 이방인이 돼야만 하는 라이스 보이들의 삶을 체험토록 만든다. 영화는 익숙함의 개념을 상실당해 버린 이방인의 운명을 노래한다.
생김새로 놀림당하던 동현은 나이가 들며 안경을 벗는다. 금발이 멋있지 않냐며 머리색을 바꾸고 컬러렌즈로 눈동자 색을 지워낸다. 한국을 찾아 동현은 노랗게 염색했던 머리를 다시 깎아낸다. 이름 모를 가족을 만나 소주를 마시고 작은아버지의 등을 밀며 얼굴조차 뵐 수 없던 아버지의 군복을 입는다. 한동안 쓰지 않던 안경을 꺼내 잡은 동현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인이었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라이스보이가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이상한 것으로 생각되도록 사회에서 학습한 자신의 이름, 음식, 언어 그리고 문화의 출처를 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동현에게 한국은 낯설기만 하다. 캐나다인도 한국인도 될 수 없는 문화적, 인종적 이질감을 품은 라이스보이. 그 어느 곳도 집이라 느끼지 못한다지만 내가 속할 곳이 있다는 믿음과 함께 얼마나 많은 이민자들은 마음속에 라이스 보이를 품어왔을까. ‘집’을 향한 여정은 그렇게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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