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에서〉 리뷰: 굴절된 세계 속 하나의 소실점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채운 님의 글입니다.
오랜 잠수 끝에 고개를 물 밖으로 내밀었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수면 위로 나온 얼굴이 허겁지겁 공기를 집어삼킨다. 이내 서서히 초점을 되찾은 눈동자가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내게 이 질문을 쥐어준 채 끝이 난 〈물안에서〉는 이윽고 잠수를 결심하게 된 남자가 물 안에 이르기까지의 고뇌를 뒤에 선 채 지켜본다. 자신의 창조성을 확인하고 싶은 남자는 영화를 찍고자 돌 많고 바람 많은 섬에 이르고 남자의 대학 동기 두 명이 각각 촬영 작업과 배우 출연을 위해 그와 동행한다. 이 둘은 어떻게 영화를 찍어야 할 지 몰라 막막해하는 남자의 곁을 지킨다. 그리고 영화는 이 셋의 동행을 관조한다. 마치 굴절 기능에 이상이 생긴 수정체가 세계를 바라보듯, 희미하고 납작하게.
영화는 오프닝부터 혼탁한 화면에 뒤덮인 채 시작한다. 영화를 만드려는 성모(신석호)와 촬영 작업으로 그를 돕는 상국(하상국)은 해변의 현무암 지대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고동, 다슬기처럼 껍데기를 가지는 연체동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관객들은 화면 속 정보들을 명확히 파악할 수 없는 와중에 불규칙한 리듬의 사운드가 더해져 묘한 불편함을 받는다. 고요와 소란, 초점의 적중과 엇나감이 뒤죽박죽 섞이며 더욱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렇기에 영화의 관람은 그러한 불편함에 대한 의문과 붙어 갈 수 밖에 없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남자는 성모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는 남희(김승윤)와 함께 돌담에 핀 노란 꽃을 발견한다. 꽃 이름이 유채꽃이며 꽃이 예쁘다는 이야기만이 한참 계속되는 시퀀스에서 관객들은 희뿌연 화면 탓에 담장에 핀 식물이 정말 유채꽃인지 아니면 개나리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덩그러니 놓여 있는 카메라의 뒤로부터 등장하는 인물들의 뒷모습을 관찰할 뿐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초점을 잃은, 아웃포커싱된 화면을 통해 관객을 얼마간 소외시킨 채 진행된다. 때문에 영화에서 방황하는 사람은 성모만이 아니다. 어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할지 고민하는 그와 더불어 관객 역시 영화 속을 헤매게 된다. 그렇게 길을 떠돌던 중 성모는 바닷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여자(김소령)를 발견한다. 이유 없는 여자의 선행에 감동받은 성모는 그녀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작은 실수로 반복되는 테이크 속에서 성모가 남희에게 요구하는 것은 실제로 쓰레기를 줍던 여자처럼 후드의 모자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식별되지 않는 얼굴을 거듭 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부터 흐릿한 화면에 모자까지, 이중으로 은폐되는 남희의 얼굴과 남희가 한밤 중 느꼈다던 귀신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란히 둘 수 있지 않을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도통 파악되지 않는 인물들의 얼굴은 남희와 나머지 두 인물의 고유성 역시 분간되지 않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물안에서〉의 화면에 맺힌 탈초점화되고 심도가 얕아진 이미지는 만물이 구별되지 않는 세계 속에서 유일한 진실을 찾아내려는 과정의 전제 조건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물들의 입체성이 사라져 평면화되고 화면의 선예도가 낮아진 상황에서 단 하나의 소실점만을 건져내고자 한다. 영화 끄트머리에 성모가 돌연 언급한 죽음은 이러한 과정과 연결된다. 죽음이란 그야말로 유일한 체험이기 때문이다. 성모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 후 후반 촬영을 위해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해수면을 경계로 동강난 몸통은 점점 희미해져간다. 약분되듯 다른 이들과의 공통분모를 모두 소거한 그의 신체는 소멸하듯 잔존한 채 수평선에 걸려있다. 잠긴 것도 아니고 떠오른 것도 아닌 그는 홍상수 영화 속의 성모일까 아니면 성모의 영화 속 누군가일까. 어느 쪽으로도 정주하지 못한 얼굴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물안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또 다른 구두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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