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고고학〉 리뷰: 느리게 걷는 사람
*관객기자단 [인디즈] 조영은 님의 글입니다.
층층이 쌓인 유물처럼 천천히 흐르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 속에 견고하고도 단단한 발걸음이 있다. 〈사랑의 고고학〉은 그 시간의 지층을 찬찬히 밟는다. 마흔이 다 되도록 신체 일부를 돌보지 않았다는 영실은 자신의 맨발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그리고 발에 꼭 맞는 새 운동화를 신고 해변을 따라 달려보지만, 그리 오래 달리지 못한다. 숨이 가쁘면 멈춰 선다. 그리고 다시 달리지 않는다. 그는 늘 느린 템포로 걸어왔던 사람인 것 같다. 영화는 그 호흡에 맞춰 긴 시간 동안 영실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보기로 한다. 그는 운동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학교로 들어간다. 첫 장면에서 보여준 것처럼, 영화는 고정된 카메라의 위치에서 그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이따금 롱테이크 안에서 천천히 숨을 쉬는 영실의 느리고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우리의 눈에 들어온다. 영실은 느리게 걷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멀찍이서 부감으로 바라본 그의 작은 뒷모습은 커다란 세계에서 천천히 흐르는 그의 시간과도 같다.
영실은 거친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을 따라 달리는 한 여자처럼 똑같이 천천히 달려본다.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면 조심스레 발을 딛고 숨을 죽인다. 잠을 자다가도 밖에서 들려오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고, 다음 날 다시 그 자리를 확인한다. 적막한 영실의 세계를 채우는 것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것들에 있다. 영실은 같은 물건을 오래 쓰고, 관계를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하나를 탐구하는 일을 지속한다. 그렇기에 바깥에 내리는 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잠시라도 마음을 둘 공간이 있다. 길게 뻗은 길이라든지, 울타리처럼 빙 두르는 선이라든지, 멀찌감치 바라본 카메라의 거리라든지. 영실은 그 정도의 거리가 필요한 사람이다. 그가 하는 일, 고고학이 그렇다. 그러나 땅을 긁어내고, 흙을 골라내고, 유구선을 찾아내는 시간이 있는 반면, 영화는 그런 영실의 시간을 천천히 흐르도록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는 인식을 바라보며 이야기하지 않는다. 인식은 가만히 있는 영실에게 대뜸 말을 걸고, 물리적(이나 그뿐만은 아닌) 선을 넘어 다가가고, 먼저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가, 다시금 영실을 찾아 화면 안으로 불쑥 들어온다. 이따금씩 둘은 창 너머의 서로를 거울처럼 마주 보지만 그들의 어긋난 시공간은 다시 봉합되기 어렵다. 카메라는 가끔씩 문밖으로 나가는 영실을 따라가지 않아 그는 그대로 프레임에서 사라진다. 집에서도 때때로 포커스 인, 아웃 되고, 프레임 인, 아웃된다. 종종 문 너머로만 존재하는 영실은 온전히 호흡할 곳이 없다. 문을 꽉 닫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 고양이에게마저도 눈치를 보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의 삶에 슬며시 침투하려 드는 시도들은 비단 연인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만은 아니다. 영실의 어머니는 새벽 늦은 시각에 자는 그의 방문을 열고 대뜸 들어와 장어탕을 들이민다. 그렇게 영실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를 가리고, 침범하고, 맘대로 거리를 좁힌다. 그가 홀로 온전히 존재하는 시간은 점점 사라진다. 어째서일까. 그들에게 이토록 그를 옥죄는 이유를 묻고 싶다.
그러나 영실은 장장 팔 년이라는 시간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영실이 ‘답답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고지식하거나, 마음이 취약하거나,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자꾸만 시공간을 늘리는 이 영화 안에서 ‘보통’의 속도로 걷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느린 템포의 삶을 영위해 오던 사람에게 얼른 발맞춰 걸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숨이 차고, 그렇기에 버거운 일이다. 특히나 마흔에 들어선 한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시선이 난무한 그의 주변에선 더욱 당연하지 않을 리 없다. 무던히 흘러 쌓이던 영실의 시간 속에 들어온 단단한 압력은 무게중심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시간의 지층은 층층이 쌓일 수 없다. 그 전에 영실은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연스레 자신이 걸어왔던 속도를 쉽게 간과한다. 그가 지나쳐 온 풍경에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잠깐 놓친 자리에 어떤 풍경이 있었을까.
영실에게는 곳곳에 희망이 있다. 영화 초반, 학생들 앞에 선 그는 고고학의 정의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때 그의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다. 때때로 창밖을 응시하는 것도 같아 보인다. 우리가 그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아보기란 아직 이르다. 극 중 과거 이야기가 나오기 이전이므로, 우리는 아직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할 수 없다. 영실은 스스로의 마음을 되돌아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영화는 낯선 타인의 눈으로 영실을 본다. 학생들 사이에서 초점이 나가 있고, 말하는 영실과 듣는 학생들을 한 화면에 두지 않고 툭툭 끊는다. 그러나 영화 후반, 다시 강의하러 나간 학교에서 말하는 영실과 그의 이야기를 듣는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던 시선과 말들이 한데 모여 영실을 향한다. 그리고 그는 학교에서 나와 걸어 나간다. 카메라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지만, 영실이 땅이 아니라 하늘을 본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알려준다. 그렇기에 부감이 아니라 이윽고 두 발을 딛고 땅에 선 위치에서 그를 가만히 바라본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느리지만 뚜렷한 변화를 보았고, 멀찍이서 바라보던 시선의 좁혀진 거리만큼이나 그가 걷는 길을 믿어볼 수 있다. 마치 영실이 올곧게 뻗어나갈 제 길을 찾은 사람이라는 듯 말이다.
그러므로 영실은 다시 뛰지 않는다. 요가학원에 재차 방문한다. 느리더라도, 지속적으로. 그것이 그가 걷는 방식이다. 그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고, 견뎌내고, 벗어난다. 준비하던 연구를 수행하고, 책을 출간하고, 음악을 만든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자신을 믿게 하는 것’이다. 그 믿음이 영실을 제 속도에 맞게 살아내게 한다.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는 사람인 그에게 필요한 건 발맞춰 걷는 것이다. 그렇기에 음악도 흐른다. 그는 그곳으로, 계속 걷던 대로 두 발을 딛고 뚜벅 걸어 나간다. 영실이 만든 노래 가사처럼 두 발로 걷고 싶고, 환상 없이 살고 싶은 것. 그뿐이다. 낮에 꾼 신기루 같은 꿈속에서 일도, 간밤의 골목에서 일어났던 일도, 이따금 배설물의 흔적만 보이는 고양이의 존재도, 그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새 운동화도 무던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영실에게는 희망의 움직임이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몸부림을 치고, 움직이고, 살아낸다. 그러니 반대로 달리기를 멈추고 걷기를 선택하고, 믿음의 대상을 선택적으로 바라보게 된 그의 변화가 낯설지만은 않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영실은 학교에서 나와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다. 그리고 흔들거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대답이 없는 이 오랜 응시 속에서 영실의 얼굴 뒤로 들어오는 빛이 화면을 한가득 채운다. 아직 그에 대해서 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우리는 그의 기나긴 시간을 지나 영화의 말미에 다시 현재로 왔다. 그러니 이제는 영실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영실은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선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잠시 멈춰 선 그의 시선은 바깥에 머무른다. 여전히 우리는 그가 보는 것을 볼 수 없다. 영실의 뒷모습 너머 채광 좋은 창으로 무심히 들어오는 희미한 빛이 보인다. 그 빛은 집으로 들어간 영실의 눈으로만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뒤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현관문이 굳게 닫힌 화면으로 끝난다. 이제는 그 문을 벌컥 열어 보지 않고, 문틈 사이로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영실은 자신의 마음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확신도, 믿음도 없었지만, 이제는 자신을 믿어보기로 한 것일까. 그렇기에 그의 시간을 더 이상 파고들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다. 발걸음을 멈칫하게 한 그 풍경에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잠깐의 응시 속에 담긴 알 수 없는 무언가처럼 영화는 영실의 자리를 남겨놓는다. 그가 문을 활짝 열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굳게 닫힌 문이 그가 오래 걸어온 시간만큼이나 견고하며, <사랑의 고고학>은 고요한 만큼이나 단호하게 흐르는 영실을 무척이나 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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