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는 4월 16일
〈장기자랑〉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04. 05(수)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이소현 감독
진행 곽명동 마이데일리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기록입니다.
“소설을 쓴다는 건 일종의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기’ 버튼을 누르는 행위이며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과 소설은 둘로 갈라져 다른 이름으로 저장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과 상황은 허구이지만,
동시에 이 평행 우주에 저장된 모든 것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진짜가 아닐 리 없다.”
- 문지혁, 『초급 한국어』 中
위의 ‘소설’이라는 단어를 단원고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주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노란 리본 극단의 ‘장기자랑’ 공연으로 바꾼다면, 제주도에 무사히 도착해서 장기자랑 공연을 마치는 연극 속의 2014년 4월 16일은 어머니들만의 방식으로 써내려간 또 다른 평행 우주일 것이다. 어머니들은 지금도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을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분명 이 세계는 어딘가에 존재하는 또 다른 현실이다. 이런 세계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담아낸 이소현 감독을 만나보았다.
곽명동 기자(이하 곽): 안녕하세요, 오늘 진행을 맡은 곽명동입니다. 이소현 감독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간단하게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소현 감독(이하 이): 안녕하세요, 〈장기자랑〉을 만든 이소현입니다. 반갑습니다.
곽명동: 감독님이 2016년도에 〈할머니의 먼 집〉이라는 작품으로 호평을 많으셨고, 많은 영화제에서 상도 받으셨는데요. 그로부터 7년 만에 관객과 만나셨는데 관객들과 만난 소감이 좀 어떠신가요?
이소현: 두 번째 개봉이라서 아무렇지도 않을 줄 알았는데 되게 떨리고 매일 예매율을 체크하고 있습니다.(웃음)
곽명동: 여기 계신 분들께서 예매율 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고… 실검까지 올라가면 좋겠는데 요새 실검이 없어져서 아쉽습니다. (웃음) 일곱 분의 어머니들이 다들 개성이 있으시잖아요. 어머니들도 같이 영화를 보셨을 텐데 반응이 좀 어떠셨나요?
이소현: 사실 가장 떨렸던 날은 가족 협의회 연습실에서 어머니들께 이런 내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보여드린 날, 그때가 가장 떨린 날이었어요. 그날 애플워치에서 심장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있으니 체크해 보라는 안내 메시지도 받았었어요.(웃음) 가장 사실 염려된 어머니가 영만 어머니랑 예진 어머니였거든요. 두 분이 뭐라고 말씀하실지 걱정했는데 두 분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 오히려 마지막에 오셨던 윤민 어머니가 “너 진짜 괜찮아?” 이렇게 물어볼 정도로 두 분 다 감독님의 의견과 방향에 충분히 동의한다고 해주시고 인터뷰 할 때마다 나의 이런 모습이 생생하게 나오는 게 좋다고 해주셨어요.
곽명동: 저도 두 분이 가장 격하게 반응하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분들은 좀 어떠셨어요?
이소현: 수인 어머니께서는 아무래도 이런 부분들이 기록으로 남아서 그동안 미디어나 뉴스에서 노출되지 않았던 부분들이 관객들을 만나게 돼서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좋으시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생존학생인 애진 어머니 같은 경우는 사실 촬영을 좀 꺼려 하셨어요. 본인이 나오게 되면 자꾸 이상하게 사람들이 ‘저기 생존학생 엄마가 왜 있어’ 이런 식으로 생각하실까 봐 사실 초반에 인터뷰 두 번을 하고 나서는 다 거절을 하셨어요. 그래서 그걸로 분량을 채운 건데 다행히 좋아하셨어요. 나의 마음을 잘 표현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곽명동: 그렇군요. 제가 알기로는 NHK에서 세월호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시다가 어머니들을 알게 되시고, 다음에 연극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홍보 영상을 찍으러 가셨다가 마침 간 날이 예진 어머니와 영만 어머니의 극한 대립의 현장.(웃음) 그래서 난 누구지, 여긴 어디지 이런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분위기가 살벌한 것 같았는데 어땠나요?
이소현: 저는 조금 일찍 가서 카메라를 세팅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잠깐 나가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셔서 잠깐 나가 있었어요. 한두 시간 지나고 나서 나오시더니 오늘 촬영 못할 것 같다, 어머니 두 분이 그만두셨다, 하셔가지고 홍보 영상은 다음에 찍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사실 믿기지 않았어요. 배역 때문에 극단을 그만두고 홍보 영상을 찍을 수 없을 정도라니.(웃음)
곽명동: 그때 이제 느낌이 오신 거죠? 이거 다큐멘터리로 찍어야겠다는.
이소현: 그 다음에 좀 느낌이 왔던 것 같아요. 저는 그냥 홍보 영상을 빨리 마무리 지어야 된다는 마음이 더 강했거든요. 그러면 어머니들이 서로 사이가 이러셔서 안 만나시니까 댁으로 가서 개별 연습을 하는 걸 촬영을 해서 홍보 영상을 찍으면 되겠다,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개별 영상을 찍으러 대구를 방문했는데 홍보 영상이니까 질문 두 개 정도 준비해 갔거든요. 이번에 어떤 역할을 맡으셨냐, 어떤 내용의 연극이냐, 이런 것들을 준비해 봤는데 저를 붙잡고 인터뷰를 한 2~3시간 동안 하시는 거예요. ‘너무 억울하다, 어떻게 내가 주인공이 아니냐.’ 처음 만난 사람한테 이렇게 2~3시간 동안 속 이야기를 퍼부어 내놓는다는 건 가슴 깊은 곳에 하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으신 거구나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곽명동: 저는 오늘 감독님 처음 만났는데 굉장히 어머니들께도 친근감을 주셨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다큐멘터리라는 게 출연하신 분들과 감독과의 유대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그분들이 감독님을 믿지 못하면 아무것도 드러내놓지 않잖아요. 3년 동안 찍으신 감독님만의 어떤 노하우 같은 게 있으세요?
이소현: 사실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머니들을 찍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고 제가 홍보 영상 때문에 가기는 했지만 보통 4월이 되면 항상 방송국에서 한 열 군데서는 오셨고 그래서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도 좀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또 소속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 당시는 2019년만 해도 도청 이슈도 있었기 때문에 제가 누군지 믿기는 좀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와이어리스 마이크라고 무선 마이크가 있어요. 제가 그거를 어디에 설치를 해놨는데 저게 혹시 도청 장치가 아니냐 이런 이슈가 있었던 거예요. 쟤가 국정원 소속인데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인 척 하면서 들어오는 거 아닐까 이런 이슈가 내부에서 좀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찍어놓은 외장 카드를 들고 가서 저는 이런 거 다 안 중요하다고 의심스러우시면 보시는 앞에서 다 지워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이제 어머니가 왜 찍은 걸 지우냐고 그러면서 마음이 좀 많이 열리셨던 것 같아요.
곽명동: 갑자기 궁금한 게 그럼 결국 홍보 영상은 찍으셨나요?
이소현: 네, 홍보 영상은 찍었어요.
곽명동: 저는 혹시 싸우셔서 못 찍지 않았을까 해서 여쭤봤습니다.(웃음) 영화 첫 장면이 연극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잖아요. 다음에 김태현 감독님께서 '컷'하고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는데 그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어봤을 때 수인 어머니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사랑은 전혀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것 같아 지금까지 몰랐던 걸 말이야’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감독님께서 근본적으로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어머니들이 연극이라는 장르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신 거잖아요. 몰랐던 나의 능력을 알게 되고. 자식의 꿈을 예전에는 몰랐었는데 연극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되고 어머니들이 시야가 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아서 제가 봤을 땐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소현: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다 다르겠지만, 세월호 진실 규명이라는 이슈를 빼고 제가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삶과 죽음 사이에 어떤 삶이 오는가에 대해서거든요. 짧은 단편을 만들든 장편을 만들든 그 사이에 있는 것, 그게 사랑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서 그 이야기를 이제 집어넣게 됐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우리 아이와 나누는 사랑 이야기, 그리고 참사가 아니었다면 다시는 절대 만나지 않았을 법한 엄마들과의 우정, 이런 넓은 의미에서 사랑 이야기로 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연극으로 넘어가서는, 연극이라는 세상에 연기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 이슈를 한번 초반에 넣고 가면 어떨까 싶어서 집어넣게 되었습니다.
곽명동: 박수 한 번 부탁드릴게요. 여러분들 영화 보셔서 아시겠지만 굉장히 감동적이고 뭉클하고 또 따뜻하고 유쾌한 영화잖아요. 그 기저에는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독님께서 하신 인터뷰에서 세월호 영화에 슬퍼하는 모습 아니면 투쟁하는 모습, 딱 두 가지 모습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어머니들의 욕망이 발현되는 지점을 계속 관찰을 하면서 만드셨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것들이 유족다움, 피해자다움 같은 것들을 깰 수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이소현: 제가 이 영화를 찍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들이 몇가지 규칙을 주셨었어요. 그 중에 첫 번째 규칙이 밥 먹는 장면은 절대 찍지 않는다는 규칙이었어요. 그게 저한테 좀 놀라웠는데 어디서 밥을 먹으면 사진이 찍혀서 페이스북 같은 데 올라간대요. 세월호 유족이 밥 먹는다 이런 식으로. 그런 상황들을 굉장히 두려워하셨고 때문에 더 위축돼서 이런 것들을 자꾸 안 보여주시려고 하더라고요. 또 참사 피해자 같은 분들을 세상 사람들이 투쟁하는 모습 말고는 굉장히 성자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요. 저 사람은 정말 큰 일을 겪었는데 그걸 이겨내고 정말 훌륭한 업적을 이룰 거야. 그래서 굉장히 특별한 사람인 것처럼 보여지는데 그게 아니라 욕망을 가진 평범한 인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곽명동: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앞으로도 많이 진행됐으면 좋겠어요. 영만 어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잖아요.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일본 유명 작가 중에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분께서 ‘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내셨는데 ‘분인(分人)’에 대해서 말씀하신 게 있어요. 영어로 개인이 ‘in-dividual’이잖아요. 나눌 수 없다는 뜻이거든요. 우리는 겉으로는 나뉘지 않지만 내가 학교 갈 때 다르고 사회 있을 때 다르고 집에서 다르고 친구 만날 때 다르고 동창이든 부모든 누구를 만날 때마다 다 다르잖아요. 이제 그분께서는 ‘dividual’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우리는 분인이다. 그러한 분인과 분인끼리 만나서 삶이 지속되는 거라고 말씀하시고 계세요.
여기에 계신 어머니들도 물론 가슴에 정말 평생 지워지지 않는 크나큰 상처와 슬픔이 있으시지만 또 이렇게 멋지게 살고 싶은 그런 욕망도 있으니까 우리 모두 마찬가지로 분인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한 보통의 평범한 우리네 모습을 담아낸 게 아닌가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여러분들도 각자 인상적인 어머니가 있으셨겠지만, 물론 예진 어머니와 영만 어머니도 인상적이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수인 어머니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느낌이 어떤 바위 같다는 느낌이에요. 번개가 쳐도 흔들리지 않는. 갑자기 유치환의 바위라는 시가 생각이 나네요. 근데 이분이 맨 마지막에 딱 한 번 웃습니다.
등장하는 순서대로 말씀드리면 수인, 동수, 애진, 예진, 영만, 순범, 그 다음에 윤민 어머니입니다. 윤민 어머니는 맨 마지막에 합류하셨으니 나중에 등장하는 게 맞는 건데 혹시 순서를 이렇게 하신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이소현: 영화 관객들이 어떤 순서대로 어머니들을 만나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저는 항상 그런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었어요. 순서에 대한 컴플레인이 들어올까 봐.(웃음) 그런데 수인 어머니를 가장 먼저 보여줬을 때 아무도 컴플레인을 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곽명동: 100% 동의합니다.
이소현: 그리고 수인 어머니랑 동수 어머니가 이 연극을 가장 먼저 시작한 초창기 멤버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에 동수 어머니가 등장했을 때도 아마도 컴플레인을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이 좀 들었었고. 그리고 인터뷰를 했었을 때 제가 의도를 가지고 인터뷰를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냥 어머니들 의식 흐르는 대로 말씀하시는 걸 다 촬영을 한 거였었어요. 막 질문이 특별히 있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예진 어머니께서 예진이 수학여행 갔을 때 장기자랑을 준비했었고 그때 수학여행 가기 전에 친구들한테 옷을 빌렸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연극 내용이랑 굉장히 맞닿아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세 번째로 와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다음에 이제 생존 학생 어머니인데 이 생존 학생 어머니는 정말 고민이 많았어요. 마지막으로 빼자니 너무 반전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상황을 함께 경험한 누군가로서 존재했을 때 예진 어머니 다음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영만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이 몸이 좀 늦게 와가지고 오랫동안 팽목항을 지키셨던 분이셔서 그 이후의 이야기가 좀 더 잘 맞는 것 같아서 넣었어요. 순범 어머니는 머리가 노란색이어서 누가 봐도 굉장히 튀는 비주얼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초반에 등장시키면 물론 이 영화가 세월호 영화지만 너무 세월호 영화 같은 느낌이 확 들 것 같아서 조금 뒤로 빼게 되었습니다.
곽명동: 컴플레인과(웃음) 실제 스토리를 잘 결합하셔서 영화를 만드신 것 같습니다. 애진 씨라고 해야 할까요. 만으로 스물여섯이 된 거죠. 9년 전에 고2였으니까. 애진 씨는 영화에도 잠시 얼굴 나오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이분이 처음에 유아 교육을 꿈꾸다가 세월호 참사를 생존자로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응급구조사가 되셨대요. 굉장히 뭉클하더라고요.
이소현: 지금 세월호 참사 후에 모든 가족이 다 세월호 참사 관련 일을 하고 계세요. 참사 후에 인생이 너무 많이 바뀌셨는데 아버님은 세월호 가족 협의회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현재 연극 활동을 하고 계시고.
곽명동: 여러분들 이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아마 그 당시 기사 나오신 거 기억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요. 수현 학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현 학생 어머니가 유품을 정리하는데 버킷 리스트가 나온 거죠. 그게 아빠 수제 기타 만들어드리기, 자서전 내보기, 재즈 피아노로 인정받기, 진정으로 남을 위해 봉사하기, 고교 졸업 전까지 책 2천 권 읽기. 유명한 뮤지션 사인 받기, 나 혼자 세계 여행하기. 이렇게 25가지가 있는데 결국은 가족들이 하나둘씩 실천을 하고 있어요. 책 2천 권은 가족들이 계속 읽고 계시고, 근데 가족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랑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뮤지션 사인 같은 경우에는 많은 뮤지션이 사인해서 직접 주기도 했고요. 부활의 김태원 씨 같은 경우에는 직접 수제기타 만들어서 아버지 드리기도 했고요. 우리가 단지 가족들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가 같이 앞으로 함께 하면서 공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두 부분이죠. 하나는 예진 어머니와 영만 어머니의 극한 대립.(웃음) 극한대립 다 끝났을 때가 58분 정도 되고요. 나머지가 이제 단원고등학교에서 공연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일곱 분의 어머니들의 의견. 그리고 또 하나는 과연 어머니들이 단원고등학교 무대에 오를 것이냐 안 오를 것이냐. 감독님께 일부러 이렇게 했냐고 물어봤더니 서스펜스를 너무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영화 전공이어서 서스펜스 없는 건 안 좋아하신다고.(웃음)
제가 리마인드 시켜드리자면, 예진 어머니는 설레는 마음이셨고 애진 어머니는 학생들이 좀 걱정된다 이런 마음이었고 동수 어머니도 약간 걱정하는 거였죠. 수인 어머니는 정말 대단하신 게 공연하고 나서 생각하자.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우리 윤민 어머니와 순범 어머니는 좀 괜찮을 것 같다. 맨 마지막에 등장하신 영만 어머니는 꼭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단원고등학교 무대에 올라가는 게 마지막으로 영화가 끝나는데 이 부분에서 순범 어머니 이야기가 좀 길게 나와요. 수면제 얘기도 나왔고 그 다음에 아들 생일 축하하는 것도 나왔고. 뒷부분에 순범 어머니 얘기를 배치했던 건 그분 사연이 좀 더 극적이었기 때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소현: 저도 처음에 어머니들 만났을 때 좀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고, 많은 언론에서 보면 어머니들이 질문하는 부분인데요. 정말 이 연극이 트라우마 치료에 도움이 되느냐 이런 얘기를 굉장히 많이 물어보세요.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김태현 감독님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떻게 치료하냐, 그건 치료가 정말 불가능한 이야기인데 굉장히 무례한 질문이라고 말씀을 하세요. 근데 삶의 활력을 더해 주는 부분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영화에 나오는 예진 어머니 같은 경우는 아무래도 계속 주연만 맡아오셨기 때문에 굉장히 좋아하시거든요. 연극 자체를 하시고 이러시는 거를. 그런데 순범 어머니 같은 경우는 첫 번째 장기자랑 공연을 마치고 나서 바로 자살 시도를 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참사 유가족이라고 하면 한 덩어리로 보는데 이건 개별 존재들마다 굉장히 다 다르게 봐야 되고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아 왔고 이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걸 해도 다른 어떤 결과를 맞을 수 있는데 연극을 해서 이분들은 행복해졌어, 괜찮을 거야 이렇게만 바라보는 건 좀 위험하거든요. 초반에 저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범 어머니는 단원고 공연을 꼭 하고 싶어 하신다는 내용을 같이 이렇게 버무리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넣게 되었습니다.
곽명동: 갑자기 덩어리 말씀하셔서 또 생각나는 말이 일본에 영화 감독 기타노 다케시라고 있는데요. 일본에 지진이 많이 나잖아요. 5천 명이 죽었다고 치면 그분은 이제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죠. 5천 명이 죽은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개인 거다, 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세월호도 304명이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 했는데, 학생은 250명이 그렇고. 한 덩어리로 304명이 세월호 참사를 당한 게 아니라 304개의 사건이 있는 거죠. 생존자들도 있고요. 그런 것들이 앞으로 사회가 계속 해결해 가야 할 문제고 진상 규명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사회 공동체가 같이 아프면서 치유해 나가야 되는 과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단원고 연극할 때 제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계속 앞 모습만 보여주다가 손 잡고 교복 입고 뒷모습을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서 어머니들의 어떤 뒷모습을 찍는데 카메라 여섯 대를 돌리셨대요. 이런 뒷모습을 보여주셨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소현: ‘장기자랑’이라는 연극이 어떤 공연인지 언뜻 언뜻 나오지만 전체적인 장면은 안 나오는데 사실 어머니들이 공연을 하는 이유는 7명의 엄마들의 모습을 통해서 304명 중에 250명 단원고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시거든요. 뒷모습으로 보여준다면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그 아이들을 좀 상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뒷모습을 보여주게 되었습니다.
곽명동: 저는 개인적으로 관객들한테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예컨대 어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어떤 어머니는 자식이 못 올라갔던, 못 밟았던 무대를 내가 밟았다는 뿌듯함을 느끼셨을 어머님도 계실 것이고 그래서 그런 상상력을 관객에게 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봤습니다.
영화 보면 톤 조절이 굉장히 어려웠을 것 같아요. 예컨대 너무 슬퍼할 수 있는 모습만 보여주면 영화가 좀 무거워지고 너무 연극에만 집중하고 재밌어 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영화가 너무 가벼워지잖아요.
이소현: 네, 그래서 저희 다큐멘터리 크레딧 보시면 아시다시피 편집을 총 4명이 다 했고요. 각 단계별로 편집 감독이 있었고 제가 했던 기간도 있었어요. 저는 어머니들이랑 너무 익숙해서 슬픈 장면을 하나도 안 집어넣어서 편집 감독님들이 이게 세월호 영화인지 코미디인지 모르겠다 얘기를 하셨어요.(웃음) 그래서 조금만 넣자 해서 서로 합의를 해가면서 조율하면서 만들었어요. 제가 남의 말을 진짜 잘 들어요. 전문가들이 따로 있는 거잖아요.(웃음)
곽명동: 실제로 감독님이 하시는 일이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취합하는 것이고 그것이 감독이 가져야 될 능력이라고 제가 알고 있습니다. 만약 감독님 버전대로 나갔다면 정말 코미디 영화가 나왔을 수도 있겠네요.(웃음)
이소현: 여성영화제 버전이 있었는데 그건 제 생각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가 있었어요. 그런데 최종 개봉 버전 편집하면서 편집 감독님이 아는 사람들끼리만 볼 것도 아니고 세월호 참사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영화 보면 소외감을 느낄 것 같다고 참사 얘기도 좀 넣어야 되지 않나 해서 넣게 됐습니다.
곽명동: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극단 노란 리본이 올해 연극할 것까지 다섯 개 작품인데 제가 제목을 말씀드리면 첫 번째 <그와 그녀의 옷장>, 두 번째가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 세 번째가 <장기 자랑>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가 <기억여행>. 라스트 신이 이제 <기억여행>의 주인공을 정하는 장면인데 그때도 영만 어머니께서 주인공을 하시죠. 올해 할 공연은 <연속, 극>이라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분들은 앞으로 굉장히 유명한 연극배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준비하기 전에 ‘배우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니까 연기자는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상처를 바로바로 잘 받는다는 게 아니라 상처받기 쉬운 마음을 가진 사람, 미묘한 느낌을 포착해내고 그걸 간직할 수 있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이제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굉장히 유명한 한국의 연출가가 말씀하셨는데 여기 계신 7분의 연극 배우, 어머님들이 이런 마음을 갖고 계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만 어머니께서 하나 둘 셋 하면서 마지막에 영화가 끝나잖아요. 앞으로 이 어머니들이 계속 연극을 해 나갈 것이라는 진행형의 의미로 마무리를 하신 거죠?
이소현: 네, 맞습니다. 그리고 또 누가 ‘노란 리본’이 될지 궁금증도 유발하고 싶었고 또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하실 수도 있지만 궁금증을 통해서 내가 ‘노란 리본’이 되어서 학교에 어머니들과 가야겠다는 마음도 심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곽명동: 앞에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학원에서 사운드를 전공하셨대요. 생각해보니 저는 영화 보면서 사운드에 대해서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더라고요. 그래서 좀 사운드에 신경을 어떻게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소현: 진짜 많이 썼죠.(웃음) 보통 촬영하면 카메라에 마이크가 달려 있으니까 이렇게 한 대로만 촬영을 한다든가 하는데 저희는 그런 마이크 포함해서 어머니들께 부착해서 그렇게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멀리 계신 어머니들 목소리도 또렷하게 들릴 수 있도록 했던 부분이 있어요. 또 편집 감독님이 너무 좋아하셨던 장면이 단원고 공연하는 부분이었거든요. 다른 연극 공연이 들어간 다큐멘터리에서는 공연을 올리는데 대사가 잘 안들려서 ADR(후시녹음)을 따거나 이런 상황까지 벌어진 적이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장 사운드 작업하면서 신경을 많이 썼었던 부분은 단원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제주도에 도착한 그 순간인데 안산에 있는 단원고에서 제주도까지 어머니들 마음이 바람을 타고 도착했으면 좋겠는 사운드를 디자이너에게 요청을 했죠. 디자이너 분께서 찰떡같이 알아듣고 싹 해주셔서 맞다 이거다! 하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웃음)
곽명동: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굉장히 힘을 들여서 만들었다. 제가 영화사 보도 자료를 보다가 깜짝 놀랐는데 약력을 보니까 감독님께서 직접 쓰신 것 같은데 정수기 판매원, 광고 프로듀서, NGO 활동가, 동시 녹음 기사, 여기서 사운드 전공이 나오는 거죠. 팔레스타인에 갔다가 다큐멘터리 시작 이게 끝이에요. 그래서 여러분들 너무 궁금하지 않으세요, 감독님의 삶이? 영화에 어머님들도 어쩌다 연극 배우가 되셨는지에 대한 과정이 담겨 있는데 감독님도 어쩌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셨는가. 이것만 보기에는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이소현: 저는 원래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재능이 없어서 교수님들이 안 했으면 좋겠다고.(웃음) 하지만 저는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열심히 작업을 하다가 귀에 병이 나게 된 거예요. 그래서 1년 정도 학교를 쉬고 이렇게 치료를 받던 와중에 제가 우연히 그때 한비야 씨 책을 읽게 됐어요. 중동에는 사랑이 있다, 이런 내용의 책이었어요. 그래서 중동에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6개월 만에 치료가 끝나 6개월 동안 할 일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팔레스타인에 우연히 가게 됐는데, 제 친구 중에 미디어 센터에서 일하는 애가 있었는데 요만한 카메라를 들어서 거기 가서 뭐 좋은 거 있으면 좀 찍어오라고 그러더라고요. 팔레스타인에 가면 공짜로 재워주는 어떤 할아버지가 있다는 거예요. 올리브 동산에. 그래서 가서 그 할아버지를 찾아낸 거예요. 남산에 가서 김 씨 할아버지를 찾듯이.(웃음)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할아버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래, 이렇게 해서 하게 된 것 같아요.
곽명동: 대단하십니다. 저도 한 번 올리브 동산 가보고 싶습니다.
이소현: 이브라힘 할아버지라고 평상에 앉아 계세요.(웃음)
곽명동: 그러면 저희는 이쯤에서 저희 얘기는 마무리하는 걸로 하고요. 혹시 감독님께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마이크를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보시다가 궁금한 사항 없으셨나요?
관객 1: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습니다. 제가 궁금한 건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이 사람은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 하셨을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막 생각나더라고요.
이소현: 사실 이런 세월호 영화 같은 영화들을 항상 보는 사람들만 보거든요. 그래서 좀 안 보는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고 저는 태극기부대 어르신들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어요.(웃음) 제가 이걸 찍다가 한 번 촬영도 두 번 정도 갔었어요. 물론 거기 가서 촬영할 때는 세월호 다큐멘터리라는 얘기는 안 했는데 찍는다고 컵라면도 주시고 잘 해주셨거든요. 기회가 되면 꼭 보수와 진보가 만나서 화합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곽명동: 그러니까 영화 오프닝 장면 수인이 어머니가 했던 말이 진리라니까요.(웃음) 사랑은 서로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거라는. 마음을 활짝 열고 역시 그런 아픔을 같이 치유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또 다른 궁금한 사항이 있으실까요? (사이) 혹시 촬영하시면서 두 어머니들의 갈등 외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게 있었나요?
이소현: 저도 이 영화를 3년 넘게 찍게 될 줄은 몰랐고 2019년에 시작돼서 첫 번째 단원고 공연 제안이 들어온 게 2020년 4월이었어요. 그래서 그때 영화가 마무리 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공연이 취소가 되면서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실제로 단원고 공연을 한 게 2021년 12월 30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거의 한 2년 동안을 엔딩을 내지 못한 거죠. 그동안 이렇게 하면 엔딩이 되려나 저렇게 하면 되려나 하면서 이렇게 고민하고 또 코로나 시기가 겹쳐서 공연은 또 다 취소되고 뭔가 찍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었던 시기가 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곽명동: 그때도 힘드셨을 것 같아요. 예진 어머니께서 영만 어머니랑 싸우고 극단을 나가셨잖아요.
이소현: 아, 네네. 맞아요. 양양에 가셨어요.
곽명동: 강원도에 가셨대요. 그래서 전화하니까 강원도 바닷가를 걷고 있다고. 감독님께서 어머니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 영화 찍어야 된다면서 달려가셨다면서요.
이소현: 네 맞아요. 그때 예진 어머니가 극단을 그만두시겠다고 잠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코로나 때문에 영화도 못 찍고 있는데 예진 어머니까지 극단을 그만두시면 영화를 어떻게 찍나 저는 긴박한 마음이 좀 더 강했던 것 같아요. 예진 어머니가 아무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하셔서 전화를 드려봤는데 제 전화는 받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 어디세요, 그랬더니 양양 바닷가를 걷고 계시다고 그래서 어머니가 제 다큐멘터리 주인공인데 안 오시면 저는 어떡하나요 이랬거든요. 그랬더니 예진 어머니가 막 펑펑 우시는 거예요. 감독님밖에 없다면서.(웃음) 지금 당장 양양으로 가겠다고 그랬더니 밤이 너무 깊었으니까 내일 오라고, 그래서 다음 날 바로 갔죠. 그래서 그때 그 장면을 찍게 됐어요. 제가 간 순간 벌써 기분이 너무 좋아지셔서 그 전에는 좀 안 좋으셨다가 그래도 웃으면서 인터뷰를 하신 것 같아요.
곽명동: 보니까 예진 어머니는 누군가의 전화 한 통이 그리우셨던 것 같아요. 저는 이 영화 보면서 김태현 연출님이 극한 직업 같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정말 두 분의 갈등을 중재하시려고 따로 만나잖아요.
이소현: 진짜 신기한 것 같아요. 그런 인터뷰도 사실 했었거든요. 감독님 그만두고 싶으시지 않습니까, 저는 어머니들보다 감독님이 그만두고 싶으실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 부분은 노 코멘트 하시겠다고 자기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고 어머님들이 연극을 다 그만두시기 전까지 함께 하실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곽명동: 연출님이 대단한 게 영화 보셔서 아시겠지만 그냥 어머니들이 바리스타 교육받고 커피하시다가 그냥 지나가는 얘기로 한 거잖아요. 도자기나 할까, 연극을 해볼까 이런 것 중에 하나가 연극이라는 단어였는데 그걸 건너 듣고 한 걸음에 달려가신 거잖아요. 책임감이 엄청나신 것 같더라고요
이소현: 제가 봤을 때는 저도 어머님들 찍으면서 그랬었는데 한 3년 정도 너무 행복하셨던 것 같아요. 어머니들 만나서 어머니들이 무대에 오르시고 행복해 하시는 걸 보면서 굉장히 행복해 하셨는데 3년 정도 지나고 연기 욕심이 생기면서 조금 힘들어지신 것 같은.(웃음) 저도 너무 행복했는데 어머니들이 다큐멘터리에 욕심이 좀 생기게 되면서 진짜 분량조절 진짜 잘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곽명동: 근데 가장 욕심을 내시는 영만 어머니 같은 경우는 이영만 연극상도 만드셨다고. 연극인들 후원도 하고 계시다고 하시던데.
이소현: 네, 맞아요. 영화에는 다 나오지는 않는데 국립극단에서도 공연을 캐스팅돼서 하셨고요. 단독 공연도 대학로에서 두 번 정도 하셨고 실제로 다른 극단에서 캐스팅 된 경우도 몇 번 있으셨어요. 그러면서 연극인들을 굉장히 많이 만나게 됐는데 연극인들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대요. 그래서 영만이 이름으로 상을 드리고 후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해서 올해 처음 2월 19일 영만이 생일에 이영만 연극상 시상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네 명의 연극인에게 수상을 해주셨습니다.
곽명동: 영만 어머니가 안 계시지만 박수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런 선한 영향력들이 계속 동심원을 그리듯이 퍼져나가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장기자랑〉 개봉이 굉장히 뜻깊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요. 혹시 러닝 타임이 93분인데 더 집어넣고 싶은 건 없으셨어요? 넣을까 말까 고민하셨던 부분 같은.
이소현: 저는 출연자 분들이 만족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서 어머니들이 가장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다 집어 넣어드렸어요. 근데 동수 어머니가 원하는 장면 딱 하나를 어디에 넣어도 그게 좀 맥락에서 벗어난 이야기 같아서 못 넣어드렸거든요. 그게 뭐였냐면 동수가 로봇 공학자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수학여행 가기 전까지 동수가 로봇 경시대회에 나가려고 로봇을 조립하다가 안 가고 싶다고 얘기를 했나 봐요. 이거 완성하고 대회 나가고 싶다고. 그랬는데 어머님도 한 번밖에 없는 수학여행이니까 가라고 하신 거죠. 그러고 나서 이 로봇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있었는데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학생들하고 교수님들이 그 얘기를 듣고 로봇을 완성시켜주셨어요. 심지어 로봇 경시대회 관계자들까지 다 초대를 해서 똑같이 재연을 해서 로봇이 움직이는 시연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저도 동수 어머니가 오라고 해서 그냥 별 생각 없이 갔는데 로봇이 진짜 똑똑한 로봇이더라고요. 태양열을 통해서 움직이고 어떤 걸 보면 반응하는 걸 보는 시연회가 있었는데 우리 극단 어머니들 다 가서 축하해 주고 그런 순간을 촬영을 했는데 어디 들어갈 곳을 잘 못 찾아서 결국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뺐었어요.
곽명동: 저도 그 모습을 정말 보고 싶네요. 이제 마무리를 해야해서요, 감독님 마지막 끝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소현: SNS에 좀 올려주시면.(웃음) 사람들이 슬플 것 같아서 못 본다는 분들이 진짜 많으시더라고요. 슬픈 참사가 비극인 건 다 알기 때문에 영화에 굳이 그걸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최대한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정말 이런 표현이 적당하지 않지만 웃을 수 있는 세월호 영화라고 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곽명동: 마지막으로 박수 부탁드립니다. 늦은 시간까지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소현 감독이 담아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유쾌하고 발랄했다. 이들은 더 멋진 삶을 열망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서운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화해하고 새로이 삶을 시작할 용기를 내보이기도 한다. 〈장기자랑〉을 통해 세월호라는 사건을 겪었다는 이유로 묶이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개별의 얼굴들을 마주함으로써 각기 다양한 욕망을 품고 있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4월 16일이 단지 그 시간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를 치고 뻗어나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각각의 개별 평행우주로서 남을 수 있다면, 세월호는 분명히 우리의 현실과 공명하는 또 다른 현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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