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다〉리뷰: 눈에 보이는 관계.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샤워를 마친 진영이 거울을 보고 있다. 물기가 자욱하게 묻어있는 거울 탓에 그의 모습은 투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똑바로 보이지 않는 느낌이 마음에 남는다. 진영은 화장실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빠르게 들어가고, 아버지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누워있다. 카메라는 진영이 서 있던 자리에서 아버지를 내려다본다. 이 시선을 진영의 시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는 이미 방 안으로 몸을 옮겼다. 아버지의 돌아선 뒷모습은 진영의 눈에 들어온 상황이라기보단, 그의 마음속에 박혀 있는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진영과 아버지는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진영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의 시선은 자주 화면 바깥을 향해 있다. 대화를 나눌 때도 앞에 놓인 사람과 눈을 마주하는 일은 도통 없고, 고개를 푹 숙이거나 허공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흐르다〉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함께 보내야 하는 시간이자 진영을 무능력하다고 말하는 세상의 눈치를 견디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영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영화는 진영의 얼굴과 그가 바라보는 것을 쉽게 연결해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진영의 모습이 포함된 풍경을 보여준다. 진영은 매번 상황 속에 깊이 속하지 못하고 분리된다. 진영은 영화의 상황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 진영은 문 하나 쉽게 열지 못하고, 시선 하나 쉽게 던지지 못하는 사람이다. 집안에서 진영은 아버지를 피해 문 안으로 숨는다. 부모의 다투는 소리에 이불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고 귀를 막는 진영의 모습에서 지금의 그를 만들어낸 오랜 역사가 보인다.
하지만 진영을 무기력하다거나 연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몇 안 되는 시선 쇼트들이 진영의 욕망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중에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진영의 시선이 있다. 어머니 또한 진영에게 그리 편한 사람만은 아니었지만, 진영은 어머니와 시선을 교환하며 이야기할 수 있다. 자동차에 앉아, 목욕탕에서, 그리고 한 침대에 누워 대화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언제나 진영과 아버지 사이에서 말을 전달하고, 끊어진 시선을 이어낸다. 어머니는 플롯 안과 밖에서 시선의 중재자 역할을 맡아왔다. 그러니 어머니의 죽음은 블랙 아웃으로 보여질 수 밖에 없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어지던 시선의 규칙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진영은 아버지로부터 시선을 돌릴 방법이 없다. 좋든 싫든,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함께 채워야 한다. 진영은 공장 일을 도우며 아버지의 순간들을 바라본다. 일본의 고객들에게 기계설비를 놓을 자리를 설명하는 아버지, 직원에게 똑바로 하라며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를 보며 진영이 어떤 마음을 가졌을지 알 수 없다. 다만 매번 문을 닫고, 눈을 돌리기를 선택하던 진영이 공장의 다양한 문들을 넘나들고, 조금씩 아버지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 이유는 하나로 설명할 수 없다.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 또한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존재라는 사실에 작은 동질감을 느꼈을 수도 있고, 언니의 말처럼 “엄마를 닮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진영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로 똑바로 응시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자신의 결핍을 더 큰 물질적 성과로 메우는 방법밖에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는 “매사에 진취적으로” 나아가려다 넘어진다. 새로운 공장장의 제안에 따라, 더 큰 공장에 납품 계약을 따내기 위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실패가 예감된다. 우리는 반복되는 자동차 장면을 기억할 수 있다. 다른 높이에 놓인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 못하고 대화하던 진영은 자동차 옆자리에 앉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조수석에서 바라본 운전석과, 운전석에서 바라본 조수석의 쇼트가 교차했다. 진영과 아버지는 어머니의 계좌를 함께 정리하며 대화 나눈다. 그 후 둘은 한 화면에 담길 수 있게 되고, 자동차에 나란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공장장이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갈 때는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이 아니라, 전면 유리창으로 비친 커다란 공장만 보인다. 관계를 그리던 카메라는 이질적인 성격으로 변한다. 아버지는 살아온 긴 세월 때문인지, 진영보다 느리게 배운다.
공장장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진영을 향해 아버지가 손찌검하는 순간이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던 두 사람이 충돌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문 하나 넘고, 시선 하나 두기를 어려워했던, 그래서 매번 상황을 흘깃 지켜보던 진영은 공장장을 불러내어 이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 모든 과정을 지나 진영의 주도로 우리의 눈 앞에 펼쳐지게 된 숏/리버스 숏의 순간에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아버지의 손은 너무나 쉽게 침범하고, 진영이 만들어 낸 관계는 다른 것으로 바꿔버린다. 진영은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마음먹으면 들어올 수도, 또 나갈 수 있는 대상이 되었던 문은 더 이상 문으로 기능하지 못한다. 하지만 진영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꾸역꾸역 버텨내고, 원하는 바를 이룬다. 캐나다로 떠난 그는 자신을 둘러싼 커다란 세상을 두려워하기를 멈춘다. 집에서, 스터디의 공간에서, 공장의 노동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힘을 빼던 진영은 이제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풍경 속에 속해있다. 그러고는 전화기의 스크린이라는 안전거리 너머에 놓여있는 아버지를 바라본다. 우리는 그가 편안하길 바라고, 그럴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다.
부모의 다툼이 바닥에 남긴 유리 조각이 진영의 발에 상처를 낸다. 진영은 상처를 바라본다. 〈흐르다〉는 진영을 둘러싼 관계를 눈에 보이는 것들로 보여준다. 성실하고 꾸준히 관계를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려내다 보면,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 관계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아버지를 면회하고, 워킹홀리데이에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한 진영은 계단 아래로 내려와 높은 벽 아래에서 엉엉 운다. 우리는 높은 벽에서 진영의 아픔을 본다. 저 벽은 아버지와의 답답한 관계이고, 내가 헤아리지 못했던 어머니의 역할이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진영의 지난 시간이다. 영화는 결국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드는 매체이다. 〈흐르다〉는 그 일을 무척이나 성실히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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