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얽히기 위해 필요한 밤의 개수,
〈여섯 개의 밤〉 최창환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민정 님의 글입니다.
우연한 불시착으로 예상 밖의 도시에 경유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여섯 개의 밤〉을 두고 최창환 감독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사실은 정말 나에게도 이런 불시착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여섯 개의 밤을 모아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 최창환 감독을 만나 〈여섯 개의 밤〉이 헤아려온 시간을 들어봤다.
〈여섯 개의 밤〉이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 후, 이렇게 개봉까지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새로운 관객들을 만나게 된 감독님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또 〈여섯 개의 밤〉을 처음 보시는 관객분들께 영화 소개를 해주신다면요.
그 전의 영화들이 계속 코로나 중에 개봉해서 GV도 하기 어렵고, 관객분들도 계속 마스크 쓰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그런데 최근 들어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완화되고, 관객분들도 조금 자유로운 상황이 된 후에 상영하게 돼서 너무 기쁘고요. 관객이 좀 더 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독립영화를 많은 분이 봐주시는 건 아니니까 걱정도 있기는 한데 일단 극장에서 상영하게 되어서 기쁜 마음이 큽니다. 영화는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가 기체 고장이 나면서 하루 정도 부산에 머물게 되는 세 커플의 이야기에요. 세 커플이 하룻밤 동안 일어나는 격정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그 안에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극장에 와서 어떤 이야기들이 있는지 확인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인물들이 기체 고장으로 인해 부산에 머물게 된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감독님의 전작 중 〈내가 사는 세상〉(2019)에서는 대구가 있었고 〈파도를 걷는 소년〉(2020)에서는 제주라는 공간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도 감독님의 시선으로 담아낸 부산이 기대가 됩니다. 김해공항에 불시착했기에 부산이 선택된 이유도 있겠지만, 그것 외에도 부산이라는 공간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첫 번째로 장소 섭외를 하기 시작했던 곳은 제주도예요. 그리고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마 일본이나 하와이 같은 해외에서 찍고 싶기도 했고요. 아예 소통이 안 되는 곳으로 가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경유'가 중요하지 도시는 큰 의미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말씀해주신 김해공항 불시착 같은 경우는 사실 인천에서 출발해서 부산에 떨어지는 것보다 바다를 한번 건너야 이야기상 자연스럽지 않겠냐고 생각했었는데, 전략의 여건으로 부산을 선택하게 됐죠. 또 촬영 기간이 성수기였기 때문에, 현실적인 이유를 말씀드리면 제주도의 성수기를 감당할 만한 제작상의 여건이 안 되기도 했어요. 한 달 정도 프리 프로덕션을 하다가 제주도는 제작비가 심하게 늘어나겠다는 결론이 나서 그 후 부산으로 알아봤어요. 그 과정에서 어차피 국내에서 찍을 거라면 대구도 고민했었고요. 대구는 저에게 제작진 인프라가 더 많았거든요. 하지만 최종적으로 부산을 선택하게 됐던 이유는 부산영상위원회의 제작 지원 때문이었어요. 그때 부산도 성수기였는데, 영화의 주된 공간이 되는 호텔 섭외나 지원적인 측면에서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부산으로 최종 결정하게 됐어요. 하지만 영화 내용을 생각하면 저는 바다를 건너는 느낌을 주고 싶기는 했었어요. 코로나 시국이라서 가지 못했지만요.
오히려 그 점이 영화에 도움이 된 것도 같아요. 부산이 관광 도시잖아요. 그래서 표류의 임시적인 감정이나, 갑자기 변경된 일정으로 인해 무언가 헛헛하고 쓸쓸한 마음을 관광 도시로서 부산이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래도 부산도 관광도시지만 제주도도 한국 최고의 관광도시니까 여건상 더 좋지 않았겠냐고 저는 생각한 거죠. 좀 낭만적으로 도시를 꾸며보고 싶기도 했고요. 낭만적이라는 게 인물들에게 일어나는 감정들과 다르게 도시가 가지고 있는 감정들 있잖아요. 그래서 오키나와나 도쿄의 야경, 시부야를 걷는 커플들을 찍고 싶었으나 그런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었죠. 원고의 시나리오에서도 배경이 제주도였어요. 인물들이 제주에 도착해서 국밥을 먹거나 거리를 거니는 장면들이 되게 많았죠. 그래서 커플들이 각자 찾아가는 특정한 장소도 있고, 같이 걸으면서 얘기하는 장면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다 빠져버렸어요.
감독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은실(변중희), 유진(김시은) 모녀가 밤바다를 걷는 장면도 그런 낭만이 있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실외 장면이 많이 빠진 게 정말 아쉬워요.
저는 오히려 호텔 방이 주 배경이라 일부러 실내 장면으로 의도하신 줄 알았어요.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철저하게 더 의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실외로 나가면 환기가 되는 부분이 있고 다른 측면에서도 영화가 더 볼거리가 많아졌겠죠.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이제 영화의 가장 처음으로 돌아와 볼게요. '모든 여행은 여행자가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목적지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마틴 부버의 이 문구로 시작하잖아요. 그래서 영화도 여기에서 영감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시나리오의 제일 첫 문장이 마틴 부버의 그 문장이었어요. 사실 이 영화는 제가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건 아니거든요. 저는 각색을 했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건 이 영화의 제작을 한 제작사 '매치컷' 김기현 대표예요. 김기현 대표는 원래 연출 전공이라 본인 작품도 찍어왔는데요. 어느 날 이 시나리오를 들고 와서 저에게 연출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를 처음 보게 됐고요. 하지만 마틴 부버의 책을 찾아보지는 않았었어요. 그냥 유명한 독일 철학자구나, 정도만 알고 일부러 책은 안 찾아봤죠. 각색을 해야 하는데 글귀나 책을 찾아보면 아무래도 다른 게 들어갈 것 같아서요. 이 글귀가 영화의 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만 가지고 작업을 시작하게 됐죠.
감독님이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각색 후 연출 하신 거군요. 그렇다면 메인 포스터부터 영화 속 소품까지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인 정유미 작가와 협업하게 되신 과정도 궁금해요. 정유미 작가의 그림이 영화에 꽤 등장하잖아요. 이번에 일러스트 스틸도 공개가 되었고요.
이것도 일화가 있는데요. 제작자이자 시나리오를 쓴 김기현 대표의 부인이세요. 또 두 분이 아카데미 동기거든요. 처음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정유미 감독의 그림이 있었어요. 일러스트가 시나리오 앞에 프린트되어 있었죠. 저도 정유미 감독님의 단편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열렬한 팬인데, 정유미 감독님도 제 영화를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의 경우는 제가 꼭 영화에 그림을 넣었으면 좋겠기에 대표님한테 부탁해서 일러스트를 받아온 거예요. 영화에서 '수정'의 직업도 일러스트레이터잖아요. 그래서 계속 뭔가를 그림을 그리는데 그것도 다 정유미 작가가 그려준 거고요. '수정'이 들고 다니는 가방에도 그림이 있어요. 오늘도 제가 들었는데 이것도 정유미 작가의 그림이에요. '수정'이 들고 가는 가방의 경우에는 정유미 작가가 그린 그림이라, 그 가방을 한 40개 정도 만들어서 스태프들이 하나씩 나눠 가졌어요.
되게 중요한 아이템이네요. 소장 가치가 있을 것 같아요(웃음). 〈여섯 개의 밤〉에는 6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것도 중요한 점인데요. 그래서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된 인물들 이야기의 순서를 어떻게 정하셨을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시나리오의 순서에서는 원래 '규형'(강길우), '지원'(김시은) 커플이 제일 처음이었고요. 그다음이 '은실'(변중희), '유진'(강진아) 모녀. '선우'(이한주)와 '수정'(정수지)은 제일 마지막이었어요. 찍은 순서는 지금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첫 번째 편집을 하면서 가족적인 측면으로 한번 생각해보게 됐어요. 가족적인 측면으로 봤을 때 맨 처음 '선우'와 '수정'은 서로 남남이잖아요. 두 번째는 결혼하기 직전의 커플이고, 세 번째는 아예 피로 연결된 모녀죠. 그래서 이렇게 관계에 중점을 두고 봤을 때, 관계가 맺어져 가는 그 순서대로 배치하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고, 영화적으로 봤을 때도 '선우', '수정' 커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쉽게 와닿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시작하는 관객들에게도요. 그래서 순서의 배열을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 '규형', '지원' 커플을 했던 이유는 마지막에 넣었다가는 영화가 너무 한숨 쉬면서 끝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싸움에 최고조로 달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두 번째 배치했고 좀 뿌듯한 마음을 주기 위해서 '은실'과 '유진'을 마지막에 배치했습니다. 그런데 연출하면서 여섯 명의 인물이자 세 커플의 분량을 맞춘다는 것 자체가 되게 힘들었어요. 어느 한 에피소드로 치우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제가 생각한 편집본은 2시간 반에서 3시간짜리 영화였어요.
근데 이렇게 짧은 영화로 만드셨군요.
그러니까요. 편집 기사님이 엄청나게 자르셨더라고요.(웃음) 이게 일화가 있는데요. 제작사와 계약서를 쓸 때 제가 이게 독립영화지만 독립영화에도 기획영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제가 빠른 기간 안에 계속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회사와 계약서를 쓸 때, '감독판을 만들겠다. 대신 극장 첫 번째 개봉 판의 편집권은 회사에서 알아서 하라'고 말했어요. 김기현 대표한테도 나 이거 3시간짜리 영화로 만들 거라고 하니까 웃으시더라고요. 그 웃음이 '어디 한번 만들어봐'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3시간짜리 영화가 나왔어요. 그러니 저도 어디 한번 자르려면 잘라보라는 생각이었죠. 근데 딱 90분을 만들어 온 거예요(웃음). 근데 또 자르기도 너무 잘 잘라서 제가 고집을 부릴 수가 없더라고요. 90분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최종 편집본은 더 줄어서 87분이 됐어요.
감독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빠진 장면들이 궁금한데요.
이 얘기를 하면 많은 분이 최창환 편집본의 세 시간짜리 영화는 어떨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빠진 장면들이 엄청 많아요. 특히 인물들이 각자 혼자 있는 긴 장면들이 많았거든요. 그런 장면들은 관객 3만 명이 넘으면 감독판에서 볼 수 있지 않을까.(웃음) 그래서 자꾸 일부러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신 관객분들 중에는 감독판을 기대하시는 분들도 생길 것 같은데요. 빠진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다가올 감독판을 위해 편집된 장면 중 가장 아쉬운 장면 하나만 스포일러 해주신다면요.
저에게는 전부 다 아쉬워요. 지금 기억나는 건 영화에 강진아 배우가 노래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요. 그걸 길게 롱테이크로 따라오면서 엄마에게 가기 위해 호텔 입구에 나왔을 때 편의점에 가는 '규형'과 교차돼요. 각 커플이 서로 인식은 하고 있지만 말을 걸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교차하는 장면들이 그걸 표현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원'이 혼자 택시 타고 가버리고 난 뒤에 텅 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혼자 앉아 우는 장면도 있었어요. 많은 장면이 빠지긴 했죠. 그러니까 세 시간짜리 영화가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들으니까 감독판이 더 기대가 되는데요. '유진'과 '규형'이 편의점 앞에서 교차하는 장면을 말씀해 주셨잖아요. 저는 이 장면을 보고서 영화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 같지만 그 교차 편집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뭔가 얽혀있다, 차근차근 진행되지만 사실은 이야기적으로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세 쌍의 커플이 지금 모두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말씀해 주신 장면은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찍은 건데요. 그래서 이 방에서 '선우'와 '수정'이 나오고 있으면 저 방에서 '규형', '지원' 커플이 술을 마시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이제 모녀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식의 이야기라, 이것들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교차점을 주기 위해 시나리오에서 막과 막이 바뀔 때 교차가 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긴 했었어요. 만약 한 커플에만 집중했다면 아마 다른 영화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생각도 해요. 아까 독립영화에도 기획 영화가 필요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것도 시리즈로 기획된 레이오버 이야기예요. 그래서 작년 6월에 같은 시리즈 영화가 촬영이 끝났고, 거기도 똑같이 레이오버를 하는 세 커플이 나와요. 이번에는 시나리오를 쓴 김기현 대표가 연출을 하고 제가 촬영을 했습니다.
진짜 시리즈물이 될 수 있겠네요.
몇 편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여섯 개의 밤〉이 1이, 다음 작품이 2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만 기획은 같았지만 아마도 다른 제목으로 개봉할 것 같아요. 그 영화는 현재까지는 〈우연한 여행자〉라는 제목이 붙어 있어요.
시리즈물로서의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여섯 개의 밤〉은 레이오버 그리고 불시착에 대한 영화잖아요. 근데 영화의 시작은 불시착이지만 정작 영화가 시작되고 난 후에는 불시착이라는 우연한 느낌보다는 되게 일상적이고 현실적이거든요. 이런 느낌을 내기 위해서 배우들의 연기도 중요했을 것 같은데, 연기적인 디렉팅은 어떻게 주셨는지 궁금합니다.
배우들한테 디렉션을 줄 때, 저는 요구를 하는 편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제가 연기자가 아니니까 연기를 직접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신 그전에 배우들과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 인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인물이 이럴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 같다는 등 캐릭터 자체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죠. 특히 김시은 배우 같은 경우에는 완전 저를 진짜 못살게 굴어요.(웃음) 질문도 정말 많이 하고 의견도 주시는 편이거든요. 이번 영화에서도 '이런 캐릭터가 나랑 어울릴 것 같다, 본인은 절대 이렇게 안 할 것 같다'라고 말을 해준 부분들이 있어요. 그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 현장에 갔을 때는 그냥 100% 배우들에게 맡겨 버리는 거죠. NG를 내거나 컷을 하는 경우는 배우의 연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카메라의 기술적인 부분이나 배우의 시선을 여기에 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정도에요. 그런 연출적인 부분에서 제가 개입하기는 하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거의 배우에게 맡겨버립니다. 그리고 특정한 부분의 대해서는 제가 아예 시나리오를 공백으로 둬요. 예를 들어 '수정'이 하는 독백 같은 장면도 제가 어떻게 다이얼로그로 쓸 수가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울면서 독백하되, 이야기는 아버지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정도의 틀만 써놓고 정수지 배우가 직접 대사를 썼어요. 물론 시나리오에는 정확한 대사들이 나와 있지만, 항상 배우들에게는 이 다이얼로그 절대 신경 쓰지 말고 대략적인 대사나 분위기가 나와 있으니 알아서 해달라고 요구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강진아 배우가 욕실에서 엄마에게 말하는 장면도 아마 제가 공백으로 뒀던 것 같아요. 짧은 지문 정도만 두고 거기서 배우들이 만들어 가는 거죠. 거의 각색자 이름에 배우들 이름을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정도로 많이 맡기는 편이에요.
말씀해 주신 영화의 갈등 상황들 있잖아요.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진짜 이 인물들이 6명 모두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불시착이 필연적으로 필요했던 인물들은 아닐까,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공통점이 있는 인물들이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감독님도 이 6명의 인물이 어떻게 보면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모든 사람이 그런 공통적인 부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여행이라는 소재를 가져왔을 수도 있어요. 혼자 여행을 가보면 그런 생각이 많이 들잖아요. 내가 말하는 게 진짜든 거짓이든 여행지에서 잠깐 만나는 사람들은 모르거든요. 근데 거기서 되게 위안을 받아요. 얘기를 하면서도 내일의 우리는 당장 헤어져야 하고, 모든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니까요. 어느 장소에 여행을 가서 우연히 하루 정도 머무르게 됐을 때, 그곳에 있는 식당이라든지 커피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할 사람을 만나게 되잖아요. 첫 번째 커플은 거기서 착안한 것 같아요. '수정'이가 말하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도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겠어요. 근데 어쨌든 '수정'이는 그 말을 함으로써 스스로가 위안을 얻어요. 다음 날은 그냥 모른 척 가버리더라도. 저는 그런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두 번째 '규영'과 '지원' 커플도 보통의 연인들이 겪는 문제일수도 있지만 이게 불시착으로 인해서 낯선 곳에 있다는 그런 감정들이 쌓여서 터지는 것 같아요. 어쩌면 둘한테는 잘된 일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는 어떻게 보면 〈여섯 개의 밤〉이 세 쌍의 커플이 잘 헤어지는 밤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헤어지면 이제 세 개가 아니라 여섯 개가 되잖아요. 그래서 제목이 〈여섯 개의 밤〉이 된 걸까 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제목을 지으신 과정이 궁금해요.
지금 말씀해주신 딱 그거 같아요. 원래는 시나리오상의 원제는 〈레이오버 호텔〉이었어요. 그래서 이게 시리즈였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레이오버 호텔 부산’, ‘레이오버 호텔 베를린’, ‘도쿄’, ‘헬싱키’… 이런 식으로 연작이 쭉 이어지는 기획이었는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이 확정되고 난 후에 이게 시리즈로 얼마나 발전될지 몰라서 다른 제목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항상 제목을 지을 때 영어를 쓴다는 거에 대한 부담감이 있거든요.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참에 김기현 대표가 '여섯 개의 밤'이 어떠냐고 제안을 해왔어요. 그걸 딱 듣는 순간 느낌이 왔어요. 마음에 드는 제목이라서 결정하게 됐죠.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실 관객분들께, 또 이 인터뷰를 보실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코로나 시절이 끝나가는 시점에 영화가 개봉하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여섯 개의 밤〉이 '관계'를 말하는 영화잖아요. 거리 두기에 지친 관객분들이 서로의 관계를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독립영화 많이 사랑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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