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자랑〉리뷰: 나의 모든 이름에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진하 님의 글입니다.
고데기, 틴트, 빙수, 떡볶이, 체육복, 삼선슬리퍼, 진실게임, 장기자랑. 어디선가 이런 단어의 조합을 보면 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추억이 묻어 있는 단어들이다. 다시—장기자랑, 수학여행, 제주도, 세월, 4월. 이 중 한 단어만 마주친대도 나머지 단어들이 연달아 떠오른다. 이 단어들은 나의 기억 그 자체다.
<장기자랑>은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세월호 희생자 학생의 엄마들이 모여 극단을 만들었다. 시작부터 어떤 의미를 기대했다기보다는, 심리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된 활동이었다. 집 밖으로 나오기 어려웠던 엄마들이 모여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 연극 같은 거 같이 배워봐도 좋겠네. 수업이 끝나갈 무렵 누군가 넌지시 놓아둔 말을 꼭 잡고 극단 활동이 시작됐다.
수인 엄마, 동수 엄마, 애진 엄마, 예진 엄마, 영만 엄마, 순범 엄마, 윤민 엄마. 이곳에서 엄마들은 여전히 '누구 엄마'다. 어떤 엄마는 아들을 딸기로 기억한다. 그의 아들은 딸기를 좋아했었다. 나는 오렌지, 나는 사과. 여기저기서 기억이 터져 나온다. 자식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고, 그 기억을 간직한 나는 살아 있다.
<장기자랑>은 4.16 참사 희생자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자, 4.16 가족극단 노란 리본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속 주된 갈등은 배우 박유신과 이미경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재능 있고 욕심 있는 배우 둘이다. 이 연극에서는 분량이 욕심나고, 저 배역은 따내지 못해 속상하다. 그들은 서로 울고 웃으며 위로하다가도 배역을 두고 팽팽하게 갈등하고, 생업을 이어가는 동시에 대사 연습에 몰두한다. 대본 속에 있는 인물이 되기도 했다가, 대본 바깥으로 빠져나와 무너지기도 한다.
그 모든 존재가 예진 엄마 박유신, 영만 엄마 이미경이다. 4.16 가족 극단은 모두가 서로의 존재를 증명한다. 수인 엄마는 애진 엄마 덕에 여전히 엄마일 수 있다. 윤민 엄마는 단원의 제안 덕에 극단에 합류했다. 순범 엄마는 아들 권순범 덕분에 배우 최지영이 됐다. 꿈속에서 권순범은 순범 엄마의 몸속으로 쑥 들어온 후 다시 꿈에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일이다. 더 이상 너와 나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간다.
인간은 기억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무엇을 기억하는지, 기억할지가 존재를 결정한다. 4월 16일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매년 다르게 고민한다. 올해는 수학여행을 기억할 때, 장기자랑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4월을 기억할 때, 어떠한 선체의 이미지뿐 아니라, 아름다운 제주도의 유채꽃을 함께 떠올리고 싶다. 노란색 머리카락의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는 사람들이, 좀 더 멋있게 살고 싶어지는 순간이 충분히 많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의 기억이 넓어지고, 많은 존재가 너의 이름이 되어서, 나의 모든 순간에 사랑으로 존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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