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 않은 내일도 맞이해야만 한다면
서울독립영화제 순회상영회
인디피크닉2023 in Seoul
〈지옥만세〉 GV 기록
일시 2023. 4. 8(토) 17:30 상영 후
참석 임오정 감독, 오우리, 방효린, 정이주 배우
진행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기록입니다.
언제부턴가 지옥처럼 느껴지는 이 세계에 대해 ‘정말 지옥 같지 않냐’고 논하는 것은 재미없어졌다. 따라서 나와 친구의 대화는 대개 이런 식으로 종결됐다. “지옥을 지옥이라 하지, 그럼 뭐라 해.” 지옥에 대해 논하지 않는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르게 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지옥은 너와 나의 오늘이고, 어쩌면 끝나지 않는 내일일 수 있다. 지옥인 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구보다 선명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지옥을 대하는 자세는 각기 다르다.
〈지옥만세〉와 당일 마련된 GV 시간에서는 어떻게 하면 이 지옥에서 조금이라도 현명해질 수 있는지 머리 맞대고 고민해 보자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와 내가 이 순간에 살아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 것, 네가 먹던 것을 따라 먹고 너를 통해 오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성장’이나 ‘용서’ 같은 거창한 말 없이도 내일을 맞이할 이유를 아는 것. 방법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지옥만세〉의 등장인물들은 참고서가 되어 줄 수 있다.
임오정 감독 (이하 임오정): 안녕하세요. 〈지옥만세〉 연출한 임오정입니다.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우리 배우 (이하 오우리): ‘나미’ 역할을 맡은 오우리입니다.
방효린 배우 (이하 방효린): ‘선우’ 역할을 맡은 방효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이주 배우 (이하 정이주): ‘채린’ 역할을 맡았던 정이주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이화정 영화저널리스트 (이하 이화정): 오늘 배우 분들께서 같이 영화 보신 걸로 알고 있어요. 방효린 배우님, 정이주 배우님 두 분 모두의 따끈따끈한 감상평을 들어 보면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이주: 영화를 꽤 여러 번 보고 있는데요. 매번 볼 때마다 다른 지점이 보이는데 오늘은 성훈 배우님의 재미있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웃음 코드들이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저도 두 인물에 이입을 해서 봤는데 보면 볼수록 주변 요소들이 보이게 됐던 것 같아요.
이화정: 네, 어쨌든 다양한 요소들이 보면 볼수록 새롭게 보인다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효린 배우님은 어떻게 영화 보셨나요?
방효린: 저도 영화제 때마다 항상 다 봤는데요. 오늘도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 편집이 바뀐 것 같던데요, 감독님?
임오정: 전혀 그렇지 않고요. (웃음) 단 1 프레임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방효린: 매번 볼 때마다 너무 새로워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웃음)
이화정: 오늘만 안 보신 거죠, 오우리 배우님은? 밖에서 어떤 감상을 갖고 계셨는지.
오우리: 저는 그동안 정말 많이 봤어서 밖에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인 자리인 줄 몰랐어서 조금 쫄아 있었습니다.
이화정: 네, 박수 한 번 부탁드려요. (웃음) 그럼 이제 감독님께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나서는 서사고, 어떻게 보면 피해자성이라고 할까요? 자기를 자기에게 가두는 것 대신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는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는 지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음에도 영화를 다 본 뒤에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 폭력의 피해자들이나 사회에서 소외당한 이들에게 힘을 주고 있기도 하다고 느꼈거든요. 감독님께서는 이 이야기로 출발하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는 언제나 나오는 질문이거든요. 항상 논리적으로 대답을 하려고는 하는데, 매번 그 각자의 상황에 따른 대답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 오기 전에는 좀 솔직하게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학폭의 피해자들이고, 가해자인 친구도 나오고요. 또 어떻게 보면 이 종교 집단이라는 것 자체가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어요. 이 주인공들은 죽음을 원하는 외톨이들이잖아요. 죽음을 원하게 될 정도로 마음이 막다른 길에 가 있을 때의 상태를 생각해 봤어요. 제가 지난 십여년 동안 만나게 되었던 어떤 죽음들, 괴로웠던 일들을 떠올리면서 그럴 때 어떻게 용기를 내면서 살 수 있지? 씩씩해질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저와 같은 외톨이들이 뛰어다니고 더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바라면서 이 이야기를 찍었던 것 같아요. 그러려면 상처받은 걸 마주해야 하기도 하죠. 거기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계기를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면, 잘못된 신이나 엇나간 믿음이 아닌 옆에 있는 서로를 믿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화정: 오늘 말씀하신 답변이 다른 데서는 나오지 않았던, 감독님의 더 깊게 들어간 그런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관객의 힘이 중요한 것 같네요. 관객분들이 많이 계셔서 이야기를 끄집어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종교 집단 같은 경우는 굉장히 디테일 하게 그려져 있어요. 시나리오를 쓰실 때 어떻게 취재를 하시고 이런 소재를 접하실 수 있었는지, 착안하신 것이 있는지 그런 과정이 궁금해요.
임오정: 종말에 매혹된 사람들이 어떻게 집단을 형성하고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했었어요. 잘못된 믿음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했었는데 그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왜 그렇게 궁지에 몰렸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꾸준히 오랫동안 사이비 종교나 단체에 대해 관심을 가졌어요. 영화 속의 단체 같은 경우는 하늘에 효를 다한다는 그런 단체거든요. 우리나라의 잘못된 종교들을 보면 유교사상이나 민속신악 같은 것들이 편의적으로 섞여 있어요. 저도 다양한 그런 종교들을 섞어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몇몇 분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어요. 그분들이 왜 사회나 가정에서 주지 못한 안온함이나 애정 같은 것들을 종교 단체라는 공동체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단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입체적으로 묘사하려 했습니다.
이화정: 배우님들께도 어떻게 캐릭터를 연구하고 만들어 나가셨는지 얘기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나미’와 ‘선우’는 피해자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도 계급이 나뉘는 것 같아요. 단순하게 ‘왕따다’ 하고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캐릭터들이 성격이 달라지고 의견이 분분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 안에서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의 태도들도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두 분은 같이 연기를 해야 하는 신들이 많이 있었을 텐데, 그 이야기도 들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우리: ‘나미’는 박쥐 같은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겁도 되게 많고, 세상의 계급 같은 게 학교 내에도 존재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스스로를 쫄게 만들어서 악착같이 위에 있으려고 버둥거리려고 하다 보니 센 척 하려고 하는 친구라고 이해했어요.
이화정: 지금 센 척이라고 말씀하셔서 그런데, ‘선우’가 오히려 센 척을 하지 않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센 모습을 보여 주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생각으로 캐릭터를 접하려고 하셨나요?
방효린: 저는 항상 캐릭터를 만나고 연기를 할 때 저랑 비슷한 점을 먼저 찾고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야 연기할 때도 편하고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거든요. ‘선우’와 제가 가장 비슷한 점이 뭘까 계속 생각을 해 봤어요. 그런데 제가 혼자 있는 걸 익숙하게 생각하고 공상하고 상상하는 걸 좋아하는데 ‘선우’도 혼자 외로운 시간이 너무 많은 친구니까 그런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나미’는 제가 ‘나미’를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고요. (웃음) ‘선우’는 본인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이였어요. 그리고 사실 평소에 연기할 때 우리 배우와 이주 배우가 너무 귀엽고, 너무 착해요. 이주는 특히 선교회의 어린 친구들이랑 있을 때 모습이 실제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대기하거나 할 때도 무섭지 않고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는 실제로도 ‘나미’와 비슷한 것 같아요. 계속해서 옆에서 떠들고 항상 텐션이 높아서 우리랑 같이 있으면 즐겁고 덕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이화정: (우리 배우님이) 약간 본격적이고요?
방효린: 네, 막 “아, 여기 왜 이렇게 안 돼. 언니, 나 잘하고 있어?” 하면 “응, 너 잘하고 있어.” 이렇게 답해 주면서 서로 응원했던 것 같아요.
이화정: 네, 배우님들이 캐릭터의 어떤 지점들을 각자 가지고 계셨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웃음) 정이주 배우님은 본인과 캐릭터와의 접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이주: 어쨌든 ‘채린’이는 명백한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연기 준비하면서 이 친구를 아껴 주고 따뜻하게 감싸 주면서 연기를 하기엔 어려운 지점들이 많이 있었어요. 외부의 시선에서 ‘채린’이를 바라보는 편으로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목 끝까지 잠겨져 있는 셔츠나 답답한 듯 차분한 풀뱅의 머리라든가 하는 요소들로 캐릭터를 많이 보여 주려고 했던 것 같고요. 늘 ‘나는 떨리지 않아.’ 하는 표정으로 생긋 웃는 그런 미소 같은 요소들을 통해 ‘채린’이를 보여 주려고 했어요.
이화정: 네, 맞아요. 약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런 모습인 거죠? 감독님께서는 이 세 배우님들을 캐스팅하는 과정에서 어떤 비하인드들이 있으셨나요?
임오정: 배우분들이 정해진 건 촬영 들어가기 한 달 정도 전이었고요. 세 달 전에 오디션을 했었고, 코로나가 힘들 때 이런 오디션들을 준비하게 됐어서 비대면으로 지원해 주신 분들 중에서 찾아 뵙는 방식으로 여러 배우분들을 만났어요. 조화롭게 ‘나미’, ‘선우’, ‘채린’같이 계급 관계가 나타나야 했기 때문에 다른 분들보다도 이 세 분의 조화가 그걸 가장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해서 캐스팅하게 됐어요. 오우리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다른 단편에서부터 팬이었어요. 연기를 ‘나미’처럼 해 주셔서 저 사람 안에 ‘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고요. 효린 배우님 같은 경우는 오디션 보는 내내 ‘채린’ 역할, ‘선우’ 역할을 하셨는데 연기마다 같이 오디션 들어갔던 분들을 울리시기도 하는 연기를 보여 주셔서 지나가다가 보석을 발견한 느낌? (웃음) 그리고 이주 배우님은 이 캐릭터가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해 너무나 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는데, 배우님을 오디션 후반부에 뵀었거든요. 그런데 눈동자가 까맣고 살짝 텅 비어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맑다고 생각하면 밝고, 공허하다고 생각하면 공허하다고 느낄 수 있는 두 개의 지점을 다 가지고 계시면서도 전형적이지 않아서 캐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채린’ 역이 힘드셨을 텐데도 연기를 끝까지 잘 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이화정: ‘나미’와 ‘채린’이 맞붙는 장면을 좀 여쭙고 싶은데요. 칼을 들고 대치하는 장면에서 촬영 중에 어떤 긴장감 같은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정이주: 사실 어마어마한 긴장감은 없었고요. 저희가 사이가 원만하다 보니. (웃음) 더 현실적인 얘기를 해 보자면 그때 해가 막 지고 있어서 분위기가 다급했어요. 그래서 저는 더 절실한 마음으로 참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우리: ‘나미’가 갈등하는 지점은 ‘나미’가 옛날에 ‘채린’이와 친구였던 게 마음에 걸려서 긋지를 못하는 게 있었어요. “안 돼, 나 못 해!” 이런 상태였어서 그런 갈등 지점이 연기에 몰입하는 데 도움이 더 됐었던 것 같아요.
이화정: 사실 센 척 하지 않으면서 할 말은 다 하는 그런 캐릭터는 방효린 배우님이 연기를 하고 있잖아요. 저는 “너 꼬붕 같애” 이런 대사를 뱉으면서 센 대사들을 하는 장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안에서 대사 처리 같은 걸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 레퍼런스로 삼았던 게 있으셨나요?
방효린: 저는 우리가 실제로도 너무 귀여운 동생이고, 귀여운 아이처럼 느껴져서 ‘나미’에게 그런 대사를 하는 것도 우리를 대하는 것처럼 했던 것 같습니다.
이화정: 배우들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너무 천진한 것 같아서 사실 이 영화의 연기나 톤이 어떻게 만들어졌나 싶어요. 굉장히 연기들을 감쪽같이 해내셨다 싶습니다. ‘나미’와 ‘선우’가 결국에는 이 길을 걸어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어두운 터널 같은 장치들을 많이 지나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영화의 전체 틀은 〈스탠 바이 미〉 같은 영화들이 생각이 났어요. 어둠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안에는 아까 말씀하신 종교 집단이 가지고 있는 모순적인 것, 자살, 죽음 이런 것들이 모두 포함돼 있어요. 감독님께 질문 드리자면 아이들에게 그런 것들을 통과하게 만드신 이유 같은 것이 있으셨나요?
임오정: 아이들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제일 컸어요. 그러려면 진짜 죽음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죽음이란 것이 얼마나 차갑고, 무심하고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것인지를 목도하고 그래서 더 살고 싶어지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종교 집단을 영화 속에 넣었는데 그것이 잘 매칭이 되는가에 대한 궁금증도 많으신 것 같아요. 저는 종교 집단이나 학교 폭력 하는 학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집단 의식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집단이나 시스템이 원하는 논리나 목적성들에 강요되는 개인들만 그 안에서 적응하잖아요. 주인공은 거기서 외톨이고 종교 집단에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서는 외톨이인 사람들인데 종교 집단 안에서도 시스템을 만들어 통제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부수고 싶었는데, 그러기엔 우리 주인공들이 아직 약해요. 그렇지만 다시 살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이 아이들이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화정: 캐릭터 설정과 감독님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를 제가 먼저 여쭤봤는데, 관객분들께도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저 스스로에게 좋게 느껴졌던 영화였습니다. 제가 질문하고 싶은 건, ‘나미’와 ‘선우’, ‘채린’은 각자 갈 길이 보였는데 ‘혜진’이는 시스템 안에서 도망치지 못했잖아요. 그렇지만 순응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요. ‘혜진’이가 어떻게 됐을지가 궁금하고요, 두 번째로는 ‘나미’가 거짓과 허풍에 가까운 모습을 더 많이 보여 주는데도 왜 ‘선우’의 별명이 ‘구라’인지가 궁금합니다.
임오정: ‘혜진’이는 그 주인공들보다 어린 나이고, ‘혜진’이보다도 더 어린 아이들이 사실은 더 걱정되거든요. 시나리오에서도 있었고 촬영을 하긴 했는데, ‘나미’, ‘선우’, ‘채린’의 관계와 흐름에 방해되는 것 같아서 결국 삭제한 장면이 있었어요. 선우의 핸드폰을 결국 ‘혜진’이가 갖게 된다는 설정인데, 이걸로 다른 센터 아이들과 함께 단절되었던 외부와 소통하며 사이비를 검색해보거든요. 그리고 ‘선우’가 들려주고 싶어 했던 노래를 듣고 있는 것으로 ‘혜진’이는 다른 가능성과 함께 끝나요.
‘황구라’라는 별명은 본인이 실제로 거짓말을 해서 붙은 별명이 아니에요. 저희 어렸을 때 누군가를 놀릴 때 보면 아무 맥락 없는 별명들을 갖다 붙이잖아요. ‘채린’이나 ‘나미’가 영화에선 그런 시점을 담당하고 있는데, ‘선우’를 각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있거든요. 피해자, 왕따, 소심한 애, 힘도 없는 애라는 식으로 보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때, 그것이 뒤집어질 때 ‘너 왜 거짓말 했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남들이 거짓된 모습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이 아이를 봐서 그렇게 붙인 별명이지, 말씀하셨던 것처럼 ‘선우’는 실제로 허풍이나 거짓 없는 솔직한 아이라고 생각해요.
이화정: 또 다른 질문 받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감독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게 복수를 하려고 계속 시도를 하는데 결국엔 실패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점이었어요. 요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폭력에 대해 단죄하거나 복수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런 쪽으로 흐르지 않은 것에 대한 어떤 의도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단죄나 복수라는 키워드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있으시다면 여쭙고 싶습니다.
임오정: 일단 이 아이들이 미성년자라는 점이 가장 컸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생채기를 냈던 사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폭력을 추구하거나 그런 것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잇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최선을 다해서 복수를 하고 싶지만 그게 고작 생채기를 낸다는 말이잖아요. ‘선우’가 “어떻게 할 건데?” 물어보면 ‘나미’는 “그냥 그 옆에 있는 애들을 어떻게 하면 되는 거 아냐?” 하는 식으로... 본인도 잘 몰라요. (웃음) 너무 밉고, 싫고, 사무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모를 정도로 많이 상처받아 있어요. 주눅 들어 있고 동시에 착하고, 바보 같기도 한 아이들인 것 같고 자신이 폭력을 가하면 결국 폭력을 행했던 사람들이랑 비슷하게 될 거라 생각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게 했어요.
그리고 요즘 말하는 복수에 대해 생각하자면, 그만큼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고립되게 만들고, 그게 악랄한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하고요. 저도 이런 지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인간과 인간이라는 관계 상에 놓고 봤을 때 어디까지 복수하게 될 것인가, 이해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양면으로 왔다갔다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그런 고민들이 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화정: 네, 마지막 질문 받아 보겠습니다.
관객: 영화 너무 잘 봤습니다. 감상한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글이나 영화를 보면 의도하신 바와는 다르게 이해하고 파악할 때가 많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나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담으셨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임오정: 영화 엔딩 장면을 보면 둘이 서로 상반된 길로 뛰어가잖아요. 둘이 같은 곳에 도착했는데 둘이 다시 만날까 아니면 다시 모른 척 하게 될까 하는 등 너무 많은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그걸 가장 떨리게 생각하는 것은 ‘나미’와 ‘선우’ 본인들일 것 같거든요. 앞으로 살기로 선택했는데, 이제 어떡하지? 일단 집에 가서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앞으로 괜찮을까? 같은 것들을 고민해요. 두려움과 막막함이 클 것 같은데 우리가 다 그런 것 같거든요. 성장이라고 하기엔 어려울 수 있지만 겨우 되돌려 놓는 선택을 뭔가 하나 했을 때 그 선택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까? 좋아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돼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의 ‘나미’와 ‘선우’처럼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보게 되는, 혼자가 아니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해 봤으면 했어요. 그리고 관객분들이 그걸 느껴 주시면 막막한 길이더라도 살아 볼 수 있을 만큼의 기억과 추억할 수 있는 경험이 있다는 걸 알아 주시지 않을까 싶었고요. 그런 것들을 좀 즐겁고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 보고 싶었어요.
이화정: 감독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캐릭터들도 성장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그들은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배우분들에게도 각자의 캐릭터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했는지 끝에 가서 느껴지셨던 그런 지점들을 들어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우리: 제가 생각하는 나미의 가장 큰 약점은 자신이 계급을 나눠서 비교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더 약해지는 것이에요. ‘나미’에게 ‘선우’는 정말 밑바닥이라고 생각했던 애였는데 이 친구가 나보다 강한 부분이 있고, 이 친구가 본인을 무시하고 있는 저를 깨달았고요. ‘나미’에게 변화라면, 이 친구와 정말로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부터는 계급 같은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마음이 통할 수 있고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친구를 만나게 된 것과 자기 안에 있는 계급을 신경 쓰는 그런 것들을 조금은 깨부순 게 아닐까 생각해요.
방효린: 저는 처음에는 케이크에 맞기도 하고, 그것 때문에 단 것이 싫어져셔 안 먹기도 했지만 ‘나미’가 옥상에서 나란히 서 줬던 순간이나 교회에서 회개 아닌 회개를 하며 얘기를 해줬던 순간, 서울을 함께 돌아다니며 핫도그도 먹고 이것저것 했던 기억들이 계속해서 ‘선우’에게 남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혹은 혼자서 케이크를 한 판 사서 먹을 것 같기도 하고 당이 떨어질 때 ‘나미’처럼 젤리를 살 것 같기도 해요. 핫도그를 먹을 때도 보면 ‘나미’는 핫도그에 설탕이나 케찹 같은 걸 뿌려 먹는데 ‘선우’는 단 걸 싫어해서 아무것도 뿌리지 않고 먹어요. 그런데 이제 나중에는 핫도그에 설탕도 뿌려서 먹고, 친구의 소중함을 알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는 마음을 알아서 용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자전거도 타고 하면서 살아갈 것 같습니다.
이화정: 네, ‘채린’이는 지금쯤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요?
정이주: 폭탄 머리가 되어서 지금 길을 걸어가고 있을 텐데요. (웃음) 제가 느끼기에 ‘채린’이는 갑옷이 너무 두꺼워서 그 속살이 얼마나 여린지를 본인도 가늠을 하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나미와 선우라는 두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그 갑옷이 다 떨어져 나가 버린 것 같아요. 자신도 몰랐을 속마음을 길을 걸어가면서 느끼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 또한 ‘채린’이가 죽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이화정: 아마 가장 빠르게 어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물이기도 한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얘기 듣다 보니 캐릭터들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질문 있으신 분 또 계시면 질문 이어가 보도록 할게요.
관객: 〈거짓말〉 때부터 감독님의 장편을 기대해 왔는데, 제 기대보다도 멋진 작품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영화를 제가 받아들였을 때는 학폭이라는 소재가 아까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복수 혹은 용서라는 두 가지 선택지로만 얄팍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 같은 경우에는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고도 구원하는 결말을 보여 주셨다고 느꼈어요. 그로 인해서 ‘나미’와 ‘선우’는 가해자를 스스로 구원해 주고, 그들 스스로는 피해자라는 틀 안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헛된 구원을 찾던 ‘채린’이는 진정한 구원을 찾을 수 있었던 결말이라고 느꼈어요. 감독님께서는 처음에는 혹시 결말을 정해 놓고 쓰셨는지, 아니면 쓰다가 많이 바뀌셨는지 궁금합니다.
임오정: 우선 너무 잘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채린’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따라 결말이 많이 바뀌었던 것 같아요. 두 주인공들을 위해, 극적인 통쾌함을 주기 위해 ‘채린’을 정말 한 쪽 방향으로만 타고나게 나쁜 아이, 복수해야 마땅한 아이로 묘사하기도 했었어요. 그런 게 뒤섞여 있던 것들의 비중이 오가면서 그때마다 인물의 태도와 목소리들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제가 ‘채린’이를 바라볼 때 ‘내가 지금 연민하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도 했다가 그럼에도 이 아이들을 그렇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건 ‘채린’이도 이 상황, 부모, 어른의 피해자인 상황에서 모두가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싫어하거나 미워하거나 했을 때의 방식도 비슷했던 것 같다 느끼기도 했고 아마 여러분들도 그러실 거라 생각해요. 오롯하게 순도 100% 미워하거나 증오할 순 없는 거잖아요. 그런 고민들을 같이 한 번 생각해 보자는 흐름으로 갔던 것 같습니다.
이화정: 질문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목이 〈지옥만세〉 잖아요. 이 영화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제목인가 싶지 않은데 어떻게 정하게 되셨는지 여쭙고 싶고요. 최근 다양한 지옥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렇다면 정말 어디가 지옥인 건가. 아이들이 다시 돌아온 이곳도 지옥일 수 있는데, 이들이 겪은 건 결국 실패한 복수극이자 믿음을 회복해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많은 불안과 불신 속에서도 결국 죽지 않고 살아갈 믿음이라는 걸 회복해 나가는 것을 두고 현재를 어떻게 규정하시는지요.
임오정: 삶이라는 지옥이 너무 싫어서 죽으려 했다가 결국 더 심한 지옥을 보게 된 친구들이 원래의 지옥으로 돌아오는 그런 이야기인데요. 이 ‘지옥 만세’라는 말이 프랑스 혁명 당시에 베르사유에 처들어갔던 민중들이 외쳤던 구호라고 알고 있어요. 빈곤했고, 괴로웠고, 그 계급 차이로 인한 힘듦이 있어서 세상을 뒤엎고 싶었던 그런 들끓는 에너지가 섞여 있는 말이 지옥 만세인 것 같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가 만세라는 말을 되게 좋아합니다. (웃음) 부정적인 말과 긍정적인 말의 극치를 합친 제목이 우리 영화가 보여 주고 있는 삶이라는 반짝이는 순간이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끔찍한 열기이기도 한 낮, 그리고 고요하고 평안해 보이는 밤이지만 어떤 무서움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 밤인 그런 양면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제목을 지었습니다.
이화정: 배우님들께도 관객분들에게 혹은 이 지옥에서 살아가야 하는(웃음) 캐릭터들에게도 해 주고 싶은 인사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우리: ‘나미’에게 그리고 지금의 저에게, 관객분들에게... 쫄지 말고 잘 살아가세요!
방효린: 〈지옥만세〉라는 영화도 그렇고, ‘선우’도 그렇고 제 삶과 연기하는 것에 대해 힘을 많이 줬던 것 같아요. 오디션에서 떨어질 때도 ‘선우’를 떠올리면서 용기를 가지자,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했고, 그리고 무언가 잘 안 될 때 ‘선우’를 자주 떠올리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도 ‘선우’와 ‘나미’처럼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힘들고 뭔가 잘 안 풀릴 때가 있더라도 이 둘을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이주: 아까 지옥이 어디인지에 대한 질문 해 주셔서 생각이 났는데요. 뽀로로 감정으로, 어디가 지옥이든지 내가 놀 친구 한 명 있고, 핫도그 먹을 친구 있으면 지옥에서 한 번 그래도 놀아 보자. 네가 있으면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화정: 감독님이 아까 시나리오 쓰실 때의 고충으로 악인에 대해 연민을 가진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을 하셨다고 하셨는데, 진짜 이 영화 보고 나면 영화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되는 지점이 있잖아요. 너무 함정에 빠지지 마시고. 그러나 감독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만든, 따뜻한 복수극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영화를 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요새 복수극이 트렌드인데, 그 트렌드에 부합하는 영화라는 이야기도 많이 전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토크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사랑의 고고학〉인디토크 기록: 21세기의 기사도라는 것 (0) | 2023.05.08 |
---|---|
[인디즈 Review] 〈물안에서〉: 굴절된 세계 속 하나의 소실점 (0) | 2023.05.04 |
[인디즈 Review] 〈사랑의 고고학〉: 느리게 걷는 사람 (0) | 2023.04.28 |
[인디즈] 〈장기자랑〉인디토크 기록: 연극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는 4월 16일 (0) | 2023.04.21 |
[인디즈 Review] 〈장기자랑〉: 나의 모든 이름에게 (0) | 2023.04.2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