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 접속, 만남
〈다음 소희〉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3. 19(일)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정주리 감독
진행 손희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진하 님의 기록입니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아가며 수많은 존재와 스친다. 무수한 소식을 접하지만 스마트폰 속 기사 한 줄에 시선이 멈추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다음 소희〉는 2017년으로 시간을 거슬러, 누군가 무심히 지나쳤을 한 줄의 기사를 끄집어낸다. 늦은 만큼 조심스럽고 집요하게, 좁힐 수 없는 거리를 실감하며 사건에 접속한다. 그 '닿을 수 없음'의 세계에서 영화와 관객이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교차점을 가지고 있지만, 같은 영화와 만났다는 것만으로 닿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날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한다.
정주리 감독(이하 정주리): 안녕하세요. 슬픈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VOD 서비스가 시작되었는데도 극장까지지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오늘 많은 얘기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손희정 평론가(이하 손희정): 저희가 한 3주쯤 됐나요. 인디스페이스에서 배우님 모시고 GV를 했었어요. 그때 다 못한 말이 아쉬워서, 한 번 더 뵙고 싶다고 인디스페이스에 졸라서 만든 자리고요.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벌써 10만 관객을 동원했더라고요.
정주리: 그렇게 될 줄 정말로 몰랐어요. 찾아주셔서 너무 고맙고요. 그때 이후로 관객분들 만나러 다니고, 지방에도 여러 차례 가고. 그렇게 지냈습니다.
손희정: 영화를 처음 보신 분도 계실 테고 여러 번 보신 분도 계실 텐데요. 영화 외적으로 사회적 의미가 큰 작품이기 때문에,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시사 프로그램, 뉴스 이런 데 계속 나오셔가지고. 저희도 그 얘기를 잠깐 여쭤보고 영화 얘기로 넘어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파견 업체에 나가셨던 고 홍수연 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들면서 부담스러운 것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셨던 이유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정주리: 허구의 아이템으로 '어린 학생이 강도 높은 콜센터 상담 업무를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야기를 해보자' 했으면 아마 시작을 못 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저를 잡았던 것 같고. 아주 처음부터 이 이야기는 실제 사건에서 길어 올려진 거라는 것. 창작의 자유에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하는 게 배제된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7년 초에 있었던 일이었잖아요. 매일 뉴스 보면서 대통령이 탄핵됐는지 아닌지에 신경 쓰고 있었던 그때, 당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처럼. 근데 동시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전혀 몰랐다는 것. 시간이 한참이 지나서, 5년도 더 지나서야 알게 되었을 때 그 사건이 그대로 거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었어요.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 뉴스를 들었지' 했던 시간들이 상기되면서 나와 상관없는 일이 아닌 것 같다, 나의 얘기이기도 하겠다, 이런 것에서 시작한 것 같습니다.
손희정: 지난번에 감독과의 대화를 하고 난 다음에 뉴스들을 봤어요. 시민인 우리도 기억하고 이야기했어야 하는 사건이지만, 정말로 책임져야 되는 정치인들도 너무 무관심했었었는데. 〈다음 소희〉가 주목받고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정당에서도 상영회를 하고, 법안을 발의하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셨을 텐데 그럴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정주리: 개봉하고 그 다음 주인가요. 정치하시는 분들이 말씀을 해주시고 그러면서 좀 화제가 된 것 같아요. 정당에서 설명회하는 자리에 가기도 하고. 제일 어색했던 건 시작하기 전 소개들. 어디 의원 모셨습니다, 오셨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 자리에 산재 피해 유가족분들도 앉아 계셨어요. 저는 영화 만드는 사람이라서 그냥, 제가 생각했던 영화의 힘은 확인할 수 있었어요. 관객분들이 영화를 받아들여주시고 마음을 써주신다는 거. 제가 기대한 것이 거기까지이니까요. 그런데 앞에 계신 분들은 실질적으로 힘을 갖고 계신 분들이니까. 뭔가를 바꿀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힘을 부디 행사해 주십사, 그렇게 부탁드렸습니다.
손희정: 조금 더 법안이 잘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더불어서, 한편으로 있는 법도 안 지켜지는 게 정말로 큰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셔요. 우리가 더 관심을 가지고, 지킬 수 있는 법이라도 지키는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저도 앉아서 영화를 보고 우는 걸 참다가 나와서 정신이 없는 상태인데, 곧 마이크를 청중에게 돌릴 예정이니까요. 궁금하신 점, 하고 싶은 얘기 정리해 두셨다가 같이 이야기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17년에 놓쳤던 어떤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기겠다고 했을 때 여러 미학적인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늘 보면서 확인한 건, 영화에 두 가지가 없더라고요. 우선 거의 없는 건 음악의 사용.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고, 그 무게를 감독이 오롯이 지면서 조심스럽게 만드신 것 같아요. 또 작품에 플래시백이 전혀 안 나오거든요. 플래시백이 없는 영화라는 건 아마 거의 못 보셨을 거예요. 희한한 구성이라고 생각했는데. 절제하시거나 빼버리신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주리: 영화가 다루고 있는 감정들이 있는데, 저도 굉장히 거리를 유지하면서 감정을 다루고 있었고. 가장 중요한 건 관객분들이 직접 느끼시는 그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조력이나 유도 없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느끼는 감정들. 음악이 들어가면 대개의 경우는 감정을 복돋게 되고, 우리보다 먼저 가는 게 있잖아요. 혹은 감정을 못 가게 하도록 다른 방향에서 기능을 한다든가. 그런 차원에서,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쓸 수가 없었다고 할까요. 그랬던 것 같고요. 다만 몇 군데 제가 도저히 이 소리를 그냥 볼 수가 없을 때. 관객분들도 아니고 그냥 저예요. 이 아이를 그 순간만큼이라도 위로해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 그때만 잠깐씩 음악을 사용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아예 음악이 없다고 느끼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아주 짧게 네 군데에만 사용했습니다. 플래시백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 굉장히 큰 의지였어요. 이런 형식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던 때부터. 조금의 미스터리도 없이 처음부터 따라가면서 그냥 똑똑히 이 아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거. 그리고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을 함께 생각해 보는 거.
손희정: 플래시백이 들어오면 기능을 하잖아요. 과거를 회상하거나 시간을 뒤로 잠깐 돌릴 때 누군가의 기억을 스크린으로 가지고 오는 게 플래시백인데. 이 영화는 누구의 기억도 전시하지 않는 게 굉장히 신기한 점이더라고요.
정주리: 그게 이 영화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했고. 어떻게 보면 전반부 자체가 거대한 플래시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근데 누군가의 기억이나 회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손희정: 거대한 플래시백이라고 얘기하시니까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게 있는데. 저는 처음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는 <다음 소희>라는 영화의 2시간 20분 자체가 관객들, 한국인들의 기억이 됐으면 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데, 영화는 그걸 기억하자고 이야기를 해주시니까요. 그 점이 관객들한테 가닿았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플래시백을 넣는 순간 서사가 대중적이게 되고 이입이 쉽게 되기도 하거든요. 감독으로서는 쉬운 선택이 아니었겠다 싶기는 해요.
정주리: 중간에 영화가 내내 따라갔던 주인공이 죽고, 화면이 암전되고, 관객분들이 일어날까 봐. 하하, 혹시라도. 영화를 완성해놓고 나니까 그런 분들이 안 계셔서 다행이었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까 봐 노심초사했었습니다.
손희정: 플래시백이 없는 것과 더불어 암전의 순간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게요. 홍보를 하실 때 배두나 배우가 전반적으로 나오고, 배두나 배우가 매체를 수백 개씩 인터뷰를 하셨다면서요. 관객들이 '배두나 보러 갔는데 배우가 너무 늦게 나온다', '너무 늦게 온 배두나' 이런 식의 평이 있기도 해요. 왜 이런 선택을 하셨는지.
정주리: 손희정 선생님이 이 영화에 대해 쓰신 글에요, 거기에 '너무 늦은 도착'이라고 표현하셨던 것 같아요. 그 말이 뭐랄까요.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니었는데. 이야기를 시작하고 소희라는 아이를 생각할 때 제 마음이 그랬던 것 같아요. 너무 늦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당시에 알았으면 뭐가 달랐겠냐마는. 내가 너무 늦었다는 이 기분. 그러고 나서 그 실체를 들여다봤을 때 느꼈던 암담함. 이런 것들이 영화에도 담기길 바랐던 것 같고요. 물리적으로도 유진이라는 형사는 소희가 죽었기 때문에 나오게 되는 거거든요. 절대로 접점이 생길 수 없는 안타까운 (관계). 이미 다 지나고 나서야 돌아봤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 되게 컸던 것 같아요.
손희정: 인디스페이스에서 되게 근사하게 백월을 만들어주셨는데요. 오늘 감독과의 대화에는 제목이 있습니다. '교차로에 선 사람들'이라는 제목인데요. 〈도희야〉 같은 경우는 배두나 배우가 연기했던 영남이라는 경찰 캐릭터와 김새론 배우가 연기했던 도희라는 10대 여성이 마주쳤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다음 소희〉는 유진이라는 경찰과, 학생일 수도 없었고 노동자일 수도 없었던 소희라는 10대 여성이 마주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에 대한 이야기예요. 교차하는 순간이라는 게 정주리 영화 세계에 너무 중요한 모티프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만나지 못함'을 그리는 것에 대한 어려움. 저는 결과적으로는 유진이 소희를 마주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정주리: 두 사람이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비극을 담은 거긴 하지만 어쨌든 소희를 잃어버렸잖아요. 우리가 잃어버린 거를 그대로 가지고 나머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잃어버렸다는 감각. 그 아이가 부재한다는 사실. 처음에는 '어디선가 본 것 같긴 한데' 하는 정도였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부재하는 아이와 함께 하고 있는 느낌. 마지막에 핸드폰 속에 담겨 있는 아이를 볼 때, 그제서야 두 사람이 마주하게 되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지만, 두 사람이 마지막에는 함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오롯이 생긴다면 좋겠어요. 제가 이 영화를 만들 때 믿었던 건, 죽은 아이지만 관객분들 마음속에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 그런 것들을 담아서 만든 것 같아요.
손희정: 처음 봤을 때는 동영상 속 소희가 그렇게 기뻐하는 표정이었는지 몰랐었던 것 같아요. 그냥 우느라고 정신이 없었었던 것 같은데, 다시 보니까 소희가 그 춤을 완성하고 너무 환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마지막 동영상을 연출하시는 기분이 어떠셨을지 좀 궁금했어요.
정주리: 감흥을 제가 해칠까 봐 좀 죄송스럽습니다만. 영화 내내 계속 틀리는 모습만 보잖아요. 근데 실제로 거기까지만 된 거예요. 완성하는 거를 찍는데 완성이 안 되는 거죠. 이거는 완성이 되어야 하는 거니까 계속해서 다시 찍고 그랬는데. 완성을 했습니다. 컷을 하고 나서 '된 거야? 이게 된 건가?' 하니까 된 거라고 본인이.
손희정: 실제로 그 완성의 순간 모두 기뻐했었겠네요. 음악도 없이 춰야 해서 굉장히 민망했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었는데.
정주리: 뭔가 더 화려하고 기교가 있고, 멋지게 해내는 걸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그게 아니고 영화에 담긴 것처럼 된 거예요. 약간 당황했는데, 그냥 그 정도였던 거예요. 그냥 반 바퀴를 더 도는 거. 그게 안 돼서 다시 하고 다시 했던 거예요. 오히려 그 장면을 찍고 나서 완성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딴 건 없었어요. 오직 그 장면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뭔가를 성취해 낸 아이의 모습. 너무 기뻐서 팔짝팔짝 뛰는 순간이 이 아이에게 있었다는 거.
손희정: 어떻게 보면 산다는 게 그 반 바퀴를 완성하는 것일 텐데. 사회가 그 반바퀴를 완성하지 못하게 한다는 게 너무 속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또 포스터가 너무 좋았거든요. 메인으로 쓰이는 포스터는 유진이가 콜센터에 들어가서 어딘가를 보고 있고, 뒤에 아웃 포커스로 소희가 앉아서 유진이를 보고 있어요. 굉장히 이상한 포스터예요. 영화에 없는 장면을 만들어놓은 포스터고. 춤 연습장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너와 나로 마주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비로소 포스터에서 함께 있다니 이건 뭘까. 포스터가 어떻게 나왔는지 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정주리: 일단은 포스터를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영화 속에 함께하는 장면이 없다는 거. 두 사람이 마주본다거나 뭔가를 공유하고 있는 장면이 없다는 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도대체 포스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굉장히 큰 고민이기는 했어요.
손희정: 헐리우드 영화처럼 누끼 따서 세울 수도 없고 그렇죠.
정주리: 심지어 그런 시도도 해봤어요. 어떻게 하면 영화의 주제를 담으면서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포스터를 만들까 하고 저희 팀 모두가 고민을 했었고. 해외에서 먼저 선보인 포스터는 약간 반전되어 있는 형태이긴 해요. 유진이 완전히 아웃포커스 되어 있고 멀리 소희가 초점이 맞아있는. 두 포스터를 같이 놓고 보면 완성되는 그런 콘셉트였고요. 포스터에 보통 누가 나오는지 강조하잖아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고 포스터 자체로도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손희정: 네. 정주리 감독의 세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인디스페이스에서 〈11〉이라는 감독님 단편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고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본선 진출 작품이기도 하고. 당시에 예심을 봤었는데 충격받았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다음 소희〉랑 비교해 보시면 화려하고 기교가 많은 놀라운 작품인데. 전 좋아하거든요.
정주리: 막 찍고 디지털도 들어가고 오만 걸 다 했죠.
손희정: 그 작품도 경찰이 나와요. 새로 온 팀장 연기하셨던 최희진 배우님이 경찰로, 사연을 가진 어떤 여성과 만나서 벌어지는 일. 그래서 감독님의 〈11〉, 〈도희야〉, 그리고〈다음 소희〉까지 보면 정주리 유니버스라는 말이 나오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두 명의 여자가 만나거나 뒤늦게 마주치는 이야기들. 그래서 교차로에 선 사람들이라는 말도 나온 건데. 두 사람의 마주침에 대한 관심, 오래된 걸까요.
정주리: 그러니까요. 경찰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11〉이라는 작품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은 저도 영화 속에서 어떤 결론을 내리거나 하지도 못했거든요. 제목도 그냥 11시간이라는 의미고.
손희정: 저 이거 15년 동안 궁금했어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있어서 〈11〉인가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정주리: 그런 것도 있긴 있죠. 마주 선 모습이라거나. 그 영화를 만들어 놓고 나니 장편 영화를 만들 때 자연스럽게 두 상황이 반전된. 〈11〉의 주인공이 나이가 들어서 10년 지난 뒤의 모습. 자연스럽게 이어져 가긴 했어요. 〈11〉에서는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랐던 중년의 여성을 만나는 거였다면, 〈도희야〉에서는 이곳에 살고 있는 어린 아이를 만나는 영남이 되었고. 이어져 온 것 같기는 합니다.
손희정: 재미있는 게 〈다음 소희〉에서 유진에 관해서는 거의 설명이 안 되잖아요. 관객이 공감하고 동일시하면서 따라가야 되는 캐릭터인 건데. 소희를 잃었다는 것 외에는 공감을 형성할 수 없는 캐릭터 같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한 마디만 던지고 떡밥이 회수가 안 되는가.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도희야〉팬들 같은 경우는 영남이가 유진이라고 생각하면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간다라고 얘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정주리: 그렇게 봐주시면 저는 속으로 좋아해요. 다른 영화, 다른 인물이라는 걸 분명히 아시면서도 마음속에서 두 영화를 함께 생각해 주신다는 게 너무 고맙고. 한편으로는 저도 캐릭터를 구상할 때 유진을 구성하는 요소가 영남의 요소들과 닮았고. 영남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영남 같은 사람들. 갑작스러운 인물이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관객분들이 이해해 주실 수 있는 인물이 되길 바랐습니다.
손희정: 배두나 배우도 〈다음 소희〉대본을 받아보고 영남을 떠올렸나요?
정주리: 그냥 영남이라고 하면 안 돼? 라고. 하하. 굳이 이름을 바꾸냐, 그런 재밌는 대화를 주고받고, '일남으로 할까?' 이런 정도로. 마찬가지로 배두나 배우도 연장선상에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손희정: 이 질문까지만 드리고 이제 객석으로 마이크를 좀 돌릴 텐데요. 〈11〉부터 다음 소희까지 보면 주변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오셨어요. 〈11〉 같은 경우는 가정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에서 살아남는 여성의 이야기. 〈도희야〉도 마찬가지로 가정폭력, 레즈비언으로서 경험하는 배제. 〈다음 소희〉노동 문제까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정주리: 일단은 중심에 있고 주류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궁금하지가 않아요. 잘 나가겠지 뭐. 그렇게 부럽지도 않아요. 관심이 별로 없어요. 자신을 주류 세계에 속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제가 궁금하고 계속 생각해보고 싶은 감정은, 본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잃고 싶지 않아서 부딪혀 나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변화해가는가. 현재까지는 가장 흥미로운 대목인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손희정: 저는 정말 정주리 감독님 작품 좋아하거든요. 엄청 유려하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 그 유려함에 가장 위험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화들이었다고 생각해요. 〈도희야〉도 그렇고 〈다음 소희〉도. 위험하고 유려한 영화를 계속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이제 마이크 객석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코멘트나 궁금하신 점 뭐든 편하게 손 들어주세요.
관객: 첫 번째로 궁금한 건 왜 이 사건이었는지. 학생들이 실습을 나가서 사고를 당한 게 많은데 그 사건 중에서 왜 2017년에 일어난 이 사건이었는지요. 그리고 왜 지금 만드셨는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작년에도 특성화고 학생이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왜 이 사건을 2022년에 만들었는지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정주리: 그 사건을 찾아봤을 때 제일 먼저 본 게 '그것이 알고 싶다'였어요.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고요. 고등학생이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 학교에서 애들을 보낸다는 거. 코로나 시기에 구로 콜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있었고 그때 콜센터의 노동 환경이 한 차례 이슈가 됐던 적이 있었잖아요. 그런 업무 환경이라는 것도 컸고요. 또 하나는 죽은 아이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말하기를, 걔는 절대로 그럴 애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학교의 선생님도 그렇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도 그렇고. 그럴 애가 아닌 애는 뭐지.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런 게 각별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 영화를 만든 이유는 이제 알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이제서야 알았다는 거.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구나. 비슷한 일이 계속해서 있었다는 인식도 컸어요. 이 사건을 제대로 영화로 만들고 싶다. 그러면 놓쳐버렸던 다른 사건들도 얘기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손희정: 지난번에 GV할 때 콜센터에서 일하셨었던 경험이 있는 노동자께서 묘사가 사실적이어서, 콜센터 노동자들과 인터뷰를 하셨냐. 어떻게 조사를 하셨냐고 질문이 있었는데요. 그때 감독님이 "이렇게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미 충분히 있었습니다'"라고 얘기하셨거든요.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다. 근데 기사와 책과 보고서와 논문이 정말로 많았다. 저는 그거를 한 달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는 거예요. 한국 사회가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다시 말하면 끊임없이 이 얘기를 앞으로도 반복해서 해야 하는구나. 영화는 또 나오고 또 나와야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너무 늦은 건 없을 수도 있겠다.
관객: 저는 음악보다도 콜센터 안에서의 소리가 굉장히 강하게 인상에 남았어요. 저도 완전히 비슷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콜센터에서 근무를 했던 적이 있고요. 그 소리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영화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소리를 들으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는지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정주리: 생각해 보니 직접 그 소리를 들은 적은 없어요. 영화 속에 나오는 콜센터의 사운드는 이럴 것이라고 상상하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상상이라기보다는 공간을 가본 기자분들이나 콜센터에서 일하신 분들의 얘기. 그런 것들을 보고 읽고 상상을 한 거죠. 헤드셋을 쓰고 동시에 소리를 내고 옆에서 뭐라고 하는지는 잘 안 들리고 이런 상황. 다닥다닥 붙어 있고 모두 말을 하고 있지만 헤드셋을 벗는 순간 고립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겠구나. 환경이 압도하는 느낌도 있었어요. 전체 사운드 디자인에서 마지막까지도 신경 쓴 대목이었고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관객: 혹시 관객들이 이렇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신경 쓰신 부분이 있으셨을까. 워낙 소재도 그렇고 구성도 파격적이다 보니까. 제가 오늘 세 번째로 보는데, 조심스러우셨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거든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있었는지.
정주리: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나 사건에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무한의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전혀 타협한 것도 없고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시고 많은 분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너무나 무기력하다고. 어떻게 자식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나 하시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가 가는데,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건 좀 달라요. 오죽하면 한마디를 더 묻지 못할까 하는 거. 예를 들어 '엄마 나 그만두면 안 될까' 하잖아요. 사실은 못 들었을 수도 있죠. 그랬다고 생각해요. 시끄러운 차 안이고 하니까. 근데 여전히 남는 의문은 그래도 딸이 손목을 그어서 병원에 갔다가 돌아가는 길이잖아요.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으면 다시 더 물어볼 수도 있죠. 한 번 더 큰 목소리로 '엄마 나 진짜 그만두고 싶어'라고 했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았던 거. 이 두 마음이 다 저는 너무 짠해요. 그거를 그대로 영화 속에 담으려고 노력을 했고. 한편으로는 다르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게 좀 안타깝습니다. 영화 속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실제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고 유가족분들이기도 하니까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실제로는 아버지가 오유진 형사처럼 여러 곳을 다니셨어요. 끝내 LG U+의 사과도 받아내시고 그런 시간이 있었어요.
손희정: 영화의 크레딧에 고마운 사람들에 아버님 이름이 나오죠. 아버님 이름이 뜨는 걸 보면서 이거까지가 작품의 완성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요. 처음에는 영화를 반대하고 허락 안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후에 괜찮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봤었던 것 같은데.
정주리: 그건 아니예요. 시나리오 작업 마칠 때까지는 만나뵙지 않았고요.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된 다음에 전주에 가서 만나뵀습니다. 그때 하신 말씀이, 뭘 이렇게 힘든 거를 하려고 하냐. 이 말씀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더 쉽고 재밌는 거 하지 왜 힘든 얘기 하려고 하냐. 그냥 담담하게 말씀해 주셨고. 실제로 전주에서 촬영하는 동안에 종종 방문도 하시고. 추운데 왜 똑같은 데를 또 찍냐며 말씀하시기도 했어요.
손희정: 소희의 친구들까지 다 아울러 얘기하시는 방식이 참 촘촘하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버를 하는 친구,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친구, 택배 노동하면서 밥도 잘 못 먹는 친구. 캐릭터의 구성이 한국 사회 노동 전반의 문제를 두루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이 설정들은 어떻게 짜놓으신 건지 좀 궁금했습니다.
정주리: 처음에 소희가 있었고, 이야기의 형태도 처음부터 정해놓았어요. 제목을 〈다음 소희〉라고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소희의 주변에 있는 아이들까지 영화 속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야 이 이야기가 온전하게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겠다. 소희는 잃어버렸지만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기분. 그 아이들에 대한 걱정이 시급하다는 거. 이런 것들까지 얘기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막 어렵지는 않았어요. 소희를 생각하고 어울렸을 친구들을 생각하니까 자연스럽게 비슷한 환경에서 일을 할 것이고 혹은 직장을 구하려고 노력한다거나 이랬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고. 또 거기에는 기존에 이제 다른 취재된 자료들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봤을 때 그런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런 노동 조건들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도 알 수 있었고요 그렇게 영화 속에 담았어요.
관객: 우리 사회에 필요한 영화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실화 바탕으로 각본을 쓰시면서 추가했거나 각색하신 된 부분이 어떤 부분이 있는지. 또 왜 그렇게 각색하셨는지가 궁금해요.
정주리: 영화 속에서는 세 달을 채우지 못하고 죽은 걸로 나왔지만 실제로는 다섯 달 정도 일을 했다고 해요. 중요하게 각색이 된 거는 영화는 같이 일하던 팀장님이 돌아가시고 그것이 소희에게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전개가 되잖아요. 실제 사례에서는 똑같은 콜센터에 3년 전에 근무하셨던 팀장님이 계시대요. 만난 적은 없는 거죠. 그 분이 영화 속 이준호 팀장처럼 내부 고발장을 유서로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그분 아버지가 오랜 시간 투쟁을 하셨대요. 영화 내용처럼 관리자니까 마찬가지라는 식의 논리로 고통받으시다가, 고 홍수연 양 사건 이후에 산재 피해를 인정 받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한편으로 3년 전 돌아가신 팀장님의 아버지에게 죄송스러운 것도 있어요. 영화에서는 유가족이 사측과 타협을 하고 하는 것처럼 그려졌으니까요. 실제로는 그렇게 투쟁을 하셨다는 거 꼭 알아주시고요. 또 소희라는 아이를 이루는 것들. 춤을 추는 설정 같은 건 영화적으로 만든 거예요. 주변 친구들도 실제 인물이라기보다는 사례들을 통해서 상상해서 만든 인물들입니다.
손희정: 일하다가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오면 빨간 조끼 입히고, 화장실 청소 시키는 식의 디테일들이 거짓이 아니라는 점이 참 놀랍습니다.
정주리: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거는 28번을 뺑뺑이 돌렸다는 부분 있잖아요. 실제 사례에서는 72번 케이스가 있답니다. 전주에 있는 LG U+ 고객센터에서 그랬다는 자료가 있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72번이라고 하면 도저히 안 믿으실 것 같아서 28번으로 바꿨습니다.
관객: 영화도 잘 봤는데, 더욱 흥미롭고 재미있게 GV를 듣고 있습니다. 저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유진이 소희가 시킨 것과 같은 맥주를 마시는 그 장면인데요. 두 사람이 마주침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문틈으로 스며드는 빛이 두 사람의 발을 연결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영화가 사회적인 면에서 이야기가 되고 있기도 한데, 미학적으로 신경쓰신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또 조금 사소한 질문이 하나 있는데, 소희도 그렇고 아이들이 굉장히 술을 잘 마시잖아요. 춤을 추는 것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아이들이 꿈이 있고 좋아하는 게 있다는 이미지였는데, 거기서의 느낌은 그거랑 좀 다르더라고요. 어리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들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술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손희정: 덧붙여서 유진이 두 번 술을 마시잖아요. 처음에는 곱게 따라마시고 그다음 거품이 나게 따라마시는데요. 감독님이라면 이 디테일은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정주리: 일단 거품이 많이 나면 먹기가 어렵잖아요. 어려서부터 거품이 안 나게 따라 마시는 게 술을 자주 먹는 사람들의 자세라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하하. 그래서 유진이 처음에는 그렇게 마시도록 했고요 마지막에는 그럴 정신도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부분이긴 했습니다. 글쎄요. 술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해주세요. 술만 안 먹었어도 달랐지 않았을까 하는 말씀도 들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술이 따뜻하게 위로를 해준다는 느낌은 안 드실 거예요. 근데 다른 선택지가 없는 거죠. 술에 대해 질문이 들어오면 제가 뭐가 옳다 그르다 말할 수가 없어요. 음악 감독님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영화 속에서) 고등학생에게 다른 힘든 일은 다 시키더니 왜 술 가지고만 뭐라 그러나" 이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어디 가서 그런 정도로만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신 장면에 미학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기도 했어요. 영화가 사실적이지만 감정적이지 않도록 거리를 중시했어요. 그런데 그 잠깐의 순간. 그날의 마지막 햇빛이 저물기 직전에 잠시 찾아드는 그 순간. 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순간이죠. 이런 순간을 영화 속에 마련하는 게 영화 감독으로서는 가장 큰 어떤 기쁨이에요. 관객분들이 그 장면을 봐주실 때 너무나 행복합니다. 또 절반으로 나뉘어서 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형식적인 도전이기도 했어요. 관객분들이 하나의 영화로 받아들여주실 수 있느냐가 저에게는 굉장히 큰 도전이자 임무였습니다.
손희정: 영화의 전반적인 톤에서 조금씩 튀는 장면이 세 장면 정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발에 빛이 닿는 장면과 소희가 춤 연습실에서 나왔을 때 눈이 내리는 걸 보는 장면. 소희가 손목을 긋는 장면이 굉장히 이질적이거든요. 눈이 내린 골목에 앉았는데 어느새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판타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 장면들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정주리: 2시간 20분 가량의 건조하고 사실적인 흐름에서 그 장면들이 있어서 영화적인 순간이 깃드는 것 같아요. 그게 영화 감독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소희가 눈을 바라보는 다음 장면이 팀장님이 죽는 걸 보게 되는 장면인데요. 전개상 큰 변곡점들이 있는 장면들이에요. 다음 흐름으로 넘어가기 전에 소희의 감정을 헤아리는 그런 순간이랄까요. 저 애의 마음이 어떨까 하는 그런 기분이 드실 거라고 봤어요. 거기에는 음악까지 함께 들어가고요. 손목을 긋는 장면도 충격적으로 그린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소희를 놓치는 우리를 말하는 것도 있거든요. 이 영화의 톤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긴 해요. 또 한 가지는 그 소주병이 갑자기 나온 건 아니고 노래방에서부터 가지고 있기는 했어요. 준이가 토하고 있을 때도 소희 파카 주머니에 소주병이 있긴 합니다.
손희정: 처음 볼 때 그 장면에서 너무 놀라서, 오늘 보면서 계속 찾아봤는데도 못 찾았거든요. 주머니에 있었을 줄이야.
정주리: 어김없이 많은 관객분들이 놀라워 하시는 대목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저게 갑자기 어디서 나왔어' 이러면 또 안 되잖아요. 단번에 관객분들이 이해하실 수 있는 정도로 기능하길 바랐습니다.
손희정: 네. 이제 마무리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감독님 다음 계획은 어떻게 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정주리: 영화를 만드는 동안에는 정신이 없었죠. 개봉하고 관객분들을 만나면서 극장 환경과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에 이런 영화를 또 만드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장에서 좋은 영화를 보는 경험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까, 감독으로서, 관객으로서 고민하고 있어요. 이번 영화는 8년 걸렸으니까 다음 영화는 4년 안에 만들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손희정: 그 약속을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다음 소희〉에 관해 인상적이었던 평 중에, '뉴스에서 한 줄로 봤었던 것에 이야기가 부여되었다'는 평이 있었어요. 뉴스의 한 줄을 우리가 서사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가 힘과 생명력을 가지고 더 많은 사람한테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정주리: 10만 명이 넘게 영화를 봐주셨는데, 한 분 한 분을 만나 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고 얘기해 주시는 걸 들으면서, 영화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힘이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해주시는 칭찬들이 물리적으로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고마운 요즘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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