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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다음 소희〉인디토크 기록 : 함께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by indiespace_가람 2023. 3. 9.

 

함께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다음 소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2. 21(화)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정주리 감독, 김시은 배우

진행 손희정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기록입니다.

 

 

 

뒤늦게 비극을 마주하는 일은 암담하다. 남은 사람들은 앞으로의 비극을 막아야 한다. 그를 위해 싸우는 일에는 슬퍼하는 마음 이상의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음 소희> 인디토크 현장은 침묵과 웃음 사이를 오갔다. 그 간극을 오랫동안 떠올렸다. 손희정 평론가의 말처럼 “함께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 감정들을 정리하고 영화 이후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한다는 점에서 좋은 시간”이 될 수 있다.

 

 

손희정 평론가 (이하 손희정) :  안녕하세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영화평론가 손희정입니다. 이렇게 객석이 꽉 찬 모습을 오랜만에 본 것 같아요. 좋은 작품으로 뵙고 싶었던 게스트분들을 모시게 되어 기분이 좋습니다. 정주리 감독님과 김시은 배우님의 인사와 함께 이야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시은 배우 (이하 김시은) : 안녕하세요. <다음 소희>에서 소희 역할을 맡은 김시은입니다. 이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와주실 줄 몰랐는데요. 극장을 꽉 채워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다음 소희>를 어떻게 보셨을지 너무 궁금하네요.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하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정주리 감독 (이하 정주리) : <다음 소희> 연출한 정주리입니다. 오늘 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손희정 : 먼저 감독님께 질문을 드려볼게요. <도희야>(2013) 이후 9년 만의 복귀작입니다. 처음 배두나 배우님께 시나리오를 보내셨을 때 “감독님 아직도 영화하고 계셨냐”는 질문을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그리고 <다음 소희>를 개봉한 소감이 어떠신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정주리 : <도희야> 이후로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 있어서, 3년 정도는 시나리오 작업에 임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제가 두문불출했기에 이민 간 줄 알았다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웃음) 그런데 투자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 영화를 단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6~7년이 지났더라고요. 저희 제작사 대표님으로부터 <다음 소희>의 실제 사건을 영화로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제안을 2020년 말에 받았고, 2021년 초부터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작년 이맘때에는 한창 영화를 찍고 있었거든요. 1년이 채 지나기 전에 이렇게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신기하고 기쁩니다.

 

 

손희정 : 전주 콜센터의 실제 사건을 영화화해보자는 제안을 받으셨을때 복잡한 생각들이 찾아왔을 것 같아요. 이전 영화에서는 시나리오 작업이 3년 정도 걸렸던 것에 반해, <다음 소희>의 시나리오 초안은 거의 4개월 만에 완성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사건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으셨길래 이렇게 빠른 속도로 시나리오를 쓰실 수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정주리 : 사실 제안을 받았을 때는 실제 사건을 잘 알지 못했어요. 2017년 초에 있었던 사건이었더라고요. 한창 탄핵 심판이 있었던 때예요. 그때는 관심이 전부 그쪽에 집중되어 있었던 거죠. 문득 대통령 탄핵이 뭐길래 이 사건을 알지 못했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중요한 문제고, 나와 대단히 가까운 일처럼 느꼈으니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겠죠. 그런데 고등학생이 일하다 죽은 사건은 나와 거리가 먼 일이었을까요? ‘왜 나는 거리감을 다르게 느꼈을까?’ 스스로 질문하는 과정에서 영화가 시작됐던 것 같아요. 사건을 자세히 알아가다 보니, 이게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아니더라고요. 촬영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현장 실습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이 계셨어요. 시나리오 작업,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사건들을 이해해 보려는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손희정 : 우리에게 알리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지만, 충분히 알려지지 못했던 어떤 사건을, 감독님이 만나시고, 우리에게 도달하게 된 것이 <다음 소희>라는 영화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하는데요. “배두나가 너무 늦게 나온다”, “한 시간을 봤는데, 아직도 배두나가 안 나온다”. 그런 말처럼 <다음 소희>는 두 개의 시간선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소희의 시간과 유진의 시간이라는 두 가지 시간이 있고, 어쩌면 이것이 감독님에게 꼭 필요한 형식이었던 것 같아요. 홍수연 님의 죽음을 영화로 옮기겠다고 생각하셨을 때, 이 형식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주리 : 영화가 다루고 있는 문제가 우연한 하나의 사건이었다면 형식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제가 늦게 알게 된 시간 동안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었어요. 그 사실이 계속 마음에 남았습니다. 하나의 비극적인 사건도 있지만, 왜 아이들이 교육 시스템 안에서 이런 곳으로 보내지는지, 왜 이런 사건이 반복되는 것인지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로 사건을 다루되, 그 사건을 다른 측면에서 바라볼 때 어떤 것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손희정 : 뒤늦게 온 배두나의 신체라는 것이 ‘이미 늦음’이라는 감각을 저에게 크게 남겼어요. 그리고 이미 늦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늦어지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한 것 같아요. 영화의 전반부는 오롯이 소희의 시간이었음과 동시에, 김시은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는지, 그리고 소희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시은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시은 : 저 또한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던 당시에는 실제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어요. 부끄러웠습니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조금 더 사건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럼으로써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이 영화의 순기능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소희 역할을 맡을 수 있다면 너무나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이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감독님께서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했어요. 호기심 반, 그리고 기대하는 마음 반으로 감독님을 만나러 갔었죠. 보통의 오디션에서는 제가 대본을 읽고, 어떤 방식으로 역할을 연기할지 보여주는 자리가 되기도 하는데, 감독님과의 만남 때는 대본을 읽지 않았어요. 주로 대화를 나눴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소희의 모습, 그리고 이 장면에서 소희가 느꼈을 감정을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제가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꼭 세상에 공개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나 봐요. 저는 사실 그 말이 기억나지 않거든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그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소희가 되었습니다.

 

정주리 : 저는 오디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김시은 배우를 한 번 만나보는 정도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준비했었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김시은 : 대본을 외웠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 숙지는 했었어요. 감독님이 보고 싶어 하시는 장면이 있다면,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소희가 춤을 잘 추는 친구잖아요. 그래서 예전에 장기자랑에서 뽐냈던 것을 감독님 앞에서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죠.

 

정주리 : 그런 것을 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웃음) 정확히 기억하는 말은 “소희가 꼭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였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굉장히 비범한 친구라고 느꼈어요. 객관적으로 시나리오를 대하고 있고, 영화가 제대로 완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준다고 생각했어요. 고마웠습니다. 8년 전에 <도희야>의 시나리오를 배두나 배우에게 보내고 대화를 나눴던 때를 기억해요. 내가 누군 줄 알고 이 영화를 선택했냐고 물어봤었는데, 배두나 배우가 “이 영화는 꼭 극장에 걸려야 된다”는 말을 해줬었거든요. 그때의 기시감이 들기도 했어요.

 

 

손희정 : 어떤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김시은 배우를 만나고 나서야 소희가 어떤 사람인지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그렸던 소희의 이미지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 ‘이 배우가 소희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시은 배우님은 이 이야기를 지금 처음 들으신 건가요?

 

김시은 : 네. 그런 것 같은데요.

 

정주리 : 뭘 처음 들어요. (웃음) 김시은 배우를 만났던 것은 캐스팅 초기 단계였고요. 앞으로 긴 오디션 과정이 다가올 것이라고 각오하고 있었어요. 오디션에 앞서, 정말 가벼운 만남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만나고 보니, 김시은이라는 배우가 그날 나에게 소희라는 인물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습니다.

 

손희정 : 배우님은 내가 소희일 수 있다는 느낌을 언제 받으셨나요?

 

김시은 : 전 그런 확신은 없었던 것 같고요. 내가 소희라는 역할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했었는데요. 감독님께서 감사하게도 소희 같다고 말씀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손희정 : 감독이 배우를 알아보는 순간은 어쩌면 천운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그런 천운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우리에게 찾아올 수 있었구나 생각합니다. 저는 김시은 배우를 <다음 소희>에서 처음 만났는데요. 전반부를 이끌고 나가는 배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소희를 연기하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특별히 어려운 부분, 혹은 신경 썼던 부분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김시은 : 사실 <너와 나>(2022)가 저에게는 첫 영화였고, 그다음 <다음 소희>를 촬영했는데요. 그래도 혼자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처음이어서 부담이 컸어요. 많은 관객분들이 배두나 선배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전반부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 것은 저니까요. 제가 관객분들을 설득해야만 좋은 영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책임과 부담을 많이 느꼈어요. 제가 잘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다른 걱정은 하지 않고, 소희에게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특별히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콜센터 장면들에서 소희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로봇처럼 변하는 소희의 흐름이 보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어려웠던 것은 가맥집에서 소희 앞으로 떨어지는 빛을 바라보는 장면이었어요. 너무 많은 감정이 몰려왔어요. 한 가지로 소희의 감정을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감독님에게 많이 의지했어요. 그리고 현장 스태프분들과 배우분들께 “저 정말 괜찮나요?” 이렇게 계속 확인받으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다들 너무 친절하시고, 배려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특히 최희진 선배님은 저만을 찍는 장면들에서도 진심을 다해서 도와주셔서, 소희로서의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게 만들어주셨어요. 허정도 선배님은 <멘탈코치 제갈길>(2022)이라는 드라마에서 코치와 선수의 역할로 함께 했었어요. 여기서도 담임선생님으로 우연히 같이 호흡을 맞추게 되어서요. 복을 많이 받았던 현장이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도 매 장면 끝날 때마다 괜찮았는지 확인받았어요. 컷 사인이 떨어질 때마다, 감독님의 눈을 쭉 쳐다봤는데요. 그러면 감독님이 끄덕거려 주시기도 하셨어요.           

 

정주리 : 그래야 끝나니까. (웃음)

 

김시은 : 아니 감독님. (웃음) 진심이세요?

 

정주리 : 연기 같나요? (웃음)

 

김시은 : 어쩐지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끄덕임이 빨라지더라고요.

 

손희정 : 현장의 분위기를 조금 훔쳐본 것 같습니다. 말씀을 들으니 <다음 소희>에 정말 좋은 배우들이 많았다고 생각하게 되네요. 이번 영화에 대한 반응을 찾아보니, ‘배두나 경찰 유니버스’가 열렸다는 말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감독님의 단편 <11>(2008)에서도 주인공이 경찰이에요. 사실은 ‘정주리 경찰 유니버스’가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어떻게 매번 주인공을 경찰로 정하게 되셨는지 여쭤보고 싶고요. 한 가지 덧붙여보자면, 실제 사건에서 홍수연 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난 다음 죽음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부모님, 그리고 시민단체 활동가들, 언론이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경찰이나 학교는 가장 역할이 미미했던 집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유진 캐릭터는 경찰이어야 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정주리 : 저는 유니버스라는 개념은 일절 생각하지는 않고요. 다른 세계를 펼치고 싶습니다. (웃음)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경찰관이 주인공인 영화를 세 편이나 만들게 됐네요. 이번 영화에 있어서는 특별한 고민이 있었다기보단, 소희의 죽음이라는 사건의 현장에 곧바로 나타나야만 하는 인물을 찾다 보니 담당 수사관 형사로 주인공이 정해지게 됐어요. 또 전반부가 소희를 따라가는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수사물의 형식을 가져와 관객분들의 집중을 이어 나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노력하신 유가족분들, 취재하시는 기자분들, 시민단체와 노동계에서 고생하신 분들이 유진이라는 인물의 모티브였고, 그분들의 조각을 끌어 담아서 만들었어요. 그렇지만 허구의 인물을 만드는 입장에서, 유진이 공직의 위치에 놓여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며 경찰분들에게 자문을 얻었는데요. “수사관이 이런 일을 맡을 수 있냐?”, “이곳저곳을 다니며 내사하는 일이 가능하냐?” 물어봤는데,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99%는 그렇게 안 하는 거죠. 근데 할 수도 있는 거예요. 형사뿐만 아니라, 담임선생님, 교감 선생님, 교육청의 담당자들 전부 '하자면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소희> 스틸컷

 

손희정 : 소희라는 사람의 신체에서부터 시작해서,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거대한 구조의 문제로 확대되어가는 영화의 구조가 놀라웠어요. 영화를 따라가다 보니 끝에서는 정말 숨이 막히더라고요. 영화 또한 현실보다 앞서 나가지 않는 위치에서, 구조를 깨지 못하고 딱 끝나버려요.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여기 함께 계시는 관객분들은 조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함께 모여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그 감정들을 정리하고 영화 이후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한다는 점에서 좋은 시간인 것 같아요. 이 마음을 담아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려보고 싶은데요. 관객분들의 질문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1 : 평론가님께서 '왜 경찰이었느냐'는 질문을 던져주셨는데, 저는 '왜 유진이어야 했는가'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유진이라는 인물은 굉장히 관성적인 것 같고, 전사도 잘 그려지지 않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임계점을 넘어가면서 배두나 배우님이 이렇게까지 소리를 지르며 연기한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볼 정도로, 뜨거운 감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왜 주인공이 유진이여야 했고, 어떤 지점에서 그가 분노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주리 : 어떻게 보면 유진은 우리 모두라고도 생각해요. 유진은 관성적이고 건성으로 일을 처리하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도 사실 사는 것에 너무 지쳐 있잖아요. 자기 삶을 사는 것에 바쁘고, 그래서 웬만하면 골치 아픈 일을 피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 눈앞에서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생각했습니다. 소희의 죽음을 목격한 관객분들이 유진의 변화하는 감정과 함께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관객 2 : 소희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런 와중에도 마음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소희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시은 : 열망이 큰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춤도 그렇고, 일도 잘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힘들어했던 것 같고요. 팀장과도 싸워보고, 일도 엄청 열심히 해봤다가, 아예 놓아버리기도 하고요. 소희는 하고 싶은 것을 꼭 하는 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소희> 스틸컷

 

관객 3 : 저는 콜센터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시나리오를 쓰시면서 콜센터에 종사하는 분을 만나보기도 하셨는지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주리 : 우선 시나리오를 쓰면서 콜센터 일을 하신 분들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제가 콜센터에 가본다거나 상담 전화를 해본 적은 없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맞나 싶지만, 콜센터의 노동 환경은 기존에 취재되어있던 기사들, 자료들, 책들로 충분했어요. 그것들을 재료로 삼아서 만들어낸 인물들과 상황이었습니다.

 

관객 4 : 특성화고를 올해 졸업한 스무살 로서, 주변의 친구들이 떠올라 여러 감정을 느끼면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소희와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배우님께도, 감독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유진이 형사계로 오게 된 계기로 추측되는 유진의 엄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정주리 : 생각해 둔 건 있어요. 영화 속에서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유진은 서울의 본청에서 사무직으로 일을 하던 사람인데, 오랫동안 어머니가 아프셨어요. 다른 가족 없이 엄마와 둘이 살던 사람이었고, 휴직하고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급히 복직하게 된 상황이라 자리가 있던 전주 경찰서 형사계로 발령받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 5 : 저수지 주변의 가게에서 빛을 맞이하는 유진과 소희에 대해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보통 영화에서 사람에게 햇빛이 비치는 장면은 희망이나 구원 같은 긍정적인 의미를 전해주곤 하는데, 작중에서는 전혀 그런 상황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감독님께서 장면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의도가 궁금하고, 배우님은 장면을 연기하셨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지고 계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주리 : 방금 관객분께서 거의 다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소희의 마지막 날이잖아요. ‘저물어가는 햇빛이 아이의 발에 닿으면 어떨까?’, ‘그게 이 아이에게 위로가 될까?’, ‘아니면 그조차도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할까’. 아까 김시은 배우가 그 장면에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고 했는데, 저도 어떤 감정일지 궁금한 마음이었어요. 어떤 명확한 장면의 의도가 있었다기보단,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차갑고 고요한 저수지를 보여준 장면들과의 대비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관객분들에게 감정적인 감흥을 드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말씀해주신 대로 유진에게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죠. 여태껏 유진은 이미 죽은 소희를 쫓아가고 있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소희라는 아이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랬으면 했고요.

 

김시은 : 빛이 발에 들어왔을 때는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빛이 위로가 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빛을 통해서 다시 한번 내일을 살아가야겠다는 의지나 희망을 떠올리지 못했어요. 무기력했던 것 같고요. 무작정 빛을 따라가 봤는데, 걷다 보니 빛의 따뜻함이 잊혀졌던 것 같고요.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오히려 관객분들이 그 빛을 봤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궁금해요. 

 

 

관객 6 : 저는 영화 내내 눈이 오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감독님에게 눈은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배우님께서는 눈을 볼 때 어떤 감정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정주리 : 눈 이야기를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신경 썼는데 많이들 안 물어보시더라고요. (웃음) 눈은 이중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름답고, 포근하고,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있지만, 쌓인 눈이 녹을 때를 생각해보면 아래에 있던 지저분한 모습들이 드러나기도 하고요. 눈이 내리는 순간에는 소희가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다음에는 안 좋은 일이 벌어지기도 하죠. 죽음을 예고하는 듯한 장면에서는 눈이 오게 했습니다. 근데 실제로 촬영할 때는 한 번도 눈이 안 와줬어요.

 

손희정 : 뿌리신 거군요. 폭신폭신해 보이더라고요. 연기할 때 덜 추우셨겠어요.

 

김시은 : 사실 눈이 기억나는 장면이 세 번 정도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처음 연습실에서 올라가며 바라봤을 때는 포근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정주리 : 잠깐만요. 실제로 촬영할 때는 눈이 없었거든요.

 

김시은 : (화들짝 놀라며) 아! 그랬나요? 저는 있다고 생각했어서.

 

정주리 : 천상 배우십니다. (웃음)

 

김시은 : 잠깐만요. 진짜 없었다고요?

 

정주리 : 다 CG예요.

 

손희정 : 모든 장면이 CG였나요?

 

정주리 : 골목길 장면은 인공 눈을 뿌렸었고요.

 

김시은 : 뿌리셨잖아요.

 

정주리 : 네. 다른 장면에는 없었고요. (웃음)

 

김시은 : 잠시만요. 제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웃음)

 

손희정 : 저는 배우가 인물에 들어가서 연기를 한 후에는, 완성본으로 영화를 기억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기억이 얼마든지 다르게 쓰여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하늘에 내린 눈은 CG였던 것으로…. 이야기 계속 들어보겠습니다.

 

김시은 : 저는 정말 눈이 온다고 생각했어요. 연습실 바깥의 눈에는 포근함을 느꼈던 것 같고요. 다시 학교를 찾을 때 밟혔던 눈도 기억나고, 저수지에서 눈을 바라봤던 것도 기억나요. 사실 그때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눈은 소희 주위에 있었던 환경이라고 생각했고요. 소희를 연기함에 있어서 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눈은 눈이다’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손희정 : 눈이 가지고 있었던 깊은 의미는 감독님 마음속에만 있었던 것으로…. 마지막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관객 7 : 소희가 부모님에게 “회사 그만두면 안 돼?”라며 고백했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무시하셨거든요. 왜 그랬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주리 : 개인적으로 너무 죄송스러운 장면이에요. 그 장면 속의 부모님은 정말로 못 들으셨을거라고 생각해요. 차 안이 너무 시끄럽고 경황도 없다 보니까요. 실제로는 말이 들리지 않았는데, 뭔가 말하는 것 같으니 “뭐라고?”라며 되묻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관객분들에게는 소희의 말이 들려야 해서, 또렷하게 처리했어요. 그렇게 만든 것에 죄송한 마음이 크고요. 한 가지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것은, 소희는 엄마가 그렇게 반사적으로 반응한 이유를, 그리고 잘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소희는 왜 다시 큰 소리로 말하지 못했는지, 그럴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손희정 : 마칠 시간이 되어서요. 두 분의 마지막 한 마디 들어보면서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주리 : 요즘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영화가 개봉했던 주말보다, 지난 주말에 더 많은 관객분들이 극장을 찾아주셨어요. 너무 놀라운 일이에요. 관객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영화를 보러 오셨을지 전부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여러분들이 사회를 변화시킬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봐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김시은 : 귀한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처음 <다음 소희>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이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조그마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많은 관객분들이 모인 것만 해도 조금 더 괜찮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가 그리는 문제는 누구 한 명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 한 명들의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각각의 개인이 변해야, 사회의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다음 소희>가 여러분들의 마음에 조그마한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조심히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손희정 : 저는 이 영화를 보고, 영화가 사회를 바꾸는 힘을 다시 한번 믿어보고 싶었어요. 그럴 수 있도록 감독님과 배우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여러분이 희망이니까요. 더 많은 입소문과 이야기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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