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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컨버세이션〉인디토크 기록: 말과 말 사이, 치열한 존재 투쟁

by indiespace_가람 2023. 4. 3.

말과 말 사이, 치열한 존재 투쟁

 

<컨버세이션>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3. 03. 18(토) 오후 6시 상영 후

참석 김덕중 감독, 곽민규 배우

진행 유운성 평론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진연우 님의 기록입니다.

 

 

“호감을 사려고 말을 많이 할수록 허름해지는 기분이지.” 항간에 떠도는 출처 미상의 문장은 오늘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산다. 말하는 행위와 마모되는 감각은 어째서 닮아 있을까. 아마도 ‘말한다’라는 행위 안에는 의미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 안에서 언어는 대체로 무용하다. 나의 ‘사랑해’와 너의 ‘사랑해’가 서로 다르듯, ‘말한다’라는 행위는 결국 나를 증명함으로써 타인에게 읽히고자 하는 필사적인 시도이기에 불안하게 새어 나오는 말들은 입술선에 끈적한 욕망을 남기기도, 곱씹을수록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필연적으로 실패하도록 설계된 행위이지만 이러한 이유에서 말한다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담보하기도 한다. 잔뜩 쏟아 내고 뒤척이는 숱한 밤을 보내도 멈출 수 없는 이유. 우리는 외롭기 때문에.

 

 

 

 

유운성 평론가(이하 유운성): 먼저 두 분 소개해 드리고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옆에 계신 분이 방금 보신 영화 컨버세이션 연출하신 김덕중 감독님이십니다.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 스크린에서도 보셨고, 지금은 무대에서도 보고 계시는데요, 영화에서 필재 역을 맡으셨던 곽민규 배우님 나와 계십니다. 박수로 맞아 주세요.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김덕중 감독님의 두 번째 장편입니다. 첫 장편은 2019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였던 〈에듀케이션〉이라는 작품이었고, 〈컨버세이션〉은 이 년 뒤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였었는데, 제목들을 보고 있으면 다음 영화는 '파운데이션'..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고요. (웃음) 그리고 이제 주기로 보면 올해쯤 신작이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곽민규 배우님 같은 경우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데 일일이 말씀드릴 수는 없고, 최근에 출연하셨던 영화 아마 보신 분들이 꽤 계실 겁니다. 이삼 년 사이에 개봉한 영화들만 놓고 말씀드리면, 〈파도를 걷는 소년〉, 〈이장〉, 〈달이 지는 밤〉, 옴니버스 영화였었구요. 그리고 〈창밖은 겨울〉, 〈소피의 세계〉 등에서도 출연을 하셨습니다. 이외에도 훨씬 많은 작품들이 있는데, 지금 말씀드린 작품들은 최근 한 이삼 년 정도 처음 선보이거나 개봉을 했던 작품들입니다.

 

지금 보신 〈컨버세이션〉 같은 경우는 전체 열다섯 개 장면으로 되어있습니다. 맨 첫 번째 장면 같은 경우 여성 셋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한 번 커트가 있어서 두 개의 쇼트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장면마다 한 개의 긴 쇼트들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열여섯개의 쇼트, 열다섯 개의 장면으로 된 작품인데 가능하면 오늘은, 기왕이면 곽민규 배우님이 등장하셨던 두 번째 파트라고 할 만한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보면 어떨까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여쭤볼 것들을 조금 생각을 해 봤습니다. 간단한 안내를 조금 드리자면, 감독님이 직접 만드신 것 같은데 ‘컨버세이션의 브런치’라고 해서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페이지가 있어요. 거기 들어가시면 이 영화에 얽힌 많은 정보가 감독님 특유의 말투로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이야기를 반복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거기 있는 내용은 그냥 제가 말을 해 버리겠습니다. (웃음)

 

일단 그 두 번째 파트에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던 거는, 인터뷰나 방금 말씀드린 페이지에도 나와 있지만 이 영화는 대화로 연쇄된 어떤 영화를 꾸리고, 처음에는 여성분들이 등장하는 단편 같은 걸로 생각을 했다가 확장이 됐는데 인물들마다 구체적인 실제 배우, 이 배우가 실제 출연하게 될지 안 될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배우들을 떠올리고 쓴 경우가 꽤 있었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와중에 실제로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여섯 분의 배우 중에 맨 처음에 만나신 분이 곽민규 배우라고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또 이 영화의 순서상으로는 그렇지 않지만 실제로 맨 처음 촬영을 한 부분이 바로 곽민규 배우가 나오는 부분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박종환 배우님하고 두 분하고 공원의 원형 산책로 같은 데에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이제 이 영화에서 맨 처음 촬영을 하게 된 부분인데.... 그런데 이제 말씀을 하셨거나, 쓰셨던 것들을 보고 있으면 곽민규 배우님을 염두해 두고 쓰고 있다가 만나셨다라고 했는데, 이제 다른 배우분들 중에서 특별히 또 이 곽민규 배우님을 먼저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라고 생각한 거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더라고요. 그래서 먼저 그 부분에 대해서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영화 〈컨버세이션〉 스틸컷

 

 

김덕중 감독(이하 김덕중): 아, 그 브런치를 변명하자면... 너무 검색이 안 돼서, 너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님의 영화만 나와서 서치 방어 느낌으로 이렇게 쓴 건데 읽으실지 몰랐고요. (웃음) 곽민규 배우님은 정말 그냥 같이 해 보고 싶은 배우님이셨어요. 작품을 제가 우연히도 되게 많이 봤었거든요. 볼 때마다 ‘같이 해 보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많이 들더라고요. 뭐랄까, 되게... 이유가 딱히 막 ‘이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뭔가 좀 동물적인 느낌이랄까?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이분은 연출자와 어떻게 소통을 해서 이게 나온 거지?’ 하는. 어떤 동작이나 캐릭터를 잡으실 때 약간 날것의 느낌 같은 게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저랑 하면 어떻게 될까, 이 궁금증이 너무 컸고, 그래서 일단 ‘곽민규 배우님이랑 하려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지?’ 하고 생각을 했을 때 마침 종환 배우님이랑도 같이 해 보고 싶었는데 두 분이서 사랑을 하게 하면 되겠다, 그러면 둘이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으로 그 부분을 조금 전개를 시키고 싶었습니다.

 

유운성: 그러면 만나셨을 때가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직 완결된 형태가 아니고 여전히 쓰고 계신 중이었잖아요. 실제로 만나시고 난 다음에 원래 설정했던 거에서 좀 바뀌거나 조금 더 진전된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덕중: 만나 뵀을 때 파트 투는 다 쓰여져 있긴 했어요. 파트 쓰리라고 할 수 있는 그 부분이 조금 덜 쓰여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저는 되게 궁금했어요. 배우님 만나면 이제 배우님들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까, 시나리오에 관련해서도 도전일 수도 있고 여러모로 열악하잖아요. 그래서 궁금했는데 배우님들이 공통적으로 별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그냥 하는 거죠~’ 약간 이런 느낌? 그래서 저는 더 의심스러운 거예요. 시나리오의 특정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신다면 ‘이거, 이거 외에는 다 마음에 드셨나 보다’라고 하는데 별로 피드백을 주지는 않으셔서 ‘그냥 다 좋은가 보다~’ 라고 생각해서 그냥 공개하게 됐습니다.

 

유운성: 곽민규 배우께서는 감독님 처음 만나 뵀을 때 지금 말씀하신 대로 두 번째 파트는 거의 다 쓰여져 있는데 전체적으로 완결되지 않은 상태였잖아요. 그러면 캐릭터를 판단하거나 할 때도 조금 모호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사전에 받아 보신 게 있다면 어떤 느낌을 받으셨고, 또 지금 생각해 보니 왜 하겠다고 한 것 같은지 한번 말씀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곽민규 배우(이하 곽민규): 감독님께서 사전에 본인이 아니라 감독님의 지인 감독님을 통해서 저에게 ‘김덕중 감독님이 곽민규 배우랑 작업을 하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떤 영화제 뒤풀이 같은 곳에서 들었어요. 바로 윤단비 감독님께서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셨거든요. 그런데 이제 배우로서 그게 되게 로맨틱한 일이에요. 누가 나를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감동이잖아요. 그래서 일단은 저한테는 궁금하면서 ‘어? 나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이미 기저에 깔려 있었는데요. 감독님께서 이제 이 영화에 대한 계획이라든지 포부를 말씀하셨을 때는 ‘무조건 해야겠다....’ 그리고 저는 이전에 〈남남〉이라는 단편도 있었고 〈메이드 인 루프탑〉이라는 영화도 있었는데, 퀴어 영화를 했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김덕중 감독님의 느낌은 이전의 작업들하고도 비교했을 때 뭔가 좀 새로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캐릭터에 꼭 도전해 보고 싶다? 느껴지는 것들보다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서 봤을 때가 너무 달라요. 현장에서 배우들이랑 감독님이랑 많이 찾아낸 것도 있고, 우연적으로 다가오는 것들도 있고, 그렇게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들 때문에 영화가 더 생동감 있게 나온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작업들이 되게 저한테 신비로웠던 것 같아요.

 

유운성: 촬영 자체는 2020년에 처음 시작했던 걸로 알고 있고 그래서 촬영 기간으로만도 보면 굉장히 길었죠, 다음 해 6월까지 촬영을 했다고 나오니까. 스케줄표 같은 거를 만들어서 예전 상영에서 보여 주신 적이 있었는데, 그 기간 내내 촬영을 한 게 아니라 한 달에 한두 번 촬영을 해서 사실상 이제 한 번 촬영할 때마다 한 쇼트 정도를 촬영하게 된 거니까 굉장히 드문드문 촬영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러면 곽민규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지금 여기에서 실제로 출연을 하시는 부분이 총 다섯 개 장면이 되잖아요.

 

곽민규: 맞습니다.

 

유운성: 그거는 그러면 기간으로는 어느 정도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시나요?

 

곽민규: 말씀하셨다시피 촬영한 시점대에서 정확하게는 저도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도 한 6개월? 그리고 그 사이에 이제 하루씩 가서 촬영을 했는데 보시다시피 장면들마다 또 시간의 텀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한테는 이게 오히려 더 좋았어요. 왜냐하면 보통 영화 촬영하면 제작비를 단기간에 해서 찍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띄엄띄엄 있으면 뭐, 단순한데요. 그냥 머리가 조금 더 길 수도 있고, 길어서 조금 다르게 보여지는 것도 있을 수도 있고.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랑 또 3개월 후에 제가 살고 있는 삶이랑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은 또 많이 다르잖아요. 뭔가 그런 것들도 약간 연기를 하는 데,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조금 많이 영향을 미친 부분이에요. 굉장히 매력적인 작업이다. 나중에 감독님 〈보이후드〉 같은 것도 생각하시면 저는 몇십 년씩 할 수 있으니까. (웃음) 제가 좋아하는 방식입니다.

 

유운성: 그래서 또 이 영화를 몇 차례 보고 있으면 사실은 곽민규 배우가 등장하는 파트가 다른 부분들하고는 되게 달라요. 왜냐하면 이 영화는 1,2,3부라고 편의상 나눠서 이야기를 하자면, 1부, 3부 같은 경우는 방금 전에 보신 맨 마지막 쇼트를 제외하고는 야외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이제 곽민규 배우님이 등장하시는 부분을 한번 떠올려 보시면, 생각건대 곽민규 배우님은 계속 야외에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제 스태프도 많지 않고 소규모로 찍힌 영화였던 것을 고려할 때 더더욱 실외가 아마 실내보다 더 사운드나, 지나가는 사람이나 이런 것들의 통제도 훨씬 힘들었을 것 같은데요. 이거에 관해서는 두 분 다 여쭤보고 싶은데, 이렇게 세 개의 파트라고 했을 때 두 번째 파트가 하나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전체적으로 야외에서 전개되는 방면 다른 곳들은 조금 실내를 중심으로 한다, 이거는 언제부터 이런 식의 구성을 조금 잡게 되셨는지 감독님한테 한번 여쭤보고 싶고, 곽민규 배우님한테는 지금 말씀드린 대로 상대적으로 다른 분들에 비해서 거의 야외에서만 촬영을 했어야 됐는데 이제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거를 촬영하면서 언제 깨달으셨는지, 그로 인해서 촬영 중에 생겼던 어려움이나 혹은 또 즐거웠거나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걸지 이것도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지금 생각해 보니까 파트 원은 제가 그 안에서 조금 전하고 싶어 했던 게 있었던 것 같아요. 말을 서로 주도권을 다퉜던 쟁탈이 있었고, 그것이 다시 해소된다. 관계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라고 하는 어떤 메시지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이제 그러면 그냥 해 보고 싶은 거 하자 라고 할 때, 배우님과 같이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었지만 각 씬 별로 해 보고 싶은 게 조금 달랐거든요. 이 씬을 쓸 때마다 조금 공간에 관심을 두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해 보고 싶은 공간들이 있었어요. 되게 넓게 펼쳐진 그 유모차 장면 같은 경우도 제 집 근처였는데, ‘이 공간에서 뭔가 해 보고 싶다. 그럼 뭘 하지?’ 물음 자체가 그렇게 시작을 했었던 것 같고. 그 다음 장면은 제 집. 지금은 살고 있지 않지만 제 집이었는데 제가 항상 옥상에 담배 피우러 나가고 하면 단지 안에 살고 있지도 않은데 아파트가 너무 병풍처럼 저를 둘러싸고 있는 거예요. 맨날 조금 구경받는 느낌을 받아서, 그래서 여기도 공간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고. 주차장 마지막 혼자 나오시는 그 장면 같은 경우도 그것도 공간이었어요. 그거는 예전의 기억들이었던 것 같은데, 제가 시골에서 자라서 서울에 왔을 때 조금 문화 충격처럼 다가왔던 게 서울에 와서 화장실을 갈 때 키를 가지고 간다는 게 너무 좀 신기하다고 생각했고, 스무 살 때였는데 이제 집 앞에 공간에 주차한다고 쇠사슬로 이렇게 막아 두는 게 너무 특이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원래 고향에서는 있었던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거를 조금 그때 내가 그 경험했던, 지금은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이 공간의 특이성을 조금 더 부각시키고 싶다. 그래서 약간 조금 야외가 됐던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컨버세이션〉 스틸컷

 

 

곽민규: 예전에 집에서도 몇 번 고해성사 같은 느낌으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통제가 안 되는 부분에 있어서 솔직히 조금 속상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감독님은 못 느꼈다고 얘기하는데 알게 모르게 좀 투정도 조금 부렸던 것 같고. 그런 부분들이 조금 어렵긴 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은 이제 야외에서 마스크를 벗어도 되지만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등장을 하기 때문에 NG가 났던 기억이 있었었거든요. 이게 짧은 컷, 컷, 컷으로 이루어진 영화가 아니라 롱테이크를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한 12분짜리 찍는데 한 11분 50초에서 만약에 그런 분들이 튀어나오면 우리는...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변수들 때문에 나왔던 긴장감들이나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됐던 것 같기도 하고, 감독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유난히 그 장소나 날씨가 되게 무드랑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주차장 오는 날에는 마지막에 비까지 조금 내려서 저희가 이제 촬영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왔었는데 몇 번째 테이크를 쓰셨는지 얘기를 안 나눠 봐서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짜증 나는 상황들? (웃음) 뭔가 이것들이 맞아떨어져서.... 또 감독님께서도 전화할 때 신경질 좀 내 줬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디렉팅도 있었고. 제가 그래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감독님께서 모니터 하시면서 찾아 주셔서. 조금 구체적으로 저는 이 영화가 되게 매력적인 게, 뭐, 매력적인 부분이야 너무 많겠지만 캐릭터들이 굉장히 입체적이거든요. 어디서 못 본 사람들처럼 정말 그런 생경한 모습들이 좋아서, 솔직한 것 같아서.... 날씨랑 그 장소가 주는 힘, 또 감독님이 어떤 장면에서 고집하고 싶었던 계절감? 뭐 이런 것들이 필재나 승진의 이야기에서 특히나 더 좀 잘 무드가 만들어지지 않았나? 라는 게 제 생각이었습니다.

 

유운성: 그러니까 이 질문을 던졌던 건 영화에 출연하신 배우분 중에 이 경험을 가장 세게 한 게 이제 곽민규 배우님이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다른 분들은 상대적으로 실내, 조금 더 통제가 가능한 공간에 있었을 테니까. 그리고 방금 말씀하셨는데 저도 이 영화에서 되게 매력적으로 느끼는 게, 사실 여기 출연하신 분들이 나온 작품들이나 이런 것들을 이전에 장단편 같은 데서도 조금 본 적이 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 이 사람이 이렇게 보이는구나’ 라고 하는 걸 좀 새삼 느끼게 된 것들이 있습니다. 이미 사실 영화 첫 쇼트를 볼 때 ‘와, 이분들이 이런 사람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 반문을 줬었고, 그 이후로도 이렇게 차례차례 다른 캐릭터들이 나올 때 저도 비슷한 느낌을 좀 받았었는데, 또 하나 이제 여쭤보고 싶은 거는 이거는 뭐 아주 지적인 거라기보다 영화를 보다 보니까 자꾸 생각이 들어서 알게 된 건데, 그 역시 두 번째 파트를 떠올려 보면, 우리는 이제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라고 할 만한 건 조은지 배우하고, 그리고 이제 박종환 배우 쪽이 이제 전체적인 어떤 흐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두 번째 파트를 보고 있으면 시각적으로는 이 영화가 훨씬 더 중심에 두고 있는 게 지금 나와 계신 곽민규 배우거든요. 왜냐하면 그 박종환 배우하고 두 분 다 이제 출연을 하시는데, 영화에 나올 때 그게 이제 그 박종환 배우의 어떤 극중 성격을 만들기도 하는 것 같은데 이분은 자꾸 화면 안팎으로 들락날락해요. 그러니까 이제 나갔다가 들어왔다가. 그리고 옥상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도 혼자만 좀 불빛이 안 보이는 곳에 가서 얼굴이 안 보이게 있는다거나, 버스킹 할 때도 내내 있다가 뒤로 드러누워 버려서 얼굴이 안 보인다거나. 그러니까 우리가 실제로 화면에서 줄기차게 얼굴을 보고 있는 건 곽민규 배우님이에요. 이게 어떻게 보면 시각적으로는 포커스가 이쪽에 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극중 캐릭터의 성격 부여를 해 주는 것도 있고, 그 영화에서 조금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도 있는데 그걸 가지고 이제 이 사람은 이런 성격이다, 이거에 따라 어떤 동선이나 동작 같은 것도 만드셨을 것 같은데 그런 걸 연기할 때, 또 연출할 때 고려하셨던 거나 혹은 느꼈던 거에 대해서도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영화 〈컨버세이션〉 스틸컷

 

 

곽민규: 이 영화는 아무래도 계속 상대 배우와 대화를 주고받아야 되는 영화이고, 그 길이가 상당히 길기 때문에 어떤 그런 계획? 이런 것들을 하기에는 제 머리가 그렇게 좋진 않아서. (웃음) 상대방하고 주고받는 것들에 많이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장면이 제일 재미있었던 점은 옥상 장면이었었고. 또 옥상 장면에서 되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건 뭐 예를 들어 정의당 대사라든지, 그런 것들을 주고받을 때마다 조금 다르게 왔다 갔다 하는 부분들이 그 씬에서는 조금 있었었고, 나머지는 아무래도 조금 더 약간 멜로의 성향이 짙은 장면들이었기 때문에 주고받는 감정들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김덕중: 파트 투의 경우에는 그 필재, 필재에 조금 더 집중을 하고 싶긴 했어요. 필재가...... 뭐랄까, 어떤 이게 장편의 뉘앙스가 되려면 조금 관통하고 있는 뭔가가 있어야 된다라고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사랑의 이야기를 거기서는 좀 시작을 했던 것도 있고, 이제 인물이 왔다갔다 하는 거는 이제 종환 선배가 많이 왔다갔다 하게 되는데 그거는 약간은 기술적인 그런 것 때문에 제가 더 신경을 썼던 것 같아요. 좀, 이게 되게 고정 샷으로 있는데 6씬은 카메라가 살짝 움직이긴 하지만, 프레임을 긴장시키려면 좀... 왔다갔다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느낌으로 시작을 했는데, 그중에서 승진 역할이 왔다갔다 하기에 더 적합했어요, 약간 저한테는 이 사람이 약간 알 듯 모를 듯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필재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그걸 갖고 떠나고, 은영에게도 뭔가 호감은 서로 있는데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은, 약간 이런 느낌? 그래서 그 승진의 박종환 배우님이 더 왔다 갔다 하게끔 했었던 것 같습니다.

 

유운성: 그래서 그게 결국은 또 극장 장면에서도 조은지 씨가 앉아서 영화를 계속 보고 있는데, 뒤에 앉았다가 옆으로 갔다가 또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왔다가 하는 그 동작이랑도 연결이 돼서, 두 번째 파트의 박종환 배우의 어떤 움직임, 화면 안팎으로 왔다 갔다 하는 그게 되게 재미있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계속 이렇게 화면 내부에 머물러 있으면서 뭔가 상대방하고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전화를 통해서지만 주차장 장면에서처럼 거의 혼자 이야기를 해야 되는, 이런 상황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조금 재미있었는데 이제 한편으로는 지금도 이야기하신, 영화에서 되게 재미있는 장면 중에 하나인데, 그 옥상 고기 파티 장면 같은 경우 대화 내용도 재미있지만 오늘 다시 보면서도 ‘그런데 대체 저 옥상은 어디일까’, 일단 굉장히 재미있게 찍혔는데 이제 사실은 저는 최근에 영화를 보다가 저런 식의 시각적 이미지를 잘 못 봤어요. 옥상인데, 뒤에 바로 벽면처럼 둘러쳐져 있는 아파트가 이렇게 쭉 가까이 다가와 있는데 사실은 이거 얼굴이 안 보여서 그렇지 아무튼 내부에 있는 사람들 움직임까지 다 보일 정도인데,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아파트 벽면 방향이랑 옥상 방향이랑 묘하게 좀 틀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어서 이 옥상이 있는 건물은 대체 어떤 건물이며, 그리고 실제로 그 건물하고 아파트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아니면 이제 어떤 렌즈 선택이나 이런 것 때문에 조금 더 가깝게 보이거나 이런 것들이 있는 건지. 그걸 사실은 몇 번 보면서 생각해 보려고 했는데 완전하게 파악은 잘 안 되더라고요.

 

김덕중: 아까 조금 말씀드리긴 했지만 지금은 살고 있지 않은 도봉구의 제 집이었는데, 제가 옥상에 올라갈 때마다 너무 이렇게 둘러쳐져 있는 느낌이어 가지고 이상해서 원래 계획은 조금 더 넓은 렌즈를 쓰려고 했어요. 그걸로 미리 준비를 했었는데, 그런데 그렇게 렌즈를 현장에서 바꾼 적이 거의 없어서 그냥 계획했던 대로 프레임을 딱 정해 가지고 갔거든요? 그런데 옥상은 넓은 걸 쓰니까 너무 이게 유튜브 먹방 같다고 해야 되나? (웃음) 고기는 이렇게 막 보이고, 제가 생각했던 그 느낌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좁은 렌즈로 바꾸긴 했는데, 그래도 조금 넓긴 했죠. 그래서 아파트가 완전히 이들을 둘러싸는 느낌으로 가 보자, 했고 거리는 화면에서는 조금 가깝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조금 거리는 돼요. 그래서 저랑 극장 저기 끝보다도 더 먼, 한 두 배 정도는 되는? 그래서 여기서 뭔가 막 소리를 막 낸다고 해서 들리지는 않을 거리인 것 같긴 한데, 노래를 부르면 또 다르겠지만? 그런데 화면으로 보기에는 되게 가까워 보이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저는 잘 바꿨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컨버세이션〉 스틸컷

 

 

유운성: 카메라는 같은 옥상에서 찍은 건가요?

 

김덕중: 네, 네. 같이. 거의 바로 앞에서 찍었어요. 보통은 저희가 프레임 사이즈를 완전히 다 정하고 오거든요. 왜냐하면 그 바깥 공간을 다 세팅을 하려면 미술팀 뭐 이런 게 있어야 되니까. 그렇게 안 하려면 프레임을 딱 정해 놓고 이 안에 것만 딱 세팅하자, 했는데, 그 장면만 딱 그날 보고서 ‘어, 너무 아닌데.’ 해 가지고 바꿨던 장면이었습니다.

 

유운성: 가끔 이렇게 인물들, 배경으로 있는 것들이 되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있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옥상 장면도 그랬고.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되게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인데, 이제 박종환 배우가 기차 안에서 혼자 편지 같은 걸 쓸 때, 그 뒤에 이제 지나가는 기차나 불빛 이런 것들이 되게 내용하고 절묘하게 맞아 가지고, 보고 있으면 이거를... 철도공사에 협조를 얻었을 리 없고 이 정도면 굉장히 운이 좋은 거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그 장면 같은 경우도 혹시 한 번에 다 찍으셨던 건가요? 아니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셨던 건가요?

 

김덕중: 그거는 저희가 지방 촬영이 하나 있었어요. 지중해 마을이라고 버스킹을 듣는 장면이 민규 배우님이랑 종환 배우님이랑 나오는데, 어차피 그거 하러 갈 때 내려가야 되니까 내려갈 때도 한번 쭉 찍고, 올라올 때도 한번 쭉 찍자 이렇게 갔었거든요? 내려갈 때는 밝아요, 낮이라서. 그때 연기적으로 이상한 게 없었기 때문에 오케이로 쓸 법도 한데? 하는 게 이미 나왔는데, 올라갈 때 이제 낮에 촬영을 또 많이 했고 해서 되게 지친 상황일 수밖에 없거든요. 종환 선배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그 상황에서 불빛이 어두운 데를 이렇게 쓱쓱쓱 지나가더라고요? 아, 그래서 여기 이거다라고 생각을 했긴 했는데 이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계속 찍었어요, 서울 갈 때까지. 그래서 그쪽에서 선택을 했죠. 되게 운이 좋았다라고밖에 할 수 없는, 네. (웃음)

 

유운성: 네, 그리고 단독으로 등장하시는 장면이 주차장 장면인데, 그 장면에 대해서는 꼭 한번 여쭤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직접 연기를 하셨던 곽민규 배우님은 그 장면에서 촬영할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그리고 스크린으로 볼 때 그 장면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이거를 여쭤보려고 한 거는, 감독님도 그렇고 이제 영화를 보여 주고 나서 이야기를 나눴을 때 사람들이 의견이 굉장히 많이 엇갈리는 장면 중 하나가 그 장면이었던 걸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

 

곽민규: 제가 영화를 봤을 때 그 장면의 느낌은 너무 길지 않나? (웃음) 하는 생각을 저는 솔직히 했거든요. 그래서 나도 이렇게 느꼈는데 다른 관객들은 얼마나 길게 느꼈을까, 아니면 혹은 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라고 생각을 했었죠. (웃음) 솔직하게 말씀을 드리는데. 그런데 그 장면은 솔직히 조금...... 아쉬워요.

 

유운성: 저도 길다고 생각해요. (웃음)

 

곽민규: 예, 예, 예. (웃음) 그런데 그게 좀 비하인드가 있는데요. 그 감독님께서 아까 말씀하셨던, 서울에서 봤을 때 주차를 하고 쇠사슬이 있는 게 놀라웠다고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 소품을 우리가 이용해서 필재 마음을 표현하는 동선 같은 것들을 감독님께서 짜 주셨는데 그게 생각보다 좀 쉽지는 않았었던 걸로 제가 기억이 나요. 그리고 이게 약간 좀 여러 가지 테크닉이 좀 필요하기도 했었거든요. 주차를 딱 어느 지점에서 딱 해야지 앵글에서도 딱 적절한 그 위치에 서게 될 거고... 이런 부분들이 조금 어렵기는 했었어요. 많이 어려워해서 그때도 또 약간 투정을 좀 부렸던, 투정을 가장 심하게 부렸던 날이 아니었나. (웃음) 저는 실은 컨버세이션 찍고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서 ‘아, 초심을 찾아야겠다.’ 이 생각을 조금 많이 하긴 했는데, 그래서 유난히 그 장면이 또 비가 오는 바람에 약간 그 더, 찾지 못했었거든요. 그러니까 찾는다는 표현이 더 좋은 테이크를 찾지 못했었던, 그 아쉬움이 조금 있어 가지고.... 그런데 또 아니나 다를까 ‘너무 긴데....’ 라는 생각이 드는데, 물론 이건 제가 연출자가 아니라서 감독님이 좋아하는 이유는 또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어... 조금 더 찾았으면은 더 안 긴 장면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약간 이런 생각들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운성: 보통 이 영화 본 분들마다 꼭 한 번은 물어보는 게 바로 그 장면인데, 또 한편으로는 배우님하고 저하고 다르게 그 장면을 굉장히 좋아하는 분들도 몇 분 만났어요. 예, 그러니까 뭐 이제 서사적으로, 기능적으로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아, 저거 구체적으로 저 앞뒤의 정황이 뭔지 설명되고 있지 않은데, 이상하게 나 저 사람에게 뭔가 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이야기도 들었었고, 그리고 이제 그 배우님의 의견을 또 들어 봤고, 그 장면 동안 긴장하셔서 물도 한 모금 드셨는데, 감독님의 변명을 또 들어 보고 싶습니다. (웃음)

 

김덕중: 네, 변명은...... 원래는 좀 더 다이내믹한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원래 쇠사슬이 없는 어떤 공터를 섭외했었는데, 그거를 숨고... 용접하시는 분 불러서 기둥을 박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너무 약해서 첫 테이크 하자마자 말뚝이 그냥 부러졌어요. 그래 가지고 쇠사슬 위에 올라서지 못하는 상황이 됐었거든요. 원래는 제가 약간 반 농담으로 민규 배우님한테 ‘왕의 남자처럼 해 주세요.’ (웃음) ‘왕의 남자처럼 막 줄타기를 해 주세요.’ 막 실언처럼 하고 그랬는데, 그게 이제 첫 테이크 하고 안 되게 되니까, 살짝 올라선다 정도가 될 수밖에 없어서 좀 의도했던 바보다 덜하게 됐고, 그리고 그때도 촬영하면서 왕의 남자는 좀 오버였고, ‘그렇게 줄타기를 하는 게 좀 더 이상하겠네’, 그냥 이 생각은 했었어요. 그냥 저는 괜찮았어요. 민규 배우님이 좀 투정도 하셨다고 하셔서 저는 기억이 안 나고, 그냥 어, 지금 느낌도 괜찮다. 그냥 사랑을 잃은 자의 쓸쓸함 같은 게 잘 담겨 있는 것 같다. 우리 영화 하도 말도 많이 하는데 좀 쉬어 가시라는 의미로 인터미션처럼 기능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실지가 궁금했던 장면 중 하나인데, 호불호가 갈려서...... 네. 네.......

 

 

 

 

유운성: 여기 와 계신 분들 중에도 이 장면에 대해서 의견을 주시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마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이 장면과 관련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이 장면이 좀 길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제 감독님이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인터뷰 같은 데에서는 또 다른 식으로 이야기를 하셨던 것 같지만 이 영화가 러닝 타임이 120분이잖아요. 그것도 그냥 120분이 아니라 정확히 120분. 뭐, 120분 0초. 그러니까 강박적으로 맞춰 버린 건데, 말하자면 12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전제로써 딱 주어져 있고 이제 그 말은 그렇게 맞추려고 하면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어? 이렇게 해 보니까 더 좋네, 이게 길어져서?’ 라는 것도 있지만, 어떤 건 좀 인위적으로 약간 줄여야 되는 상황도 생기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그 러닝타임을 맞추는 기획을 했던 이유를 못 들었던 것 같아요. 대체 그건 뭘지, 그리고 왜 그걸 고집해야 되는지. 그것 때문에 생겼던, 러닝 타임을 맞추려다 보니까 생겼던 뜻밖의 수확이나 혹은 어려움. 이 두 개를 또 다같이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덕중: 처음 계획이 120분이 아니었어요. 그냥 처음 제가 준비가 너무 안 된 상태에서 첫 촬영을 했었거든요, 그 유모차 장면을? 그때도 배우님들이 “어느 정도 하면 돼요?” 그래서 “어, 한 십 분씩 하면 저희 영화 100분이지 않을까요?” 막 이렇게 대답을 했었거든요. 왜냐하면 저도 기억을 못 했던 거예요. ‘우리 영화 10씬 아니었나?’ 그래 가지고 100분인 줄 알았더니 “어, 아닌데? 15씬인데?” 그래 가지고 “어, 그래요? 그러면 7분?” 막 이렇게 그냥 첫 촬영 때 제가 진짜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무조건 가을에 찍고 싶어 가지고, 그것만 유독 좀 급하게 찍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100분 정도면 적합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나중에 이게 편집 단계에서 선택할 수 있는 요인이 별로 없다 보니까 줄이고 줄여도 잘 안 줄여지는 부분만 남겨 놓으니까 120분 정도가 되더라고요. 그래 가지고 120분 0초로 했던 거는 크레딧에서 맞출 수가 있으니까 이제 믹싱하고, 영화제 제출하고 할 때 러닝 타임 쓰게 되어 있는데 그냥 딱 맞추는 게 편하더라고요. 믹싱 그것도 음향이랑 시퀀스 딱 맞출 때도 도움이 되고, 프레임까지 딱 맞추면 편하고 그래서 120분 0분 0초 0프레임으로.... 길이 때문에 씬을 조절하지는 않았고, 씬은 최대한 간소하게 가서 어떻게든 줄이려고 했고, 크레딧 부분으로 그렇게 가 가지고 러닝 타임을 좀 맞추려고 했습니다.

 

유운성: 그러니까 16개 쇼트니까 한 7-8분 정도씩이라고 하면 120분 정도 분량이 되는 거죠. 제가 이제 주로 두 번째 파트에 집중해서 두 분께 여쭤봤는데, 저희 이야기 들으시는 동안 이 영화 관련해서 또 궁금하셨던 게 있으셨을 것 같아요. 물론 이제 제가 여쭤봤던 것처럼 두 번째 파트와 관련된 것도 좋고, 그 이외에 이 영화의 좀 다른 부분이나 전체적으로 좀 두 분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으면 여기(오픈채팅방)에 들어가서 질문을 남겨 주시면 제가 확인하고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김덕중: 여기, 그, 저희 관객 중에 배우님 송은지 선배가 오셨다고 해 가지고 소개를 한번....

 

유운성: 아, 슬쩍 답변을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송은지 배우님 와 계시는데, 이 영화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영화에서 가장 느리고 깊게 박힌 대사를 남긴 분이시죠. 내가 말을 많이 못 하면 빡친다는.... (웃음) 굉장히 청량감을 주는 신기한 대사였는데, 또 그 대사 들었을 때의 느낌에 대해서는 예전 감독님께도 영화 보고 나서 말씀드린 적 있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그 대사가 주는 감각이 되게 좋았다. 자, 그러면 질문이 좀 올라와 있는데요. 올라와 있는 순서대로 한번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엔딩 음악이 버스킹 장면에서 승진이 귀가 안 들린다, 이런 대사를 구현하는 거냐... 짧은 질문이지만 이렇게 들어왔습니다.

 

김덕중: 버스킹 장면에서 내가 귀가 예민해, 기차 소리가 들려 약간 이거는 대화의 뭔가 내용에 집중했다기보다는 약간 아무 말을 하는 모습이에요. 나한테 집중해, 나 버스킹 재미없잖아. 승진이 필재한테 나한테 집중해 봐, 약간 이런 걸로써 말을 채워 넣는 느낌이어서, 딱히 다른 장면과 연결을 지으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유운성: 일단 연이은 두 씬에 “내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해?”라고 하는 대사가 들어왔다고 하시는데, 그런 대사를 반복하신 게 어떤 의도가 있으신가, 하는 질문을 또 쓰셨습니다.

 

김덕중: 약간 제가 파트별로 테마를 두었었는데, 마지막 파트가 진실과 거짓말이라는 그런 테마가 있었어요. 그래서 ‘얘가 말하는 게 진짜일까? 가짜일까?’ 약간 이것에 대해서 강조를 많이 하고자 했었습니다.

 

유운성: 네, 일단 한 분이 의견과 더불어서 질문을 주셨는데, 정말 오랜만에 재미있게 구성된 이야기들을 한국 영화에서 본 것 같다는 의견과 함께 이런 대사들을 어디서 구상하셨는지, 아이디어를 어디서 얻으셨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는데요. 한국 영화에서 남성들이 욕을 빼고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 장면들을 너무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한국 영화에서 남자들이 주로 모이면 쌍욕을 날리니까. 이제 아니면 칼침을 날리거나. (웃음) 그런데 이제 이 영화를 욕을 빼고 친목을 도모하는 장면을 너무 오랜만에 보게 되었다. 남성들의 대화는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구성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라고 하셨는데. 그리고 덧붙이자면, 또 한편으로는 영화 시작부터 바로 우리가 듣게 된 이 여성들의 대화 같은 경우도 뭐, 그런 상황. 이 대화의 내용 이런 것들을 어디서 얻으셨는지도 덧붙여서 함께 질문을 드려 보고 싶네요.

 

김덕중: 대화 영화에 대한 콘셉트는 사실 선생님의 영향이 조금 큰데, 영화를 배웠던 선생님이어서 대화 영화에 대한 강조를 많이 해 주셨고,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영화에서 대화 장면이 어떤 식으로 많이 나오는가. 그 긴장된 상황, 서사 외의 기능적인 상황, 대화 그 자체로써 우리가 즐길 수 있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에 관한 영화가 근래에 많이 없어졌다, 그런 문제 의식을 제가 배운 적이 있었고, 그래서 저도 한번 ‘그래? 그러면 한번 해 볼까?’ 왜냐하면 돈이 별로 들지 않을 것 같았고, 제가 자체 제작을 했을 때, 프로덕션을 꾸렸을 때 찍어 나갈 수 있는 부분일 것 같다, 는 생각을 해서 구상을 시작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남성들의 대화를 쓸 때 가장 주의하고자 했던 부분이 이게 너무 비교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성들의 대화가 있고 남성들의 대화가 있으면, 제가 여성들의 대화에서 일정 부분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되는 어떤 것들을 이미 써 먹어 버렸거든요. 그러니까 남성들의 대화에 대화 그 자체에서 뭔가 써먹을 게 없어져 버린 거예요. 그런데 그냥 시간 때우기만 해 버리면 너무 우열이 있다. 약간 젠더 문제로써 이것을 프레임화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서사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사랑. 멜로 서사를 약간 진하지 않게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 서사들을 해서 좀 비껴가야겠다. 대화 그 자체의 무드로 승부를 본다면, 여성들의 대화가 조금 더 우위에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고, 그리고 여성들의 대화는 씬을 전체 순서대로 쓴 건 아니었지만 대화 그 자체의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처음 쓴 부분이긴 해요. 그냥 제 안에 있는 이야기를 많이 쓰려고 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어떤 게 사실 조금 궁금했었냐면, 우리가 약간 굶어 죽지 않는 단계? 굶어 죽지 않는 그 시점이 되었을 때 어떤 고민이 시작될까, 약간 그게 너무 궁금한 거예요, 저는. 저는 항상 생존에 대한 위협에 시달리잖아요? 그런데 그거 말고. 그거가 일단은 어느 정도 충족됐다고 봐. 그러니까 이제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기 그 중간 지점에. 그랬을 때 어떤 고민이 시작될까? 그게 저로써는 제가 아직 달성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그런지 그게 너무 궁금해 가지고, 거기에 이입을 해서 좀 고민을 펼쳐 보려고 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 〈컨버세이션〉 스틸컷

 

 

유운성: 이건 이제 곽민규 배우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그러니까 질문 주신 분께서 아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다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대사뿐만 아니라 그 대사를 전달하는 배우님들의 몸짓 자체도 되게 생생해서, 영화를 볼 때마다 왠지 배우분들의 애드리브도 함게 섞여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백 퍼센트 대본에 의존한 건지, 아니면 애드리브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물론 이 애드리브가 꼭 적혀 있는 대사만이 아니라 여기다가 이제 대사를 할 때 취해야 하는 동작이나 몸짓 같은 것도 같이 결부시켜서 생각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곽민규: 제가 지금 이 이야기를 들을 때 이렇게 턱을 이렇게 만지잖아요. 그런데 이제 제가 생각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거 할 때도 그냥 자연스럽게 했던 부분들을 그렇게 재미있게 봐 주셨던 것 같아요. 그걸 되게 캐릭터적으로 봐 주시고, 생각보다 약간 되게 나이브하게 느껴져서 애드리브성이 짙은 대사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제가 타 영화 작업했던 거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애드리브가 있었던... 애드리브를 생각해 낼 여유가 없어요, 대사가 너무 많아 가지고. (웃음) 뭐, 중간중간에 반응이나 뭔가 계획되지 않은 것들이 툭툭 나오는 그런 것들은 뭐, 그건 저는 애드리브라고 생각을 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몸동작 같은 것들은 저를 만나면 항상 이 어정어정한 이 자세를 말해 주시면서 장난 반 농담 반으로 놀리기도 하거든요. 그거 어떻게 한 거야, 하면서. 약간 좀 저는 그 상황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 첫 만남.

 

유운성: 만약에 대사나 상황이 아니라 몸짓이라고 하는 것만 놓고 보면 되게 재미있는 것들이 이 영화에 많은데, 가령 그 고기 파티 하는 장면에서 정의당 관련해서 이제 이야기를 나눌 때 “어, 정의당. 정의당 진짜 처음 봐!” 하면서 할 때 그때 취하는 그 몸짓. 이렇게 말로 묘사하기는 좀 이상하지만, 그 동작이 되게 묘하게 좋고, 이제 또 이 자리에 계시니까 또 말씀을 드리면, 송은지 배우님 몸짓 중에도 제가 영화 볼 때, 사실 이게 집에서 볼 때에는 거의 안 보여요. 그런데 극장에서 볼 때 딱 보이는 게 뭐냐면, 첫 번째 장면 같은 경우가 쇼트가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게 이제 두 번째 쇼트로 바뀌기 직전에 이제 뭔가 “나는!” 이라고 하는데 그걸 조은지 배우가 말을 끊고 들어오면서 자기 이야기가 시작이 되는 부분인데.... 그런데 그때 표정이, 그 표정을 감지하고 나서 뒤에 “내가 말을 잘 못 하고 있으면 빡쳐.”라는 말을 나중에 듣고 있을 때, 이야, 이거 굉장히 그 뭐랄까요. 기분이 묘해요. 그런데 그때의 그 표정이 눈가에 다 비치는. ‘아, 이거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하는 이 멈칫하는 이게 오늘도 제가 극장에 앞에 앉아서 보고 있는데 굉장히 눈에 잘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이 꽤 재미있고. 이 질문 주신 분도 있지만 제가 덧붙여서 여쭤봤던 건 대사를 할 때에 이 몸짓 같은 것들이 정말 이 정도라면, 어느 정도 이렇게 조율이 돼서 나온 걸까, 이런 궁금증을 이 영화는 볼 때마다 계속 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아요. 그러면 또 다른 질문이 있는데, 이거는 이제 아까 조금 이야기가 나왔지만, 조금 더 자세하게 여쭤보고 싶은데요.. 제가 아까 브런치 이야기를 드려서, 바로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읽어 보셨다고 해요. 그래서 이제 2020년 여름에 촬영을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시기적으로 보면 그때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일 때여서 촬영에 여러 애로사항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고민을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김덕중: 조금 어려운 부분은 아무래도 야외 촬영 부분이었어요. 첫 촬영할 때부터 저는 그냥 심플하게 생각했던 거죠, 하루에 하나 오케이만 나면 끝이구나, 우리가. 여유 있게, 재미있게 하면 되겠네, 했는데? 거의 하루 종일 막 열여덟 테이크 가고 그렇게 된 게 행인 통제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많이 없는데 행인이 다 마스크를 너무 다 쓰고 계시니까 그거를 담아내기에는 조금 그랬어요. 이제는 코로나를 담아서 영화를 찍는 영화도 많지만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잘 안 났어요, 사실은. 코로나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건 괜찮아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얼굴을 보여 주기 위해서 마스크를 이렇게 벗는단 말이에요, 출연 배우님들이? 저는 그게 너무 어색하게 느껴져서. 그래서 이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코로나 없는 가상의 세계의 영화가 되기는 했는데 듣다 보니 야외 촬영 경우에는 상당히 많은 NG를 낸 경우이기는 했습니다.

 

유운성: 그거를 뭐 NG가 나왔을 때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쓰셨던 방법이 있든지 그런 걸 좀 궁금해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그냥 여러 번 촬영하셨던 걸로 돌파를 한 건지. (웃음)

 

김덕중: 첫 촬영은 되게 대비가 안 되어 있어 가지고 진짜 어떻게든 운에 맡겨 주세요, 이렇게 했던 것 같아요.

 

유운성: 그게 원형 산책로.

 

김덕중: 네.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외진 곳을 했어요. 주차장 장면 그런 데도 길이 막 막혀 있는 그런 데를 해 가지고 어떻게든 우리 통제 인력이 없으니까 이런 데를 해야 되겠다, 그렇게 갔습니다.

 

유운성: 그러면 민규 배우님께 여쭤보고 싶다고 질문을 주셨습니다. 영화 자체가 일종의 로맨스가 암시되긴 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게 묘사가 되고 있는 건 아닌데 상대 배우분하고의 로맨스, 그리고 '컨버세이션'이라는 영화의 주제와 관통하는 어떤 소통을 위해서 배우로서 신경을 쓰셔야 했던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궁금하다고 하셨습니다.

 

곽민규: 여느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배우들끼리의 케미거든요. 케미가 돌아가면 장면이 너무 재미있다고 저는 생각하는 사람이기는 해요. 거기에서 이제 감독님이 원하시는 부분들이나 여러 디테일한 디렉션들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해내는 게 배우들의 임무이기도 하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저는 유난히 또 멜로라는 이런 코드를 좀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 영화가 다른 영화들과는 조금 다르게 말씀하셨다시피 되게 진한 멜로를 보여 주는 성향이 아니라, 뭔가 이야기 뒤편에 상상을 만들게끔 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일종의 트릭이나 테크닉을 써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을 했었고, 또 그런 부분에 있어서 중간중간에 제가 길을 잃고 있을 때마다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잘 주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 부분이, 주차장에서 되게 성질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걸 나중에 영화를 보고 ‘아, 내가 저걸 저렇게 했구나, 감독님 말 잘 들었다.’ 이 생각을 하긴 했었어요. 그 장면 되게 좋아하고, 저는 실은 이 영화를 몇 회차 안 찍었어요. 한 4회차? 3회차인가요? 뭐, 그 정도 촬영으로 다 끝냈었거든요. 그런데 장면마다 시간들이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승진과 처음 만난 날, 그리고 승진과 헤어지고 나서 만나러 간 날, 또 중간에 연애하던 시절의 그 장면. 그래서 이제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뚝뚝뚝뚝 떨어뜨려 놔서 촬영을 하기도 했고, 그래서 머리가 복잡하고 그러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일단 그날의 마음가짐, 그날의 필재의 태도. 약간 이런 것들 위주로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고. 멜로 영화를 잘 표현하고 싶었던 거, 그걸 제일 많이 신경 썼던 것 같아요.

 

유운성: 그리고 이제 그 두 번째 파트의 정전 상황이, 이제 아마 불 깜빡이는 게 굉장히 사실적으로 느껴져서 그러신 게 아닌가 싶은데, 정전 상황의 장면에 대해서 더 덧붙이고 싶으신 게 있으신지 여쭤보셨습니다.

 

김덕중: 뭔가 정전 상황에서의 콘셉트는, 뭔가 짜릿 하고 누구 한 사람이 가야 이 관계가 시작되잖아요. 그래서 민규 배우님한테 약간 배관공 콘셉트예요. (웃음) 하는 실언을 또 하긴 했었어요. 약간 야한 영화에서 배관공이 뭔가를 고쳐 주러 갔다가 육체미에 반하는. (웃음)

 

유운성: 맞아요, 맞아요. (웃음)

 

김덕중: 아무튼 그런 콘셉트예요. 그러니까 승진이 그래서 반한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했었고, 모티프는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그게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습니다.

 

곽민규: 저는 그런 배관공이 나오는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웃음) 처음에 잘 못 알아들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아... 그런 의미였구나....’

 

유운성: 저도 여러 차례 이 영화를 본 적이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뭐, 꼭 야한 영화에서만 그런 장면이 있는 것은 아니고 팀 버튼 감독의 가위손 이런 데에도 배관공을 유혹하는 그 주부 에피소드 같은 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김덕중 감독님이 보신 게 아마도 그런 류의 영화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 영화의 서사적인 구조를 또 잘 떠올려 보면 시점이 모호하고 때로는 시간적인 것 자체도 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구조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다가오기도 하는데요. 이런 식의 구조나 효과를 시나리오 쓰실 때도 이제 어느 정도 의도하고 하신 건지에 대해서 질문을 주셨습니다.

 

김덕중: 이게 전체 영화와의 형태를 제가 막 생각하고 썼던 게 아니라 그냥 되는 대로, 쓰이는 대로, 하고 싶은 게 있는 대로 쓰다 보니까 제 욕망이 앞서 가지고 그래서 시간이 엉키게 되긴 했어요. 그런데 이제 ‘공백을 더 많이 줘야 돼. 약간 더 시간을 더 엉키게끔 헷갈리게 해야 돼 이런 의도가 아니었거든요.’ 저는 이 세계에 매몰되어 있으니까 되게 쉽다라고 생각했어요. 이게 시간의 연결성이 다들 그냥 ‘이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우리가 되게 선형적인 시간을 살고 있지만,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은 정말 사소한 어떤 것들만 기억을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그냥 제가 거기에 집중하고 매몰되어서 쓰다 보니까 시간이 조금 엉켜 버렸는데, 그것도 영화 보고 나서 ‘어? 시간이 상당히 헷갈리시겠구나!’라고 좀 그때야 알았던 것 같아요.

 

유운성: 정작 쓰실 때에는 그런 정도의 혼란을 줄 수도 있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셨다는 거죠.

 

김덕중: 네, 오히려 그냥 시간 다 잘 끼워 맞추실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결과적으로 시간순이 다 있어요, 사실은. 그런데 이걸 진짜 시간순을 다 맞춰서 원래 제가 초기에 의도했던 대로 이해하신 분은 거의 보질 못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도 이 영화를 다른 맥락으로써 감상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게 저도 좀 재미있게 느껴지고 그래서. ‘아, 그건 중요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조금 들긴 들어요.

 

 

영화 〈컨버세이션〉 스틸컷

 

 

유운성: 지금 현재 질문 주셨던 것들은 다 전달을 드렸는데요, 이제 시간도 조금 돼서 두 분께 어느 정도 마무리 질문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이제 아무래도 이 영화는 촬영했을 때 당시는 정말 코로나가 한창이었는데, 그리고 이제 개봉을 약간 엔데믹 가까워져서 하게 됐는데 두 분 다 이제 이 작품 이후 현재, 올해, 혹은 이후 계획들에 대해서 한번 여쭤보고 마무리하면 어떨까 합니다.

 

곽민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조금 있고요. 그 작업들은 또 미니멀한 작업들이고 회차가 많지는 않아서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좀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어 가지고 완전히 에너지를 충전해 왔기 때문에 열심히 구직 활동을 해서 또 좋은 영화나 드라마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김덕중개봉이 마무리돼서 너무 초조해요. 〈에듀케이션〉을 개봉할 때 〈컨버세이션〉의 촬영이 시작됐었거든요. 그리고 이제 거의 이 년 반 지나서 개봉을 하니까 지금 찍어야 이 년 후에 또 새로운 게 나오는데, 지금 찍고 있는 게 당장은 없어서 조금 이제 마무리하고 진짜 '파이팅해야겠다'라고 생각은 하고 있는데, 그래도 뭔가 안 하고 있었던 건 아니고요. SF 장르 영화를 시나리오로 쓰고 있긴 한데 저 혼자 쓰는 건 아니다 보니까, 여러 다양한 것들을 받아들이다 보니까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건 그거고 나름대로 제 것을 또 해야 되지 않을까? 싶고요. 아직까지는 그렇게 명료한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개봉 마무리하고 그것까지도 고민해서 꾸준히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유운성: 마무리해 볼 텐데요. 영화 보시고 끝까지 남아서 함께해 주신 두 분께 다시 한 번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 자리에서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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