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다큐페스티발: 신나리 감독전 리뷰
*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글입니다.
미 8부두, 주피터의 군림
〈8부두〉
〈8부두〉는 부두 근처를 맴돌며 지긋하게 훑는 듯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지도상의 항공 자료에도 정확한 정보가 등록되어 있지 않은 미 8부두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은 탄저균을 비롯한 고위험 생화학 실험. 부두를 맴돌던 시선은 곧 미 8부두에서 방정아 작가의 한 작품으로 옮겨간다. 방정아 작가의 작품 중앙에 앉아 있는 남성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모은다. 얼핏 보면 부산에 살고 있는 평범한 노파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습이지만 방정아 작가는 그를 제압하며 군림하는 입장에 있는 주피터로 소개한다. 그의 존재는 부산의 시민들이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군림한 채로, 그 어떤 반대와 항의에도 계속 진행되고 있는 탄저균 실험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미국에서는 수십미터도 더 되는 지하에서 하는 실험이 미 8부두에서는 동네 한 가운데에서 진행된다. 부산 지역 시민들은 이로 인한 피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미 8부두는 우리 땅이지만 우리의 것이 아닌 셈이다. 〈8부두〉에서 감독은 미 8부두의 모습과 방정아 작가의 작품, 작가의 나레이션을 교차시키며 현재 진행형 상태에 있는 생화학 실험 문제를 더욱이 선명하게 만들고 있다.
곡소리가 흐르는 자리
〈붉은 곡〉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 역사에 대한 수많은 정의들 중 하나다. 〈붉은 곡〉은 일광면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지고, 사라지는가에 관한 물음을 담고 있다. 신나리 감독의 거처가 있는 마을이기도 한 일광면에선 붉은 물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그보다 더 붉을지도 모를 아픈 과거가 함께 흐르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조선인을 강제 징용했던 광산 앞에서 채소를 다듬어 팔고 있는 할머니는 ‘남편은 깊고 어두운 굴에 빠져 죽었다’고 말한다. 할머니가 증언하는 장면은 그곳이 강제동원지라는 장소성과 맞물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일본 강제징용의 역사를 극대화시킨다.
영화의 말미에는 관광객들이 버스에서 내려 오염수에 손을 닦고 이런저런 장난을 주고받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토록 일상적인 장면은 강제 징용의 역사를 실제로 겪었던 이들뿐만 아니라 이 장소를 방문한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다소 섬뜩하고 묵직한 경고를 내린다. 과거에 일광면에서 있었던 일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신나리 감독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 지금도 흐르고 있는 중금속 오염수, 오염물이 묻어 있는 돌들, 주황 빛깔을 띤 흙들을 등장시키는 방식으로 답하고 있다. 따라서 이 모든 기록들은 강제 징용에 대한 증언이자 붉은 경보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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