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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헤어질 '결심'

by indiespace_가람 2023. 3. 3.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 리뷰 : 헤어질 '결심'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다연 님의 글입니다.

 

 

 

다소 스스로의 이별에 확신이 없어 보이는 듯한 영화의 제목은 사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다. 이별은 어느 한 순간에 무 자르듯이 시작되지 않는다. 조금씩 견디고 쌓이던 것들이 모여서 문득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결심과 결단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그 전까지 이별은 모호한 것일 수 밖에 없다. 헤어짐을 대략적으로 예상한 그 순간부터, 어쩌면 이미 헤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따라서 헤어질 것 같다, 헤어질 수도 있다 등 말은 사실은, 결국 아직 이별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별을 한 것과 다름 없다. 영화는 이렇게 지난한 결심의 과정을 러닝 타임을 들여 천천히 이야기 한다.

 

 

영화의 시작은 이미 아영과 준호의 이별이 시작된 이후이다. 담배를 태우는 고등학생들을 염탐하다 몰래 뺏어 피우는 준호는 티셔츠에 체크 남방 차림으로 친구 모임에 나오고, 준호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는 아영은 잘 차려 입은 채로 준호와 동반한다.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지쳐 보이는 아영과,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 수 없는 채로 시간만 때우는 준호의 모습은 같은 집에 살며 삶을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볼 수도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영화 속 아영의 결심은 준호의 옷 매무새를 정돈해주는 것을 포기하면서 시작된다. 대충 걸치고 온 옷차림에 아쉬운 말을 몇 마디 얹지만, 어떻게든 단정하게 만들어주려던 손은 이내 후줄근한 티셔츠를 보고 거두어진다. 아영이 준호를 붙잡던 손을 하나 포기한 것이다.

 

포기는 그들이 정말로 헤어지기 전까지 계속해서 늘어난다. 모임이 끝나고 뜬금없이 보러 간 길거리 사주 가게에서, 아영은 무언가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역술가를 바라본다. 준호와 함께 하는 사주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말에 어딘가 감명 받은 표정으로 역술가를 바라보던 아영은, 준호의 출생 시간을 잘못 말해 천생연분으로 뒤바뀐 사주에는 다시금 포기하고 가게를 나선다. 아영이 사주에서 찾고 있던 것이 준호와 관계를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였는지 헤어질 구실이었는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곳에서 ‘매사에 대충’인 준호의 한 부분을 또 다시 포기한 것은 분명할 것이다.

 

사이 좋게 아침 일상을 공유하다가도, 라면 한 젓가락에 금세 싸우고 진절머리를 내던 이들은 결국엔 '공부를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에서 친구와 놀던 준호를 계기로 헤어짐에 이른다. 이내 다음 연애를 시작하는 그들이지만, 새로운 연애 역시, 모호한 이별을 예견하는 제목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아영의 집에서 쫓겨나 지인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준호는 한참 어린 안나를 만나게 된다. 아영과 달리 준호를 압박하지도 않고, 짐짓 자유로워 보이며 적극적인 안나와 준호는 영문도 모른 채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준호는 여전히 아영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 상태이다. 안나와 처음 나눈 대화에서도 화제는 아영이었고, 여전히 아영의 SNS와 프로필 사진을 종종 염탐하며, 번호는 지우지도 못한 상태이다. 아영에 대한 미련이 남은 이상, 준호의 새로운 연애는 헤어짐을 예견하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안나와 준호의 관계는 사실은, 시작부터 헤어졌을지도 모르는 관계인 것이다.

 

아영 역시 일을 하다 만난 경일과 이상하리만큼 완벽한 만남을 가지게 된다. 친구들도 인정할만큼 괜찮은 사람이었던 경일은, 부족함 없이 아영을 행복하게 해준다. 그러나 그가 결혼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관계가 한참 진전된 후에 알게 된다. 이혼 소송 중에 있다며 구차한 변명을 하는 경일 곁의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다. 아영의 연애 또한 따라서 만남조차 성사될 수 없었던,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연애인 것이다.

 

 

풀어내지 못한 감정들로 근근이 붙어 있던 아영과 준호의 연애는 그 모든 과정을 거친 후에야 태블릿을 핑계로 끝이 난다. 그제서야 전화 번호를 지워내는 그들은 오랜 연애만큼이나 오랜 완충 기간을 거치고 나서야 끝을 맺는다.

 

헤어짐의 시점은 과연 언제일까? 시작부터 끝이 난 연애가 있고, 끝이 나고서도 끝나지 않은 연애도 있다. 말로 특정할 수 없지만, 말하지 않아도 끝이 났음을 서로가 알고 있다. ‘어쩌면’이 사라지고 더 이상 모호해지지 않는 지점에, 연애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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