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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컨버세이션〉: 오늘날 현대인이 불안을 떨쳐내는 방법

by indiespace_한솔 2023. 2. 27.

 

 〈컨버세이션  리뷰: 오늘날 현대인이 불안을 떨쳐내는 방법

 

 

*관객기자단 [인디즈] 안민정 님의 글입니다.

 

 

 

공교롭게도, 이 글을 쓰기 전 친구를 만나고 왔다. 우리는 장장 여덟 시간 정도 대화했다. 그리고도 아쉬워서 지하철 개찰구 앞에서 각자를 배웅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에 만나서 다시 얘기해!

 

친구를 만나는 건 대부분 도시에서 대화할 곳을 찾아 떠도는 일이다. 우리는 적당히 소란스럽고 북적이는 식당, 카페, 테라스를 찾아 돌아다닌다. 너무 한곳에 오래 앉아있었거나 가게가 문을 닫으면 다른 가게를 찾아 나서기도 하면서 말이다.

서울 도심의 온갖 카페를 돌아다니다 보면 새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다는 한국의 카페 수를 체감한다. 그리고 들어가는 카페마다 북적이는 인파를 보고 깨닫는다. 이 대화 공간의 수는 곧 불안의 숫자구나. 대화는 오늘날 현대인이 불안을 떨쳐내는 가장 일상적인 방법이 되었다. 해소하지는 못해도 떨쳐낼 수는 있다. 오늘도 나는 친구와 서로의 불안을 잠재워주고 돌아왔다.

 

 

영화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컨버세이션>의 초반에는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굳이 이 장소를 골랐을까. 도심 한가운데의 아파트와 외부를 막아주는 창 하나 없는 이 공간에는 온갖 소음이 멋대로 침투할 텐데. 대화를 찍는 영화에서 대화를 방해할 텐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장면에서는 인물이 말하는 도중에 자동차 경적과 오토바이 배기음이 끼어들고, 울렁이는 바람 소리 그리고 불특정한 인파의 소음이 난무했다. 우리는 바로 여기서 알 수 있다. 이 영화는 대화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불안에 관한 영화라는 것을.

 

그렇기에 영화의 제목은 <컨버세이션>이지만, 생각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대화들은 붕 떠 있다. 인물들은 대화, 그러니까 말을 섞는 행위보다는 내가 말을 많이 하느냐 마느냐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꼭 말을 하고 있어야 살아있는 것 같다는 듯이, 인물들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이 없으면 전화를 걸고 상담을 받으러 간다. 말을 멈출 땐 심지어 편지를 쓴다. 그렇게 해서라도 끊임없이 내뱉는다. 대화는 순간을 감각하게 하는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을 살아내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영화가 혼란스러워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대화가 난무하는 이 영화를 보고 혼란해지는 것은 우리 가련한 관객들뿐이다. 영화가 강제로 우리를 도청의 위치로 놓기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우리는 초면의 인물들을 만난다. 정확히 말하면 만나는 게 아니라 목격한다. 그리고 천천히 그들에 대해 알게 되기 시작한다. 가령 세 여자는 과거에 함께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던가, 그중 누군가는 아이가 있고, 누구는 다시 한국을 떠날 예정이라던가 하는 것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인물의 조금 더 내밀한 면까지 알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영화는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관객은 끝까지 부유하는 대화를 도청할 뿐이고, 우리는 이제 우리가 도청한 대화로 그들을 재구성해야 한다. 도청은 필연적으로 고독하고 바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의 불안을 목도한다. 보았기에 인정할 수 있다. 영화는 바로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 일상을 모아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는 고요한 순간이 단 하나도 없다. 나는 이 치열한 수다가 거대한 위로처럼 느껴진다.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할 때, 관객에게 내밀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위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삶은 극적이지 않다. 지루하고 논리적이지 않은 이 영화의 대화에 가깝다. 영화가 그대로 담아낸 일상 속에서 어떤 순간의 나를 발견한다. 불안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불안해도 상관없다. 잠깐 떨쳐내고 다시 살아가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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