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소희 > 리뷰: 어떤 삶의 가능성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진하 님의 글입니다.
교실보다 작은 연습실에서 소희가 춤을 추고 있다. 몇 번이고 같은 부분에서 넘어지고, 몇 번이고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춘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가도 끈질기게 일어난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 앞에서 좌절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관객은 소희가 듣고 있는 음악을 알지 못한다.
소희는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해서 대기업의 콜센터에 실습을 나가게 됐고 어려운 가정의 멋있는 딸이 됐다. 그 열심의 끝에서, 소희는 끝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 이렇게 누군가의 인생을 몇 줄의 문장으로 정의해버릴 때면 잊고 만다. 그 사람이 지나온 인생의 사소하고 당연한 풍경들. 노래방에 가서 어떤 노래를 부르고, 부당한 일에 어떻게 반응하고, 무슨 춤을 출 때 즐거워했는지. 우리가 누군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는 이런 것들도 포함된다. 그가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는지뿐 아니라, 얼마나 당당히 삶에 맞서왔는지. 그 죽음으로 인해 어떠한 삶의 가능성들까지 강제로 종결된 건지.
영화는 소희의 죽음을 수사하는 형사 유진의 눈을 통해 소희를 죽음으로 내몬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본다. 다만 한 걸음 뒤에 서 있는 유진이 볼 수 있는 것은 소희의 뒷모습뿐이다. 죽음을 '직접 선택'하기에 이르기까지 소희를 외면했던 수많은 어른. 그들 중 아무도 소희를 직접 떠민 사람은 없다. 영화 속 누군가의 말마따나, 말하지 않고도 서로를 압박하는 세상에서 '재수 없게' 밀려나 죽은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진정한 비극은 거기에 있다. 영화는 현실을 뻔할 정도로 닮았다. 구조에 의한 죽음이라는 말, 막을 수 있었다는 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말이 재수 없을 만큼 흔하다.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눈을 똑바로 마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가 봐야 하는 영화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난 이들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도망칠 수 없고,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를 수도, 화면에서 사라져가는 소희에게 손을 뻗을 수도 없다. 몰아치는 영화를 감당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영화 속 어른들처럼 눈을 피하거나 기껏해야 '네 이야기를 들어 주겠다'는 말에 공감하는 것뿐이다. 이 무력한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까.
관객은 끝까지 소희가 듣던 음악을 알 수 없다. 다만 상상해본다. 어쩌면 소희는 그 노래로 연습실 식구들과 무대에 섰을 수도 있다. 어쩌면 월급을 모아 가족들과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고, 친구 준희에게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다며 기분을 내봤을 수도 있다. 소희는 뭘 하고 싶었을까? 이 가능성을 잊지 않는 것이 희망의 시작이다. 스크린만큼이나 가까운 곳에 다음 소희가 있다. 나는 무력하지만, 영화는 무력하지 않다. 그것을 체감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영화관에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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