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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 우리의 나란한 성장

by indiespace_한솔 2023. 2. 6.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  리뷰: 우리의 나란한 성장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글입니다.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은 수찬 앞에는 인터뷰어 윤서가 앉아 있다. 시청 정기간행물에 수록될 인터뷰 작업을 하고 있는 윤서는 배달원 수찬에게 꿈이 무엇이냐 물었고, 수찬은 골똘히 고민하다 말한다. 정말 없어요. 가벼운 질문에도 고민이 길지만 이내 꿈이 정말 없다는 대답을 내놓는 것은 생계 유지를 위해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는 수찬의 상황을 말해 준다.

 

수찬은 시설에서 자라온 보호 종료 아동이다. 스스로 힘으로 똑바로 서야 한다는 자립의 정의 앞에서 킥보드를 타고 있는 수찬은 이리저리 휘청인다. 현관을 열고 음식 상태를 확인하는 고객 앞에서는 국물이 터지진 않았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고, 보호 종료 아동에게 지급한다는 자립 수당 신청 과정은 번거롭고, 공과금 납부는 어디에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탈수가 되지 않은 세탁물을 널다가 팬 위에 올려 놓은 귀한 고기를 홀랑 태워 버렸다. 그러니까 꿈 같은 것은 여유 있는 사람들이나 꾸는 것이라고, 수찬은 이유 있는 퉁명스러움으로 인터뷰에 임한다.

 

 

한편 배달원 일에서 보람을 느낀 적 있는지, 꿈이 있는지 묻는 윤서는 사실 인터뷰이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다. 칼로 튀어나온 부분을 도려내듯 상대를 대하는 것은 윤서의 무기와도 같은 것이어서 늘 상대에 대한 몰이해 상태를 유지한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고마워할 일을 만들지 않으며, 본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이들에게도 영 시큰둥한 윤서. 그러나 윤서와 수찬은 인터뷰를 통해 만나기 전, 고객과 배달원으로 만난 적 있는 사이다. 윤서는 배달 예정 시간보다 늦은 음식이 식어 있는 것으로 수찬에게 타박을 줬고, 그날 본인이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 민망하고 미안하다.

 

 

인터뷰 도중, 수찬은 배달하는 동안 타고 다니는 킥보드를 도둑 맞아 인터뷰를 파토낸다. 그런 일에는 화를 내고 그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 것이 윤서에겐 합당한 대처지만 윤서는 수찬의 킥보드 찾는 일을 돕기로 한다. 자신의 무기를 잠시 놓고 남이 처해 있는 상황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 셈이다. 윤서는 왜 수찬을 도왔을까? 그것이 수찬을 향한 죄책감 혹은 인터뷰를 하루빨리 마치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최초의 경험은 많은 것을 바꿔 놓는 법이다. 이 일을 계기로 상황을 고려하는 방법을 배운 듯 보이는 윤서는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궁금해하지 않았던 동료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든지, 오가는 길에 놓인 꽃들이 추위에 얼어 버리기 전에 아파트 로비에 넣어둔다든지.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라는 제목이 지목하는 인물은 수찬이지만 나이와 무관하게, 윤서와 수찬은 함께 자란다. 가벼운 호의조차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윤서는 네게 필요할 것 같다며 핸드크림을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었고,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는 일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영화가 보여 주는 성장은 뜨겁거나 극적이진 않다. 그렇지만 쉽게 식지 않는 온기 속에서, 둘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하고 있다. 윤서가 일하고 있는 직장, 동네 페인트공 아저씨, 수찬을 돕는 형. 윤서와 수찬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그들과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영화의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세상에서 수찬은 성공적으로 자립할 수 있을까? 자립의 성패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성공했다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상에 믿을 구석 하나 생겼다는 사실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고, 늘 하던 것처럼 다가올 날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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