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발자취들을 폐기하지 않기 위해서
〈애프터 미투〉 인디토크 기록
일시 10월 6일(목)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박소현, 이솜이, 방유가람, 소람 감독
진행 신승은 감독, 손수현 배우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글입니다.
손수현 배우(이하 손수현): 안녕하세요, 저는 진행을 맡게 된 배우 손수현이고요.
신승은 감독(이하 신승은): 저는 감독이자 싱어송라이터 신승은이라고 합니다.
손수현: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고,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용기를 주는 작품 중 하나였는데 오늘 이렇게 네 분의 감독님들을 모시고 진행을 맡게 되어서 너무 기쁩니다. 즐겁게 이야기 나누다가 가면 좋겠습니다. 관객분들의 질문이 있으실 것 같은데, 그전에 감독님들 소개와 간단한 질문을 먼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감독님 분들께서 작품 상영 순서대로 앉아 주신 거거든요.
박소현 감독(이하 박소현): 네, 저는 첫 번째 〈여고괴담〉을 연출한 박소현이라고 합니다.
이솜이 감독(이하 이솜이): 안녕하세요. 저는 두 번째 작품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를 연출한 이솜이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유가람 감독(이하 강유가람): 안녕하세요 저는 〈이후의 시간〉 연출한 강유가람입니다. 반갑습니다.
소람 감독(이하 소람): 〈그레이 섹스〉 연출한 소람입니다.
손수현: 〈애프터 미투〉라는 작품 제목을 딱 듣고 제목 그대로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투 운동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어떤 개인의 어떤 시간들을 조명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미투 운동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시선들을 담아 주신 것 같아요. 이 이야기들을 〈애프터 미투〉라는 이름으로 관통하기 위해서 어떤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셨는지 궁금했습니다.
강유가람: 처음에 이 영화를 기획하려고 저, 남순아 감독님, 박혜민 피디님 셋이서 뭉치게 됐어요. 그때는 워낙 주목받고 있는 사안들이 있어서, 그 사안들을 위주로 이후의 이야기를 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좀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옴니버스로 배치하고, 그런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기획서도 쓰고 그랬는데, 제안을 하고 모이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진 않았고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제작이 되었어요. 모두 각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미투 운동 이후, 〈애프터 미투〉라는 제목을 가지고 옴니버스를 만들었을 때 어떤 방식으로 대중들에게 이야기를 던질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나눴어요. 그러다보니 각자가 천착하는 주제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손수현: 그래서 그런지 다양한 시선이 담긴,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드러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승은: 다른 감독님들도 작품을 만드시게 된 계기 짤막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박소현: 일단 2018년도에 트위터에서 학교 창문에 학생들이 붙인 포스트잇 사진과 이에 관한 기사를 보게 됐어요. ‘지금 노원구에 있는 용화여고라는 곳에서 이런 일이 생겼구나’ 이렇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저의 이야기, 저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더라고요.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을 텐데, 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나서도 계속 다양한 형태의 교육 현장에, 학교라는 곳에서 청소년들과 오랫동안 영상 작업을 해 오고 있었거든요. 학교라는 공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가지는 문제의식이 있었어요. 영화에 대한 제안을 받고, 스쿨미투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을 했고, 반복되는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했습니다.
이솜이: 저도 제안을 받기 전에 행복 선생님을 만났는데요. 한국여성의전화에서 가정폭력 생존자 모임이 있었어요. 놀이를 하고 춤을 추는 치유의 모임이었는데 10명 가량 되는 생존자 분들을 한 1년 정도 촬영할 기회가 있었고, 촬영을 하면서 행복 선생님이 굉장히 눈에 많이 들어왔어요. 피해의 레이어가 굉장히 많으셨어요. 이곳에는 가정 폭력의 생존자로 오셨지만 알고 보니 친족 성폭력, 아동 성폭력 피해자셨어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제안을 받았을 때 선생님이 떠올라서 추진력을 얻고 프로젝트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신승은: 행복 선생님은 바로 오케이를 하셨나요?
이솜이: 네. 그때 당시에 계속해서 뭔가 표현하고, 말하고자 하는 과도기를 겪으신 것 같아요. 만약 지금 하자고 했으면 안 하셨을 것 같은데(웃음), 그때는 마침 말할 준비가 완전히 된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강유가람: 저는 성평등위원회 활동을 하고 사건들을 해결하면서 답답했던 부분들이 좀 있었거든요. 잘못은 다른 사람이 했는데 공동체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서 회의를 하고, 사건을 조달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왜 주로 여성 감독님들이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 과정이 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감정들을 나눠 주신 순아 감독님께 먼저 출연 제안을 드렸는데 오케이 해 주셨고, 이산 님 같은 경우는 사건 지원할 때 자문으로 오시면서 안면이 있었어요. 홍지희 작가님은 전혀 모르던 분이었는데 사실 지역, 지금 광주에서도 연극계 미투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시거든요. 서울, 수도권 뿐만 아니라 지역에도 주목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만들게 되었어요. 제가 고민하던 지점들이 담겨 있다고 봐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소람: 〈그레이 섹스〉는 개인적인 고민을 하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고 그 욕망을 위해서 주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선택할 때 혹은 누군가를 좋아해서 스킨십을 했을 때, 어떤 불쾌감이 결과적으로 나올 때가 많더라고요. 그 불쾌감을 저의 욕망 탓으로, ‘내가 왜 그랬지’하는 자책으로 많이 돌렸던 것 같은데 주변에서도 유사한 감정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도 스스로 탓을 많이 하더라고요. 결정적으로 ‘n번방 사건’에 대한 2차 가해의 말들을 봤을 때 피해자들의 욕망을 원인으로 지적하는 것을 보며 ‘욕망을 정말 없애야만 하는가? 드러내면 안 되는 것인가?’하는 문제의식이 있어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신승은: 감독님들 이야기 들으니까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본 느낌이 들어요.
손수현: 이렇게 각각의 감독님들이 가진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것이 〈애프터 미투〉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는 데는 되게 많은 대화들이 오갔을 것 같아요. 네 작품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되게 크셨을 것 같은데, 지금과 같은 순서에 이유가 있나요?
이솜이: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면, 공통된 장소성이 있고 익숙함 속에서 위계와 폭력 그리고 성폭력 사이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빠르게 이입이 가능한 〈여고괴담〉이 포문을 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첫 번째 이야기로 꾸렸어요. 〈여고괴담〉을 이어가는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행복 선생님이 가지고 있는 피해자로서의 힘과 치유, 과정 같은 것들을 보여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후의 시간〉은 피해자 뒤에서 연대하고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공유하고 생각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담고 있다면, 〈그레이 섹스〉는 정말 애프터의 애프터고, 어떤 가해와 피해를 온전히 가르기보다 그 물음표 안에서 오류란 것도 어떤 과정과 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질문을 던지며 끝나는 구성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신승은: 역시 담당답게 아주 말끔하게 잘 말씀해 주셨네요.(웃음)
관객: 개봉을 축하드립니다. 독립 다큐 영화가 개봉으로 이어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오래 달릴 수 있길 응원합니다. 개봉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하고요, 요즘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도 궁금합니다.
박소현: 개봉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더불어 생계도 유지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개봉을 할 수 있게 돼서 너무 기쁘고요. 개봉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렇게 개봉할 수 있게 돼서 감사드립니다.
이솜이: 저도 당연히 개봉하지 못할 줄 알았고, 그래서 제목도 이렇게 길게 했는데.(웃음) 그래도 〈애프터 미투〉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모이게 돼서 뜻깊습니다. 저도 생계 잘 유지하고 있고요, 방금도 일하고 왔습니다.
강유가람: 저도 개봉하게 돼서 기쁘고요, 사실 저희는 공동체 상영 위주로 대화의 장을 만드는 자리를 기획해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네 명이 각자의 일을 하면서 배급까지 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공동체 상영을 담당해 줄 수 있는 배급사를 찾자고 해서 제안을 드렸는데, 개봉을 하고 더 많은 관객들에게 다가가자고 결정이 되었어요. 적극적으로 저희를 멱살 잡고 이끌어 주셨어요(웃음). 물론 개봉하기까지 출연해 주신 분들께서 마음을 내어 주신 것이 가장 큽니다. 저도 일상 유지를 위해 일하다가 이 자리에 왔습니다.
소람: 개봉하게 돼서 좋은데 개봉 너무 어렵더라고요.(웃음) 요즘은 운동도 하고 있고,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시나리오 배우면서 얘기도 쓰고 있고 다큐 작업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손수현: 저희 박소현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잖아요.
신승은: 맞아요. 화질이 그렇게 좋지 않은 정지된 이미지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거기에 사운드는 흐르잖아요. 연출 진행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그렇게 연출을 하신 의도가 있을까요.
박소현: 처음 스쿨미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을 때부터 저는 사진 푸티지만 가지고 만들고 싶었어요. 영상을 정지한 스틸컷은 아니고 다 사진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에요. 처음엔 한 학교를 특정하려고 하진 않았고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지역의 다양한 학교의 사진들을 모아서 그것이 마치 하루동안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도록 이어 붙였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여러 날, 여러 공간의 사진을 모았다는 것을 보여주며 허를 찌르고 싶었는데, 사진들을 모으는 것이 너무 쉽지 않더라고요. 난항을 겪던 중에 ‘용화여고 성폭력뿌리뽑기위원회’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로부터 받은 사진들이에요. 음성녹음도 다 넘겨주신 셈이죠. 인터넷에서 얻은 자료들도 있고, 여러 년도의 사진들을 이어붙였어요. 스쿨미투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고민하는 관객들만 타겟으로 특정한 것이 아니었고, 특별한 일이 아니라 너무나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온 일이라는 것을 감각하게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운드도 많은 고민을 했는데, 우선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고 싶었어요. 그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신승은: ‘괴담’이라는 타이틀과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손수현: 괴담이라고 하면 오래 전부터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이라는 뉘앙스를 갖고 있는데, 제목에 대한 고민을 하셨던 부분도 있는지 궁금해요.
박소현: 2020년 2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기획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여고괴담〉의 새로운 시리즈가 오랜만에 제작된다고 언론에 나오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학창시절에 겪었던 폭력들, 그리고 제가 정식 학교 교사는 아니지만 가르치는 입장이 되어 또 다시 겪게 되는 경험들에 놓였을 때 이게 끝나지 않는, 반복된다는 점에서 98년도에 첫 번째로 개봉한 〈여고괴담〉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이런 제목을 생각하게 됐는데, 98년도에 개봉한 〈여고괴담〉을 보면 주인공이 귀신이라는 사실이 졸업하지 않고 계속 졸업앨범에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지거든요. 그런 느낌을 내고자 했어요. 이 학교 또한 사학재단이다 보니 대부분의 교사들이 정년까지 다른 학교로 가지 않고 남게 되는 직장인 거예요.
관객: 영화를 보면서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나아지고 있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피해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고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도 계속되고 있고요. 예술계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무력감을 자주 느끼기도 해요. 최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계신지 궁금해요.
손수현: 강유가람 감독님 작품 안에서도 직접적인 표현이 나오진 않았지만 개인이 어떤 문제들을 질문하고 해결해야 하는 고충이라든지 답답함이 있었을 것 같거든요. 강유가람 감독님은 창작자로서 이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데 그런 고충을 겪는 순간들이 있었는지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강유가람: 촬영을 하면서 만난 사례들 중 가해자가 실형을 받아서 나름 잘 풀린 사건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건들도 많았어요. 재판 자체가 파기되는 경우도 있었고, 민사소송을 진행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결국은 피해자가 예술계를 떠나는 일들을 경험하기도 해요. 그런 사건들을 보면 확실히 암담하다는 생각을 하긴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산 님 같은 분들이 꽤 많이 예술계 내에서 활동을 하시고 있어요. 예술인에 관련된 법률도 바뀐다는 기사를 보기도 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셨던 예술계 활동가 분들이 계셔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게 아닐까, 바꿔 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성평등 관련 활동을 했는데, 영화계가 워낙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보니 적극적 조치로 여성창작자에게 어떤 인센티브를 주자는 논의를 하면 민원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사업을 축소해야하나 내부 회의를 하기도 했어요. 아직 평등한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하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도보다도 인식이 따라가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은 맞는 듯합니다.
신승은: 다른 감독님분들도 무력함을 감당하는 방법이나 그런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솜이: 가람 감독님께서 해 주셨던 말인데, 시간을 초나 분 단위, 현재형으로 생각하기보다 하나의 큰 시대로 생각하면 조금 더 변화를 느낄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
강유가람: 제가 먼저 한 말은 아니고요.(웃음) 최근에 흑인 민권 운동 하시는 분의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말인데 저도 감명을 받았거든요. 10년 단위, 20년 단위보다도 세기 단위로 생각해 보면 인류의 변화 같은 것이 눈에 보이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야 변화를 느낄 수 있지 않나 하는 이야기였어요.
손수현: 가끔은 변화가 눈에 잘 보이길 바랄 때가 있잖아요. 저는 〈애프터 미투〉를 보면서도 또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관객: 소람 감독님의 개인의 욕망에 대한 물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상화가 아닌, 거래가 아닌 연애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손수현: 〈그레이 섹스〉는 사실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많은 한국 여성들이 남성과 연애를 하면서 보고 들었던 얘기들을 함축적이고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느낌이 강했는데, 그래서 더 〈애프터 미투〉라는 작품 안에 이 작품이 존재한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아요. 미투 운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질문을 던져 주는 내용이라는 생각도 들었거든요.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감독님은 어떠셨는지.
소람: 처음에는 어떤 증언을 들었을 때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고 그랬는데 혼자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사람이 이해가 안 되더라도 왜 내가 이런 의문들을 느끼는지 더 생각을 해 봐야겠다고 판단을 했고 팀 안에서 많은 논의를 했죠. 어쨌거나 익숙한 감정이긴 하지만 언어화 되지 않은 얘기들이긴 하잖아요? 누군가는 깊이 느껴보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그다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일 수도 있어서 어떤 분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느꼈어요. 또 영화를 편집하다 보면 말들을 매끄럽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 매끄럽게 가는 길을 택하면 어떤 사람의 증언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이 사라지기도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회의들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신승은: 성적인 불쾌감이라는 것이 딱 떨어지는 개념도 아니고 그것은 누군가의 규정하는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잖아요. 〈그레이 섹스〉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관객: 이솜이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피커로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가 듣지 않아도 내가 듣기 때문에 발화하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솜이: 계속 무언가를 발화하고 표현해야 한다는 것만은 정해져 있었어요. 선생님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말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보여 주면 좋을지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그 과정에서 듣는 누군가를 상정하기보다 아무도 상정하지 않을 때 더 힘이 생길 때가 있더라고요. 말을 한다는 행위 자체에 많은 힘을 얻었던 것 같고, 저 나름대로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장소를 계속 고민하던 중에 선생님께서 웹으로 지도를 보고 계셨는데 이미 피해 장소가 폐교가 됐고, 태양열 패널을 설치한 밭이 된 거예요. 그래서 촬영의 막바지쯤 가게 됐어요. 추진력을 얻어서 해남에 갔을 때 좋은 장면들이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아무도 듣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들릴 수 있게끔 하는 상징적 힘을 지닌 스피커를 통해 진행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신승은: 그 공간의 모든 흔적이 사라졌지만 사람은 살아남아서 발화를 한다는 사실이 인상 깊고, 발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는 것 같습니다.
손수현: 행복 선생님을 클로즈업해서 많이 촬영을 하셨잖아요. 혹시 클로즈업을 사용한 것에도 의도가 있는 것인지 궁금했어요.
이솜이: 구성을 할 때도 클로즈업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한 사람만 상정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관찰자적인 시선이지만 그럼에도 이 공간에 늘 피해자는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고, 마치 출퇴근길에 갖는 그 정도의 거리감이 좀 느껴지게끔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미 선생님과는 1년 정도 관계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리감을 두기 위해 클로즈업을 많이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신승은: 오히려 거리감을 두기 위해 클로즈업을 사용하셨다는 말씀이 인상 깊네요. 영화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매체인 것 같습니다.(웃음)
손수현: 바지 입으시는 장면은 되게 자연스럽게 찍힌 장면처럼 느껴졌거든요.
이솜이: 일단은 선생님이 그 당시에 에너지가 정말 강하셨고, 배우를 하셔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리고 그날따라 ‘액팅 스쿨’이라고 쓰여 있는 외투를 입고 오신 거예요.(웃음) 너무 좋아하시는 빨간색이고, 빈티지샵에서 사셨다고 하는데 아무튼 저도 그때 깜짝 놀랐고 이 장면을 자연스럽게 편집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신승은: 피해자라고 하면 보통 생각하는 다양한 이미지들이 있는데 행복 선생님을 통해 다양한 이미지가 보여진 것 같아요.
관객: 〈이후의 시간〉 만드신 강유가람 감독님께 질문 드립니다. 영화에 관한 인터뷰를 찾아보니 편집에서 많은 부분을 들어낼 수밖에 없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아쉬웠던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강유가람: 원래는 이산님을 중심으로 담으려고 해서 이산님을 많이 팔로우 했거든요. 당시 지역에서 재판 가시는 것도 촬영하고, 여성분들이 연대의 액션으로 방청을 가면 재판부도 이 부분을 의식하니까 다 같이 재판에 참석하는 과정을 찍고 그랬는데 너무 개인의 연대 활동으로만 이야기가 비춰질까 걱정도 되었고, 인물들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어서 들어낸 부분이 조금 아쉬워요. 그렇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적절하게 잘 배치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촬영하시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말이나 상황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용화여고 학생들이 창문에다가 포스트잇으로 ‘Me too, With you’를 적은 것 외에도 학교 곳곳에 여러 메시지들을 적은 포스트잇들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보내주신 사진에 있는 메모 중에 인상적인 게 있었어요. 이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건데 200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피해자분께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었는데 그분 혼자 퇴학을 당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가 되었던 전례가 있었어요. 졸업을 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다시 학교에 가서 메모를 적었던 분들도 있었어요. 2018년 당시 재학생들이 쓴 것으로는, “2002~2018 우리가 태어나서 입학할 때까지.”라고 써있더라고요. 이 장면을 넣진 못했는데 이 포스트잇이 인상 깊었습니다.
손수현: 소람 감독님은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소람: 저는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이 말들을 어떻게 편집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많이 고민했어요. 영화의 톤이 너무 달라질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미지는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참, 왜 그랬는지.(웃음) 제게는 많은 인서트가 없었고, 오프닝에서 비꼬기 위해 명화들을 넣었는데 명화를 등장시키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어요. 인터뷰들을 살리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선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지원을 받게 되었고, 마침 애니메이션 감독님을 만나게 되었어요.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 경험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채택하게 되었어요. 애니메이션 감독님께서도 의견을 되게 많이 주셨어요. 감정이 워낙 중점적으로 표현되다 보니 어떻게 표현할까를 고민하면서 텍스처 수집을 많이 했고, 섹스토이로 넘어가는 화면 같은 것도 의견을 많이 주셨어요. 이명화 애니메이션 감독님이신데, 제가 생각해 보지 못한 과감한 장면도 많이 제안해주셨어요.
관객: 출연자 분들께서는 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말씀해 주셨는지 궁금하고, 출연자 분들의 근황도 이야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유가람: 이산님 같은 경우에는 계속 열심히 활동을 하고 계시고 극을 새롭게 올리셨어요. 순아 감독님은 〈유산〉이라는 단편이 포함된 〈기기묘묘〉라는 옴니버스 영화가 극장 개봉을 해서 극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솜이: 촬영 회차가 길어지면서 행복 선생님도 많이 힘들긴 하셨을 거예요. 그래서 과연 이 과정이 이로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가 완성된 뒤에도 그것이 좀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너무 멋있게 자립을 하셨고, 영화를 보시면 감사하게도 좋아하세요. 그래서 만담처럼 서로가 고맙다고 말하며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관객: 다른 여성 감독님들과 함께 협업하는 과정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저는 강유가람 감독님과 협업을 해왔고 이렇게 옴니버스 형식은 아니지만 함께 할 작품이 있으면 하는 방식으로 해왔거든요. 이번에는 색다른 느낌이었던 게, 이전에는 비슷한 연령대 감독님들과 협업을 했는데 〈그레이 섹스〉 같은 작품은 저와 비슷한 연령대의 분들과 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작품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강유가람: 저는 이렇게 모여서 작업하는 건 되게 좋았는데, 제가 이 중 나이가 좀 있다 보니 제가 하는 피드백을 압박으로 느낄까봐 걱정이 되었어요. 어떻게 위계가 생기지 않으면서 평등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다른 분들이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하긴 합니다.
이솜이: 평등했고요.(웃음) 저는 무언가 같이 해서 좋았던 기억은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모여서 개봉까지 하니까 되게 감회가 새롭고 좋습니다.
소람: 저는 ‘아, 내가 고집이 좀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돼서 좋더라고요. 그 누구도 짚어 주지 못한 것들을 협업 안에서 서로 짚어 주게 되고 명확하게 제가 하고자 하는 말들을 다듬을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많은 작품을 하진 않았지만 발화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인 것 같아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신승은: 협업을 통해 자기 확신이 생겼다는 부분이 인상 깊네요.
관객: 딱 잘라 나누긴 어렵겠지만 영화 〈애프터 미투〉는 예술가로서의 현생과 활동가로서의 투쟁을 동시에 충족하는 일이 되었나요?
강유가람: 저 개인으로서는 현생과 활동가로서의 투쟁이 충족되는 일이었는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책임감이 많이 작용한 작업이긴 했어요. 제가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강박이 좀 있었던 것 같아서 작품에는 몰입을 좀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긴 하는데. 출연자 분께서 활동에 대한 기록이 잘 남지 않는 편인데 이렇게 남겨 주셔서 감사하다고 얘기해 주셨을 때 보람되고 그랬어요. 저는 활동가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문화예술계의 활동가 분들만 담긴 했지만 그런 마음을 좀 표현하고 싶었어요. 개봉을 통해 그런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신승은: 마음이 작품을 통해 잘 전달된 것 같아요. 이제 앞으로의 계획과 간단한 인사 말씀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소현: 개봉 첫날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남은 GV들도 많이 찾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솜이: 아까 영화제에서도 보셨는데 또 와 주신 분이 계시다고 했는데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하구요. 그 문장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연대해주고 계시단 걸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유가람: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각자의 현장에서 각자의 시간을 잘 살다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람: 제가 좋아하는 김금희 작가님의 『경애의 마음』에서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문장이 나와요. 모두들 마음을 폐기하지 않으셨으면 하고, 내 마음을 많이 돌봐 주면서 활동도 하는 시간을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강유가람: 오늘 와 주신 신승은 감독님과 손수현 배우님도 너무 감사드립니다.
신승은, 손수현: 와 주신 모든 분들 모두 감사드리고요. 오늘 인디토크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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