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와 이데올로기〉 리뷰: 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는 일, 편지 쓰기와 영화 만들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태현 님의 글입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5.18 기념공원을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벽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견학을 온 것 같은 수십 명의 어린 학생들이 그곳에 있었다. 아이들은 그다지 엄숙하지 않았고, 긴 벽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친구들의 이름을 찾아 서로를 놀려 댔다. 그들은 분명 이곳에 담긴 이야기와 선생님의 무거운 얼굴을 기억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아직 그들은 벽의 이름들로부터 죽음을 떠올리기보다는 얼굴을 마주하며 웃음 짓는 친구를 떠올리는 나이였을 테니까. 아닌 게 아니라, 비극적인 타인의 이야기는 많은 경우 개인의 삶에서 겪게 되는 감각의 두터움에 진다. 타인의 비극에 무감하지 않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지만 어느 노래 가사처럼 “먹고 마시는 것이나 잠을 자고 움직이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고 나는 모든 순간에 아파하지는 못한다.
개인의 삶과 타인 사이의 거리처럼, 관객과 영화의 거리 또한 결코 가깝지 않다. 스크린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의 무게와는 별개로, 관객은 때로는 뻐근함을 느끼고, 때로는 졸고, 때로는 영화를 그냥 흘려보내는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다. 영화는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 특정한 관객이 아닌 모든 관객을 향해 공개된다. 모두가 봐야만 하는 영화는 없고, 모두가 견뎌야 하는 영화도 없다. 세상에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는 없다. 다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영화는 관객에게 닿기 위해 각자의 방법을 부단히 고민한다. 그리고 비범한 영화들은 이야기 너머 관객의 몸과 마음에 공명한다.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카메라는 양영희 감독 너머의 것을 찍지 않는다. 카메라는 어머니를 마주하는 감독의 손에 들려있거나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을 볼뿐이다. 감독이 어머니의 집을 나서면 장면은 거기서 끝난다. 가끔씩 과거의 사진과 내레이션이 등장하더라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감독이 부모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뿐이다. 우리는 양영희 감독이 듣고 보는 것 이상을 확인할 수 없다. 그렇게 부모를 방문하는 자식의 마음은 영화를 보며 뺄 수 없는 상수가 된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내 눈앞에 놓인 부모에 대한 다층적인 마음은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평양의 아들들에게 매번 돈을 부치는 어머니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해도, 북한에 대한 부모의 지지에 동의하지 못해도,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는 행위 사이의 시간이 남긴 친밀함은 뗄 수 없는 것이다.
영화는 그 마음을 찍는다. 어머니의 삶 옆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감독의 행위에 마음이 담긴다.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는 어머니의 행위에서, 허리를 살짝 구부려 식물에 물을 뿌리는 모습에서 한 사람에게 쌓인 시간의 무게가 보인다. 관객은 그 시간의 무게를 미약하게 상상할 뿐이지만, 영화는 친절하게도 오랫동안 수프를 끓이는 과정을 보여주며 식사를 준비하고 한 식탁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식구가 주는 친밀함을 체험시킨다. 그 자리에 아라이 카오루 씨가 등장한다. 새로운 위치에서 어머니 강정희 씨와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는 일면 관객의 위치와 닮아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우리 관객처럼, 그는 눈앞에 존재하는 타인을 조용히 바라보고 듣고 있다. 그의 마음에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하지만 고민을 티 내거나 반문하지 않고 직접 몸을 움직여 함께 요리를 만드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의 사랑하는 마음은 어머니에 대한 양영희 감독의 두터운 마음과 공명하며 관객의 마음에 닿는다.
그리고 우리는 4.3의 체험을 고백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그는 지나간 시간을 말하며 웃음을 섞기도 하고, 기억나지 않는 이름을 결국 떠올렸을 때 내심 흥분하기도 한다. 듣는 우리의 무거운 마음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말한다. 주방에서 수프를 만드는 어머니는 휘발유로 가득한 물동이를 지고 산을 오르던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다. 비극의 생존자라는 말은 어머니의 삶을 전부 담을 수 없다. 4.3 평화공원에서 각명비를 마주하는 일은 그 진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몇 년에 벌어져, 몇 명의 희생자를 낸 역사적 비극 속 숫자와 이름으로 기억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먹고 마시고 웃고 걷는 존재가 사라진 빈 구멍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추념식에 참석한 대통령은 “4.3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직시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역사 속에서 은폐되어온 4.3 사건의 정확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낡은 이념 아래에서 여전히 사실을 외면하는 극우세력에게 쏘아붙이는 일갈일 수 있다. 아니면 비극적 역사로부터 평화와 인권이라는 자신의 정치적 가치를 강조하는 연설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역사적 비극을 직시하는 일은 어머니를 직시하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다고 집어 말하고 싶다. 권력자들에게 해석되는 국가적 사건이 아니라 비극을 안고도 삶을 이어나가는 한 사람을 직시하는 일.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하는 양영희 감독의 마음은 한 사람의 두터운 삶과 벽 위의 이름들의 충돌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의 뒷모습 너머로 4.3 사건을 설명하는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애니메이션은 직접적이고 극적이다. 붉게 물든 피와 위엄을 드러내는 핵폭탄과 헤어짐을 강조하는 푸르른 언덕이 보인다. 양영희 감독은 추념식에 방문해 4.3 유적지 투어에 참여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다. 하지만 영화에 4.3의 자료들을 담지 않았다. 어떤 실제의 자료, 혹은 상상된 애니메이션도 밀항선으로 가기 위해 널빤지로 겨우 붙여진 다리를 한발 한발 건너는 공포를 애써 웃는 얼굴로 고백하는 어머니의 얼굴보다 진실을 말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조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 애니메이션은 한 사람의 삶이 타인에 의해 설명되는 정보로 등장할 때 모든 것을 담을 수 없다는 진실을 고민한 윤리적 결과물일 것이다.
가족은 4.3 평화공원에서 수많은 묘비를 바라본다. 그들은 어떤 말도 뱉지 못하고, 카메라는 천천히 멀리 떨어져 전경을 비춘다. 하나의 이야기를 끝맺기에 충분한 감정적 밀도를 가진 장면이다. 하지만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끝나지 않는다. 어머니와 가족의 삶은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화는 묘지 앞에 선 가족의 모습으로 멈출 수 없다. 양영희 감독의 인터뷰처럼 “다큐멘터리에는 배우 아닌 사람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은 영화 이후에도 이어지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듣기도 한다”. 촬영한다는 것은 대상의 한 순간을 카메라 안에 박제하는 것이고, 편집한다는 것은 박제된 이미지를 영화 속에 종속시키는 일이다. 스크린 반대편의 관객이 영화 속 대상에 대해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떠날지 만드는 이들은 알 수 없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지를 포착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어떻게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의 윤리를 고민하는 것뿐이다.
당신이 희생자의 이름을 보고 사라져버린 한 명분의 삶의 두터움을 상상할 수 있도록 양영희 감독은 반대로 보여준다. 어머니의 삶에서 4.3 평화공원의 이름들로. 그리고는 다시 한 명의 삶이 4.3 체험자라는 이름 아래 닫히지 않도록 삶을 남긴다. 타인을 이야기에 갇히지 않는 두터운 삶의 주체로 보여주는 것만이, 그리고 타인에게 닿기 위해 힘쓰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타인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이. 영화의 마지막, 감독은 이데올로기의 단단한 벽 앞에서 만날 수 없는 북녘의 조카들에게 편지를 쓴다. 하지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무슨 말을 숨겨야 할지 고민하며 편지들을 썼다 지운다. 직접 보고, 듣고, 손잡으며 경험하는 어머니를 편지로 전부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한계를 알면서도 무엇이 가장 정확한 말일까 고민하며 썼다 지우는 편지 쓰기라는 행위는, 타인의 한 부분이라도 정확히 옮겨내기 위해 고민하는 영화 만들기라는 행위와 닮아 있다. 치열한 윤리적 고민을 카메라로 체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양영희 감독과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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