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얼굴〉 리뷰: 그림 속 다양한 얼굴들, 그리고 카메라 속 다채로운 얼굴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주말마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를 가까이에서 담은 다큐멘터리 〈니얼굴〉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은혜씨의 밝음과 유쾌함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미소와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지나가는 손님의 "그림 그려주시는 건가 봐"라는 말에 "네, 니얼굴"이라고 답하는 은혜씨의 호탕한 모습에서 〈니얼굴〉의 정수가 드러난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이 영화는 은혜씨의 일상에서 드러나는 소소한 재미를 담아내고 있다. 칫-하며 엄마에게 눈을 흘기는 모습이나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가 깜박 조는 모습, 부쩍 많아진 인기에 그 놈의 인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고 말하는 모습,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은혜씨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수많은 얼굴들을 발견한다.
〈니얼굴〉이 장애인의 삶은 비극적이거나 고난으로만 가득할 것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발랄하고 쾌활한 에너지를 뿜을 수 있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카메라는 발달장애인으로서만의 은혜씨가 아니라 그림 작가로서, 딸로서, 노동자로서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은혜씨의 모습을 성실하게 비춘다.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이 그와 사랑에 빠질 수 있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의 다채로운 얼굴들을 사랑으로 담아내는 카메라 덕분일 것이다.
은혜씨가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그림으로 그리면서 세상과 소통한다면 관객들은 은혜씨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은혜씨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은혜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과 세상이 은혜씨를 바라보게 되는 눈길,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방향의 시선이 교차하는 영화의 역동성이 마치 씨실과 날실이 얽혀서 하나의 직물을 만들어 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은혜씨가 그림과 함께 손에서 놓지 않는 뜨개질의 모습과도 닮아있는 듯하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특히나 〈니얼굴〉이 관객들에게 보여짐으로써 완성될 수 있는 영화라는 것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대학 졸업 후 할 것이 마땅치 않아 방 안에서 고립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은혜씨에게 그림은 그가 살고자 하는 의지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인터뷰나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점이 없냐고 묻는 질문에 힘든 점은 없다며 오히려 그림을 그려서 행복하다고 줄곧 대답한다. 그만큼 발달장애인이 사회적으로 자립하기가 힘든 사회에서 그림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은혜씨에게 순수한 기쁨이었던 것이다. 그가 보여주는 비언어적인 표현들 즉 얼굴 표정, 몸짓, 노랫소리, 그림 그리기, 뜨개질 같은 것들로 그는 자신의 존재를 떳떳하게 알리고 있다.
〈니얼굴〉은 그런 은혜씨의 모습을 카메라가 발견해내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발달장애인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자신의 의견과 감정, 욕구를 표현할 수 있고 비장애인만큼 다양한 얼굴이 있다는 걸 증명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평등하고 동등한 시선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융화되고 성장하는 발달장애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의 가능성을 꿈꾸게 된다. 〈니얼굴〉이 줄곧 견지하고 있는 태도처럼 유쾌함과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나가는 장애인들이 많아질 수 있는 우리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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