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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경아의 딸〉: 용서를 열망하는 세계에서 나는 당신이 용서에서 해방되길 빈다

by indiespace_한솔 2022. 6. 28.

 

 〈경아의 딸〉   리뷰: 용서를 열망하는 세계에서 나는 당신이 용서에서 해방되길 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근래 들어, 철저한 오독이길 바랐던 사건이 참임에 통감하며 기상한다. 이제 두텁게 불러오던 여성의 이름이 트위터 트렌드에 있으면 우선 걱정이 된다. 씻는 공간에 가면 벽과 벽이 모이는 선 부근을 특히 길고 꼼꼼히 보게 된다. 설령 나의 집이어도 그렇다. 심야의 귀가는 낱낱의 기척마다 놀라게 된다. 나열한 행동은 성정의 이유만은 결코 아니기에, 나 단독에게서 이유를 찾는 독해 방식에선 이해될 리 없다. 내가 부러 조심하여도 공포 혹은 범죄가 절멸하는 건 아니니까. 여성인 친구들이면 다 알고 해 봤을 행위들. 이 공유감이 유독 욱신거리게 슬픈 요즘이다. 범죄를 싣는 기사마저 피해자에게 이유를 뜯어내고, 힐난하는 어투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목엔 피해자의 신분만 드러내는 문법이 점점 늘어, 오히려 범인의 몽타주는 휘발된다. 범인은 그렇게 간편히 은닉하여, 있지도 않은 유약함을 명목으로 기어코 감형된다. 이 반복이 거르지 않고 생기는 게, 매 기상마다 슬픈 구역감을 부른다. 세계는 가해 행위에 지나치게 이입해 어떻게든 상냥하게 구제해주려 하고 있다. 나의 분노는 이렇듯 꺼내어도 헤집어도 가득 찰박임에도, 무감한 말의 양에 눌리는 것만 같던 때에 다행히 〈경아의 딸〉을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를 입게 된 연수와 엄마인 경아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경아의 딸〉은 피해자에게 감내하라며 다그치는 모순과 폭력의 모든 면면을 꺼내 담았다. 상현(가해자)은 이별을 보복하기 위해 연수의 영상을 지인에게 보냈으며, 사이트에도 업로드했다. 영상은 경아에게도 전송되었다. 경아는 영화의 도입부터 연수에게 간수를 능숙히 하길 원한 인물이다. 〈경아의 딸〉에는 여성 대상 범죄를 보도하는 뉴스의 음성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그 기사 앞에 늘 경아가 앉아있었다. 경아의 당부에는 물론 우려가 담뿍 있으나 크게 다정히 들리진 않았다. 너도 조심히 잘해야만 방지가 가능하다는 압박이 번번이 함의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연수와 경아는 영상으로 인해 갈등을 맞이하게 된다. 사실 이 범죄가 모녀 관계를 와해시키는 요인으로 등장하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경아가 연수에게 말한 언어가 가해였음을 인지하고 사과하는 장면, “여태 내가 걔 덕에 살았어.” 새삼 연수가 편을 해준 기억을 호명하는 장면, 폭력을 숱하게 한 남편의 잔여가 든 물건을 끝내 몽땅 버리는 장면 등은 아주 다른 상성이어도, 안녕을 소망하는 모녀 관계를 등장시켜 가능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연수와 경아가 서로에게 애써 횡단하려는 의지가 읽히는 장면마다 무척 좋았다. 연수와 경아를 무리하게 화해시키지 않아 더 좋았다.

 

 

종종 연수에게 대사로 너무 치닫게 밀어 세우는 장면은 (쓰인 이유를 불문하고 걸레라는 워딩 등) 아쉽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꼭 쓰였어야만 하는 서사임을 확신할 수 있고, 이 시기에 볼 수 있어 기뻤다. 연수와 경아가 꼭 듣길 바랐던 말이 정확한 대사로 흐르는 장면마다 얼굴을 가리고 많이 울었다. 특히 연수가 어떤 일의 탓을 본인에게 돌리는 습관을 가진 엄마에게 엄마 탓 아니야. 내 탓도 아니고란 대사를 하는데, 문득 이 영화를 만들기까지 들였을 다정한 노고가 읽혔다. 그만큼 꼭 극장에서 모두가 들었으면 하는 문장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 끝까지 해보려고한다는 말이 있어 가장 기뻤다. 그건 연수의 대사였지만, 영화의 말로도 들렸다. 긴 텀이 있더라도 부디 당신이 일하길 바라고, 죄는 영영 용서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 무엇보다 살아내 주어 고맙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는 충만하다. <경아의 딸>에는 파티션 너머 동료 선생님, “소송 준비 같이 해요다정히 힘을 보탠 변호사, 연수의 담당 학생 등 여러 여성 인물이 나와 본인의 방식으로 연수에게 안부를 묻는다. 그 안녕의 힘은 예상보다도 더 컸고 셌다.

 

 

이 영화 덕분에 합의란 말의 잔혹성을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더 알기 위해 애쓰며 살아가려 한다. 다수의 문법이 무뎌진다 한들, 당신을 살리려고 힘껏 외치는 안녕의 언어는 절대 꺾이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이후에 태어날 너의 기상은 덜 슬프길 기원하며 매일 기꺼이 우려하고, 발화하고, 맞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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