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시내가 사라졌다〉 리뷰: 나와 나의 거리
*관객기자단 [인디즈] 은다강 님의 글입니다.
“네, 딱 좋아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거리.”
<윤시내가 사라졌다> 속 윤시내의 이미테이션 가수 가시내(김재화)는 놀이터에서 버스킹을 하다가 마주친 장하다(이주영)에게 적당한 거리만큼 떨어져 자신의 무대를 봐달라며 이렇게 말한다. 상대의 관심이 부담스럽지도 서운하지도 않은 알맞은 거리. 장하다가 미끄럼틀 뒤로 몸을 숨겨 발만 겨우 보일 때, 가시내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딱 좋다’고 말한다. 현실에서도 나와 타인 사이의 알맞은 거리를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이(오민애)는 윤시내의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이자 윤시내의 오랜 팬이다. 연시내가 윤시내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서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을 달래고 있는 그 시각, 윤시내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콘서트를 앞두고 사라진 윤시내 소식에 세상은 난리가 나고, 순이는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도 되지 못하고 그렇다고 순이로 돌아오지도 못한 채 실의에 빠진다.
순이의 딸, 장하다는 유튜브 채널 '짱하TV'를 운영하는 유튜버다. 전 남자친구와 커플 채널을 운영할 때는 구독자도 많았지만 헤어지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댓글과 관심을 받는 것만이 장하다 인생의 유일한 낙. 그는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다시 만나자고 질척이는 순간마저 영상으로 찍어 올릴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이 고프다. 그 관심이 욕이든 환호든 상관없다. 누가 자신에게 ‘관종’이라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관종이 뭐가 어때서.”
엄마 순이와 사이가 소원했던 장하다는 우연히 자신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한 순이가 사라진 윤시내로 오해받아 댓글 창이 폭발하는 것을 보고 눈이 번뜩인다. 이미테이션 가수들은 원조 가수의 이미지를 따라간다며 신비주의 콘셉트를 고수해오던 순이는 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술 취해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공개되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유명 인사가 된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온라인에 올려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는 장하다와 순이로 살아야 하는 순간마저 연시내의 신비주의 콘셉트를 유지하는 순이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인물처럼 보인다. 허나 신비주의 콘셉트라는 것도 관객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 장하다와 순이는 타인의 눈을 통해 보는 자신만이 진짜라고 믿고 그 외의 모습은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가까이하기에 너무 두렵거나 비참하기 때문이다. 순이와 장하다는 서로의 관계를 망친 게 상대의 잘못이라며 탓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만큼이나 망가져 있는 건 자신과 자신의 관계였다.
타인과 나의 거리도 중요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볼 때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원조 가수 윤시내가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연시내. 연시내의 확고한 세계가 흔들리고 나서야 자신의 세계를 인지하는 장하다. 가시내, 운시내 등 원조 가수 윤시내를 둘러싼 이미테이션 가수들. 그리고 윤시내 역시 대중 앞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까지. <윤시내가 사라진다>는 타인이 바라보는 순간에만 존재하던 인물들이 스스로 자신을 마주하면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내가 나를 보는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딱 그 정도의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내가 너무 크지도, 작아 보이지도 않는 나와 나의 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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