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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오마주〉: 나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by indiespace_한솔 2022. 6. 14.

 

 〈오마주〉   리뷰: 나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엄마 영화는 재미가 너무 없어.”, “영화를 그 정도 했는데 안 되면 이제 그만 해.”

 

영화 감독 지완(이정은)’에게는 두 명의 팬이 있다. 영화를 끝까지 관람하지도 않은 채 혹평을 하는 이들은 다름아닌 아들과 남편이다. 내 엄마, 내 아내의 작품과 꿈은 무용하다는 말에 지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지완은 세 번째 연출작의 종영을 앞둔 중년 여성 감독이다. 20만 관객이 목표라던 포부와 달리 극장에는 5명의 관객도 채 찾아볼 수 없다. 저조한 관객수, 바닥난 수익금. 늘 함께 영화를 할 것만 같았던 PD마저 영화계를 떠난다. 텅 빈 사무실 구석에서 짐을 정리하던 차, 우연히 걸려온 전화로 지완은 새로운 일을 맡는다.

 

 

한국 영화 사상 두 번째 여성 감독인 홍은원 감독의 〈여판사〉 작품의 필름 복원을 하는 아르바이트. 의미있지만 보수가 적은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시 영화의 대본을 구하지만 필름에 사라진 장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지완의 시네마 여행이 시작된다. 왠지 모르게 지완은 영화 속 주인공에게, 홍은원 감독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하이힐 소리가 들린다거나 챙모자를 쓴 여자의 그림자가 보이면서 지완과 〈여판사〉의 관계는 점차 필연이 된다.

 

잃어버렸던 필름을 되찾은 장소는 폐관을 한 달 앞둔 오래된 극장이었다. 전기가 끊긴 탓에 천장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쏟아지는 빛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곳. 극장을 찾는 손님들이라곤 야사를 보는 중년층이 전부인 곳. 영화의 쓸모를 한정짓는 곳. 빛과 어둠이 현실과 영화에 점철되어 한 곳으로 나타난다. 지완은 극장 한가운데 서서 천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햇빛에 투영된 필름은 수십년이 지난 후 상영되는 또다른 영화였다.

 

 

과거 극장이 부흥했을 때 관객 상품으로 제작되던 모자는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그 덕에 창고에 방치되었던 모자의 챙에서 사라졌던 〈여판사〉 필름을 찾는 데에 성공한다. 한 줄씩 조각난 채 모자에 둘러진 필름은 지완의 손으로 세상에 공개된다. 가려졌던 〈여판사〉가 수면 위로 올라오듯, 복원 작업을 하던 지완에게도 큰 일이 닥친다.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을 해야 되는 것. 진찰을 마친 의사가 덤덤하게 자궁을 걷어내야 한다며 말한다.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쓸모를 다 했다는 선고처럼.

〈여판사〉라는 세 번째 작품을 내고 자취를 감춘 감독과 지완의 상황은 닮아 있었다. 경제적 지원을 끊겠다는 남편, 응원해주지 않는 아들, 게다가 자궁을 적출해야 되는 수술까지. 지완에게 영화는 그리고 꿈은 자신의 쓸모를 고민해야 되는 문제로 전락한다. 의미 있고 돈도 많이 주는 일은 없냐며 묻던 지완의 머쓱한 웃음이 생각난다. 그에게 해답을 준 건 당시 영화의 꿈을 펼쳤던 여성 영화인들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편집 기사 옥희(이주실)’와 필름을 복원하면서 둘은 연대감을 나눈다. 굳이 대사로 표현하지 않아도 와닿는 응원, 연대, 지지 사이 그 무언가였다.

 

 

무언가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적이 있다. 찾고 보니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는 그림자와 같은 것들을. 사라진 필름을 찾아 과거를 거슬러 가는 여행은 지완을,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나의 쓸모와 나의 꿈을. 그제서야 영화의 제목이 다시 생각났다.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 프랑스어로 ‘존경’, ‘경의’를 뜻하는 오마주. 영화 〈오마주〉는 과거 국내 최초 여성 영화인들과 현재 영화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영화인들, 그리고 앞으로 이들의 뒤를 이을 영화인들에게 헌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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