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아치의 노래, 정태춘〉 인디토크 기록
일시 4월 20일(금) 오후 7시
참석 고영재 감독│주인공 정태춘, 박은옥
진행 이동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연 님의 글입니다.
생소한 이름 정태춘. 그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5,60대 이신 분들. 그들에게 정태춘은 어떤 뮤지션인가 궁금하기도 했고 나에게 어떤 뮤지션으로 다가올지도 기대되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쉬이 좌석에 일어나지 못했던 나는 반갑게 감독님, 정태춘, 박은옥 선생님을 맞이했다.
이동진 평론가(이하 이동진): 관객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가수 정태춘(이하 정태춘):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영재 감독(이하 고영재): 이쪽으로 이사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에게 인디스페이스는 1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관계 맺음 해왔던, 굉장히 소중한 공간입니다. 이 소중한 극장에서 이동진 평론가님과 또 관객 여러분들과 함께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더군다나 매진이어서 더더욱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가수 박은옥(이하 박은옥): 안녕하세요. 영화 속 보조 출연자 박은옥입니다.
이동진: 선생님께서는 무대를 굉장히 많이 서셨을 텐데요, 이런 GV에서 본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시고 인터뷰하시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정태춘: 실감이 안 나죠.
이동진: 박은옥 선생님은 어떠세요? 조금 전에 보조 출연자라고 말씀하셨는데, 작품 속 본인 분량에 만족하세요?
박은옥: 사실 첫 번째 편집본에서는 이만큼도 안 나왔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정태춘 혼자만의 영화라 하셔서 저는 안심했어요. 편안하게 촬영했습니다.
이동진: 고영재 감독님께 처음으로 감독으로 데뷔하시게 된 소감을 여쭙고 싶습니다.
고영재: 안도감이 먼저 듭니다. 그 이유는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아까 이동진 님께서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고 하셨는데, 최초로 이 두 분을 영화에 담는 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만 두 분께서 속으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좋게 봐주셔서 일단 안도감이 듭니다. 이제 영화는 제 손을 떠났으니까 관객 여러분들께서 평가해주실 거고. 마지막까지 관객분들 만나는 데 매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동진: 매진이라는 말을 다른 매진으로 들었네요.(웃음) 정태춘 선생님께서는 영화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합니다.
정태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죠. 내가 보여줄 것이 있다면, 그것을 보여주는 영화인가? 그리고 나를 어떻게 이미지 메이킹할 것인가?(웃음) 그런 것들이 사실과 다를 수 있지 않은가? 은연중에 미화되지 않았는가?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렸어요. 감독의 작품으로 던져졌습니다. 난 그 일에 협조를 했고. 한 인간이 영화를 통해서 미화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 그렇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즐길거리가… ‘이 골치 아픈 걸 어떻게 즐겨?’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수많은 영화들 중에 한 영화. 수많은 창작자들 중에 한 창작자. 그렇게 받아들여졌으면 합니다.
이동진: 수 십 년째 팬으로서 오디오를 통해서 노래를 들어왔는데, 영화를 보면서 선생님의 얼굴을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말씀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제가 두 분의 얼굴에 감동받았습니다. 사십 년, 시대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두 분의 얼굴이 지금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지금 모습을 보면 살아오신 세월이 그대로 얼굴에 각인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제가 감독님께 여쭤보겠는데요,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고영재: 계획을 못 했어요. 정태춘 선생님과 형 동생하고 지낸 지 좀 되었습니다. 간혹 제가 ‘형을 영화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말씀드려도 기억 못 하세요. 데뷔 40주년 프로젝트를 맞이하면서 기획사의 대표님께 전화가 왔어요. 고스란히 옮겨 드릴게요. “(정태춘)형이 영화를 찍겠다는데요?” 하시길래 저는 “정말이요?” 미안한데, 제가 전화 좀 해 볼 게요.”, “형 영화 찍을 거야?” 이렇게 이야기가 흘러갔습니다. 의외였죠. 제작을 의뢰받아서 이 영화를 출발하게 되었고요. 제작자로서 능력이 너무 없어서 어쩌다 보니 감독이 제가 되었습니다.(웃음)
이동진: 물론 영화를 많이 알고 계신 분이지만, 연출은 또 다른 영역이지 않습니까? 영화가 굉장히 정석적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물 흘러가듯이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엔 40년 간의 한국 역사가 흘러가는데요. 2시간 안에, 그것도 노래를 28곡이나 넣어서 만들려면 정말 선택해야 할 부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연출을 하면서 어떤 원칙을 갖고 시작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고영재: 첫 번째로, 이 분은 살아 계십니다. 사후 다큐멘터리가 아니니 남의 입을 빌려 평가를 섣부르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스스로를 평가할 성정도 아니시고. 그래서 섣부르게 말을 빗대어 평가하는 건 지양하려고 했습니다. 반대로 관객이 평가할 수 있는 여지를 어떻게 담아낼까 고민했습니다. 많은 활동을 하셨죠. 시집도 내셨고 사회적인 활동도 하셨지만, 그 중심은 음악과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1집부터 11집까지 적어도 한 곡씩 꼭 실었습니다. 노래를 통해 이 분의 변화 과정 내지는 공통적인 면모, 고민. 이러한 것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는 음악이 주인공인 영화이구나. 그 속에 정태춘이 있구나.’ 그렇게 느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과 소원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너무 이성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온전하게 받아들인다면, 여러분들이 온전히 평가하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작업을 했습니다.
이동진: 영화 속에서 선생님의 지인 분들이 이야기해주신 부분이 도움이 되었는데요. 이런 영화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이 아카이빙일 것입니다. 방대한 자료를 모아야 할 텐데요. 정태춘 선생님은 학자 같은, 굉장히 꼼꼼하고 섬세한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데 상당 부분은 실제로 정태춘 선생님이 가지고 계셨던 자료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정태춘: 기초 자료 정도죠. 양은 많은데 다 영화가 담기지는 못했습니다. 공연 포스터, 티켓, 공연과 관련된 인쇄물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연 영상도 그렇고. 문화 철도 운동하면서 만들었던 수많은 문건들 등. 사실 노래 만들기를 접으면서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이 자료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모아 왔는데,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버리려고 했죠. 그런데 박은옥 씨가 말렸어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도 적지 않았지만 다시금 수집해야 할 것도 많았죠. 우리 자료만 가지고 작업을 하면서 문헌을 분류하는 전문가를 모셔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드신 분이 우리 영화 PD님이시죠. 그분이 제 일대기에 관해서는 저보다 더 잘 알 것입니다.
이동진: 박은옥 선생님도 사진전을 하셨지 않습니까? 영화에서 너무 멋진 필체도 보여주시고요.
박은옥: 제가 예전에 사진 공부를 했었습니다. 필름으로 현상 인화까지 했었는데, 사무실에 인화할 수 있는 조건이 안 되어서 접었어요. 정태춘 씨는 디지털카메라가 나오면서 필름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그 즘에 찍기 시작했죠.
이동진: 까마득한 후배라는 말씀이시죠?(웃음)
박은옥: 노래를 안 만들겠다고 하면서, 노래로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 문을 스스로 닫아 버리니까. 자꾸 다른 길로 사진을 찍거나 가방을 만들거나… 그런 시간을 오래 보냈죠.
이동진: 뮤지션의 일대기를 다루는 영화는 보통 뮤지션이 만들었던 노래에서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고요. 제목을 뽑는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인데요. ‘아치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뽑으셨고. 영화에서 ‘아치의 노래’는 특별하게 다뤄집니다. 정태춘 선생님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그것을 ‘아치의 노래’로 대표하고 싶으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영재: 유효한 절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절망의 시간이 짧지 않았고. 그때의 절망들이 지금 온전하게 극복이 되었나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97년도 IMF 이후에 갈 길을 잘 못 잡고 있습니다. 제가 옳다고 느꼈던 이념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 버렸고, 현실에 맞지도 않고. 과연 어떤 삶의 방향이 올바른 것인가? 슬프고 절망스러운 부분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부분이 여전히 저에게 있고요. 제목을 희망적인 단어나 ‘시인의 마음’, ‘떠나가는 배’, 아니면 그저 ‘정태춘’이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정태춘이 절망했던 이유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공감이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아치의 노래’로 정했습니다.
이동진: 그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정태춘: 잘 골랐다고 그랬죠.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정태춘 선생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이미지가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초기, 그러니까 5집 정도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정태춘 선생님의 이미지는 굉장히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아름다운 노래들을 떠올릴 수 있고요. 80년대 후반부터는 실천을 중요하게 여기셨던. 선생님의 사회참여적인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영화를 보면서 조금 놀랐던 것이, ‘아치의 노래’를 부르실 때 이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고별 선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정동진 3’이 흐르는데 그 내용은 원시적인 사회를 희구하는 것 같은 거대한 노래이지 않습니까?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선생님의 두 가지 모습이 아니라 또 다른 것들이 영화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박은옥: 이 영화에 노래들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죠. 정태춘의 초기 노래만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시고, 정태춘 씨가 민주화 세대, 386세대와 현장에서 같이 했던 노래들만 기억하는 세대가 있는데요. 정태춘의 입체적인 노래를 들려주지 못하는 것이 동료의 입장에서 늘 안타까웠거든요. 그런데 영화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어서 제일 기뻤습니다. 저에겐 정태춘의 아내라는 입장과 44년 음악을 같이 한 동료로서 입장이 있고요. 이 영화는 제가 거의 10번 이상 본 것 같아요. 편집이 끝나고 감독님이 보내주셔서 봤고, 작년 몇 차례 영화제 상영 시에도 정태춘 씨는 안 봤고요, 저는 열심히 봤습니다. 올해 마지막 편집이 끝났다고 하셔서 그 편집본을 또 봤고. 밤에 정태춘 씨가 잘 때 혼자 보기도 했고. 이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내가 왜 이 영화를 열 번 가까이 보면서 내가 객관적으로 이 영화를 보고 싶어서 계속 보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영화 속에 정태춘의 노래가 있어서 그 노래들을 자꾸 들으러 가는 거예요. 무대에서 저희가 라이브 하는 것과 영화를 통해서 보는 노래가 조금 다르더라고요. 나는 정말 정태춘이라는 뮤지션을 존경하는 ‘찐팬’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팬의 입장까지 세 가지 입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태춘: 흔히들 제 음악을 분류할 때, 초기 토속적이고 서정적 시기. 그리고 후기 실천적 시기로 구분합니다. 나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실 두 번째로 분류할 것은 제가 창작자로서 쓴 ‘아, 대한민국’ 하나예요. 직설적이고 거친. 하지만 그 뒤에 쓴 ‘종로에서’는 그렇게 거친 노래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뒤에 나온 노래들도 ‘아, 대한민국’과는 다르죠. 자기 성찰적이고 여전히 아웃사이더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죠. 그런데 사실 이후의 모든 곡이 ‘아, 대한민국’과 하나로 묶이는 것에 대해 조금 그렇습니다. 노래가 서정적일 수도 있고, 성명서 같은 노래가 있을 수 있고, 주변자의 성찰이나 독백과 같은 노래가 있을 수도 있고, 문학성이나 예술성에 치우쳐 작업하려는 결과물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우리 대중음악 시장에서는 그런 식의 개념화는 있지 않아요. 서정적, 전투적, 과격한 노래. 착한 노래. 이런 정도밖에 없어요. 좀 더 세분화되어서 우리 노래를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보면 풍부한 콘텐츠가 없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죠. 어쨌든 이분법으로 제 노래를 분류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박은옥: 아니, 초기의 노래나 성명서 같은 노래나 심지어 ‘아, 대한민국’ 조차도 시간이 지나서 들으니 정태춘 씨 특유의 서정성을 잃은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동진: 저도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1집부터 정태춘 선생님을 정말 많이 좋아했습니다. 저의 누나가 두 분을 정말 좋아하셨고요. 제가 어렸을 때 LP판을 듣다가 닳아서 똑같은 판을 살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1집부터 5집까지는 음반을 수십 번 반복해서 들어서 가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다 저도 대학을 들어가서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를 접했는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로서는 가사나 이런 방향에 대해서는 좋기도 하고 공감하고 지지하는 편이었지만, 음악적으로는 선생님의 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저도 어린 마음에. 그 이후 선생님에 관해서는 뉴스나 신문을 통해서 주로 보고 음악은 거의 못 들었습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뒤 우연히 이후 음반을 듣게 되었는데, 가사만 조금 다른 지점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음악은 여전히, 심지어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까 말씀하셨듯이 대중들의 오해가 있을 수 있고요. 무엇보다 그 부분을 영화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광주에서 굉장히 중요한 공연을 하실 때, 한 관객이 화를 내면서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러 온 것이지 당신의 이념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야’라고 말하며 퇴장하는 소란이 있죠. 선생님이 개의치 않고 노래를 하시고 관객들이 감동을 받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선생님은 수도 없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의 태도는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정태춘: 80년대 말 90년대 초 많이 활동할 때, 그즈음에는 인터넷이 그렇게 활발하지 않았습니다. SNS도 굉장히 낮은 단계였고요. 그래서 사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악플 같은 공격을 가장 적게 받은 사람이 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그렇게 노래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받아본 적은 없어요. 가끔씩 공연장에서 중간에 나가면서 환불을 받으신 정도예요.
박은옥: 참 재밌는 게, 저희가 2019년에 40주년 콘서트를 21개 지역에서 했었어요. 그런데 ‘5.18’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그 어떤 지역에서도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광주에서만 그랬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것까지 노래의 퍼포먼스인 줄 알았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셨어요. 공연장이 크니까 가까이 계신 분들은 그분의 말을 들었지만, 멀리 계신 분들은 노래의 연장선으로 아셨죠.
정태춘: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인가? 나는 아주 일부의, 소수의 혐오 말고는 누구로부터 위험하거나 거센 공격을 받은 적은 없어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연대하지만 나는 그런 공격을 심각하게 받은 적은 없어요. 15년 정도는 활동을 열심히 안 해서 그런지 모르지만, 조금 애매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누구에게 자극이 되었을까? 잘 모르겠습니다…
이동진: 이 영화의 가장 좋았던 부분이 아까 박은옥 선생님께서도 말씀하셨는데, 음악 다큐멘터리 저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좋은 노래가 30초 나오고 그러면 감질나고 더 듣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 몇몇 노래는 심지어 6분씩 나와요. 음반보다 더 길게 나오는 거죠. 2019년도 40주년 기념 공연도 영화가 굉장히 아름답게 담고 있지 않습니까? 마치 콘서트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죠. 사실 정태춘 선생님의 어떤 한 시기만 담기에도 벅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태춘 선생님의 음악과 삶을 모두 다루면서 그 속에 노래를 28곡이나 넣으셨어요. 감독으로서 아티스트에 대한 태도가 정해져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감독님의 그런 선택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고영재: 저는 제작 프로듀서 출신이어서 그런지 예술가적이진 않은 것 같아요.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요즘 정태춘 선생님이 ‘좋은 음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굳이 저도 ‘좋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굉장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그런 성정의 사람은 못 돼요. 관객의 심정으로 제가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 다큐멘터리를 봤거든요. 음악을 듣고 싶은데 안 나와요. 해외 음악계는 영상 자료가 많아서 아카이빙 자료가 계속 나와요. 우리는 자료가 없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이 영화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참고할 만한 작품이 없었어요. 아카이브 자료들과 저희가 찍어둔 소스들을 떠올리면서 노래를 들었어요. 그림을 그려본 거죠. 어떤 흐름으로 가야 잘 구성이 될 수 있을까? 팬데믹 때문에 영화의 작업 기간이 늘어났는데, 그 시간이 아니었으면 지금과 같은 구성이나 편집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동진: 이런 얘기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정태춘, 박은옥 선생님은 가요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꾸 과거형으로 생각하는데, 영화의 마지막에 인상 깊은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먼저 나이가 어려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지만 집회에서 선생님의 노래를 처음 들은 이수경 청소년 인권 활동가가 나옵니다. 두 번째로 수영 선수인 유나미가 5.18 관련 이야기를 하시고요. 마지막으로 루게릭 병을 앓는 분이 나옵니다. 이 세 분의 존재와 선생님의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선생님의 현재적인 의미를 감독님께서 탐구하신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고영재: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정확하게 저와 제작한 사람들이 생각한 바와 일치합니다. 현재성을 다른 유명한 사람들로부터 찾기보다는 관객들에게서 찾아보자는 의도가 명확하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 분을 만난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태춘: 감독이 굉장히 힘들었겠다 싶습니다. 욕심은 나는데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그럴 때 음악을 담는 것이, 또 자료를 찾는 것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뚝심 있게 나가셨죠. ‘우리들의 죽음’과 같은 노래는 사실 객석에서 끝까지 듣기 힘든 노래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노래는 불편하다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저도 플레이 시간이 좀 긴 것 같다고 물었는데, 감독님은 끝까지 가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자기 중심을 튼튼하게 잡고 있구나 싶었죠. 그리고 세 분의 등장은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일부러 찾아서 만든 건 아니었습니다.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인연이 되어 자연스럽게 들어오신 분들의 일화가 영화에 거죠. 영화적으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끝난 지점에 세 분이 툭툭 배치되면서 이 영화의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운이 정말 좋았죠. 운도 좋았고 편집도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아무리 두 선생님을 잘 아신다 해도 어쨌든 남이 바라보는 두 분의 일생이지 않습니까? 이 영화를 보시고 나서 새롭게 느끼셨거나 아니면 더 강화된 느낀 바가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정태춘: 박은옥 씨가 보조 출연자라고 스스로 낮추어 말하셨는데, 조금 미안하죠. 사실 저희 활동에 있어서 박은옥 씨가 미친 영향이 굉장히 크거든요. 창작 단계에서 노래를 가장 먼저 듣고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공연 멘트에 관련해서도 의견을 내기도 하고.
박은옥: 평소대로 얘기하세요.(웃음)
정태춘: 정태춘의 활동, 음악에서 박은옥 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영화에서 나온 것 그 이상입니다. 박은옥 씨 얘기하세요.
박은옥: 영화를 보면서 여러분들과 제가 다르게 느끼는 지점이 한 군데 있을 것 같아요. 아내의 입장이고 동료의 입장으로, 검찰에 끌려가는 장면 후 ‘정태춘은 오랫동안 노래 만들기를 그만두었다’는 자막을 볼 때마다 제가 눈물을 흘립니다. 저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그만두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보냈는지 잘 알아서 그 한 줄의 자막에도 볼 때마다 울컥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얼마 전에 감독님께 그런 얘기를 했어요. 이 영화가 만들어질 운명이었나 보다. 20년 가까이 노래 만들기도 그만두고, 방송 출연도 20년 넘게 하지 않다가 2019년 40주년 콘서트 때 20년 만에 TV 출연을 했거든요. 40주년 프로젝트 당시 너무 많은 분들이 정태춘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서 애를 쓰셨어요. 콘서트뿐만 아니라 학술 대회도 있었고, 미술인들이 헌정 전시회도 해 주시고, 책도 출간되고. 그러니까 정태춘 씨가 차마 이런 자리를 마다할 수 없어서 모두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시점에 영화 제의가 들어왔죠.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영화 후반에 나오는 세 분의 이야기가 저는 정말 좋거든요. 평생을 저희 얘기만 들려드렸는데, 사실 저희는 늘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어떨 때 정태춘의 노래를 옆에 두고 들으셨는지. 여러분들의 이야기가 참 궁금했는데 그렇게 우연처럼 세 분의 이야기와 만나서 감독이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진: 그러면 지금부터 여러분들의 질문을 제가 대신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목소리가 너무 좋으십니다. 정 선생님의 목소리가 깊은 울림과 힘 있다면 박 선생님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곱게 울려 퍼집니다. 두 분의 목소리가 닮아진 것 같기도 하고 노래를 듣다 보면 참 조화롭게 들리는데, 두 분이 연습하면서 이렇게 된 걸까요?”
박은옥: 제가 느끼기에 정태춘 씨는 젊었을 때보다 지금 목소리가 훨씬 멋있습니다. 나이 들면서 목소리가 너무 멋있어져서 우리 딸이 아빠의 지금 목소리로 젊은 날의 노래를 기타 들고 불러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나온 노래가 ‘사람들 2019’입니다. 저희가 연습을 많이 해서 그렇게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웃음)
이동진: “조계사에서 두 분을 뵀던 기억이 있습니다. 위안부 관련 노래로 기억하는데, 미발표 곡이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 미발표 곡들이 많을 텐데, 이런 곡들은 어떻게 처리하시나요?”
정태춘: 그런 많은 노래들이 있죠. 아마 얼마 지나면 없어지겠죠.
박은옥: 강제 징용자들에 관한 노래였습니다. ‘징용자 아리랑’이라는 정태춘 씨가 만든 노래입니다. 저도 참 좋아하는 노래인데 들려줄 기회가 없어서 참 아쉽게 생각합니다.
이동진: “선생님께서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과 연결 지점을 느낄 때가 있는지, 혹은 연민이나 하고 싶은 말들이 생길 때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태춘: 젊은 세대와 연결점… 없습니다. 연민… 글쎄요. 젊은 세대와 저희 세대는 너무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방식으로 젊은 세대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라고 할 수 없어요. 문명 자체가 다릅니다. 우리는 전통 사회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고 젊은 세대들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은 많이 하는데… 그런데 한편으로 그런 생각은 합니다. 나는 한 개인으로서 내가 태어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사회적으로 불행한 면이 있는 거죠. 내가 원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 그리고 그 속의 가치관들. 삶의 모습들. 여전히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는 거죠. 그걸 못 풀고 가는데. 또 젊은 세대에서 자기가 태어난 사회에서 갈등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그런 점에서는 연민이 있습니다.
이동진: 가요의 사전 심사 철폐를 가져와서 엄청난 변화를 이끈 장본인이신데, 그 판결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을 듣고 싶습니다. 또 지금의 가요계가 더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정태춘: 사전 심사가 위헌이라는 판결은 한순간에 이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전에 이미 국회에서는 헌법 개정 작업을 6개월 전부터 하고 있었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고. 절망적인 국면이 있었지만 막판에 분위기가 기울었기 때문에 깜짝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감사했죠. 그리고 지금 가요계에 관해서는 제가 잘 몰라요. 완전히 산업화된 시스템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개인의 상상력을 개인이 풀어내고 개인의 이야기로 만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상업적인 시스템 안에서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상품이죠. 물론 그 상품 안에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겠지만,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지 않고서 우리 가요계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고민하는 창작자가 있다면 우리보다 더 넓은 상상력을 가지고 노래를 써 내려갔으면 좋겠습니다.
이동진: 질문은 아니지만, 꼭 읽어드리고 싶어서요. “저는 그냥 정태춘, 박은옥 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장르는 다르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음악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더불어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아름다운 두 분에 대해서 알려주신 감독님, 제작자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셨고요. 마지막으로 질문 2개를 드리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계속 마지막이라고 하는데요.(웃음) 끝내고 싶지 않아서요. “정태춘 님이 영화 마지막에 자본주의를 비판하시면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 사회는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사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런 곳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이와 관련해서 혹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으신지. 또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존경하시는 국내, 해외 아티스트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정태춘: 아무 계획이 없고요. 그런 사회가 어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회에 살아보고 싶다. 그런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는 누굴 잘 존경하지는 않습니다.(웃음) 전폭적으로 빠져들 만한 사람을 제대로 만나지 못했나 봐요. 제가 좀 건방져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밥 딜런 가사를 쭉 봤어요. 평전, 자서전, 소설 이런 것들을 봤는데,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이 사람이 왜 미국 사회에서 그렇게 대단한 찬사를 받고 노벨상을 수상했는지 느꼈습니다. 탁월한 창작자죠. 그런데 제가 뭘 존경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음악을 듣습니다. 특별히 어떤 가사의 의미를 따지지 않고.
이동진: 박은옥 선생님은 어떤가요?
박은옥: 제가 중고등학교, 그리고 20대 초에 들었던 수많은 팝송을 정태춘 씨는 70이 다 되어서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사실 저는 아내라서 음악가 정태춘에 대해 얘기할 수 없는 게 참 많아요. 정태춘 씨가 천재라고 하면 아내가 칭찬을 한다고 받아들이셔서. 그런데 정말 천재 맞습니다.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재능이고요. 그리고 누구나 음악은 10대, 20대 때 들었던 것들이 평생 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따지면 저에게는 양희은 선생님이 저의 10대와 20대를 굉장히 풍성하게 해 주셨던 분이십니다. 정태춘 씨도 존경합니다.
이동진: 영화와 관련해서 인터뷰하신 걸 읽었는데, 박은옥 선생님께서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꼭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대신 하나의 조건으로 정태춘 씨의 재능을 갖고 태어나고 싶다고 하셨어요.
박은옥: 정말 꼼꼼하게 찾아보시네요. 며칠 전에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런데 정태춘 씨의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생을 가수로서 목소리로 표현했던 사람이에요. 정태춘 씨가 노래를 안 만들겠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재능이 이전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은 거예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대신 전해줄 수 있을 텐데. 그래서 다음 생에는 그러한 재능을 갖고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이동진: 수십 년간 함께 하신 분께 저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태춘: 저는 물론 천재가 아니고요. 욕심은 많았지만 잘 못 했던 사람이라… 여러 가지 면에서. 네.
이동진: 오늘 함께 하시는 자리가 영상으로 남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러면 정말 마지막 질문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공한 덕후이신 감독님의 최애곡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고영재: 저도 정태춘 님을 닮아서 최애 곡은 없습니다. 그때그때 다릅니다.
이동진: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세 분께서 정말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요. 짧게 소감을 듣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정태춘: 저한테 노래는 복잡한 이야기입니다. 창작자로서 그리고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제게는 노래가 있었고.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하고자 했었고. 그렇지만 무언가 하려고 했던 것들이 이 정도로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어떤 평가가 나올지 신경 쓸 나이는 지났고요. 모쪼록 우리도 그냥 역사 속 개인에 불과합니다. 관객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모르겠어요. 영화 시장 속에서 이 영화가 어떻게 소비되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복잡하긴 하지만 일단락은 되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박은옥: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금방 일어나지는 못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쉬이 좌석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그리고 어떤 감독님이 시사회를 보시고 나서 연대 노천 공연장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노래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셨더라고요. 예전에 저는 운동권도 아니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정태춘 씨가 도대체 무얼 하고 다니는지 보러 갔던 연대 노천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그곳에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고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영재: 다음 영화를 하긴 해야 하겠지만, 올 한 해는 일정이 없습니다. ‘아치의 노래, 정태춘’을 의미 있게 받아들여 주시는 관객들이 계시다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싶고요. 해외 동포 분들이나 극장이 없는 지역에서도 영화를 보고 싶다는 문의가 오고 있습니다. 흥행을 떠나서 두 분의 음악 인생이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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