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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태어나길 잘했어〉: 어릴 적 나와 화해하기

by indiespace_한솔 2022. 4. 26.

 

 

 〈태어나길 잘했어〉  리뷰: 어릴 적 나와 화해하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어렸을 때 나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또는 하고 싶을까? 최진영 감독의 <태어나길 잘했어>는 성인이 된 춘희(강진아)가 어느 날 번개를 맞고 살아난 후 어렸을 적 자신(박혜진)을 만나게 된다는 귀엽고 발랄한 설정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간다.

 

 

춘희는 어릴 적 엄마를 잃고 지낼 곳이 마땅치 않게 되자 친척집에서 쭉 자라게 된다. '친척'집이라고는 하지만 춘희는 그들에게 성가시고 번거로운 존재로 인식된다. 영화 초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들이 춘희가 어디서 지내야 할지 논쟁할 때부터 춘희의 움츠러든 존재감과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춘희는 몸도 제대로 펼 수 없고 따뜻함이 감돌지도 않는 다락방에서 혼자 지내게 된다. 미술시간 숙제로 수수깡 집을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만들어갈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난 춘희였지만, 그 집의 가족들에겐 인정받지 못한다. 다한증이 있는 춘희가 걸을 때마다 발에서 난 땀으로 발자취가 남게 되는데, 친척 가족들은 춘희의 땀자국에 혐오감을 느끼며 그것을 얼른 지워버리려 한다. 그런 여러 행동에서 춘희는 자신의 존재가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지워져버리는 절망감과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비슷한 또래의 딸이 수학여행에 갈 때 춘희는 수학여행도 보내주지 않는다. 몇몇 사정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한 다른 친구들과 학교에 남은 춘희는 외로이 책상에 누워 시간을 흘려보낸다. 이렇게 영화는 현재의 춘희와 과거의 춘희가 교차되어 나오면서 춘희가 학창 시절 내내 조용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어렸을 적 자신을 싫어할 수밖에 없었던 춘희는 문득 불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오른손을 불 속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집어넣는다.

 

30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춘희는 매번 마늘을 까서 사촌오빠(임호준)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가져다주는 소일거리로 돈을 모은다. 그런 춘희의 손에는 어릴 적 생긴 화상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다. 춘희는 돈을 조금씩 모아 다한증 수술에 쓰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집단상담센터에서 말을 더듬는 주황(홍상표)을 만나고 춘희는 전에 없었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된다. 아무도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해준 적이 없었던 춘희에게 주황과의 만남은 일상 속의 특별한 즐거움이 되어간다. 그러나 동시에 어린 춘희를 자꾸만 마주치게 되면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을 떠올리게 되고 점점 혼란스러워진다. 모아두었던 돈도 사기를 당해 잃어버리고 점점 자존감을 잃어가는 춘희는 결국 자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며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며 주황에게 이별을 고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나를 위로하고 외롭고 어둠 속에 있었던 것만 같은 시간을 보듬어줄 수 있을까. 씩씩하게 살아가는 듯 보였던 춘희에게는 아직 치유하지 못한 상처가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춘희의 존재에 화들짝 놀라 처음에는 부정하고 숨기려고 했던 춘희는 점차 그때 자신의 아픔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어른이 된 춘희는 불에 손을 집어넣으려는 어린 춘희의 팔을 막으며 그를 꼭 안아준다. 나를 자책하며 모든 걸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나와 화해하며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준다. 비록 더 이상 자신이 묵묵히 살아오며 지켜오던 그 집에서 살 수는 없게 되었지만 춘희는 그 집을 나오면서 더욱 단단해진다. 또 다른 행복이 자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목 어디론가로 가는 춘희의 뒷모습이 더 이상 안쓰럽거나 슬프지 않다. 천천히 기어가는 민달팽이처럼 춘희는 춘희만의 속도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모두 느끼지 못했을 감정이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꼭 안아주라고 말하는 따뜻한 영화다. 우리 모두 태어나길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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