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식당〉 리뷰: 복지, 두 글자에 숨은 틈새로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불 꺼진 누군가의 집 앞. 가로등 그림자가 새겨진 가파른 계단. 현관문을 열기 위해선 계단을 올라가야만 한다. 이 집의 주인 ‘재기(조민상)’는 계단을 올려다보며 그저 앉아 있다. 휠체어를 탄 채 왼팔을 떠는 재기에게는 닿을 수조차 없는 곳이다.
갑자기 닥친 사고는 재기에게 언어장애와 왼팔을 저는 외상을 남겼다. 누나 ‘은주(한태경)’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 앉고 나서야 걸음을 뗄 수 있게 된 오늘이 낯설다. 모든 것이 뒤바뀐 현실이 재기에게 가장 먼저 내민 건 다름 아닌 등급이었다. 경증에 가까운 5급 장애인. 말을 더듬지만 언어능력을 구사할 수 있고, 하반신에 마비가 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전화기 너머 상담직원의 목소리는 차갑다.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지도 못하며 중증 장애인을 우대하는 채용공고에 해당되지도 못한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재기가 기댈 곳은 사회가 마련한 제도뿐이었다.
새 출발을 꿈꾸며 장애인 취업 센터를 방문했던 재기는 5급 장애인은 우선 채용 선발 기준에 박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좌절한 재기의 곁으로 한 남자가 휠체어를 밀며 나타난다. 재기의 사정을 들어주며 공감해주던 남자, ‘고병호(임호준)’는 자신의 일정에 그를 기꺼이 초대한다. 언어장애가 없어도 2급을 소유한 그는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하여 재기와 함께 론볼 경기장으로 매주 향한다. 대신 콜택시 비용은 재기의 몫이다. 론볼 단체 회식 비용 혹은 고병호의 개인 술자리 비용도 재기가 부담해야 한다. 론볼 선수단으로 등록한 뒤 3개월 동안 운동한 기록이 있다면 기업에 운동선수로 취직이 되는 정보와 등급 재조정 행정소송 전문 변호사를 소개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고병호가 주장하는 형동생의 의리였다. 이제 돈이 없다던 재기에게 장애인복지대출을 알려주며 강행한다. 급기야 은주에게 받은 두 달치 월세까지 뺏고 소송이 기각되었지만 변호사 선임비를 요구하는 고병호는 우리 사회 속 기득권의 모습을 투영한다.
장애인복지대출, 장애인복지혜택. ‘복지’라는 단어 속에 숨은 틈새를 이용하는 소수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기득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제도의 모순이었다. 장애 등급에 따라 나뉘는 삶과 제도의 틈 속에서 재기는 외친다. 자신에게 주어진 등급은 잘못되었다고, 나는 중증 장애인이 되어야만 한다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이르게 하는 제도의 부조리함은 그들의 삶을 잘 알지 못했던 나조차도 그 목소리를 듣게 한다. 아직도 재기가 법정에서 한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저는 지체장애 5급으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활동보조 서비스가 꼭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취직도 하고 돈도 벌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 콜택시도 꼭 필요합니다. 부디 제가 자립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끝말을 듣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법정을 메아리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등급을 재조정해달라는 말.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게 해 주기 위한 명목으로 만들어진 제도는 도리어 그 명줄을 끊고 있었고, 누군가는 침묵했다. 영화를 다 보고 두 발로 걸어 나가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얼마 전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출근을 하지 못한 교수님의 휴강 공지와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엇갈린 단어가 점철되어 하나로 향했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외쳐야 할 때다. 주인공 재기처럼 사고로 한순간에 휠체어를 타게 되었던 ‘정재익’ 감독과 함께 영화를 만든 ‘서태수’ 감독의 자리는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엔딩 크레딧의 새겨진 문구, ‘모든 재기의 자립을 꿈꾸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기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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