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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휴가〉 인디토크 기록: 하나의 장면을 위해 모인 단단하고 섬세한 편린들

by indiespace_한솔 2021. 12. 10.

 

하나의 장면을 위해 모인 단단하고 섬세한 편린들

 〈휴가〉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년 11월 19일(금) 오후 7시

참석 이란희 감독┃이봉하, 신운섭 배우
진행 배우 문소리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휴가에는 조립을 함의하는 장면들이 많다고 느꼈다. 주인공인 재복에게는 정지(停止)의 자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휴가 기간에도 가구 공장에서 원목을 가공하는 노동을 하고, 집을 정돈하며, 두 딸과 준영에게 꾸준히 식사를 권했다. 이 일상적인 행위를 분주히 함께 좇다보면 여러 마음들을 감각하게 된다. 상대에게 결코 마음을 놓지 않는 재복의 성실한 다정이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다. 종종 전화를 거부하기도 했던 재복은, 끝내 그들에게 다시 용기를 내어 회신을 한다. 외면으로 그치지 않고, 결국 모두를 대면하며 마치는 이 영화가 무척 좋았다. GV에서는 이 영화가 제작되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노력들을 쌓아올렸고, 세공하였는지 유쾌하고 자세히 담겨있다. 더불어 영화 뿐만 아니라, 예술이라는 매개체가 우리의 매일과 어느 정도의 밀도로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기뻤다.

 

 

문소리 배우(이하 문소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문소리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휴가라는 영화의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자 나왔고요. GV는 게스트로 늘 왔었는데, 오늘은 모더레이터를 하라 그래서(웃음). 잘 모르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 나누는 자리라고 생각하고, 마음대로 진행 한 번 해보겠습니다. 우선 휴가를 만드신 감독님, 배우님들 자리에 모실게요. 각자 소개와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란희 감독(이하 이란희): , 안녕하세요. 휴가를 연출한 이란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봉하 배우(이하 이봉하): 안녕하세요, 휴가에서 재복 역을 맡은 이봉하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신운섭 배우(이하 신운섭): 재복의 참 좋은 친구 우진이. 신운섭입니다.

 

문소리: 우선,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된 사연부터 조금 풀어볼까 해요. 물론 영화를 재미있게, 인상 깊게 본 이유도 있지만,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예요. 우리가 인연이 있죠, 감독님?

 

이란희: , 그렇습니다.(웃음) 1996년도에. 안 태어나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 1996년도에 제가 극단 한강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요. 거기서 저분(신운섭 배우)을 만났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1996년도에 교실 이데아라는 연극을 신입 단원들이 하게 됐는데, 그때 문소리 배우님께서 연구 단원으로서 공연을 같이 준비하시면서 1년 정도 같이 지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겨우 1년 보내놓고 GV를 좀 같이 해달라고 부탁을 드린 상황입니다.(웃음)

 

문소리: 그게 말이 좋아 연구 단원이지저는 그때 대학교 3학년이었는데요. 학교 써클 활동으로 연극을 좀 하다가 대학교 3학년이 되니까 내가 앞으로 어떻게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이 드는 거예요. 도저히 안 되겠다, 연극이라는 걸 제대로 한 번 경험해보고 진로를 결정해야겠다, 이대로 졸업할 수는 없다, 싶었어요. 저는 사범대 다녔으니까 그냥 임용고시 준비해서 학교에 가야 하는데, 임용고시 준비하기 싫었던 거죠. 그래서 기말고사를 재껴버리고 선배한테 극단을 소개해달라고 해서 극단 한강으로 들어갔어요. 극단에 가면 연극을 하는 줄 알았는데, 제가 했던 일은 편지봉투에 할인 티켓을 넣어 발송하는우편 취급소에 취직한 줄 알았어요.(웃음) ‘교실 이데아는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겨있는 창작극인데, 격렬하게 토론하시면서 씬을 막 만드셨어요. 제가 거기에 합류할 짬밥이 아니었죠. 저는 그냥 우편물 작업만 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마 악기 때문에 캐스팅됐을 거예요.

 

이란희: , 바이올린!

 

문소리: . 작은 연극이니까 악기들이 다양하게 나오기가 어렵잖아요. “할 줄 아는 악기들 다 얘기해봐.” 하시는데 피아노 같은 건 무대에 올릴 수는 없고. 기타, 멜로디언, 하모니카, 리코더 이러는데 제가 바이올린.” 이랬더니, 갑자기 부잣집 딸로 캐스팅이 된 거예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영광인데 같이 투입돼서 하나의 극을 창작하고 올리는 무대의 경험까지 하게 됐죠. 그 당시에 두 선배님은 대선배님이었고요. 그런데 제가 복학을 하고 극단을 나왔는데 두 분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란희: 그렇죠. 저희가 결혼식을 할 때 문소리 배우가 왔었는데, 그때 한창 박하사탕이 막 개봉하고 그럴 때였거든요. 그래서 하객들이 수군수군하면서 문소리 아니야? 문소리.’ 이런 상황이 있었습니다.(웃음)

 

<휴가> 스틸컷

 

문소리: 제가 연극을 대학로에서 처음 접했던 시절, 저와 뜨거운 시간을 함께했던 선배님들이세요. 장편 영화를 만들고 이 자리를 함께하게 되어서 저도 참 여러 감정이 드는 날입니다. 20세기 이야기를 하느라고 제가 주연 배우님을 너무 소홀히.

 

이봉하: 문소리 배우님 이야기 계속 듣고 싶습니다. (웃음)

 

문소리: 지금까지 연극 무대를 지켜오고 계셨던 거죠?

 

이봉하: , 중간에 포기도 했지만 그렇죠. 연극을 좀 오래 했죠.

 

문소리: 이 작품에는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이야기해 주시죠.

 

이봉하: 신운섭 배우님이랑 희곡 읽기 모임을 하고 있어요. 거기서 오디션 좀 보러오라고 하셔서 보러 가게 되었고, 영화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문소리: 벌써 이봉하 배우님의 연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감상을 남겨주셨어요. ‘너무 자연스러워서 몰입감이 컸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리를 잘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올라왔는데요.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영화 안에서 이 역할은 대부분 일하는 모습이잖아요.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이란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말없이 집안일을 해요. 노동을 모습을 그렇게 담아낸 샹탈 아커만처럼 이란희 감독도 이분의 노동을 너무 열심히 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속 일들은 원래 잘하시던 일들이세요?

 

이봉하: 요리 같은 경우는 요즘은 잘 안 하고 있는데, 예전엔 조금 했고요. 목공일은 영화를 통해 배우긴 했는데요. 책상 공장에서 몇 개월 일한 적이 있어요. 어쨌든 거의 다 배워서 한 겁니다.

 

문소리: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감독님의 디렉션인지 배우님의 흐름인지 모를 정도로 일을 해본 사람이라는 티가 났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에서도 집에서 무언갈 줍고 나가시는데요.

 

이란희: , 그건 배우님이 만드셨던 거예요. 우연히 껌 종이가 거기에 떨어져 있었는데 주우시더라고요.

 

 

문소리: 그렇게 자리를 끝까지 살피시는 모습이 일을 계속 해온 사람으로 보였고 노동의 숭고함이 담겨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노동과 부당해고라는 소재와 주제에 닿으신 계기가 금해요. , 우선 감독님은 원래 연극을 하신 배우잖아요. 낮술에서도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고요. 연출로 넘어오시게 된 과정도 궁금해요. 단편작부터 이 주제로 다뤄오신 것 같은데 쭉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란희: 일단 연출로 넘어오게 된 건, 제가 극단 한강에서 8년 정도 활동을 하다가 극단을 나온 오디션을 봤어요. 갑자기 그때 생각을 하니까 웃기네요.(웃음) 뮤지컬 오디션을 위해 노래 레슨도 받고 그랬거든요. 연습할 데가 없어서 한강 고수부지를 자전거 타고 가면서 노래 연습도 하고 그랬는데, 어쨌든 뮤지컬 오디션은 전혀 되지 않았고요. 그때 신운섭 배우가 저와 자기 프로필을 웰컴 투 동막골에 넣은 거예요. 그런데 저만 캐스팅이 됐어요. 부랑인으로 연기를 하게 됐는데, 영화를 보면 비중이 되게 작지만 사투리를 초반부터 배워야 했어요. 프리 프로덕션부터 쭉 영화에 참여를 하면서 영화 작업이 좀 재미있다고 생각했고요. 웰컴 투 동막골이 끝나고, 뇌절개술이라고 약간 희한한 독립영화가 하나 있는데요. 지금 상영 중인 영화 보이스를 만드신 김곡, 김선 감독님 작품이에요. 감독님들이 한창 실험영화를 많이 만드실 때였는데, 그 영화를 찍으면서 다같이 탄광촌에 가서 2주 정도 합숙을 하면서 연출들이 하는 걸 봤더니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차피 캐스팅되기가 쉽지 않으니까 내가 연출을 배워서 나를 캐스팅 하던지, 아니면 연출들이랑 좀 친해져서 캐스팅되든지 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한겨레 영화연출학교에 수강 신청을 했죠. 거기서 만난 동료 노영석 감독이 낮술을 찍게 되면서 제가 출연을 한 거고요. 그런데 제가 연기하는 걸 연출까지는 못 하겠더라고요. 그렇게 연출자로 단편을 몇 개 만든 다음에 신운섭 피디가 공연을 보러오라고 해서 갔더니, 인천 한 공원에서 노동자 밴드가 연주하고 있었어요. 몇몇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게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였어요. 악기 공장에서 전원해고된 뒤 일할 때는 전혀 치지 못하던 기타를 연습해서 밴드를 만들고 투쟁을 알리면서 공연을 다니셨어요. 제가 그 공연을 보게 되었고 너무 인상적이어서 메모를 해놨다가 장편 시나리오를 그 아이템으로 시작하게 된 거죠. 그렇게 장편 시나리오를 쓰려고 아저씨들을 찾아갔는데 다들 말씀이 많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만나려면 다른 매개체가 필요하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아저씨들이랑 단편 영화 네 편을 찍었죠. 네 개의 단편 영화 중 마지막이 천막이고요. 그래서 천막을 끝낸 후에 하려고 했던 장편 영화를 마무리해야겠다 하고 만든 것이 휴가가 되겠습니다.

 

문소리: 어느 인터뷰에서 휴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다른 방식의 시나리오를 여러 개 쓰시다가 지금처럼 바뀌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 과정도 궁금하거든요. 전에는 어떤 걸 기획하고 있으셨는지, 왜 이렇게 바뀌게 되었는지요.

 

이란희: 천막을 찍을 때까지는 장편을 어떻게 구성을 해야 할지 골격을 못 잡고 있었어요. 천막을 찍은 후 노동자들이 농성하는 길에서 영화를 상영한 적이 있는데, 영화가 좀 조용하거든요. 안 그래도 힘든데 조용한 노동영화를 보는 농성자들을 보니 , 여기는 빌리 엘리어트같은 게 필요한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노래도 계속 나오고, 장면도 버라이어티하게 편집되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그래서 노동자 밴드 이야기를 제법 신나고 굴곡있는 시나리오로 만들어봤어요. 꽤 오래 걸렸어요. 다 쓰고 투쟁 당사자들과 주변에서 연대하시던 분들께 시나리오를 보여드렸는데 좀 위험하다,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그들의 행동이 의도와 다르게 묘사될 수 있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결정적으로는 그 영화가 지금 휴가를 찍은 예산의 네 배 정도 든다고, 인디스토리의 한 피디님께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해주시는 바람에(웃음) 도저히 할 수 없겠다 생각했죠. 예산이 적게 들고, 그동안 취재한 것들을 버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휴가라는 영화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휴가> 스틸컷

 

문소리: 감독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신운섭 배우님께서 등장하시는데요. 관객분께서 이런 질문도 해주셨어요. ‘신운섭 배우님, 이란희 감독님을 영화감독으로서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실 수 있을까요.’ 객관적은 안되겠죠. 여러 해 동안 옆에 있었는데요. 주관적으로 한번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신운섭: 전 좋아요. 좋아하는 사람이고, 연출도 잘하시고요. 배우들을 잘 다룬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저도 영화를 몇 편 찍어봤으니 다양한 감독들을 만났는데, 연기를 경험하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잖아요. 이란희 감독은 배우를 잘 케어해서 장면을 가능하게 만들어내요. 같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언어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어 괜찮고요. 배우들을 잘 조련한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을까요?(웃음) 어쨌든 배우를 잘 끌어내서 연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천막이란 영화는, 원래 전문 배우들로 찍으려고 했지만 도저히 기성 배우들이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농성 현장에 계시던 분들이 그대로 연기를 하신 거거든요. 연기를 해보신 분들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서 놀라워요.

 

문소리: 프로듀서도 하면서, 배우도 하면서 저예산 영화를 끌어나가시느라 신운섭 피디님께서 굉장히 고생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신운섭 배우님, 목소리가 너무 멋지네요.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상하게 능글맞게 들려요. 연기를 잘하셔서 그런 건가요?’ 이런 질문도 있네요.

 

신운섭: 잘해서 그렇겠죠?(웃음) 사실 우진이를 연기할 때는 연출이 요구하는 것을 들으면서 열심히 했던 것 같고요. 나중에 스크린에서 반복적으로 제 모습을 보면서는 얄밉다. 정말 한 대 콱 쥐어박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동시에 저한테 우진이 같은 모습이 참 많구나, 그런 생각을 계속 하게 돼요. 재복이와 같은 마음은 요만큼 밖에 없고. 반성을 좀 하게 되더라고요.

 

문소리: 신운섭 배우님께서 반성을 하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20세기부터 신운섭 배우님과 이란희 감독님을 봐왔잖아요. 그런 말을 종종 하잖아요. 영화와 감독이 닮아있다고. 저는 휴가라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가 어떻게 이렇게 한결같지?’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영화를 보면 대부분 주인공들이 어떤 사건을 겪고 변화하는데 이 영화는 달라지지 않는 거예요. 그런데 이야기가 단단한 거예요. 그게 너무 신기했어요. ‘아니, 어떻게 꿈쩍도 안 하는 영화가 있나, 다들 들썩거리고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려고 난리인데.’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이야기를 강하게 전달한다는 것, 너무 뭉클하고 놀랍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 부분을 신운섭 배우님과 이란희 감독님께도 느끼거든요. ‘나한테 재복이 같은 모습은 요만큼 밖에 없구나라고 하신 게 잘 이해가 안 될 정도예요. 한결같으세요. (신운섭 배우를 가리키며) 20세기에도 저 모자를 쓰고 계셨어요.(웃음)

또 이곳에 참석하지 않으신 조연 배우님들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 궁금하다고 말씀을 남겨주셨어요. 두 딸을 보면서 저 아빠는 걱정 없겠네, 다시 가도 되겠네, 싶더라고요.(웃음) 딸들이 자기 할 말 잘하고 야무지고 정신도 똑바르고, 신체 건강해 보이고. 물론 둘째 딸이 밥을 잘 안 먹고 라면만 먹는 건 조금 걱정이 됐지만 딸들의 야무진 모습들도 인상적이었거든요. 가구 공장의 김아석 배우도 인상적이고요. 그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떠셨는지요.

 

이란희: 일단 큰 딸 같은 경우에는 공부를 잘하는 똑똑함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똑똑함을 가진 사람으로 하고 싶었어요. 김정연 배우가 그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요. 그리고 현장에서도 잘해줬어요. 둘째 딸 이승주 배우 같은 경우는 지금 키는 훌쩍 컸지만 아직 아이 같은 면이 남아있어요. 뭔가 벽을 치고 다 큰 사람처럼 하는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딱 그런 친구를 오디션에서 만난 거였어요. 현장에서도 잘했고요. 그런데 이 친구의 문제는 조금만 웃어도 너무 예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계속 웃지 못하게 했거든요. 패딩을 처음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보조개가 쏙 들어가게 웃는데 너무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웃으면 안 돼! 조금만 웃어도 너무 예뻐!” 이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는 자기가 가진 예쁜 모습들을 이 영화에서는 보여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작품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김아석 배우는 딱 정해진 시간에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삶의 패턴을 가진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았어요.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이 자기 삶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벽을 치는 캐릭터로 생각을 했어요. 그 벽을 치는 방식이 갑자기 야수처럼 변하는 걸로 생각을 했거든요. 오디션을 진행할 때 청년 노동자 역할로 가장 많은 분이 오셨던 것 같아요. 그중에서 김아석 배우가 되게 야수 같다고 해야 하나, 야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좀 있었어요. 김아석 배우는 어깨도 떡 벌어지고 눈이 되게 매섭기도 하고, 오디션 때 시종일관 카메라를 째려보면서 연기를 계속 하시더라고요. 같이 작업을 해보니 이 배우의 장점은 고민을 다 얘기를 한다는 점이었어요. 연기를 할 때 자기는 이 지점까지 가고 싶은데 영화 전체 구성으로 볼 때는 민폐인 것 같고, 그럼 계획을 갖고 와서 컨펌을 받는 거예요. 이런 것도 같이 이야기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문소리: 이봉하 배우님께서는 첫 장편 주연이셨죠. 부담감도 좀 있으셨을 것 같은데, 개봉하고 관객들의 반응이나 소감을 들으면 촬영할 때와는 느낌이 굉장히 다르잖아요.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으신지 개봉 이후 소감이 조금 궁금합니다.

 

이봉하: 부담감이 굉장히 컸죠. 부담감이 컸기에 반응이 놀라워요. 이런 반응이 있을지 예상을 못 했어요. 제가 해낸 것도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완성된 것이지만 뿌듯합니다. 좋은 반응이 많아서 앞으로의 제가 기대됩니다. (웃음)

 

문소리: 기대주, 유망주가 되셨습니다.(웃음) 감독님께 다른 장르도 연출 생각이 있으신지, 다음 작품은 어떤 장르로 생각하시는지 질문이 있었어요.

 

이란희: 저는 관객분들 반응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나도 다음에는 진짜 진짜 엄청나게 재밌는 거 만들 거야!’ 그런데 재밌게어떻게에 해당하는 거지, ‘무엇을 재밌게 만들 것인가. 무엇을 찾는 게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지금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있는데, 어쨌든 제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문소리: 이런 질문도 있네요. 휴가속에 감독님의 경험, 예전에 어려웠던 모습들을 볼 수 있는 연기 씬, 대사들이 있을지요?

 

이란희: , 휴가의 재복은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노동자 밴드에서 가장 실수를 많이 하시는 멤버분을 모티브로 한 거예요. 그분에 제가 실려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도 집에 들어서면 멀티로 일을 하거든요. 일단 빨래부터 돌리고, 청소기를 돌리면서, 그때쯤이 되면 또 뭐가 되어있고. 그런 방식으로 쉬지 않는 편이거든요. 체계적으로 많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스타일인데, 그게 저는 일머리라고 생각해요. 재복도 일머리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어요. 쉬는 날이 왔을 때 쉬지 못하고 그간 못한 일들을 일부러 챙겨서 하는 것도 저랑 좀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고요. 결정적으로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건, 제가 재복이를 그런 위치에 놓았던 이유, 그러니까 고공농성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밑에서 밧줄을 올려주는 사람으로 놓았던 이유가 제가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저는 항상 총대를 메고 고공에서 부르짖는 사람이 아니라, 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돕는 위치에 있었던 것 같아요. 재복의 모티브가 되었던 분은 항상 밥을 잘 챙겨주시던 분이었어요. 그 투쟁 현장은 그분이 단식을 하면서 13년 만에 정리가 됐어요. 그래서 사실 저랑 똑같다고 할 수는 없고 매우 위대한 분이시지만 그래도 휴가의 재복이 캐릭터에는 일정 정도 저와 같은 모습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소리: 도시락을 빨간 천 가방에 싸잖아요. 그래서 빨간 보자기 가방의 의미에 대해서 여쭤보시는 질문도 있거든요.

 

이란희: 질문하신 분이 약간 맥이 빠지실 수도 있는데 색깔의 의미는 없고요. 최대한 파란 하늘에 잘 보이는 색깔로 골랐던 거예요. 오히려 제가 숨겨놨던 의미는, 정말 처음 말씀드리는데요. 마지막에 날짜판이 1894로 바뀌잖아요. 일부러 동학혁명의 연도를 붙여둔 건데.(웃음)

 

<휴가> 스틸컷

 

문소리: 마지막 장면은 실제로 강남역에서 촬영을 하셨고, 실제로 고공농성을 하시는 분들이 계셨죠. 그 촬영현장이 어려웠을 것 같아요. 허가나 양해를 받는 것부터 실제 촬영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란희: 저희가 찾아가서 말을 꺼내는 건 어려웠지만, 허락은 금방 받았어요. 힘든 싸움을 하시면서 외부에서 마음을 같이 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손을 내밀었을 때 항상 잡아주시는 것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시기여서 더 그러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문소리: 연대의 방법으로 받아들이셨을 수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이란희: . 촬영할 때도 많이 도와주셨고, 농성 장면의 천막도 고공농성과 연관된 천막이었고, 지하철 앞에서 전단 나눠줄 때 그냥 떨어뜨리고 가시는 분들 있잖아요. 그 역할은 농성하시는 분들이 출연해주신 거였어요. ‘우리가 항상 나눠주기만 했는데 버리는 걸 해보네?’하면서 재밌어하시더라고요.

 

문소리: 어떤 인터뷰를 보니까 감독님이 예술 교육, 연극, 영화 등을 통해서 지역 시민들을 꾸준히 만나고 계시고 청소년, 어르신, 노동자 등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여자 중심의 연극·영화 작업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런 활동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란희: 극단 한강에 있을 때, 소재의 당사자들을 만나 워크숍 프로그램, 연극 활동을 통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희가 창작으로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고민하는 방식의 작업이 있었어요. 저는 숱하게 경험해 온 것이었고, 극단을 나온 다음에 연극 수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배웠던 것을 써먹는 상황이 되었죠. 이론을 가르치는 수업이 아니라 당신들의 문제를 꺼내놓고, 그것들을 극()화하고, 최대한 완성도 있게 만들어서 공연까지 가보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어르신들, 이주 여성, 청소년들과 함께 했어요. 제 창작의 소재가 생기기도 하고 그렇게 만났던 분들이 제 영화에 출연하기도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문소리: 제가 로카르노영화제에 갔을 때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 아워라는 작품이 상을 받았어요. 뒤늦게 한국에서 개봉하는 것 같은데. 그 영화에 네 명의 여배우가 나오는데 당시 영화제에서 네 명의 배우 모두에게 상을 줬어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도 연기 워크숍을 통해서 배우들을 만났고, 영화 출연자들이 원래 배우가 아니었어요. 연기 워크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전시켜서 작품까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아주 짧지만 약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코트디부아르에 세이브더칠드런이랑 같이 아이들이 학교를 갈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를 하러 갔어요. 아이들과 같이 있는데 너희들 많이 힘들구나, 학교에 못 가는구나. 우리가 도와줄게.’ 이렇게만 하고 오는 게 약간뻘쭘하더라고요. 학교에 갈 수 있도록 지원을 하면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었어요. 저는 연극을 만들어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옛날에 무대에 서본 경험과 학교 극회에 서봤던 경험으로요. 엄마가 학교에 안 보내줘서 싸웠던 이야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펐던 이야기, 의사가 되고 싶은데 학교에 못 가는 이야기. 이야기들을 듣고 연기를 짧게 시키고, 결론도 없이 마지막엔 다 같이 춤이나 춰!’ 그랬는데 너무 춤을 잘 추는 거예요. 무대가 화려하게 끝났어요.(웃음) 애들이 목소리도 크고,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박수를 쳐주고. 그 기억을 아이들이 오랫동안 간직했고, 너무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 생각이 나네요.

벌써 한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요. 전문 모더레이터가 아니어서 두서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마구 해서 정신 사납지 않으셨는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분들께 인사도 전하면서, 앞으로의 계획도 같이 한 분씩 들어보며 마칠까 합니다.

 

 

신운섭: 휴가가 이제 개봉한 지 한 달 되어가는데요. 저희가 인천에 살고 있는데, 인천에서 휴가를 보신 관객분들이 이 영화로 이야기할 게 많은 것 같다고 해주셨어요. 그래서 휴가에 나온 여러 갈래를 통해 21세기 삶의 풍경을 이야기 하는 시대담담이라는 릴레이 토크를 진행하고 있어요. 12월 인천에서는 그런 행사가 이어질 것 같고요. 그리고 휴가많이 알려주세요.(웃음) 그리고 이란희 감독의 활동을 보려면 유튜브에 작업장 봄을 검색하시면 됩니다. 모든 영상이 다 있습니다.

 

이란희: 예술 교육도 같이 하고 있어요.

 

이봉하: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사실 흥행에 부풀어 있었어요.(웃음) 관객이 만 명 넘을 수 있게 힘을 보태주시고요. 저는 124일부터 26일까지 물빛극장에서 연극을 할 계획이에요. ‘자명교 10대 교주’, 블랙 코미디 액션 극입니다. 휴가많이 사랑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란희: , 저는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이미 말씀드린 것 같고요. 제가 막상 영화를 개봉 해보니까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몰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전에는 단편영화를 만들어서 영화제에서 상영했고, 관객 수에 대한 부담이나 기대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장편영화를 만들어서 개봉하니까 그렇지 않더라고요. 네이버를 하루에 5~6번씩 들어가게 되고.(웃음) 이상하게 글을 써놓거나, 평점을 1점 주신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러면 왜 이러지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척하다가, 몇 시간 지나면 컴퓨터 앞에서 아오무슨 새끼’(웃음) 이러기도 하고요.

 

문소리: 다들 겪는 과정이에요. 저도 밤마다 영진위 통산망 들어간 적 있어요.(웃음)

 

이란희: 신운섭 피디님이랑 문소리 배우님이 통화하는 걸 옆에서 들은 적이 있는데 너무 욕심내지 말고 첫 번째 영화는 두 번째 영화를 찍어도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남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문소리: 제가 한 번 만들어봤다고, 그런 섣부른 조언을.(웃음) 죄송합니다, 선배님들.

 

이란희: 저는 평정심을 어느 정도 유지하는 캐릭터거든요. 그런데 저도 모르게 욕을 하고, 그렇게 되어서 평정심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해요. 너무 재미있는 것들의 유혹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최대한 이겨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객석에 모여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의 모습이 저는 너무 따뜻해요. 너무나 따뜻합니다. 독립영화도 많이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꼴랑 1년 정도 함께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면서 GV를 진행해주신 문소리 배우님께 진짜 감사드립니다.

 

문소리: 영화가 좋아서 온 거에요. 아무리 저랑 십 년 같이 있었어도 영화가 별로면 저 안 가면 안 될까요?’ 이럴 텐데요. 개인적으로 내 인생에 재복이 같은 뚝심이 필요하지. 너한테는 그런 신념이 있니.’와 같은 질문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기 때문에, 영화의 존경심으로 여기까지 온 거고요. 예전 인연은 1% 정도 작용을 했다고 볼 수 있고요.(웃음) 이 자리에 함께 해주신 여러분들께도 즐거운 시간이셨기를 바라고요. 오늘 밤, 재복 아저씨의 소세지볶음 같은 것과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하시면서 행복하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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