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가는 길〉 리뷰: 희망을 최종 경로로 설정하여 안내를 시작합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울지 않게 나를 도와줘” 앞선 문장은 영화 속 퍼레이드에서 겹겹의 목소리가 부르던 ‘다시 만난 세계’의 가사이다. 노래의 서사엔 너와 내가, 서로를 ‘변치 않을 사랑’으로 지켜주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자는 단단한 의지가 보인다. 혼자여서 더욱 헤맸던 상태에게 기쁜 ‘안녕’을 외치게 된 우리.
〈너에게 가는 길〉은 네 명의 ‘우리’를 목도하며 시작한다. 행진에는 아이의 커밍아웃 이후 손목, 옷, 피켓에 무지개를 경쾌하게 두른 나비와 비비안이 있었다. 그들의 아이인 한결과 예준도 함께였다. 이 영화는 4년의 경로를 우리에게 하나씩 꺼내어 안내한다. 특히 주인공 네 명 모두 화자로 등장해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다시 포개어진 매일의 기록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양쪽의 마음을 나란히 소개한 점은 이 영화의 탁월한 강점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체성에 대한 고백을 들었을 당시의 기분과 그 고백이 바깥으로 나오기까지의 고민, 아이가 원한 선택, 같이 마주하게 된 세계의 건조한 응답, 희망이 깃발에 물들어 팔랑이는 거리에 나란히 놓이기까지. 그들이 서로에게 가닿기 위한 걸음은 영영 지속될 듯했고, 무척 기뻤다. 나 역시 무수한 ‘너’와 깍지를 마주 잡은 후 절대 놓지 않겠다고, 약속을 꾸준히 삼키며 영화관을 나섰다. 우리의 힘과 사랑은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너에게 가는 길〉은 표정이 빼곡한 영화이다. 우연히 읽은 문장에서, 법의 판결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외치던 동성애 반대 시위의 음성에서 발견된다. 꼭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아도 낭독할 수 있을 만큼, 태연하게 가해하던 얼굴들. 그 발화는 따가운 흡인력을 머금어 닿은 이에게 결코 잊히지 않는다. 이 점을 분명 모두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혐오는 지금도 발산되고 있다.
우리는 여러 호칭으로 불리며 그 작은 음절로 서로를 기억한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명명에는 정체성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나의 상태를 온전하게 드러낼 수 없게 만드는 기이함. 그 태도에 내내 분노하게 되었다. 성별 정정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서류의 목록이 계속 타이핑되는 장면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극장의 모두가 호흡을 잠시 멈추었다. 그렇게 느꼈을 정도로 ‘나’의 존재 증명이 지난한 현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어떤 명명은 쉽게 발음하기도 어려운 곳. 나의 안위를 매일 걱정하게 되는 곳. 그렇지만 영화의 길 안내는 종료되지 않고 힘껏 전진한다. 네 명의 우리, 그리고 더 나아가 연대하는 이들이 지닌 유쾌한 다정히 관객을 동요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서로의 모습 그대로를 껴안는 방식에 관하여 자주 고민하게 되었다. 나비와 비비안은 그들의 아이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포옹을 건넸다. 한결과 예준도 행진 속 사람들에게 안녕을 건네고 맑게 웃었다. 상대에게 나의 체온을 나누는 행위는 커다란 마음을 교류하는 것과 같다. 대화하지 않아도 들리는 고백이 있고, 아마도 안는 그 찰나에 서로 느꼈을 터이다. 포옹의 자세가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 뿌리는 내가 만들어. (…) 가족의 지지가 없는 사람을 보면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 그 사람은 더 단단해졌을 테니까.” 이 대사는 듣자마자 울음이 펑펑 나왔다. 이 영화에서는 나비와 비비안이 한결과 예준에게 지지를 보냈지만, 가족이 지탱하고 있지 않은 상태의 사람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그걸 인지하고, 내가 나의 뿌리를 더욱 단단하게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주는 마음이 무척 고마웠다. 우리도 이제 기존의 무감한 표정을 찾아 절단한 다음, 새로운 세계에게 ‘안녕’할 수 있도록 분주하게 함께 해야 한다. 나도 그들처럼 사랑을 믿으며, 더 나은 길목으로 우회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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