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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보통의 우리, 우리의 2000`s-섹션 3 '무엇이든 알지 못하는 125' 무대인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21. 11. 11.

 

 

머뭇거린 움직임을 찾아 나란히 걷는 것

 보통의 우리, 우리의 2000`s 섹션 3 - 무엇이든 알지 못하는 125  무대인사 기록

 

일시 2021년 10월 31일(일) 오후 4시 20분
장소 인디스페이스

참석 박정범 감독
진행 김대환 감독(〈초행〉 연출)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해수 님의 글입니다.

 

 

 

125 전승철속 '승철'의 걸음은 분주하지만 고요하게 착, , 움직인다. 그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시점에서도 일상을 분명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의 끝 지점에서, 바람을 막기 위해 창문에 꼼꼼히 붙여뒀던 테이프를 마구 헤집어 뜯는다. 어쩌면 겨울의 추운 파랑을 정면으로 맞아서라도, 서서히 얹혀있던 갈증을 소화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내 장롱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장면까지 그의 횡단은 관객들에게도 분명한 동요를 준다. 실존 인물이었던 그를 영화에서 직조하며, 이미지를 드러내 내면을 외면화하는 것의 중요성을 처음 환기하게 되었다는 감독의 말이 인상 깊었다. 승철의 내면은 꼭 음성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내게 일렁일렁, 선명하게 건너왔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영화 속 주제를 인식하는 행위를 넘어 행동하는 이성이 필요하다는 문장은 행사가 끝난 후에도, 꼭꼭 삼켜보게 되었다. 바꾸기 위해 함께 횡단하는 힘은 생각보다 더 거대하고 단단하니까.

 

 

김대환 감독(이하 김대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박정범 감독님과 관객과의 대화 진행할 김대환이라고 합니다. 감독님,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정범 감독(이하 박정범): 안녕하세요, 125 전승철이란 단편을 연출한 박정범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김대환: 다들 영화 즐겁게 보셨습니까? 2000년 초반부터 2009년까지의 영화 세 편을 함께 상영한 건데, 극장에서 이 단편을 만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서 관객분들도 새로운 영화적 경험을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관객과의 대화는 박정범 감독님이 계시니까 125 전승철그리고 무산일기까지 같이 묶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요. 또 인디스페이스도 12월 이후에 다른 장소로 이전된다고 하니까, 개인적으로는 이곳에서 이렇게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마지막일 것 같아 공교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125 전승철은 대학교 다닐 때 봤어요. 교수님이 보여주셔서 수업 시간에 봤는데, 굉장히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직관적으로 놀랐던 건 연출과 배우가 같다는 사실이었어요. ‘저 배우 누구지?’하면서 영화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크레딧이 올라갈 때 감독님 성함과 같아서 놀랐었거든요.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감독님은 영화를 연출하실 때 배우까지 자주 하셨죠. 감독 겸 배우로서 굉장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게 감독님이 연출 겸 주연 배우를 했던 첫 번째 작품이신가요?

 

박정범: 2001년도, 제가 대학을 다닐 때에 처음 찍은 사경을 헤매다라는 영화부터 제가 직접 연출과 배우를 계속 해왔고요. 2008년도에 대학원 다니면서 찍었던 영화가 125 전승철인데요. 그 사이에 제가 연출했던 단편 영화가 스물 네 편입니다. 다른 감독 작품의 배우도 간간이 했었습니다.

 

<125 전승철> 스틸컷

 

김대환: (탄성) 감독님이 주연 배우를 하시고 연출하신 얘기는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고, 첫 번째 질문을 드려보자면 제목도 125 전승철이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 고인이 되신 전승철께 바칩니다.’라는 글이 나옵니다. 제가 알기로는 굉장히 각별한 친구 사이였다고 들었는데 그분과의 인연을 통해서 이런 영화도 만들어졌고, 이후에 단편의 연장선인 무산일기까지 만들어졌습니다. 감독님께 전승철이란 분은 어떤 존재였고, 그분이 어떤 의미였기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는지 관객분들께 설명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정범: 제가 대학 시절 체육 전공이었는데요. 그때 재외국민 전형으로 들어온 탈북 새터민 형이 동기였어요. 돈을 모아서 브로커를 통해 동생과 어머니를 북한에서 모셔왔죠. 그 동생의 이름이 전승철이었습니다. 전승철 씨하고 저하고 7년 동안 거의 동거하다시피 살아왔습니다. 그 친구가 온 해인 2002년도 초부터 2008년도 말에 세상을 뜰 때까지 인연을 계속 이어왔어요. 북한에서 형은 탁구 선수, 동생은 아이스하키 선수였어요. 그 친구가 이 곳에서 적응해가는 과정, 취직하고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이 시나리오가 나왔던 거고요. 그 친구는 위암으로 세상을 떴습니다. 2년 동안 투병을 했었거든요. 그 친구의 죽음이 저한테는 아마 영화를 계속 하는, 그러니까 영화라는 작업, 이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평생 어떤 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결심을 하게 만든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125 전승철이란 영화를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면 마지막 노래가 승철이가 직접 부른 노래거든요. 저희 집 소파에서 제가 직접 녹음을 했어요. 그 기억들이 있어서 제게 쉽진 않은데, 그 친구가 영화를 찍고 세상을 뜨고 나서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만든 영화가 무산일기였습니다. 그 친구를 배우로 해서 장편영화를 만들려고도 했었는데, 친구가 세상을 뜨고 제가 출연하여 영화를 만들게 됐어요.

 

김대환: 먹먹해집니다. 전승철 님은 탁구 선수로, 형은 아이스 하키 선수로 활동을 하셨다고 했는데요. 제가 낮은 상식으로 떠올려보자면 북한에서 아이스하키를 한다는 게, 왠지 이질적인 이미지거든요. 좋은 환경에 계셨을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오신 이유가 있으셨을지요.

 

박정범: 승철이 형은 아직 저와 잘 지내고 있는데요. 유복했죠. 평양 시내에 살고 있었고, 아버님 직업은 모르지만 어머님은 의상 디자이너를 하셨고요. 어느 정도 유복하게 자랐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형이 먼저 탈북을 하면서 기자회견을 했었어요. 그게 화가 된 거죠. 형은 남한 선교사를 통해 이곳으로 왔고 그 과정을 정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공표를 한 거죠. 그래서 집안 모두가 몰락하고 당에서 축출됐어요. 샛별마을이라고, 제 장편영화의 배경이 됐던 무산이라는 곳이에요. 탄광 마을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하고 남동생만은 빼와야겠다는 생각으로 형이 열심히 돈을 벌어서 데려왔죠. 행복하게 살게 해주기 위해 데려왔지만 밑바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국인 전형으로 들어왔지만 학업을 쫓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재외국민 전형으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취직이 거의 되지 않습니다. 취직 시험을 통과하기가 어렵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사관의 가족이거나 특수한 환경에서 지내던 분들은 여기 와서도 계급을 다시 획득할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의 학업 역량이 되는 거죠. 그런데 이제 노동자나, 그곳에서도 높은 계급이 아니었떤 사람들은 여기서도 또다시 노동자 계급을 걸어야 하는 거죠.

 

<125 전승철> 스틸컷

 

김대환: 2008년에 나온 이 작품을 ·북한이 단절되어 탈북인 분들이 생긴 것이니 우리나라만의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대학생 때 들었다가, 제가 얼마 전에 준비하면서 다시 봤는데요. 지금도 관통하는 이야기며 비단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지금 말씀을 들으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드는데, 자국에 계실 때는 부유하게 사시다가 사건의 계기로 몰락을 하게 되고, 형편이 안 좋아지면서 남한으로 넘어왔을 때는 모든 게 다 제로의 상태로 시작하는. 밑바닥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다른 나라도 이런 상황이 많잖아요. 몇 년 전부터, 난민이라는 이슈가 유럽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도 대화가 시작되고 논쟁이 되는 지점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와 무산일기가 전 세계 영화제에서 공개되었을 때 많은 각광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있구나라고 본 게 아니라 해외 관객, 평론가, 심사위원분들도 대한민국도 지금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구나하며 좋은 평이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해외 영화제에서 비슷한 사례를 언급하신 에피소드가 있으실지요.

 

박정범: 네, 김대환 감독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신자유주의 이후에 자본의 계급화가 가속화되면서 전세계에서 볼 수 있는 겁니다. 지금도 현실은, 백신 공급율이 어떤 국가는 10% 미만이잖아요. 이것만 봐도 자본에 의해서 모든 것이 독점화되고 무기화되며, 변방의 사람들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독일에서 찍으려는 영화도 시리아 난민에 관한 이야긴데요. 취재하고 조사를 하다보면 인식이라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무산일기, 125 전승철을 가지고 단편·장편 영화제와 해외에 나갔을 때 외국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많은 시간을 두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유럽도 이민자 세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독일에 광부나 의사, 간호사분들이 가셨듯 독일과 프랑스에도 이민자들이 있고, 그 이민자에 대한 영화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영화의 화두는 왜 이들이 화합하지 못하고, ‘주류 세계에서 그들의 계급에 의해 계속해서 차별 받는가에 대한 문제인데. 뭐랄까요. 무산일기가 가지고 있는, 125 전승철에서 보이는 버려진 자, 그리고 어쩌면 다다를 수 없는 나라에서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 그런 것들에 대해 연민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연민도 중요하지만, 사실 인식하고 행동하는 이성이 필요한 건데 거기까지는. 제가 세월이 지나 생각해보니 관조로서, 문화로서 우리가 향유하는 기호식품으로서의 영화, 그 안에서 상을 주고 동의하며 인식하는 단계에서 끝낸다면 어쩌면 문제의식이 부조리함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거죠. 그게 좀 아이러니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좋은 영화의 기준이라는 것이 기호로서 습득되는 호감도에서 머무른다는 것에 대한 위기감이 많이 드는 것 같습니다, 요새는.

 

김대환: 사회 고발이 담긴 영화라든지,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은데. 저도 감독님과 비슷한 생각으로 결과적으로 좋은 영화라고 칭찬받고 좋은 피드백을 받아도 거기서 머물게 되면 아쉬움이 남거든요. 커다란 반향을 일으켜서 정치권까지 이야기가 가게 되고 사회적 법안이 마련이 된다든지, 거기까지는 낭만적인 이야기다 싶을 정도로 회의적이긴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분들이 가장 소중한 것 같아요. 관객분들로 인해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메시지가 기록이 된다면 조금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걸어봅니다.

저희가 무산일기도 이야기하고 있는데, 안 보셨을 수도 있겠지만 보셨다고 생각하고 질문을 하겠습니다. 무산일기125 전승철, 캐릭터의 헤어스타일에 계속 눈이 가더라고요. 무산일기에서는 중요한 기점에서 인물이 싸악 이발을 하고 등장하는 상황이 있고, 125 전승철에서는 초반에 본인이 거울을 보며 가위질을 하기도 하고. 언급도 되죠. 형사가 머리가 그게 뭐냐며 묻기도 하는데, 두 영화 모두 이발이라는 행위가 큰 의미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의미였는지 관객분들께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정범: 〈125 전승철무산일기도 그렇고 이후에 제가 찍는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노력하는 지점이 있는데요. 관객에게 전달해야 하는 정보는 이미지, 말과 행동, 미장센으로 둘러싸여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어떤 설명을 한다기보다, 이미지 자체만으로 메타포가 돼서 잠재적으로 어떤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게 저에겐 늘 화두입니다. 그 고민이 아마 시작됐던 것이 2008년도에 만든 125 전승철이었어요. 정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탈북자 형들이 버려진 가전제품이나 가구들을 많이 주워왔어요. 충분히 쓸 수 있는 것들인데 왜 이렇게 버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 옷장을 가져왔을 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살자고 이곳에 왔지만, 이곳은 그들에게 관이 아니었던가. 조그마한 임대 아파트와 주워온 옷장, 이런 것들의 이미지를 하나의 메타포를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옷장을 그렇게 만든 거였고요. 헤어스타일 역시 사람들은 이상하다고 인식을 하잖아요. 하지만 전승철이란 사람한테는 머리 모양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이 영화는 이 친구에게 중요한 의식주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면의 동기가 변화했을 때 외면화 하는 방식으로요. 우연히 중학생들이 지나가는데 이런 머리가 유행이었는지 단체로 일자 바가지 머리를 하고 다니는 걸 보고, 저는 스타워즈에서 나온 다스베이더가 떠올랐어요.(웃음) 다스베이더가 사실 어렸을 때 아나킨 스카이워커였잖아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서 작은 변화의 기점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사람이 가질 수밖에 없는 옷이나 음식, 가구랄까요. 그런 것들을 이용해서 그들의 내면이 변해가는 모습을 찾는다는 것이 재미있고 저한테도 중요한 소재인 것 같습니다.

 

<125 전승철> 스틸컷

 

김대환: 시나리오적으로 접근한다면, 영화를 공부했던 입장에서 125 전승철은 서사라는 게 굉장히 약하거든요. 흔히 위기와 갈등도 있고 인물의 선택과 딜레마를 함께 조마조마하며 보게 되는 서사를 영화과 학생들이 배우는데요. 125 전승철에 그런 서사는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하루 일기를 옆에서 보는 느낌인데요. 그럼에도 이 영화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감독님이 계획하여 디자인하신 이미지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헤어스타일도 그렇지만 옷장을 이고 간다든지, 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들이 별거 아닌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강렬하고요.

다시 연기 이야기로 넘어와서, 감독님은 스물네 편의 단편을 만드셨고 장편에서도 주연 겸 감독을 하고 계시는데요. 양익준 감독님이나 해외의 많은 감독님들이 이런 작업을 하시죠. 그런데 제가 소문을 들었어요. 감독님은 어떤 중요한 신은 테이크를 마흔 번 넘게 간다고요. 마흔 번이 넘는 테이크를 감독님이 연기도 하고, 모니터링까지 같이 하셔야 되는 거거든요. 두 배의 시간이 드는 거잖아요. 캐릭터에 몰입해서 연기를 하다가, 모니터링을 할 때는 다시 연출자로 넘어와야 하고. 저는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셨습니까.

 

박정범: 제가 무산일기이후에 산다라는 영화를 연출했는데 그 영화에서도 주연이었습니다. 그때 한 번 제가 쓰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몸이 피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아팠다는 것을 자랑하는 건 아니고요. 많은 감독님이 다 똑같겠지만, 영화 현장엔 스태프와 배우분들 4~50명이 있거든요. 그분들이 사실 최초의 관객입니다. 그들이 현장에서 신뢰를 보내주고요. 숨소리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지 서로가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신뢰에 대해서 보답하기 위해서는, 뭐랄까요. 그냥 농부 같은 거죠. 우리는 눈을 뜨면 일을 해야 됩니다. (웃음) 김대환 감독님도 잘 아시겠지만 그러다보면 수확 철이 다가와 있고 영화가 만들어져 있죠. 제가 특별히 혹독하다는 이야기를 많은 분들이 하시긴 해요. 그냥 포기를 하면 쉽죠. 그런데 포기를 하면 제 동료들과 또 사랑하는 영화에 대한 배신을 하는 거기 때문에. 어차피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정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게 정답 아닐까, 하면서 끝까지 노력하는 거니까 요. 불가능하기 때문에 노력하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그 과정이 영화라고 생각해요. 사실 모두가 저와 한 편을 작업하고 나면 떠납니다.(웃음) 너무 혹독해서 떠나는데1년 후에 돌아옵니다.

 

김대환: 그분들도 쉬셔야죠.(웃음)

 

박정범: 네, 하여튼 제가 매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감독도 아니고 이제야 장편 다섯 편을 찍었는데요. 모든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많은 분들의 노력이 투여됩니다. 아무리 짧은 영화라도요. 그래서 그냥 다 같이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김대환: 물리적인 어려움을 말씀드린 것도 있지만, 사실 나의 연기를 모니터링 하면서 아쉽거나 괜찮은 점을 발견하는 게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드렸던 질문인데요. 감독님은 이제 시스템도 잡히고 체득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네요. 감독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였던 적도 있지 않으신가요?

 

박정범: 제가 해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적이 있는데요.(웃음) 저는 우선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고, 연출과 연기가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느 쪽이 더 좋아요라는 질문을 가끔씩 듣는데 저는 늘 똑같다고 대답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그때야 알았습니다. 작품은 우수상을 받았고, 저는 남우주연상을 탔는데 , 내가 남우주연상보다 최우수 작품상을 더 바라고 있었던 건가?’ 싶더라고요.(웃음) 연기보다는 연출, 연출보다는 작품의 의미를 더 인정을 받는 게 저한테는 더 중요하죠.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작품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남우주연상을 타는 것보다는 저와 같이 일했던 배우분들이 타는 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125 전승철> 스틸컷

 

김대환: 사족인데, 저도 초행이란 영화로 영화제에 갔는데 각본상을 받았어요. 그런데 그 영화는 각본을 없애고 찍은 영화거든요. 각본상을 주시니까 감사한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웃음) 감독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찰리 채플린도 생각나고 버스터 키튼도 생각이 났는데요. 그런 분들의 영향도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박정범: 중학교 때 처음으로 채플린 영화를 보고 정말 잠을 설칠 정도였고 계속 꿈에도 나왔어요. 비디오테이프를 몰래 꺼내서 보다가 부모님께 두들겨 맞고 하면서.(웃음) 영화라는 꿈을 꾸게 해준 게 채플린이었던 것 같고요. 기타노 다케시로 인해 연출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일본 영화가 수입됐을 때 제가 군대에 있었어요. 외출을 나가는 사람은 나가서 야한 비디오를 빌려와야 했어요. 비디오 가게에 갔는데, 헌병이 있더라고요. 선임들이 야한 비디오를 빌려오라 했지만 빌리면 헌병에게 걸려서 영창에 갈 것만 같은 위기감이 있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액션 영화, 선임들이 봐도 좋을 영화를 빌려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죠. 그때 딱 하나-가 보이더라고요. ‘일본 수입 영화 1. ‘핏빛 누아르’. 아직도 그 표지가 떠오릅니다. 이걸 가져가면 인정을 받겠다 싶어서 빌려 갔습니다.(웃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나-는 예술 영화입니다. 화려한 액션보다는 사실주의 영화기 때문에 견디기 힘든 영화거든요. 선임들이 한 대씩 제 머리를 때리면서 나가더라고요. 자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무한 반복으로 이 영화 보고 있으라면서요. 저는 그냥 계속 봤습니다. 할리우드 영화만 봐왔는데 이런 영화도 세상에 있구나알게 되고 전역 후 독학을 했죠. 영화도 찍고, 책도 사서 보고요.

 

김대환: 참 흥미롭네요. 비디오를 빌려오라던 선임들이 없었다면 감독님이 어떤 영화를 만드셨을까, 영화의 길을 가셨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각이 들고. 부조리함이 감독님에게 영화를 남겼네요 다시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125 전승철무산일기에 형사가 나오시는데요. 그분이 감독님의 아버님이세요. 산다에도 나오시고, 차기작에도 등장하십니다. 아버님은 생업이 따로 있으시잖아요. 주연은 감독님 본인이 하시고, 조연으로 아버님을 캐스팅해서 디렉션을 하신다는 건데요. 아버님을 꾸준히 캐스팅하는 이유는 무엇이신가요?

 

박정범: 저희 아버님이 지금 일흔 중반이신데요.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제 영화의 배우를 해주셨습니다. 당시 저는 체육학과생이었고 시나리오 쓰는 법도 책을 보고 배우고 카메라도 아무거나 사용했어요. 배우 오디션을 열 용기도 없었습니다. 배우들도 전화를 안 받고요.(웃음) 그래서 그때 단편영화들은 제가 출연하고, 제 친구들이 나오고, 제 아버지가 나왔죠. 그러면서 아버지가 연기를 할 때 즐거워하시는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사실 사춘기 때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방문을 걸어 잠그면서부터 대화가 없었던 것 같거든요. 그 이후부터 서로 마음을 터놓지 못했던 것 같은데, 영화를 만들겠다고 아버지를 찾고 매일 같이 다니며 찍다 보니까 뭔가 우정을 나누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지금도 장편 다섯 편에 모두 출연하시고. 배우죠. 워낙 잘하시고요. 제가 최근에 제작하고 지금 개봉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이라는 한일 공동 제작 영화에도 나오시고요. 어느날 계속 배우로 나오시는 게 괜찮으시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그 이야길 하시더라고요. ‘누가 나 사진 한 장도 안 찍어주는데 이젠 어디서든 내가 나온 영화를 틀면 내가 있잖냐. 가족들이 언제든 내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니.’ 좋아서 하는 거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래도 내 영화 동지가 한 명은 있구나.(웃음)

 

김대환: 정말 흥미롭네요. 약간 사소한 질문인데, 125 전승철초반에 옷걸이에 옷을 거는 전승철이 나오잖아요. 그때 옷걸이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쑥 내려가고. 어떻게 보면 뒤에 나오는 장롱과 같이 메타포처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디테일한 상황인데요. 감독님의 연출이신가요, 아니면 찍다 보니 운이 좋게 나온 걸까요?

 

박정범: 승철이랑 저랑 영화를 만들려고 했는데, 다들 아시겠지만 독립영화는 어디서 돈을 주는 게 아닙니다. 1년 중 6개월 정도는 막노동을 해야 했고요. 그때는 모두가 가난한 나이잖아요. 승철이 삼십 대 초반까지 제 영화의 스태프를 많이 해줬고, 배우로도 나오고 저에게 촬영도 배운 영화 동료였습니다. 진짜 영화에 나오는 생활을 했어요. 어느 날, 둘의 옷을 걸어놨더니 계속 행거가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그 친구 옷은 다 개어놨죠. 그랬더니 친구가 자기 옷은 왜 걸어주지 않냐는 거예요. 차별이 아닌데.(웃음) 그래서 또 걔 옷을 다 걸어놨더니 행거가 무너지는 거예요. ‘참 재밌네, 이걸 한 번 써보자했습니다. 턱걸이하는 거라든지 달걀 삶아 먹는 거라든지, 그 친구와 살면서 진짜 있었던 일상이었습니다. 달걀은 완전식품이잖아요. 금세 먹을 수 있으니까 삶아서 먹고 얼른 일을 나가고. 그게 뭔가 생존하기 위해 산다는 느낌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을 즐기면서 산다기보다는 생존하는 느낌이 강조되길 바랐습니다. 이 친구가 남한에 정착하기 위해서, 취직하기 위해서, 보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상의 단초가 그런 것들로 쌓이길 바랐던 것 같습니다.

 

 

김대환: 역시 디테일한 연출이었네요. 아까 지나가는 말씀으로 제작하는 영화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근황을 관객분들께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정범: 일상을 사는 모든 분들이 지금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드시잖아요. 영화인들도 마찬가지로 지금은 모두가 수행의 시간인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 쓰고 영화를 준비하는, 준비의 시간인 것 같고요. 저 역시 그렇게 지내고 있고. 2년 전 이시이 유야 감독이라고, 제 친구인 일본 감독과 한국에서 찍은 영화가 있습니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이라는 영화입니다. 오다기리 죠, 이케마츠 소스케, 최희서, 김민재 배우가 나오는 한·일 합작이거든요. 그게 1028일에 개봉하여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습니다. 차기작은 한국·독일 합작 프로젝트로 독일 감독 한 분과 공동 연출을 하기로 했고, 제가 직접 제작하게 되었어요. 이번 달 말에 독일에 가서 시나리오 뒷부분을 쓰면서 난민분들 취재를 하고, 작은 바람이라면 내년 여름에는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대환: 여러분, 지금 핸드폰으로 당신은 믿지 않겠지만예매하십시오.(웃음) 엄청 좋은 영화입니다. 125 전승철영화를 배우는 학생이라면 꼭 봤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가 이렇게 상영이 되어 굉장히 뜻깊습니다. 앞으로도 기억에 남는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오늘 방역 수칙을 유지하면서 여기까지 와주신 관객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독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박정범: 네, 인디스페이스는 정말 소중한 곳입니다. 저 역시 나눔자리를 하나 샀는데요.(웃음)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영화를 많이 보러오시는 게 인디스페이스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이렇게 서울 한가운데에 있어서 너무 좋은데, 12월 이후로는 옮기신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시려면 서울 가운데에 있는 게 좋으니까요. 그래도 위드코로나가 되면 많이 와서 영화 봐주시고, 저희도 힘을 내서 영화 계속 만들고, 그렇게 세상이 좋아졌으면 좋겠네요. 와주셔서 감사하고요. 극장에서 또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대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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