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나이 선녀님〉 리뷰: 그 많던 선녀들은 어디로 갔을까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에이, 이제 그런 거 할 나이는 지났지.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스스로 생각했을 말에 파장을 일으키는 한 선녀님이 있다. 선녀님은 아침에 일어나 소들에 여물을 주고 축사를 치우고 나무를 올라 감도 따고 택시를 타고 산 아래 학교에 한글을 배우러 간다. 하루가 24시간이어도 모자랄 거 같은 스케줄을 거뜬히 해내는 임 선녀님(‘임선녀’)은 올해로 68세의 꽃다운 나이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한창나이 선녀님>은 선녀님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정말 제목 그대로 선녀님은 뭐든 할 수 있는 ‘한창일 나이’다. 평생 일만 하며 돈을 벌었던 선녀님은 그 돈으로 택시를 타 한글을 배우고 또 숙제를 한다. 밤 늦게까지 불을 켠 채 공부를 하더라도 다음 날 아침 어느새 축사를 치우고 여물을 준다. 산은 그 과정을 사계절로서 묵묵히 함께한다. ‘선녀’라는 이름과 더불어 어우러지는 풍경은 정말 동화 속 산신령이나 나무꾼과 선녀가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절경을 선사한다. 하나 다른 점은, 이 선녀님에게는 나무꾼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나무꾼 없이도 선녀님은 소를 돌볼 수 있고 밥을 할 수 있고 김장도 할 수 있으며 나무도 탈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다. 나무꾼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동화 속 선녀가 아닌, 선녀가 그곳에 있었기에 동화 속 신비로움이 느껴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 선녀님의 일상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16살에 시집을 오기 전부터 소를 키웠던 선녀님은 이제 소와 축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한 해가 갈수록 달라지는 몸에 소들을 보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몇 달 전 태어난 송아지와 꽤 오래 함께했던 소들은 커다란 트럭에 실려 할머니의 눈앞에서 떠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별이 찾아온다. 초등 학력을 인정해주는 교육 수련장의 졸업식이 성큼 다가왔다. 선녀님은 학우들과 같은 졸업식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하나의 글을 낭독한다. ‘
남들 다 하는 공부는 그림의 떡일 뿐. 나는 소처럼 일만 하며 농사를 배웠습니다. 어른들은 잘한다며 칭찬을 해주었지만 무언가 내 가슴 속 응어리가 혹 덩어리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선녀님은 평생 농사를 하며 벌어 둔 돈으로 매일 아침 택시비 26,000원을 지불하고 학교에 출석했다. 모두 제각각의 사연을 가진 열 명 남짓의 다른 선녀님들이 모여 하나의 꿈을 이뤄낸 결실을 맞는 순간이었다.
이별의 끝에는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다. 선녀님의 졸업식과 소와의 이별은 곧 오래 살았던 집과의 이별까지 이어졌고 다시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선녀님은 이제 깊은 산 속 높은 터에 아주 좋은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매일 아침 축사 대신 공사장에 나가 톱질과 못질을 하고 판자를 나르며 건축 인부들과 커피를 나눠 마신다. 감기 몸살에 앓아누워도 괜찮다. 몸이 나으면 다시 일어나, 공사장에 나가 집을 함께 짓고 먼저 떠난 남편의 안부도 묻고 오며 하루를 일생의 한 부분으로서 살아가면 된다. 배우지 못하여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냈다던 선녀님은 오랜 바람인 한글을 배우며 앞으로도 살아갈 좋은 터전을 가꾸는 데에 나아간다. 엔딩 크레딧 속 한글 교육원 출연자 ‘이 선녀’의 이름을 보니 수많은 선녀들이 궁금해졌다. 제 이름 대신 아무렇게 불리었던 아무개들은 하늘로 잘 올라가자는 뜻으로 선녀가 되었다. 그 수많은 선녀는 어디로 갔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도, 그리고 우리도 꿈을 꿀 수 있고 뭐든 열심히 시작할 수 있는 한창나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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