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들 〈좋은 빛, 좋은 공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년 5월 2일(일) 오후 3시 참석 임흥순 감독 | 한강 작가 진행 이동진 영화평론가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임흥순 감독의 〈좋은 빛, 좋은 공기〉는 광주의 5월과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5월을 연결 지으면서 두 도시의 서로 다른 시공간을 겹쳐보고 서로의 역사를, 아픔을 보듬는다. 이를 통해 국가폭력에 의한 아픔의 역사를 보편적 의미로서 담아내며 현재 진행 중인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에 대해 말하며 끝맺는다. 이동진 평론가의 진행으로 임흥순 감독, 그리고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가 함께 참석하여 이야기 나눈 〈좋은 빛, 좋은 공기〉 인디토크에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태도를 말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이야기는 피할 수 없고 마음에 다가온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목소리를 잃어버린 혼을 대신하고 위로하는 예술가로서의 책무를 이야기하는 이 날의 인디토크를 통해 2021년 5월의 우리에게 다가온 영화 〈좋은 빛, 좋은 공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이동진 평론가(이하 이동진): 오늘 이곳에 걸어오는데, 빛도 너무 좋고 공기도 좋아서 영화 제목 ‘좋은 빛, 좋은 공기’가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들뜨고 다른 한편으로는 처연해지기도 했는데요. 이번 주 개봉을 맞이해서 감독님께서는 바쁜 일정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어제는 또 광주와 전주에도 다녀오셨다고요. 지금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임흥순 감독(이하 임흥순): 지금 〈좋은 빛, 좋은 공기〉를 개봉하고 〈포옹〉이라는 작품도 전주국제영화제에 상영하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개봉 전에 시사회를 몇 차례 했습니다. 광주 시사회도 진행하고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의미의 시사회도 했는데, 그때 좀 심정적인 어려움을 느꼈거든요. 광주 분들을 대상으로, 영화에 참여해주신 분들을 대상으로 보여드릴 때는 5월의 트라우마를 꺼내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고, 이틀 전 미얀마 분들이 오셔서 미얀마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실 때엔 듣는 것만으로도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실을 두고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게 약간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또 미얀마와 광주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영화가 갖는 역할이 또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동진: 한강 작가님, 특별히 함께해주셔서 굉장히 감사드리고요. 영화 보시고 나서, 또 5월이기도 해서 많은 생각이 드셨을 것 같습니다. 느낌을 나눠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한강 작가(이하 한강): 저는 이 작품이 영화가 되기 전에 투 채널로 만드신 영상을 전시를 통해 봤거든요. 2018년 10월에 봤는데요. 2년 반 정도 지난 후에 영화의 형식으로 아주 많이 달라져 있어서 그간에 이런 작업을 하면서 지내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물론 5월이니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죠. 또 여러분은 방금 영화를 보신 직후일 테니까 어떤 마음이실지 궁금하고 그렇습니다.
이동진: 감독님은 이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한강 작가님에게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보시고 조언을 구하시기도 하셨을 거 같은데 그런 내용을 말씀해주시면 어떨까요.
임흥순: 이 영화의 시작을 말씀드리자면, 저의 첫 장편 〈비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제주 4·3 항쟁을 다룬 작품인데요. 이 작품이 2013년도에 개봉을 했어요. 개봉한 직후에 광주에서도 상영하고 오늘과 같은 관객과의 대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 〈비념〉을 보신 관객분이 광주도 이런 시선으로, 민초, 민중,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작업을 해줄 수 없겠느냐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를 시작으로 그 해 광주트라우마센터에 방문해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을 비롯해서 다른 작품을 진행하면서 초기 리서치까지만 진행하고 중단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도에 한강 작가님과 같이 전시 초대를 받았어요. 2012년쯤부터 알고 지내던 큐레이터분이 〈비념〉, 〈위로공단〉도 보시고, 또 한강 작가님이 광주비엔날레에서 진행하신 프로그램도 보시고 소설도 읽으면서 저희 둘이 뭔가 같이 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렇게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작가님을 만날 당시에 제가 아르헨티나국립미술관에서 한국문화원이 기획한 전시에 초대받아서 가게 됐는데요. 그때 한강 작가님께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드렸더니, 작가님은 4~5년 전에 방문하셨다고 하시면서 오월광장이나 오월광장 어머니회 이야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저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한강 작가를 만나게 되면서 이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아르헨티나에 가서 어머니회 만나서 인터뷰도 하고 목요일마다 진행하는 오월광장 시위도 두 차례 보면서 자연스럽게 광주의 여성들을 떠올렸고요. 갔다 와서 오월어머니집 관장님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이 한국에서 작업을 시작하게 된 시점이었습니다. 좀 더 이어서 이야기를 드리자면, 오월어머니집을 찾아갔더니 어머님들이 다 안 계시더라고요, 전남도청 복원농성장에 가 계신다고. 그래서 농성장을 찾아가서 복원의 문제,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고요. 또 진행을 하다 보니 아직도 찾지 못한 행불자(행방불명자)의 문제도 컸고요.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여성, 복원, 발굴 이렇게 주제를 찾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강 작가를 만난 것이 이 영화를 다시 시작하게 된 큰 역할이 되었습니다.
이동진: 제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깊숙이 한강 작가님이 얽힌 이야기네요. 2018년에 또 작가님이 이 영화를 보셨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이번에 달라진 부분을 확인하게 되셨다고 하셨는데, 조언까지는 아니더라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품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주셨을 거 같아요. 어떤 말씀을 해주셨는지 기억이 나시나요?
한강: 먼저 같이 전시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조금 더 말씀을 드리자면, 제가 2016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최빛나 큐레이터 선생님과 대담을 했어요. 그때 광주 비엔날레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큐레이터들이 있었는데 그중 미국의 '카네기 인터내셔널'이 있었던 거죠. 그때 제가 『흰』이라는 책을 냈고 그 책을 위해서 했던 퍼포먼스가 있었어요. 『흰』이라는 책은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언니가 나오는 소설인데요. 그 언니를 위해서 옷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했었어요. 그것을 보고 큐레이터분들이 이듬해에 연락을 해서 전시에 참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어요. 혼자보다는 임흥순이라는 작가와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 때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감독님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을 할지 찾아갔어요. 나중에는 김민경 PD님(〈좋은 빛, 좋은 공기〉 프로듀서)이 하도 답답하니까 오셔서 어떻게 할 거냐고 마감도 세워주시고 진척에 도움을 주셨는데요. 둘 다 성격이 이래서,(일동 웃음) 그냥 기존 작업 이야기도 하고 먼 산 바라보고 했어요. 감독님은 『소년이 온다』를 읽으신 상태였고, 그러면서 나온 이야기가 광주 이야기와 세월호 이야기였어요. 문인들이 하는 304낭독회 이야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침 아르헨티나에 간다고 하셔서, 제가 2013년 4월에 아르헨티나를 갔는데요. 그때 한창 『소년이 온다』를 쓰고 있을 때였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한국의 맞은편에, 지구를 뚫고 나가면 뭐가 있지, 아르헨티나가 있어,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어’하고 생각해왔고, 『소년이 온다』의 자료를 조사하면서 국내외 국가폭력 자료를 봤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고요. 아르헨티나에 가면서부터 거울 저편으로 가는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울 저편의 겨울’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연작을 썼고 시집에 열세 편을 추려서 실었어요.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가서는 지구 건너편에도 학살이 있었고 이쪽에도 학살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계속했고요. 그리고 제가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더니 군부독재 때 잡혀갔던 아이들의 엄마들이 아이들의 이름을 수놓은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목요일 오후마다 행진을 한다, 오월광장을 꼭 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목요일에 가서 행진을 보는데 앞에서 화려하게 가는 팀이 있고 그다음에는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프레젠떼(Presente)’라고 외치는 팀이 있더라고요. 참석한다는 뜻도 있고, 출석한다는 뜻도 있고, 여러 상징적인 의미가 있잖아요. 현재, 여기 있다는 의미도 있어서 그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시에도 썼어요. 임흥순 감독님이 아르헨티나에 간다고 하시니까 저도 오월광장에 가보시면 좋을 거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렇게 해서 자연스럽게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가지고 저희의 전시 작업도 하게 되었고, 18년 10월에 카네기 인터내셔널 비엔날레에서 저희에게 방을 3개를 줬어요. 첫 번째 방에는 ‘좋은 빛, 좋은 공기’. 거울처럼 한쪽 면에는 광주 어머니들, 증언자 분들의 얘기, 광주의 풀과 나무, 햇빛 이런 것들이 있었고, 다른 한쪽은 아르헨티나의 어머니들과 바다와 이런 것들이 있었어요. 저는 저대로 촬영 감독님과 영상을 찍었어요. 제가 영화를 감독했답니다.(웃음) ‘작별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여름이나 가을에 나오게 될 신작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그런 영상을 저 나름대로 투 채널로 만들었고요. 가운데 방은 각자 오브제들을 놓고 서로를 인터뷰한 투 채널 영상을 재생하는 식으로 전시 구성을 했어요. 저는 그때 이 작품의 전시 버전을 미국에서 보게 된 거죠. 저는 프레젠떼라는 단어에 대해 말씀드렸던 기억이 나고, 그리고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 집단 발포의 순서, 시민 무장의 순서 이런 것들은 굉장히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여서 그런 내용들을 생각나는 대로 말씀을 드렸어요.
이동진: 〈비념〉이라는 제주 4·3 항쟁 다큐를 만드셨을 때 광주에서 GV를 하면서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첫 씨앗이 뿌려진 셈이군요. 또 2014년에 『소년이 온다』가 나왔었죠. 비슷한 시기에 한 분은 이 영화를 시작하셨고 한 분은 책을 쓰신 겁니다. 『소년이 온다』도 잘 알려진 것처럼 5월 광주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시집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저는 제가 알고 있던 서로 다른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어서 머리 위로 꼬마전구 여러 개가 반짝반짝하는 느낌이었습니다.(웃음)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는데요. 그 연장선상에서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랐던 것은, 저는 남미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고요. 영화 속 역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구 정반대에서의 일들이 우리가 너무 아파하고 있는 광주의 일들과 연결된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놀란 부분이 있고요. 감독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은, 두 사건이 어떤 면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고, 이 영화의 제목이 아주 인상적인데 두 도시의 이름이 비슷한 뉘앙스를 가진 것은 우연이잖습니까. 제목이 역설적이어서 굉장히 슬프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제목에 담긴 두 도시의 이름이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두 도시의 우연적인 이름이 같다는 데에 대한 감독님의 시선,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임흥순: 〈비념〉을 광주에서 상영할 때 한강 작가님이 아르헨티나에 가 계셨다는 것이 우연이지만 재밌네요. 저는 인터뷰나 촬영을 하면서 제목을 정하기도 하고, 미리 정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거나 풍경이라든가 이미지를 보면서 제목이 떠오르는데, 이야기해주셨듯이 역설적이지만 또 어떤 부분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이런 고통의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긴 한데 그게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지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에서 고통의 역사를 그대로 설명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감정적으로 쉽게 이해하고 흥분할 수 있지만,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다가오는 것들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아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해서 도시 이름의 의미를 들었을 때 딱 두 도시가 연결이 됐거든요.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만들게 됐죠. 그리고 이전에는 고통의 역사를 어떻게 가지고 나가야 할지 이야기했지만 이후에 미래 세대, 같은 경험이 없는 세대에게 희망, 대안을 보여주지는 못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그 부분을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들을 많이 했고 이전 작업에 비해서 이 작품에서는 그런 부분을 아주 작게나마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제목도 이에 일조하려는 마음으로 짓게 됐습니다.
이동진: 감독님의 이전 작품을 볼 때도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서정적으로 코멘트를 받는 것 같은 순간, 굉장히 처연해지는 순간들이 생기지 않습니까? 감독님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방식에 의해서요. 여쭤보고 싶은 건 초반에 병렬로 보였던 두 도시의 이야기가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촘촘하게 이어지도록 편집이나 내용이 증강된다는 느낌을 받았고요. 중반부에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게 양측의 어머니들께서 이야기하시는데요, 예를 들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계시는 할머니는 화면의 좌측에서 우측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클로즈업샷인데 이어지는 광주의 할머니는 우측에서 좌측을 보는 클로즈업샷이면서 기본적으로는 두 사람의 앵글 사이즈가 같아요. 마치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 같은 방식입니다. 증언을 하실 때 두 분은 그런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하셨을 텐데 일부러 마주 보는 구성을 염두에 두고 대화하듯이 촬영을 하셨는지 아니면 사후에 편집하는 과정에서 맞세우신 건지 좀 궁금했습니다.
임흥순: 촬영을 할 때는, 감독님마다 다르긴 하지만 저는 편집을 생각하면서 하지는 않습니다. 촬영에 중점을 두려 하고 있고요. 이 영화에서 연출을 한 장면은 국군광주통합병원 장면과 아르헨티나의 해군기지 학교 병원에 생존자분이 방문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부분인데, 이 장면은 염두에 두고 촬영했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병원을 촬영하려 하는데 원장님이 생존자분이 오셨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평소에 병원 문을 잘 열어놓지 않는데 마침 원장님과 생존자분을 촬영할 수 있었고 이런 촬영분이 광주에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 부분 빼고는 인터뷰할 때 편집을 염두에 두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동진: 촬영은 자유롭게 하시고 편집단계에서 그런 장면을 골라내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영화 속에서 가장 참혹하게 들리는, 자식의 얼굴이 절반 정도 사라진 이야기를 하는 어머니 장면 이후, 벽에 그려진 인물의 절반 정도가 나무에 형상에 가려진 아르헨티나의 쇼트가 들어간단 말입니다. 이런 것들도 마찬가지로 사후적으로 그 장면을 고르신 건지요.
임흥순: 어머니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그 기억을 따라 풍경들이 보이게 되거든요, 그래서 어머님이 이야기해 주셨던, 얼굴 반쪽이 훼손돼서 바라볼 수 없었고 시신에서 나오는 벌레를 보고 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에 담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참혹한 장면이기 때문에 제 속에 계속 남아있는데, 이런 것들이 나무에 의해 가려진 실종자의 벽화 같은 풍경과 겹치긴 하거든요. 그래서 찍은 장면입니다. 저한테는 그 장면이 아르헨티나와 광주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었죠.
이동진: 한강 작가님께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가셨을 때 『소년이 온다』를 쓰고 계셨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하셨을 텐데요. 제가 『소년이 온다』를 보고 가장 감명을 받았던 것이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일들이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소설이 강하게 일깨 준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가진 고유한 의미가 있겠지만 또 다른 의미로 광주가 보통명사로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과 미얀마에서의 일로 연결이 되잖습니까. 40년이 지난 광주의 사건이 현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것 자체에 대해서 복원하려는 시도들이 영화의 상당 부분에서도 묘사되고 있는데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작가님은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소년이 온다』도 제목부터 ‘간다’가 아닌 ‘온다’라는 현재진행의 의미를 담아내셨는데요,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강: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은 소년이 40년의 시간을 건너서 우리에게 오는 구성을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제목도 소년이 ‘온다’이고. 소설에서 계속 2인칭으로 소년을 부르거든요. 2인칭이라는 것은 누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설령 이 세계에 없다 하더라도 있다고 믿고 불러내야 ‘당신’이라고 호명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계속 누군가를 부르는 행위를 느꼈어요. 제가 2018년에 본 영화에서 추가된 것은 실종된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이야기인데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는 실종자가 많아서 그 부분을 이으려고 하셨구나 싶었어요. 제 기억에 아르헨티나의 어머니의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꿈 이야기가 전시에서는 조금 더 길었거든요. 그래서 절제하려고 노력하셨구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오월 어머니회에 마음을 더 싣고 계시는구나,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것을 느꼈고요. 보통명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광주라는 도시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인간의 존엄과 잔혹함이 모두 다 극한에 다다라있었던 어떤 시공간을 이르는 보통명사라고 느꼈고 그렇다면 광주는 어디에나 있는 거죠. 우리가 현재도 광주 안에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더군다나 우리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일어났던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그런 보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셨을 것 같고요. 우선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실종된 사람들을 찾는 어머니의 모습을 감독님이 찾아가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부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종자들의 뼈가 나오잖아요, 이 영화의 시작도 옛 광주교도소 터에 희생자가 암매장되어 있을지도 몰라서 발굴하는 모습에서 시작되는데요. 이런 암매장의 역사는 정말 보편적인 거죠. 그리고 마지막 미얀마까지. 감독님의 작업은 쭉 이어져 오잖아요. 〈비념〉도 그렇고 〈환생〉이라는 작품도 그렇고 모두 국가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이에요. 계속 그런 이야기를 끈질기게 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진: 감독님이 이 이야기를 처음 시작하시고 관객에게 공개될 때까지 8년여의 시간이 걸린 것인데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실 때는 사명감이 있으실 수도 있고요. 혹은 감독님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중요한 걸 몰랐다’는 마음을 내놓는 과정도 있을 거라고 추측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광주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고 있다고 하지만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처음 알게 된 부분이 있어요. 그런 면에서 감독님이 이 작업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떤 것이 있으셨을까요.
임흥순: 여성들의 이야기가 희생으로만 비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거든요. 당신에게는 투쟁의 역사인데. 그런 부분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 또 만들어드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인터뷰를 듣다 보면 자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많이 이야기하시지만, 지금까지 싸워오신 과정들은 저도 잘 몰랐던 부분이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어머니들의 모성애로만 표현이 되는데, 이분들이 투쟁하셨던 역사를 알게 되면서 저도 마음의 용기라든가 제 삶과 작업, 앞으로 나아갈 지점에 대한 에너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동진: 전작이었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는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았던 아르헨티나, 광주에서의 이야기가 뭐였냐면,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아버지가 굉장히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부분이요. 광주 생존자인 아버지로부터 학대, 폭력 등을 받은 딸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니까 이제 살 것 같았다고 증언을 하시는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상처를 안긴 사건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이 당시 광주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미친 영향이 있는 것이고요. 단순히 그때 당시의 고문당하고 학살당했던, 저항하셨던 분들뿐 아니라 그분들의 가족사에 침투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피해는 정말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아르헨티나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 중 하나는 실종에 대한 부분인데, 실종자에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 그때 태어난 어린 아이들이 심지어 당시 군부독재 측 가정의 아이로 입양되기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시간이 흘러서 자신의 진짜 가족을 찾아가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 두 사례는 제가 두 도시에서의 일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거든요. 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묻고 싶습니다.
임흥순: 『소년이 온다』, 그리고 다른 작품에서도 느껴지는 부분인데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건이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과거의 일을 어떻게 현재로 소환할지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합니다. 최근에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요. DDT라는 살충제를 동물이 섭취하면 그 동물이 낳은 알에, 또 그 알을 먹은 사람에게 남는 양이 점점 더 커진다고 하더라고요. 이와 비슷하게 생존자가 겪었던 고통이나 트라우마가 2, 3세로 갈수록 작아지는 게 아니라 더 커지기도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연해주신 박진만 선생님이 자식들이 담을 쌓았다고 얘기를 하셨잖아요. 최근에는 어떻냐고 다시 여쭤봤더니 담을 허물 수가 없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2, 3세에게 넘어가는 고통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크고, 이런 부분을 해결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는지 계속 고민하게 되고요. 아르헨티나의 입양 문제도 우리의 생각보다 심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 실종자 중 여성이 30%였는데 그중 10%가 임신을 한 상태였다고 해요. 또 그만큼 10대가 많이 잡혀가기도 했고. 그 여성들이 애를 낳으면 부모는 죽이고 아이들의 정신이나 정체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군인 가족에 강제로 입양을 시킨 거거든요. 여전히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500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아직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한 분들도 많고. 과거의 폭력이 잘 드러나는 문제로 남아있죠. 이 영화 속 사례도 부모는 사라졌기 때문에 DNA를 채취할 수 있는 인물이 할머니밖에 없는 거잖아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진: ‘다큐멘터리의 고고학’이라는 표현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영화를 암매장지를 발굴하는 작업을 드론으로 촬영한 장면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또한 영화에서 구 전남도청 보존 문제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근데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봤을 때 가장 큰 차이로 보이는 것 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보존 작업이 잘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이에 반해 광주는 좀 지난한 작업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 그런 것인지 감독님께서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임흥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우선 경제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 같은 경우에는 어떤 사업을 지원하면 굉장히 빠르게 진행이 되는데 아르헨티나 같은 경우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덜 손을 보는 부분도 있고요. 한국은 아무래도 정부에 따라 예산이 책정되면 정해진 시간 안에 빨리 마무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빨리빨리 복원 및 리모델링을 하는 것 같아요. 복원에 대한 철학이라든가 개념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아르헨티나는 복원에 대한 이슈를 오랫동안 다루고 있어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어야 실종 문제라든가, 과거, 역사 문제를 가져갈 수 있는데, 우리는 과거를 남겨두기보다는 과거의 사건에 대해 잘 설명하기 위해서 리모델링을 하면서 그 위에 옷을 입힌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제된 설명보다는 빈 공간이나 흔적을 통해서 과거를 상세화하고 기억할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빠르게 진행을 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교육법과도 연결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동진: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서 본인이 꾼 꿈에 대해 서술하는 게 기억이 납니다. 꿈에서 위험한 사태가 벌어지리라는 것을 미리 화자인 한강 작가가 알게 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왜 하필 나에게 말해주나 하는 원망이 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큰일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꿈에 관한 이야기로 기억하는데요. 복원, 발굴, 고고학 등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소년이 온다』를 보면 창작자 입장에서 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기에도 이런 표현이 있잖습니까. 희생자의 얼굴을 흰 페인트로 지우고 검열에 의해 문장을 삭제하는 행위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이자 책무라고 묘사한 것이 인상에 남았어요. 더군다나 한강 작가님은 광주에서 태어나셨고,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쓴다는 것은 피하고 싶은 부담으로, 한편으로는 강렬한 책무로 느껴지셨을 텐데요. 다시 이런 영화를 만났을 때 창작자로서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한강: 지금 언급해주신 꿈의 내용을 더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길을 걷고 있었어요. 저녁 거리를 걷고 있는데 누가 제게 전화를 해서 80년 5·18 때 연행돼있던 사람들을 여태껏 삼십여 년 동안 지하 감독에 가둬놨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내일 오후 3시에 아무도 모르게 처형을 할 거라고 알려준 거예요. 꿈에서는 이게 꿈인지 모르니까, 전화를 끊고 여태까지 그 사람들이 살아있었다는 게 너무 다행이면서도 내일이면 죽는다고 하니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24시간도 남지 않았잖아요.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막 머리를 굴리면서 일단 택시를 탔어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휴대전화 배터리는 20%가 남았고. 제 기억에 그때 모 신문 문학 담당 기자의 전화번호를 눌렀어요. 일단 기자에게 알려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러다가 꿈에서 깼거든요. 그 꿈이 아직도 너무 생생해요. 그리고 아직까지 실종자들이 있잖아요. 광주 묘지에 방문하시면, ‘헛묘’라고 하죠. 실종자들에 대한 가묘를 보면서 압도당하게 되는데, 그것을 보면 그 꿈이 생각이 나요. 영화를 볼 때도 그 꿈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이제 이 영화에 나오는 분들, 싸우는 분들, 계속 끈질기게 기억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제가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나서 그해 여름에 꿨던 꿈이 있어요. 비슷한 꿈인데, 묘지로 바다가 들어오는 거죠. 바다에 휩쓸리는 묘를 보면서 이 많은 뼈들을 어떡하지 하면서 내달렸는데, 그 꿈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썼거든요. 제가 원래 광주에 대한 소설을 쓰기 전에는 역사적인 사건을 다룬 소설을 쓴 적이 없어요. 피할 수 없어서 쓰게 되니까 계속 쓰게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임흥순 감독님도 한 번 시작하셨기 때문에 계속 그러한 작업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이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잘 봤다는 말보다는 너무 고생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이동진: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 같고요. 감독님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이전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을 봤던 것 같은데, 인터뷰 중에도 비둘기를 비춘다거나 햇살을 비춘다든가 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 중 하나가 쑥갓 이야기가 깔리면서 복도 끝으로 나오는 햇살을 비추는 장면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특히 두꺼비들의 이동을 인상적으로 많이 넣으셨습니다. 자연을 담아내는 부분에 대해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임흥순: 첫 장편 〈비념〉을 만들 때도 느꼈던 것이거든요. 나는 제주 4·3 항쟁을 다루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할까. 한강 작가님이 꿈 이야기를 하셨는데 저도 당시에 꿈을 꾸었어요. 생명에 중요성에 대한 꿈이었는데, 그러고 나니 이게 생명에 대한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유령의 시선과 생명에 대해 포커스를 맞춰서 진행했거든요. 그 이후로 모든 작업들이 인간에 대한 존엄성, 그리고 생명, 우리가 잘 보지 못하는 환경,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것들이 눈에 밟힌다고 할까요. 끌리는 부분도 있고요. 계속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폭력이나 관계, 삶들을 다시 보게 하는 거울 역할로서 계속 자연을 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작품을 하게 되면 인터뷰이의 이야기도 듣지만 그분들이 살고 있는 공간, 지역에 대한 관심도 많이 갖게 되거든요. 그 지역에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는지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두꺼비의 한국 최대 서식지가 무등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두꺼비에 대해 찾아보니까 환경 문제로 인해서 두꺼비가 고립되고 있더라고요. 관련 활동가분들이 ‘두꺼비 학살’이라는 표현을 하셨어요. 두꺼비들에게는 우리가 담아낸 과거의 학살과 같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두꺼비가 갖는 상징성들이 있었어요.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이런 놀이도 있고. 5·18 이전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 징후로서 어떤 일들이 있었나 찾아보니까 ‘무등산 타잔 사건’이라는 게 있었어요. 굉장히 마음이 쓰였는데, 영화의 맥락과는 다르긴 하지만 그 사건에서도 집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고요. 또 5·18 이후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라는 87년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던 단체의 상징이 두꺼비였거든요. 두꺼비가 새끼를 배고 있으면 일부러 뱀에게 잡혀서 자기를 죽이고 새끼를 살리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민청련에서 두꺼비를 상징으로 썼듯, 저는 광주 5.18이 어떤 부분에서는 한국 사회를 부화시켜주는 역할이 될 거라고 생각했고요. 자연, 생명의 중요성을 전달하고 싶어서 두꺼비 장면을 넣은 것 같습니다.
이동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는 장면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감독님의 설명을 듣지 않으면 저희가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 할 것 같아서 오늘 해주신 말씀들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지금부터 관객분들의 질문을 제가 대신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흑백과 컬러가 번갈아 등장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흑백과 컬러 장면이 나오는 기준을 어떻게 삼으셨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해주셨습니다.
임흥순: 흑백을 사용하게 된 것은, 사실은 두 도시의 얼굴이나 색깔, 공기가 차이가 많이 나긴 하거든요. 그런데 굳이 차이를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신이 없기도 했거든요. 미술관 전시에서 투 채널로 나눠서 볼 때는 상관이 없었는데 하나의 영상으로 담을 때는 좀 정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거리감을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초반에 이야기했듯이 감정의 전달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거리감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흑백으로 진행했던 부분이 있고요. 사실은 이런 역사들은 붉은색으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붉은색뿐만 아니라 초록색이라든지 생명의 어떤 색들을 흑백 안에서 더 잘 상상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흑백의 영화를 보면 보시는 분들이 직접 칠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겠죠. 그리고 자연의 녹색과 크로마키 창의 녹색, 이런 녹색이 광주-아르헨티나, 과거-현재, 죽은 자-산 자를 연결해줄 수 있는 색이었고 또 생명의 중요성을 통해서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간 역할의 색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것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흑백과 컬러의 분리를 확실히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이동진: 사실 초록색이 그렇게 강렬한 색은 아니잖습니까? 흑백 톤의 장면이 많기 때문에 쑥갓 같은 장면들이 초록색으로 강한 느낌을 줄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또 크로마키에 관한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정말 그렇네요. 또 다른 질문인데, 영화에 등장하는 워크숍 프로젝트가 인상적인데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 혹은 다른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는지 질문 주셨습니다.
임흥순: 학생들이 만든 작품들은 작년에 한 차례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전시를 하긴 했습니다. 매체를 통해 공개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동진: 끝나기 직전에 나온 미얀마 관련 자막은 긴급하게 영화 이후에 작업하신 건지 질문해주셨습니다.
임흥순: 아무래도 작업을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아까 작가님도 이야기하셨지만 광주,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계속해서 이런 상황들이 일어나고 일어났죠. 이 영화는 이런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영화이고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까, 이를 매개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사실 〈위로공단〉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원래는 한국의 상황을 다시 보기 위한 거울로서 다른 나라의 상황과 비교를 하거든요. 연출적인 부분이긴 한데요. 〈위로공단〉도 중국, 베트남의 상황, 현재의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캄보디아 공장 사태가 생겨서 촬영을 하게 되고 현실을 좀 더 직접적으로 넣은 거죠. 계속 현실 상황을 반영하기 위해서, 영화 안에서 미얀마의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 반영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마지막에 텍스트를 삽입하게 됐습니다.
이동진: 관련해서 또 남겨주신 분이 계세요. “작품 마지막에 해시태그로 #SaveMyanmar 메시지가 나와서 적잖게 놀랐습니다. 저는 미얀마 현지 파트너들과 시민사회 협력 프로젝트를 운영하던 중에 현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서 미얀마를 돕고 있는 연구원입니다. 이처럼 미얀마 사태를 광주와 연결 짓곤 하는데 그때마다 한국 파트너이자 세계시민으로서 어떤 지원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라고 남겨주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감독님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임흥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해시태그를 자막으로 삽입했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희가 삽입했다기보다 미얀마가 다가온 느낌이 있거든요. 미얀마가 이 영화에 들어온 느낌이 있어요. 얘기하신 세계 시민으로서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현실 상황, 지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역할도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저 같은 경우는 미얀마 사태가 갑작스럽진 않거든요. 20여 년 전에 외국인 이주노동자들하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할 때 미얀마분들과 작업을 하면서 그분들의 정치의식이라든지 민주화에 대한 열망들을 알 수 있었어요.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분들에게 한국이 갖는 역할이 있었거든요. 한국을 부러워했고 배우고자 했고 민주화를 쟁취하는 데에 성공한 나라로서 부러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얀마를 단순히 도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이주 노동을 하셨던 많은 분들이 정치의식을 실천하셨을 거라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저 역시 어떻게 하면 함께하고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고민을 계속하게 됩니다.
이동진: 또 다른 질문으로,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교차적으로 보이는데 편집할 때 어떤 것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배치하려고 하셨는지 질문하셨습니다.
임흥순: 일단 편집을 하면서 차이를 굉장히 많이 느끼게 됐거든요. 광주 같은 경우는 눈에 보이는 상황들이잖아요. 비참한 장면들을 보게 되지만,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경우에는 실종된 분들이 많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차이가 있었고요. 또 광주는 시민들이 민중의 중심이었지만 아르헨티나는 엘리트층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현재 직업도 그렇고요. 아르헨티나는 당시 기자라든지 저널리스트라든지 그런 분들이 활동하고 계시지만 광주는 일반 시민분들이기 때문에 이 차이를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인터뷰이들의 이름이나 직책을 다 빼게 됐어요. 광주를 어떻게 하면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차이를 없앨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 광주는 열흘 정도에 걸쳐서 벌어진 일이고 부에노스아이레스는 7년 정도에 걸쳐 벌어진 일이니까 그런 부분에서도 또 차이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워크숍에 참여한 젊은이들에 대해서 질문해주셨는데요, 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시면서 어떻게 그들이 감응했고 또 그 과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여쭤봐 주셨습니다.
임흥순: 인터뷰이들을 찾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저희한테 그게 가장 힘든 작업이긴 한데요. 감독의 입장에서 제안을 드리긴 하지만 앞에서 얘기하시기를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인터뷰이들을 섭외하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워크숍을 마련해서 진행을 했어요. 김민경 PD님이 워크숍을 제안하셨고, 제가 미술 작업을 하면서 워크숍 형태의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하게 되었죠. 저는 일반 시민들이 이 공간에 살면서 지역을 얘기하고 풀어가는 것이 흥미롭거든요. 사실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조금 더 희망이라고 해야 할까요, 역사에 대한 희망을 고민하게 됐던 것 같아요. 워크숍을 할 때 단순히 저희가 5.18에 대해서 알려주기 위한 교육을 한다는 식은 아니었고 여러분도 저희한테 가르쳐주는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서로 배워가고 저도 청소년들의 시선과 생각들을 보면서 작품의 방향을 잡아가기도 했었죠.
이동진: 한강 작가님께도 이런 부분들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영화에 워크숍 장면들이 굉장히 강렬하고 인상적이잖아요. 이 과정을 통해 지난 과거를 알게 되는 다음 세대에 관한 장면이잖습니까. 작가님은 또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강: 임흥순 감독님의 영화에는 항상 그런 부분들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젊은이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것 같고, 영화에서 아르헨티나의 학생들과 광주의 학생들이 함께 뭔가를 만들고 서로의 작품을 보는 장면들이 참 좋았고요. 저도 『소년이 온다』를 쓸 때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저는 그런 부분이 푸르른 색감과도 연결이 돼서 좋았습니다.
이동진: 이런 질문도 주셨습니다. ‘감독님께서 해 오신 작업들은 웬만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아니면 오랫동안 계속해서 담아내기 어려울 법도 한데요. 감독님께서 이런 이야기들을 카메라에 담게 된 계기를 혹시 알 수 있을까요’라고 질문해주셨습니다.
임흥순: 저의 부모님 두 분이 노동자셨고 빈민가에서 살았거든요. 낮은 곳에 계신 분들, 노동을 하시는 분들에게 자연스레 시선이 가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분들은 글이든 말이든 표현할 수 있지만, 이런 분들은 직접 표현할 수 없는 상황들이 있어요. 돌아가신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면 제가 중간 역할을 하면 어떨까, 예술 또는 영화로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큰 역사보다는 가족, 개인, 일상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이 많거든요. 이 소소한 것들을 무시하고 하찮게 보는 사람들, 그들의 권력과 시선을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또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역사 안에서 이야기하게 되고요. 그러다 보니 책임감도 생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동진: 마지막으로 제가 질문드리겠습니다. 감독님께서 어딘가에 쓰신 글을 보니, 감독님께서 애도에 관한 영화를 많이 만드셨지 않습니까. 이런 작업을 하실 때 본인 스스로가 희생된 사람들의 환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해주셨어요. 한강 작가님도 아까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데, 창작을 하시는 분으로서 이렇게 실제 있었던 일을 본인과 밀착된 이야기로 쓰시다 보면 그 작품에 사로잡힌다고 할까요. 감정적으로 힘든 어떤 순간을 맞이하게 되실 것 같은데요. 이런 작업을 통해 변화하는 부분이랄지, 영향을 받는 부분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흥순: 어떤 분야든지 그런 부분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다 보면 연관성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손미순 선생님도 꿈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어요. 꿈에 행불된 분들이 나타나서 나를 찾아달라고 한다는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저도 어떻게 보면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비슷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거든요. 작품을 만들 때마다 꿈을 많이 꾸게 되는 것 같아요. 국군광주통합병원에서 사라진 분들이 어디론가 가시고 학생들이 찾아오는 꿈을 꿨거든요. 제가 뭔가 유령, 안내자 같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가신 분들을 잘 안내하는 역할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저에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이야기해야 하는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무당이 칼 위에서 춤을 추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한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듯이, 제가 원해서 한다기보다는 모든 것들이 저를 사건이나 작업 가운데에 서 있게 만드는 느낌이 들어요.
이동진: 매개하고 인도하는 그런 역할로서 하게 된다는 말씀이신 거죠. 작가님께도 같은 질문을 여쭤보고 싶습니다.
한강: 제가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혼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런 이야기를 지난 7~8년 동안 계속 써왔는데요. 저도 꿈을 많이 꿔요. 감독님과 같이 한 전시에서 서로 인터뷰했던 내용이 작업하면서 꾼 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거였어요. 지금 저는 이제 혼이 무섭지 않고 따스하게 느껴져요. 최근에 쓰고 있는 소설이 4·3 항쟁이 나오는 소설인데, 저는 4·3에 대한 소설이라기보다는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거기서도 암매장됐다가 발굴된 제주의 많은 현장이 있잖아요. 제가 그 구덩이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소설을 썼는데 그런 감각이 무섭지 않았어요. 따스한 것이 저를 둘러싸고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굉장히 따뜻하고 깨끗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소설을 쓰면서 혼이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이동진: 두 분 장시간에 걸친 말씀 감사드리고요. 끝까지 들어주신 관객분들도 감사드립니다. 두 분 간단히 인사 말씀 듣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임흥순: 이렇게 일요일에 귀한 시간 내주신 관객분들, 평론가님, 작가님 감사드리고요. 영화를 개인적으로 열심히 많이 알릴 수 있도록 할 테지만 여러분들도 보기에 좋으셨다면 많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영화의 단점이 한 번 봤을 때보다 두 번 볼 때 다른 부분들이 많이 보이거든요. 한 번 더 보셔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요.(웃음) 고맙습니다.
이동진: 그게 단점인 건가요? 엄청난 장점 같은데요.(웃음)
한강: 이 자리에서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불어 전시 작업하면서 느끼길 PD님 역할이 크더라고요. 임흥순 감독님의 작품에는 김민경 PD님이 일심동체로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두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고요. 너무 좋은 이야기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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