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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즈 Review] 〈더스트맨〉: 잿빛 먼지가 품은 불빛

by indiespace_한솔 2021. 5. 4.

 

 

 〈더스트맨〉  리뷰: 잿빛 먼지가 품은 불빛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그림을 그린다고 상상해보자. 펜이나 붓을 들고 새하얀 도화지에 선을 잇는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무엇을 상상하든 캔버스가 먼지 쌓인 자동차는 아닐 것이다. 영화 〈더스트맨〉에선 바로 그 위에 별다른 도구 없이, 오직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먼지가 소복이 쌓인 창 위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한 남자. 표면은 감탄을 자아내는 그림들로 가득 채워진다. 왜 그는 금방이라도 지워질 수 있는 그림을 그렸을까.

 

 

태산’(우지현)은 어떠한 죄책감을 안고 집 대신 서울의 거리를 활보하는 홈리스다. 가라앉은 먼지처럼 고요한 일상을 살아가던 태산은 터널 벽에 그림을 그리는 ‘모아’(심달기)를 우연히 보게 된다. 붓으로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에는 두 사람이 푸른 잎사귀 사이로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누렇고 어두운 빛을 띠던 화면에서 처음으로 싱그러운 색을 마주하던 순간이다. 모아가 경찰을 따돌릴 수 있게 도와준 걸 계기로 둘은 가까워진다. 모아는 친오빠의 옷을 몰래 가져다주거나 자신의 작업실로 태산을 초대한다. 밝은 음악과 함께 두 사람은 먼지가 포개어진 자동차 보닛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망토를 두른 캐릭터 ‘더스트맨’을 그리며 웃는 둘의 모습은 어두운 밤 속에서도 빛난다. 햇빛이 비치면 먼지가 보이는틴들현상처럼 이들은 서로를 비추기 시작한다. 모아는 태산을 뮤즈로 삼아 작품의 영감을 얻고 태산은 모아로 인해 상처를 딛고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뿌연 하늘의 원인으로 묘사되던 먼지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건네고 희망을 그릴 수 있는 배경으로 확장된다. 더 나아가 태산과 모아는 먼지로 덮인 창문 위로 꿈꾸는 것을 그리며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먼지는 치워버려야 할 더러운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존재한다. 먼지와도 같은 사람들도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태산의 대사는 영화 속 인물들 모두에 해당한다. 영화가 끝에 다다랐을 때 태산이 먼지 위에 그렸던 그림들이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그런데 아쉽지 않다. 작품이 없어졌는데도 이상하게 속이 후련하다. 벽에 그렸던 그림이 하얀 페인트로 전부 가려져도 터널이 깨끗해지니 좋다는 모아의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

 

 

영화 〈더스트맨〉은 김나경 감독이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먼지 아트, 트럭 화물칸에 그린 기도하는 손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실제로 영화 속 그림을 그린 러시아의 더스트 아티스트 ‘프로보이닉’(니키타 골루베프)은 극 중 모아의 대사와 비슷한 지점을 느꼈다고 말한다. 지난 과거는 보내고 다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먼지 예술에 임한다고 했다. 지워질 걸 알면서도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던 태산도 어쩌면 이런 마음을 바라지 않았을까. 지금은 곁에 없는 친구에게 미안함을, 혹은 진심을 전하는 마음. 먼지가 바람을 타고 어딘가에 이야기를 머금은 채 도착하길 바랐을 수도 있다. 태산은 죄책감으로 현실을 도피했다 고백하지만 사실 잿빛 먼지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있던 것과 다름없다. 끝내 서서히 사라지는 그림은 태산이 마음의 짐을 내려 두고 앞으로 내딛을 발돋움을 뜻한다. 먼지의 불완전성이 태산의 성장을 완성한 것이다. 무용하다 느껴지는 먼지에 생명을 그리며 태산은 자신의 삶을,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의 삶을 구현했다. 이렇듯 영화는 공기를 떠도는 먼지와 거리를 누비는 홈리스를 매개로 삶의 희망을 목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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