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몰라요〉 리뷰: 우리가 몰랐던 세계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호진 님의 글입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한다. 피를 흘리고 고개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한다. 누아르 범죄 영화가 아니다.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 세계를 조금도 알지 못한다. 내가 어른이어서 모르는 게 아니다. 어른스럽지 않게 나이만 먹은 어른이어서도 아니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내가 10대였을 때도 몰랐던 이야기, 이 땅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던 이야기다.
학교 선생과 교제하다가 임신을 한 18세 ‘세진’의 하루는 위태롭기만 하다. 자신의 손목을 긋고, 입을 막고 폭력을 견뎌내며 그 폭력의 가해자와 키스를 하기도 한다. 그런 날들을 견뎌내고 있는 세진은 천진난만한 말투로 해맑게 웃으며 낙태를 이야기하지만 눈은 텅 비어있다. 세진은 학교를 떠나 거리의 삶을 택한다. 그리고 같은 처지의 동갑내기 ‘주영’과 이미 성인인 ‘재필’, ‘신지’를 만나 아이를 떼기 위한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결국 모든 방법은 실패로 돌아가고 이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리고 세진이 세상에 도움의 손을 내민 순간 역시 차갑게 무너져 내린다.
제목인 〈어른들은 몰라요〉는 사실 “어른들은 관심도 없어요”에 가깝다. 영화에서 세진이 만난 모든 어른들은 세진의 자해, 임신, 성 착취에는 조금의 관심도 없다. 그렇게 나는 어떤 어른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른들은 모르는 세계를 그린 이 영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른들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욕설과 흡연, 폭력, 범죄 등의 수위 높은 표현 때문에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이 청소년들의 영화를 보는 어른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영화를 볼 때면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여전히 나는 어두운 영화관에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는 한낱 소비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동안 온갖 불행을 견뎌내야만 하는 세진을 바라보는 관객인 나는 그 얼굴들이 꽤나 버겁다. 계속 귀를 맴도는 욕설과 혈흔이 낭자한 스크린 속 아이들을 바라보는 게 편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영화는 우리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화가 너무 과하고 자극적인지, 리얼한 현실 그 자체인지, 혹은 잔인한 현실보다 축소되어 담긴 것인지 나는 모른다. 그 세계를 모르니 판단할 자격도 없다. 다만, 강렬한 표현이 꼭 강력한 메시지로 다가오진 않는다. 두 편의 영화로 우리가 모르던 세계를 보여줬으니 이제 그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어른들에게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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