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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아무도 없는 곳〉 : 그림자 아래 이야기

by indiespace_한솔 2021. 4. 27.

 

 

 〈아무도 없는 곳〉  리뷰: 그림자 아래 이야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유소은 님의 글입니다. 



 

어둠이 드리워진 공간, 그 안의 존재들은 서로 상실감을 공유한다. 담담한 어투로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이들은 서로 가까운 사이가 아니며 진솔한 대화 이후에도 그 거리감을 유지한다. 밀접한 관계에서 쉬이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오히려 타인이라고 여겨지는 이에게 털어놓으며 그들은 치유하고 치유받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듣는 이 창석(연우진)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집결된다.

 

아무도 없는 곳은 소설가 창석이 여러 인물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극이 전개되고, 창석이 마주하는 인물별로 막이 나뉘어 있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대사를 통해 극을 진행하는 김종관 감독의 특징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감독의 전작 더 테이블이 네 쌍의 인물이 같은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는 창석이 공간을 이동하면서 하나의 공간에서 커피 혹은 술과 함께 한 명의 인물과 대면한다. 인물들은 모두 상실감의 정서를 지니고 있지만, 그것을 굳이 숨기거나 대단한 일을 선포하듯 말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오래된 커피숍에서 만난 미영(이지은)은 초면인 창석에게도 “또라이네”라고 말할 만큼 거침없고 스스럼없는 사람이다. 창밖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을 바라보며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궁금해하고, 졸음이 찾아오면 창에 기대어 졸기도 하면서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그렇지만 미영은 시간의 흐름과 나이 듦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자신의 시간을 상실해버린 인물이다. 영화는 거울에 비친 미영의 모습을 통해 그가 잃어버린 시간과 현실의 간극을 조명한다.

 

창석의 학교 후배이자 출판사 직원인 유진(윤혜리)은 창석과 다른 커피숍에서 만나 함께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유진은 의견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솔직하고 당당한 면모를 선보이는데, 그런 그에게도 떠나간 연인과 그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아픔이 있다. 유진은 창석과 유진의 전 애인의 흔적인 담배를 함께 나눠 피우며 그 사실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두 사람의 대화 장면은 롱 테이크로 진행되면서 어둠이 점점 내려앉는 시간을 오롯이 보여준다. 그 때문에 대상의 형체가 흐릿해지는데, 이는 빛이 소멸하는 순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둠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기 위한 감독의 의도다.

 

 

성하(김상호)는 아내의 아픔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할 만큼 위태롭고 절망스러운 상황을 겪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만한 희망을 믿게 된다. 그는 창석과 우연히 마주치면서 희망이나 기적과 같은 낭만적 현상을 더욱 기대한다. 하지만 이내 성하는 가장 큰 상실을 경험하는데, 그 순간 그의 표정을 공백으로 두면서 영화는 입체적으로 관객의 몫을 남겨둔다.

 

바텐더 주은(이주영)은 늦은 시간 바에 손님으로 온 창석과 마주한다. 주은은 사고로 일부 기억을 잃었고 술 한 잔에 손님들의 기억을 사는 게임을 한다며 창석에게 게임을 제안한다. 주은에게 상실은 우울을 내포하기보다는 게임이라는 유희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손님들의 기억으로 시를 창작하는 그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 대면하지만 가장 밝은 에너지를 지닌 인물이다.

 

 

창석은 마주한 사람들이 겪었을 상실감을 경험했으며, 그렇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줄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존재로서 창석이 위치하면서 각각의 이야기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되어 완전해진다.

 

다양한 사람과 사연이 등장하는 영화인 만큼 아무도 없는 곳은 기존 미디어에서 비가시화되는 인물을 조명한다. 창석이 혼자 밥을 먹는 장면에서 창석의 뒤로 보이는 인물들이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 미영과 창석이 만난 커피숍과 창석이 걷는 길에 존재하는 노인들의 모습 등 미디어에서 소외되던 장애인과 노인을 영화 안 세상에 배치하며 현실에 맞닿아있는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다.

 

 

영화는 죽음, 나이 듦, 상실, 결핍 등 보편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어두운 지점을 드러낸다. 아무도 없는 곳은 그림자의 이야기라는 감독의 말처럼 영화는 전반적으로 어둠이 드리워진 분위기다. 그렇지만 그저 어둡지만은 않다. 밤이 와도 그 어둠을 가만히 응시하면 안에 존재하는 형체가 점점 드러나는 것처럼 인물들은 그림자 아래에 있더라도 어둠에 잠식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아픔을 발화함으로써 무게를 덜어내고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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