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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시 읽는 시간〉: 낯선 세상 속 나와 오롯이 마주하다

by indiespace_한솔 2021. 4. 20.

 

 

 〈시 읽는 시간〉  리뷰: 낯선 세상 속 나와 오롯이 마주하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연 님의 글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삶을 계속 찾아가고 있나요?”

“...잘 모르겠어요.”

 

완벽하게, 수월하게는 아닐지라도 삶은 나름의 리듬에 따라 흘러간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순간 균열이 발생한다. 가끔, 아니 자주, 작게, 때론 거대하게 우리 앞에 나타난다. 반갑지 않지만,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불청객.

 

누군가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며 참고 견디면 괜찮겠지.’ 주문을 건다, 오하나 씨처럼. 얼굴을 웃고 있지만 속은 울고 있다. 어느 순간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무표정한 사람들 속 서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표정이 없다. 김수덕 씨처럼 비교적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죄의식이 찾아올 때가 있다. 무언가 잘못한 것 같고 빚을 진 느낌. 수입은 불안정하고 세월은 흘러만 간다. 게임은 조작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하는 일이 맞는 일인 지조차 알 수 없다. 그래서 자꾸만 게임 속으로 도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안태형 씨처럼. 거대한 세상 앞에 선 우리는 한없이 작아 보인다. 반평생 기계소리만 들리는 공장에서 임재춘 씨가 땀 흘려 만든 기타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된 그는 지금 천막 농성장에서 힘겨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하마무 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은 차별과 폭력을 예술로 표현하며 이에 맞선다.

 

 

삶에서 균열을 마주한 다섯 사람이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다. 균열 사이로 그들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그들의 목소리는 정리되어 있지 않다. 논리정연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고통에 공감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힘을 느낀다. 심연의 고통에서 길어 올린 그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목소리가 하나의 시가 되어 우리에게 들린다.

 

이제 그들은 시를 낭독한다. 시는 분명 언어로 되어 있는데, 이해하기 쉽지 않다. 세상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얼마나 많은 균열들이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무엇보다도 나타났는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시와 세상 모두 이해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둘을 설명하기에 언어는 불완전하다. 모든 것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는 해체되고 울음, 기도, 침묵이 말한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다른 사람이 느끼는 세계가 있다고. 갑자기 내가 알던 세상이 낯설어 보인다. 시 읽는 시간, 낯선 세상에 우리가 잠시 머문다.

 

 

그곳에서 우리는 계속 계단을 내려가다가 우리가 길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해본다.(임규섭/죄책감) 어떤 때는 흔들리는 깃털처럼 목적이 없다.(심보선/오늘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김남주/자유) 사라져 없어지고 싶다. 음식물 쓰레기가 되고 싶다.(하마무/살아있는 쓰레기) 그러다 문득 해마다 피는 꽃이 같은 모습이 아니듯, 그 꽃을 바라보는 나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간절한지. (이정하/지금)

 

 

그렇게 잠시, 나는 나와 오롯이 마주한다. 마법처럼 하고 균열이 언제 있었냐는 듯 그것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잠시 머물며 심연의 고통에서 유영하는 나를 살펴보고 위로해주고 다독여준다. 나에게 말을 건네고 새로운 목소리를 길어 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걸어간다,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세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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