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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시 읽는 시간〉 인디토크 기록: 시적인 순간을 만드는 찰나

by indiespace_한솔 2021. 4. 16.

 

시적인 순간을 만드는 찰나

 〈시 읽는 시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 4 4(일) 오후 4

참석 이수정 감독

진행 나희덕 시인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현지 님의 글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시를 읽는다는 건 눈으로 활자를 보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내어 시를 읽고 함께 그 소리를 듣는 낭독이야말로 시를 완전히 읽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수정 감독의 시 읽는 시간은 이러한 순간들을 담고 있다.

우리와 같이 평범하고도 익숙한 나날을 사는 다섯 명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시가 되어 다가온다. 영화는 처음 마주한 사람의 입으로 전해 듣는 시들을 잔잔한 풍경과 함께 소개한다. 바다, 전시장, 골목길 등등. 그들의 목소리와 고요한 화면을 보고 있으면 어딘가 안정된 기분이 든다. 시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가지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과 시를 읽었던 그 날의 순간을 읊어보려 한다.

 

 

이수정 감독(이하 이수정): 안녕하세요. 오늘은 나희덕 시인이 모더레이터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나희덕 시인(이하 나희덕): 안녕하세요. 저는 시 쓰는 나희덕입니다. 제가 먼저 질문을 드리고 얘기를 나누다가 오픈채팅방에 올려주시는 질문 읽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영화 잘 봤습니다. 제가 최근에 이 극장에서 영화를 몇 편 봤는데요. 얼마 전에 개봉한 당신의 사월, 고모리 하루카 감독의 하늘에 귀 기울여그리고 오늘 시 읽는 시간, 이수정 감독님의 영화를 봤는데 공통적인 주제나 구성이 비슷했어요. 하늘의 귀 기울여3.11 10주기를 맞아서 재난이 휩쓸고 간 뒤 사람들의 일상을 비추는 영화였고 당신의 사월도 다섯 명의 평범한 사람들을 교차로 인터뷰하면서 4.16 이후의 삶을 성찰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였는데요. 오늘 시 읽는 시간은 번아웃된 사람들, 노동과 단절 그런 고통에 귀를 기울이면서 시에서 치유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영화입니다. 공교롭게 이 영화에도 5명이 등장을 하고요.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결이 다른 영화들이었습니다. 시 읽는 시간2016년에 만들어진 영화죠.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 이 영화가 더 힘을 주는 것 같습니다. 현재 코로나로 영화도 불편한 과정을 통해 보고 있는데, 이러한 치유와 잔잔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했어요. 우선 첫 번째 질문을 드리면 이전에 감독님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이야기 깔깔깔 희망버스,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다룬 나쁜 나라, 콜트콜텍 노동자 재춘언니까지 사회적인 문제를 다뤄오셨고 공동체적 연대를 말씀해오셨습니다. 이번 영화는 개인에게 보다 더 주목한다는 점에서 조금 결이 달라요. 이전의 영화들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수정: 제가 시 읽는 시간을 기획하게 된 건 나쁜 나라를 제작하면서였는데요. 2014년도에 세월호 유가족들의 1년을 기록하는 나쁜 나라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2011년도에 제가 오랜만에 다시 독립다큐로 귀환을 하면서 거리에서 투쟁하는 해고 노동자들과 콜트콜텍 다큐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보며 카메라를 든 사람으로서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싶었는데 카메라로 기록하는 것이더라고요. 그렇게 작업을 하게 됐는데 정말 뭐라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의 한가운데에 계신 분들을 카메라로 제가 찍고 있는 게 너무 불편하고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찍고 있지 싶었어요. 이게 세상에 알려져야 되고 이야기로 만들어져야 되는 건 맞지만 어느 순간부터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는 나쁜 카메라들도 있었어요. 카메라 역할을 못하고 잘못 보도하거나 보도를 하지 않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그래서 저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윤리를 생각해보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저 역시도 쉬지 않고 너무 과도한 노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가령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관성에 의한 행동을 하는 흐름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세월호 사건이 미친 듯이 흘러가는 자본과 탐욕 속에서 터져나온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 자신을 위해서 시를 읽고 싶다생각이 들었고 시적으로 말하는 다큐멘터리를 말하고 싶었어요. 시적인 다큐들이 예전부터 국내외에 있었고 저 역시도 그런 다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작업을 하면서 느꼈던 피로와 윤리적인 부채감과 돌아봄, 멈춤. 그런 것들이 계기가 되어 시는 자본의 반대 지점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자본은 현실적인 가치를 대변한다면 시라는 건 무용한 것이고 자본의 입장에서는 쓸모가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 를 읽는 시간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됐습니다.

 

 

<시 읽는 시간> 스틸컷

 

나희덕: 저도 왜 시일까 생각을 했었어요. 소설을 읽는 시간이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될 수도 있었는데 왜 시일까,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리를 무한히 돌려대는 자본의 질서나 속도와는 가장 반대에 있는 게 시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시인으로서 동의합니다. 영화에 다섯 명의 사람들이 나오는데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간단한 감독의 멘트가 들어갑니다. 가끔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들어가기도 하고요. 아마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과의 신뢰감 내지 친밀감이 상당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분들이 읽는 시 뿐 아니라 그 분들의 말 자체가 시 같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각기 다른 시들이 각 인물들의 삶을 잘 대변하고 서사적으로도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다섯 분을 캐스팅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분들이 읽은 시가 선정된 계기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시들이 상당한 의미와 서사적인 연결성이 있어보여요. 영화를 제작할 때 등장한 분들과 시를 조율하고 그 의미를 공유한 과정들이 있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이수정: 영화에 그냥 텍스트만 나올 수도 있었겠죠. 그런데 시를 읽는 건 사람이잖아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읽어야 되나 했을 때 편하게 아무 걱정 없이 살거나 아무 문제를 못 느끼는 분들은 제외될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시라는 게, 우리가 어떤 사건을 만난다 하잖아요. 매끄럽게 흐르던 시간들에 균열을 일으키는, 세월호도 마찬가지죠. 그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던 거잖아요. 어느 날 갑자기 해고된 임재춘 씨나 오하나 씨도 마찬가지고. 어떤 새로운 불안함, 고민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 혹은 세상이 낯설어 보이는 지점이 다 시적인 순간이 아닐까 싶었어요. 최소한 그런 경험들을 한 사람들이 시를 읽어줬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영화가 인물다큐로 출발한 게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먼저 정하지 않았어요. 안태형 씨의 대사에도 나오는 것처럼 시를 읽는 도구로써 사람을 생각했는데. 임재춘 씨는 맨 처음부터 있었어요. 콜트콜텍 다큐를 촬영하는데 2013년도에 그 분이 농성장에서 시 읽어주는 남자가 됐어요. 그 전에는 시를 읽어볼 일이 없던 분이었는데 처음 시를 읽게 된 거예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시 읽는 연습을 하고 시를 읽던 순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시 읽는 순간만큼은 평상시의 그가 아니었어요. 그 순간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 친구 중에 공황장애를 앓은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는 졸업 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20년 가까이 고액 연봉을 받으며 회사를 다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공황장애가 생겼더라고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그 친구가 회사에서는 이니셜로 불리고,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그동안 왜 그런 공부를 했지 싶은 기계적인 일들을 하고 있었던 거죠. 촬영에 응해주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그 친구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안 되겠다고 생각하던 마찬가지로 3년간 공황장애를 앓고 계셨던 김수덕 씨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김수덕 씨도 마찬가지죠. 본인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저 분은 해고될 일이 없는 굉장히 안정된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일했지만 여기저기 바둑알 놓듯 일방적으로 다른 부서에 배치되셨어요. 호인이라 할 정도로 성품이 굉장히 좋으신 분인데 어느 날 공황장애를 앓으셔서 어떤 힘겨움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안태형 씨는 교회를 같이 다니는 후배였어요. 재주도 많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직하지 않고 최소한의 소비를 위해서 싼 물건들을 찾아다니고 게임에 중독되어있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소위 말하는 N포 세대 같은 친구였는데, 촬영 직전에 그 친구가 결혼을 했어요. 저는 그게 굉장히 기적적인 일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런 일상의 변화들을 담고 싶어서 부탁을 했고. 하마무 씨는 집회 현장에서 만났던 오하나 씨가 일본어 시를 번역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연이 잘 맞아떨어진 거 같아요. 그렇게 구성된 인물들입니다.

 

<시 읽는 시간> 스틸컷

 

나희덕: 인물을 만나고 찍게 된 순서와 영화에서 배치된 순서는 다른 거 같아요.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마어마한 분량을 찍어서 편집을 해내는 과정에서 의미가 생겨난다고 하더라고요. 극영화와 달리 그 사람 자체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과 즉흥성이 편집하는 과정에서 발생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반부의 인물들 순서와 시를 읽는 순서가 바뀌던데 순서를 재배치할 때 감독님이 어떤 걸 염두에 두신 건지.

 

이수정: 편집감독님도 오늘 보러 오셨는데. 저의 구성안에는 두 인물이 더 있었고 저의 이야기도 한 줄기가 있었어요. 선배 중에 기형도 시인이 계셔서 그 분과 저의 이야기가 약간 사적 다큐처럼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질감이 느껴져서 다 배제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잘 안 읽거나 잘 몰라도 자신의 소소한 삶을 표현해주신 다섯 분의 이야기가 훨씬 더 시적이고 내용이 좋더라고요. 편집은 그 분들의 이야기 흐름과 영화 내의 전체적인 주제가 잘 모아지는 순서로 하게 되었어요. 전반부에 다섯 명이 자기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고 후반부에 오하나 씨가 안 되겠다, 탈출하자!”하면서 폐허를 걸어나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이게 하나의 전환이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읽는 장면들이 하나씩 나오는 거죠. 미리 짜고 촬영한 게 아니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니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있었어요. 그 지점에서 다시 질문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러운 흐름이 완성된 것 같아요. 또 우연한 장면이 찍히기도 했는데, 눈을 찍고 있는데 비틀비틀 거리면서 언덕길을 올라가는 분이 찍힌 것처럼요. 김수덕 씨의 시와 함께 나와서 그 분이 김수덕 씨인가 하셨을 텐데 아니에요. 저희 동네 주민 분인데 카메라를 세팅하다가 그 분이 화면 안에서 걸어가고 계셨어요. 그런 우연으로 촬영된 장면들, 흐름들이 있는 거죠.

 

나희덕: 우연한 장면들이나 무심하게 나오는 풍경들을 통해 시가 낭독되지 않고도 노출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영화에 유독 페허의 이미지와 그 속에 가느다란 빛의 이미지가 많았는데요. 시를 낭독할 때나 인물과 인물을 잇는 전환에 나오는 영상들이 굉장히 시적이었습니다. 영화 전체가 시적인 언어들로 느껴졌는데 촬영이나 편집에 있어서 그런 우연성들이 상징성을 부각한 것 같네요. 전체적으로 시적인 언어로 가려고 하는 특성을 저도 느꼈는데요. ‘시의 반대는 산문이 아니라 획일화된 스테레오타입이다이런 말이 있어요. 시적 방식이라는 걸 통해서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이나 영화의 문법, 그런 무언가를 깨트리려고 의도하신 대목들이 있었나요?

 

이수정: 제 입으로 이런 부분이 시적이야얘기하기가 조금 그런데.(웃음) 제가 만든 장면들도 있고 저희 편집감독님이 만들어주신 장면들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김수덕 씨가 지금이라는 시를 읽을 때, 한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나 아내 이야기를 하고 밖 어딘가를 떠도는 내용이잖아요. 그래서 저의 집 부근에서 촬영한 신을 많이 넣었어요. 눈이 내리는 골목길 속에 우연히 걸린 장면들. 꼬마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가려는 장면처럼 우연히 담긴 장면들이 시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 부분을 살리는 게 더 시적일 것 같았어요. 또 하마무 시인의 글은 텍스트로 보여주는데, 거기엔 페미니스트로서의 고통과 심지어는 다른 나라의 학살에 대한 내용도 있어요. 하마무 씨와 관련된 이미지는 더 텍사스라는 미술 작가 프로젝트가 있는데 거기서 촬영을 한 거예요. 예전에는 성매매가 이루어졌던 조그만 방에서 미술작가들이 전시를 했는데 일부분만 촬영을 해서 알 수 없는 이미지지만 함께 상상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했어요. 뭐라 딱 집어서 이야기하기가 어렵네요.

 

 

나희덕: 충분히 설명을 해주신 것 같아요. 이제 인물로 구체적으로 들어가려고 해요. 시를 다루는 영화들이 많잖아요. 대부분이 시인을 중심으로 한 영화들이거든요. 시를 쓸 때의 과정이나 마음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췄죠. 그런데 시 읽는 시간은 시를 읽는 사람에 집중한 게 새로웠어요. 하마무 씨는 시를 읽으면서 동시에 시를 쓰는 존재로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언어가 주는 힘이라는 게 정말 크구나 싶었습니다. 좋았던 대목이, 오하나 씨와 하마무 씨가 이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끼리 유일하게 만나잖아요.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나는데, 그런 의미에서 시라는 건 타자의 마음을 자기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라 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그런 불가능성을 넘어서서 둘이 함께 이야기하는 대목들이 시를 통해 타자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면서 협업이 이루어지는 좋은 장면이었어요. 다른 인물들도 마주치거나 서로를 본 적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낭독이 힘을 크게 발휘하는데 이 행위가 갖는 의미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수정: 그렇습니다. 그동안 시를 쓰는 인물에 대한 영화가 많이 있었죠. 시를 읽는 영화는 처음이 아닌가 하는 질문들이 많았어요. 그러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시 읽는 시간은 제가 낭독의 의미를 많이 생각하면서 기획했던 것 같아요. 세월호 참사 때도 광장에서 ‘304 낭독회가 있었고, 시를 소리내어 읽는 시간이 참 좋다는 걸 알았어요. 광장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시를 읽어보기도 하는 시간들이 좋아서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도 대학 시절 애인의 자취방에서 김남주 시인의 자유를 읽었던 아름다운 기억이 있어요. 임재춘 씨가 천막 농성장 앞에서 자유를 읽었을 때 너무 좋아서 다시 읽어달라고 부탁드린 거였거든요. 그렇듯이 여러분들도 친구들 자취방에서 모여서 돌아가면서 시를 읽는 건 어떨까. 요즘에 시 낭독 모임도 많이 생겼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같이 읽으면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저도 시뿐만 아니라 단편소설이나 뭘 읽는 모임을 계속 하고 있어요. 그게 좋기 때문에. 그래서 영화를 통해서 이런 시간을 같이 보내자고 말해보고자 만든 것 같아요.

 

나희덕: 낭독 이야기하시니까 저도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제자들이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정규직으로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기도 하면서 굉장히 힘들어해요. 그 중에서 자주 찾아오는 그룹이 있었는데, 제가 어느 날 그랬어요. 우리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책을 소리내어서 읽어보자. 낭독 모임을 제안한 거죠. 텍스트에 대해 토론을 하기보다 한 달 동안 책을 읽고 좋은 구절들을 밑줄 그었다가 마주 앉아서 그걸 읽어주는 건 어떨까. 눈으로 보는 거보다 소리를 내는 게 더 좋고, 여럿이 모여 내는 소리가 더 좋아요. 소리의 공명 자체도 우리 몸과 마음에 기운을 주는 것 같아요. 제자들과도 한동안 낭독 모임을 하면서 한 시절을 서로 버텼던 기억이 나네요. 또 폴 리쾨르가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현대인은 혼자서 책을 많이 읽는데, 고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정시, 서사시, 극시와 같은 방식으로 시를 나누는데 그 시절에는 광장에서 시를 읽는 것이 축제와 같은 형식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낭독이라는 행위가 묵독에 길들어진 현대인이 언어의 원초성이라던지 축제성을 살리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도 낭독을 많이 해보심 좋을 거 같아요. 이제 채팅방에 있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등장인물들이 현재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네요.

 

이수정: 어제 오하나 씨와 대구에서 GV를 같이 했어요. 오하나 씨는 출판사를 그만두고 많은 힘든 시간들이 있었지만 예상치 못한 좋은 경험들도 많이 하고, 구에서 진행하는 여성축구단으로 활동하기도 했어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다가 들다방의 매니저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어 번역 아르바이트도 종종 하면서 알차게 살고 있어요. 안태형 씨는 영화 속에서 작업하던 악어 엄마그림책이 상도 받고 도서관에서 작가와의 대화 자리도 갖고 있고요. 다른 그림책들도 출판하면서 열심히 부부가 살아가고 있어요. 하마무 씨는 이번에 개봉하면서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더니 여성학 박사과정을 하고 있더라고요. 김수덕 씨는 드디어 퇴직을 하셨고 책도 읽으면서 잘 지내고 계세요. 임재춘 씨는 2019년도에 콜트콜텍 투쟁을 마무리 짓고 가끔 공사 현장에 나가서 일을 하십니다.

 

나희덕: 5년 사이에 이러한 변화가 있네요. 아네스 바르다 감독도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를 촬영하고 나서 그 사람들을 다시 찾아가잖아요. 그걸 가지고 영화를 다시 만들기도 했고요. 이처럼 몇 년 후 시 읽는 시간을 다시 찍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계획이 있을까요?

 

이수정: 글쎄요. 지인도 시 읽는 시간 2를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고.(웃음) 꼭 이 인물들이 아니더라도 제가 다른 형태로 만들 수도 있겠죠. 이 인물들의 10년 후도 담을 수 있겠고요.

 

<시 읽는 시간> 스틸컷

 

나희덕: 또 다른 질문을 읽어드릴게요.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시적인 영화 혹은 시적인 다큐멘터리는 무엇인가요. 흔히 말하는 시적이라는 것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수정: 시적인 것들은 획일되거나 안태형 씨의 말처럼 논리적으로 맞춰지는 언어가 아닌 것 같아요. 아주 사소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언어라고 생각해요. 시가 계속 쓰여진다는 것은 각자 다른 눈으로 세계를 새롭게 보고 있다는 뜻이지 않나 싶습니다. 자기가 본 세계를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게 시적이지 않을까요. 어떤 주어진 세계 혹은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일상 속에서 낯설음을 포착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게 시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패터슨에서 평범한 운전기사가 시를 쓰는 것처럼.

 

나희덕: 저는 하마무 씨의 이야기 중에 언어라는 게 참 힘이 없다. 시는 언어인데 언어가 아니다.”라는 말이 생각나는데요. 시인도 사실은 자기 안의 시적인 것들이 생겨났을 때 그것을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거든요. 그런 시적인 것들이 자기 온몸의 감각을 통해 독립되어 있다는 거죠. 시는 시인을 통해서 나오는 존재가 아닌 것 같아요. 시적인 것은 사실 도처에 있고 그것을 알아볼 눈을 가진 사람이 시인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 시적인 것이 무엇인가 알아내기까지 더 가까이 가서 그 목소리를 드러내어야 해요. 시적인 것들이 나라는 그릇을 통과해서 언어의 형태로 발현되는 것이라 생각해요. “내가 머리 굴려서 사는 게 아니라 시가 나를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 내 입으로 시가 살아서 나오는 것처럼 나는 어떤 도구이고 시가 주인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라는 안태형 씨의 대사가 끝에 나오죠. 바로 그런 느낌이에요. 내가 시를 쓰는 주체가 아니라 오히려 시가 나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존재인 것 같아요. 다만 시인만이 그걸 목격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모든 것에 다 있어요. 우리는 시적이라는 단어를 영화, 그림, 풍경 등에도 사용을 하죠. 시적이라는 게 사람마다 의미가 모두 다르긴 한 것 같아요. 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한다는 점에서 영화와도 닮은 점이 있어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말이 아닌 것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그런 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 질문을 드릴게요. “요즘은 감독님이 무슨 시를 읽으시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수정: 제가 영화 개봉에 맞춰서 클럽하우스에서 시 읽는 시간이라는 방을 만들었어요. 월요일, 수요일 밤에 한 시간 동안 시를 읽는 방인데요. GV를 같이 한 유이경 시인의 시집도 읽고, 선물 받은 임성미 시인의 시집과 김수영 시인의 시집도 읽었어요. 여러분들도 혹시 아이폰을 사용하고 계시다면 저와 함께 클럽하우스에서 시를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웃음)

 

나희덕: 매주 월요일, 수요일 밤 11시부터 12시까지라고 합니다. 읽고 싶은 시가 있으시면 오늘 이 자리에서 못 읽으신 아쉬움을 그때 오셔서 같이 시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번 들어가 봐야겠네요.(웃음) 이어서 다음 질문 드릴게요. “영화 속 재춘 님의 이야기는 결이 다르게 느껴지고, 해야 될 이야기보다 더 압축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독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작품을 끝낸 후에 상영본을 보면서 어떤 감정이 드셨나요.”

 

이수정: 우리 편집감독님이 이런 질문을 주셨네요.(웃음) 사실 조금 더 촬영하면 어떻겠냐는 편집감독님의 제안도 있었어요. 인물들이 모여서 시 낭독을 하는 장면들이 있으면 어떨까.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현실적인 여건도 있었고, 무언가를 의도해서 신을 만드는 것 자체가 여러모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제 개인적으로 내키지도 않았고요. 임재춘 씨의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졌다고 하셨는데 실제로도 맞고요. 예전부터 찍은 게 있기에 그 부분을 쓸 수도 있었지만 결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콜트콜텍 다큐에서 이야기를 더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나희덕: 저는 임재춘 씨가 시를 읽을 때 버벅거리고 머뭇거리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어요. 일상적인 문법이나 속도로 시를 읽는 게 불편할 정도로 시를 읽지 않았던 사람에게 시가 읽혀지는 순간이었잖아요. 정말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수정: 저도 그렇게 임재춘 씨가 더듬더듬 읽는 게 참 좋았어요. 방송이나 유투브에서 성우들이 매끄럽게 시를 읽는 건 많잖아요. 저는 조금 재미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낯선 목소리들이 확 들려올 때가 정말 좋고 그게 더 시적이라고 생각을 해요.

 

<시 읽는 시간> 스틸컷

 

나희덕: 임재춘 씨가 농성장 천막 안에 앉아서 시를 읽거나 미래지구 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쓰레기들이 나뒹구는 곳에서 시를 읽는 장면, 전시장의 생리혈이 묻은 생리대 옆 벽보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붙어있는 시들을 보면서 시의 자리는 자본에 가장 반대편, 자본에 의해서 내몰리고 방치되고 찢겨진 자리구나 싶었습니다. ‘시는 비탈에 자리잡는다는 말처럼 시는 평평하고 안정된 곳에 있는 게 아니라 폐허 위에 풀들이 돋아나는 것처럼,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예고 없이 돋아나는 풀처럼 세상에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주는데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을 하게 돼요. 이 사람들의 고통이라는 것이 개인적 고통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구도로 인해 생겨난 고통이죠. 사회적 약자의 고통은 자기가 자초하지 않았는데 들이닥치는, 해결할 힘이 나한테 없는 실존적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통을 몇 편의 시를 읽거나 성찰하는 것으로 근본적인 걸 해결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저도 시인으로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기도 해요. 인물들의 사회적 구도로 생겨난 고통에 전환이나 해결로써 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이수정: 글쎄요. 저는 시가 일종의 기도 같다고 생각해요. 시를 읽고 쓰는 게 애도의 과정이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요. 여러 가지 고통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면서, 기형도 시인도 빈 집에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했듯 무언가를 상실하고 애도하는 과정이 시가 아닐까. 그리고 이분들은 저마다 처한 고통이 있고 그건 사회적 시스템과 구조와 무관하지 않죠. 시는 그냥 터져나온 언어고 어떤 울음일 수도 있고 비언어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굉장히 어려운 시들 중에서는 해체된 언어 같은 시도 있잖아요. 그렇듯이 시라는 건 그 자체로 고통의 표현일 수 있어요. 저는 시를 읽는다는 게 해결이나 어떤 치유를 바란다기보다 그것과 함께 머물면서 같이 생각하고 타자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희덕: 한 가지만 더 질문을 드릴게요. 여기서는 시가 위로와 공감의 역할을 했잖아요. 그것이 시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가 없는 세상은 안태형 씨의 대사처럼 게임 속 세상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싶어요. 또 한편으로 시는 확고한 신념이나 고정된 인식을 깨트리고 안정된 세계 속에서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문제를 일으키고 불편하게 만들고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인식의 혼란과 해체를 요구하는 시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영화에 등장하는 시들은 창작한 시인들이 모두 다르지만 대체로 서정적이고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내면이나 성찰을 보여주고 있죠. 이건 감독님에게 아쉬운 부분이라기 보단, 대부분 영화에서는 시를 낭만적으로 다루는데요. 시를 단순한 정서적 공감과 위로의 역할로만 한정짓는 게 아닐까, 훨씬 더 치열하고 강력한 시들도 있는데 왜 영화 속에 못 들어오는 걸까 이런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수정: 서정시가 대부분이라고 하셨지만 저는 사실 서정시라고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김남주 씨의 시도 서슬퍼런 시이고, 임경섭 시인의 죄책감이나 우리는 계단을 내려갔다도 마찬가지예요. 오히려 영화에 등장하는 시들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더 실험적인 시도 있고 다른 시가 많다는 걸 알지만 관객들과 만나는 극장 개봉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다보니까 그런 시들은 제외했던 것 같아요.

 

나희덕: 이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감독님 마지막 말씀 듣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수정: 시에 대한 관심과 추억들이 있어서 이 자리까지 와주셨을 것 같아요. 바쁜 휴일임에도 와중에 극장까지 자리해주셔서 감사드려요. 함께 해주신 나희덕 시인님께도 정말 감사드리고 영화에 대한 감상들을 남겨주심 정말 감사드릴 것 같아요. 영화는 사실 관객이 완성하는 거잖아요. 이 영화를 함께 알린다면 시적인 순간들이 우리에게 더 많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나희덕: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시를 한 편 읽어드리려고 해요. 시 읽는 시간이니 저도 한 편을 읽어보겠습니다. 제일 최근에 낸 시집이 파일명 서정시인데요. 제가 이 시집을 낼 동안 영화 속 인물들처럼 힘든 나날들을 보냈어요. 시인의 말에서 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런 고백을 하기도 했는데요. 파일명 서정시는 구동독 정보부의 탄압을 받으면서 감찰의 대상이 되었던 라이너 쿤체라는 시인의 일화에서 비롯되었어요. 감찰 기록에 그들이 붙인 파일의 제목이 서정시였습니다. 시인을 감찰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면서, 이 시를 쓸 무렵에 저도 비슷한 일을 겪으면서 썼어요. 결국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서 서정시를 해동시키는 나날을 기다리면서 쓴 시입니다. 읽어볼게요.

 

 

파일명 서정시

 

그들은 서정시라는 파일 속에 그를 가두었다

서정시마저 불온한 것으로 믿으려 했기에

 

파일에는 가령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머리카락 한줌

손톱 몇조각

한쪽 귀퉁이가 해진 손수건

체크무늬 재킷 한 벌

낡은 가죽 가방과 몇 권의 책

스푼과 포크

고치다 만 원고 뭉치

은테 안경과 초록색 안경집

침묵 한 병

숲에서 주워온 나뭇잎 몇 개

 

붕대에 남은 체취는 유리병에 밀봉되고

그를 이루던 모든 것이 서정시속에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의 서정시들과 함께

 

그들은 이런 것조차 기록해두었을 것이다

 

화단에 심은 알뿌리가 무엇인지

다른 나라에서 온 편지가 몇 통인지

숲에서 지빠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옷자락에 잠든 나방 한 마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하루에 물을 몇 통이나 길었는지

재스민차를 누구와 마셨는지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대출받았는지

강의 시간에 학생들과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

저물 무렵 오솔길을 걷다가 왜 걸음을 멈추었는지

국경을 넘으며 어던 표정을 지었는지

 

이 사랑의 나날 중에 대체 무엇이 불온하단 말인가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그가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는 말을 가졌다는 것

마음의 뿌리를 돌보며 살았다는 것

자물쇠 고치는 노역에도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

 

파일명 서정시에서 풀려난

서정시들은 이제 햇빛을 받으며 고요히 반짝인다

 

그의 생애를 견뎌온 문장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맨발로, 그림자조차 걸치지 않고

 

 

이수정: 저도 시를 읽을까 했는데 시인님께서 너무 낭독을 잘 해주셔서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클럽하우스에서 읽겠습니다.(웃음) 안녕히 들어가시고, 시 읽는 시간을 많이 만드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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