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자매〉 리뷰: 소리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난다, 2017)에서 따왔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은다강 님의 글입니다.
종이에 손을 베인 느낌이다. 견딜 만은 한데 그렇다고 무시하기에는 신경 쓰이는 묘한 감각.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야하는 일이 왕왕 생긴다. 시나브로 통증은 당연해진다. 세 자매 중 막내 미옥(장윤주)이 불쑥 전화로 둘째 미연(문소리)의 삶에 끼어들 때, 첫째 희숙(김선영)이 딸 보미에게 쩔쩔 매는 걸 볼 때마다 그랬다. 〈세자매〉는 성격과 삶의 모습이 판이한 자매의 일상을 통해 출처를 잊어버린 상처의 욱신거림을 그대로 전달한다.
티브이 속 배우를 보며 연기는 씩씩하게 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희숙은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한다. 엄마에게도 욕을 서슴지 않는 딸에게 싫은 소리는커녕 길에서 만난 사이비 신자를 뿌리치지도 못한다. 희숙은 밖으로 목소리를 내는 대신 제 몸에 내는 붉은 생채기로 답답한 속을 달랜다. 미연은 넓고 깨끗한 새 아파트에서 남편, 두 아이와 함께 산다. 세 자매 중 가장 번듯하게 살지만 남편의 외도와 그 스트레스를 딸에게 푸는 자신 때문에 괴로워한다. 미옥은 극작가이나 글 쓰는 시간보다 술에 취해있는 때가 더 길다. 남편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하지만 돈 때문에 결혼한 것 아니냐는 동료들의 뒷담화에 속상해하고 자신을 ‘돌+I’라고 저장한 의붓아들에게 번듯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세 자매의 삶은 전혀 다르면서도 그 안에 도사린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어딘가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는 동안 언제 흘러 넘쳐도 이상하지 않은 물컵의 볼록 솟은 표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세 사람이 각자의 삶에서 참지 못하고 터져버린 순간, 이 찜찜함도 끝났다고 생각했다. 허나 희숙, 미연, 미옥이 ‘자매’란 사실을 간과했다. 오래된 통증의 출처는 그들의 현재가 아닌 과거였다.
아버지의 생신날, 한데 모인 자매들은 하나의 밤을 떠올린다. 어린 미연과 미옥이 손을 붙잡고 맨발로 집을 뛰쳐나와 동네 슈퍼까지 달려가야 했던 밤. 희숙이 아버지의 폭력을 견뎌내고 마침내 맞이한 정적의 밤. 다르게 적힌 같은 날의 기억은 모두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세 자매는 상처의 근원을 확인한 순간, 폭발한다. 제때 해소하지 못한 해묵은 감정이 터지는 장면은 통쾌하기 보단 괴롭다. 복수보다는 자기 파괴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미연은 이제 늙고 힘이 없는 아버지에게 ‘사과’하라고 소리치지만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에게서도 사과의 말을 받아내지 못한다. 미옥은 그런 미연에게 눈이 꼭 예전의 아빠 같다며 상처를 주고, 한바탕 난리 가운데서 소리치는 희숙은 겨우 밥 좀 먹자는 말이나 할 뿐이다.
과거는 수정할 수 없다. 사과도 받지 못했으니 결국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세 자매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상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자주 들여다볼 거다. 자매들의 모습은 약자들의 연대를 떠올리게 했다. 더 강한 힘에 맞서는 힘없는 사람들의 집단이라서가 아니라 서로의 아픈 곳이 자꾸 눈에 밟히는 이들이 서툴게나마 타인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느껴져서다. 〈세자매〉 속 연대는 그래서 따끔한 여운을 남긴다. 다들, 아픈 덴 없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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