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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잔칫날〉 인디토크 기록: ‘완벽한’ 애도를 위한 거창한 조건들

by indiespace_한솔 2021. 2. 4.

'완벽한' 애도를 위한 거창한 조건들
 〈잔칫날〉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1 1 16(토) 오후 2시 30분

참석 김록경 감독 | 배우 하준, 배제기, 김진모

진행 오정석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염정인 님의 글입니다. 


 

지난 1116일 오정석 감독의 진행으로 영화 잔칫날의 김록경 감독, 하준 배우, 배제기 배우 그리고 김진모 배우와 함께하는 인디토크 시간을 가졌다. 영화 잔칫날은 죽음에 대한 애도가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애도의 세부들이 계산되고 문화적인 형식화를 거친 현재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영화이다.

 

 

 

 

오정석 감독(이하 오정석): 안녕하세요. 저는 잔칫날인디토크 진행을 맡게 된 오정석이라고 합니다. 영화 잔칫날은 지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처음 공개가 되었고 작품상을 비롯해 4관왕을 했습니다. 12월에 개봉해서 지금은 상영 막바지에 와있는데요. 감독님들과 배우분들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김록경 감독(이하 김록경): 잔칫날연출한 김록경입니다. 어려운 시기인데 이렇게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준 배우(이하 하준): 경만역할의 하준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배제기 배우(이하 배제기): 잔칫날에서 동현역할을 맡은 배제기라고 합니다.

 

김진모 배우(이하 김진모): 잔칫날에서 종필역할을 맡은 김진모라고 합니다.

 

오정석: 먼저 감독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하시다가 연출자를 하고 계시는데요. 저와는 연출자와 배우로서 처음 만났기에 감회가 더 새로웠습니다. 영화에 배우로서 참여할 때와 감독으로 참여했을 때가 다를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가장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김록경: 일단 준비 과정부터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감독은 봐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오정석: 잔칫날이전 단편 연출하실 땐 출연도 하시고 그랬는데, 잔칫날에서는 목소리 출연이 전부입니다. 배우로서의 욕심을 버리신 건가요?(웃음)

 

김록경: 이전에 단편 연출작들에 직접 출연하기도 하고 하지 않기도 했는데요. 잔칫날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출연 생각이 없었고, 좋은 경만이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좋은 경만이를 만났죠. 배우로서의 욕심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해, 목소리만 출연했습니다(웃음).

 

오정석: 영화를 보면 감정이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폭발할 땐 폭발하는, 밸런스를 잘 조절하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영화제에서 상도 받으셨는데요. 배우를 하셨던 감독님이기에 다른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배우분들은 영화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하준: 현장에서 저희는 거의 연인이었습니다(웃음). “네 맘이 내 맘, 내 맘이 네 맘이런 상태였고요. 또 감독님이 연기자 입장을 너무 잘 아시니까, 경만의 표현들이 조각조각 섬세하게 쪼개질 수 있었습니다.

 

오정석: 처음 하준 배우님의 얼굴을 봤을 때 굉장히 선하게 느껴졌어요. 영화 초반에는 남매가 티격태격하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는 이야기가 진지해지다가, 또 팔순 잔치 때는 행사 톤으로 연기해야 했잖아요. 그럴 때마다 톤이 아주 달라지더라고요. 춤도 너무 잘 추시고. 촬영 이전에 행사 진행 같은 경험을 해보셨는지 궁금했습니다.

 

하준: 사실 배우의 길을 간다는 것은 아르바이트 인생의 시작이기 때문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중 행사 아르바이트도 많이 있었습니다. 제 과거의 모습을 발췌해서 사용했던 것 같아요. 거기에 대본에 있는 내용을 가미해서 더 풍성하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김록경: 하준씨가 예전에 출연하셨던 프로그램에서 그런 내용이 언급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트 앞에서 행사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하준씨 믿고 잘 부탁드린다고 했는데 정말 잘해주시더라고요.

 

영화 <잔칫날> 스틸컷

 

오정석: 다음으로는 배제기 배우님께 질문을 드릴게요. 저는 영화 보면서 주변에 저런 친구 한 명쯤 있다 싶었어요. 좀 비호감 캐릭터로 나오잖아요. 사실 영화에서 비중이 크진 않지만 존재감이 잘 드러났다고 생각했어요. 2010년도 화제작인 파수꾼이라는 영화에서 김록경 감독님과 연기로써 호흡을 맞추셨는데, 감독 김록경은 배우로서의 김록경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배제기: 일단, 좋은 형이고요. 배우로서나 감독으로서나 영화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연기를 할 때도 정말 디테일하게 들어갑니다. 파수꾼 작업을 하면서 늘 제가 배웠어요. 그 이후에 연출자로서 김록경 감독님을 만났을 때, 준비하시던 대본을 받아 읽고 이 사람은 이 대본으로 큰일을 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잘 짜여진 구조와 살아있는 인물 하나하나를 보며 멋진 연출자가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역시 멋진 연출자가 됐죠.

 

오정석: 이 역할은 시선 처리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굉장히 잘 하셨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굉장히 불쾌한 시선이기는 했지만(웃음) 주인공의 사촌언니한테 남자친구가 있냐고 물어보는 장면에서도 그렇고 말이죠. 평소 그런 모습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배제기: 저는 대본 처음 읽었을 때부터 , 이 역할을 하라고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저의 평소 모습에 이런 지점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연기 할 때 보통 배우들은 기반을 자기 안에서 발전시켜 나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물론 아닌 경우도 있지만요.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아닌 이상, 자기 것 안에서 변화를 주려고 해요.

 

김록경: 그렇다고 정말 말씀하신 캐릭터처럼 굴진 않아요. 맞죠?

 

배제기: 도에 어긋나는 행동은 안 하면서, 본능적으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선은 잘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오정석: 그리고 김진모 배우님께 질문드릴게요. 김진모 배우님 같은 경우는 잔칫날에서 동네 바보 캐릭터 종필로 나오는데, 눈치 없는 평범한 동네 주민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랑은 다른 느낌을 주더라고요. 영화에서도 팔순 잔치를 영상으로 남기는, 굉장히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데요. 혹시 캐릭터를 연구하실 때 참고하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진모: 일단 종필이라는 역할은 삼천포에 있는 실제 인물이에요. 감독님이 그분을 모티브로 가이드라인을 잡아주셨어요. 너무 억지스럽지 않은 모습으로 감독님께 보여드렸고 그렇게 종필이라는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오정석: 김진모 배우님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상영된 감독님의 전작 사택망처에도 출연하셨는데요. 감독님과 호흡을 맞춘 시간이 길다고 들었어요.

 

김진모: 감독님하고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넘어요. 배우 하실 때부터 만나서 연출하신 단편 작업하실 때까지 같이 일했어요. 옛날에도 느꼈지만, 배우로서 감정 연기를 참 잘하셨습니다. 연출 시작하실 때엔 이미 알고 지낸 지가 오래다 보니 편하기도 했지만, 긴장감이 더해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왜냐면 스타일을 잘 아니까. 장면 하나하나를 쉽게 넘어가지 않으세요. 그런 데서 오는 긴장감도 있고, 섬세함이 있으셔서 제가 더 집중해서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오정석: 이제 관객분들이 주신 질문을 받아보겠습니다. 하준 배우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각본의 어느 지점이 마음에 드셔서 출연하게 되셨나요?

 

하준: 특정 장면에 꽂혔던 것은 아니었고요. 대본 전체적으로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배우들은 그런 욕망 내지는 열망 같은 것이 있어요. 카메라 앞에서 나를 다 내려놓고 울 수 있는 연기 같은, 격앙된 감정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끌렸던 것도 있었고, 또 개인적으로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게 와닿았던 것도 있어요. 설레임과 부담감 그리고 두려움 같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중 어떤 감정이 특별하게 높았던 것은 아니에요. 제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서, 안 될 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이 작품이, 이 순간 내게 온 거구나, 잘해 내겠다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오정석: 다음 질문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만이는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계속 직접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숨기는데, 특별히 그런 성격의 인물을 만드신 이유가 있나요?

 

김록경: 그런 인물을 특별히 만들었다기보단, 그 상황에서 이 친구가 드러내지 못하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께 불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정석: 다음 관객 질문은 그리고 각본을 쓰고 연출하실 때, 돈과 가족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셨는지 궁금합니다.”입니다.

 

김록경: 해가 바뀌면서 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9년이 되었어요. 아버지가 계실 때는 일을 많이 좇았습니다. 가족보다는 돈이나 일을 중시하며 살았는데, 그러면서 가족 간의 오해도 있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여러 일을 겪어가며 가족 간의 오해가 해결된 부분이 있었고, 그 이후에 가족에게 소중한 마음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도 느끼게 됐습니다. 전보다 가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버지가 떠난 후 크게 느꼈습니다.

 

오정석: 다음 관객 질문입니다. “극에서 다루는 문제들에 상당히 공감하며 봤습니다. ‘죽음을 다루는 방식, 각각의 서사에서 경만과 경미를 괴롭힙니다. 겉치레에 치중된 제례적인 풍토와 죽음을 다루는 방식을 비판하시는데 머무는지 더 깊이 나아가 죽음이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인지 궁금합니다. 장례식장에서는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너무 많은 것들을 처리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저도 많이 공감하며 봤습니다.”

 

김록경: 장례 문화가 많이 바뀌었는데 그만큼 장례를 대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누가 돌아가시면 하나의 축제처럼 장례를 즐겼지만, 요즘에는 대부분 장례식장에서 마지막을 보내는데요. 시골의 문화가 장례식장 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공간에서는 슬픔에 빠져야 하는 순간도 있는데, 저의 경우에는 방해되는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저의 슬픔을 표현하고 싶은데, 누가 와서 절하면 곡소리를 내야 한다는 등의 주문을 계속하셨어요. 그런 형식들을 따르면서 저는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이런 식의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오로지 슬픔이 주어지는 시간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영화 <잔칫날> 스틸컷

 

오정석: 관객 질문 이어나가겠습니다. “‘시골’, ‘이라고 일컬어지는 비도시지역에 대한, 미디어의 전형성이 여전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사람도 서울 사람이고 마을 사람들은 방언을 쓰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록경: ‘일식이라는 인물은 서울 사람은 아니고 마을 출신 사람인데요. 일식이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단 경만이 원래 했던 일의 보수를 받아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식은 어릴 때 이곳에서 자라 서울로 대학을 가고 직장생활을 하며 억양들이 자연스럽게 바뀌었다고 설정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오정석: 부녀회장님 캐스팅에 대해서도 말해주세요. 얄미움이 생생히 전해졌다고 합니다.

 

김록경: 오디션 때 마음에 드는 부녀 회장님을 못 만나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화를 좀 찾아보다가 이정은 배우님이 나온 작품들을 보고서 연락드렸어요. 시나리오 드리고 같이 작업하자고 말씀드렸는데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오정석: 관객께서 경미가 향을 뒤집는데, 그 이유는 경만이 오는 동안 아버지를 이승에 붙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일까요?”라고 질의해주셨습니다.

 

김록경: 정확해요. 경만이 아직 오지 않았으니, 아버지가 가시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겁니다.

 

오정석: 다음 관객 질문입니다. 경만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과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감독님께서 가장 처음, 그리고 중심에 두고 그려낸 대상이 있나요?

 

김록경: 처음에 이 시나리오를 쓸 때는 경만이가 행사를 진행하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글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장례에 대한 이야기를 가져오면서 제가 겪었던 이야기 혹은 형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런 대상들이 글을 쓰는데 많은 참고가 됐습니다.

 

 

오정석: 다음은 배우 네 분께 드리는 관객 질문입니다. “연기를 펼칠 때 자신이 처한 상황과 매우 다르거나 괴리가 느껴질 때의 생각과 경험들이 궁금하다고 하세요.

 

하준: 저는 캐릭터를 맡으면 그 상황을 많이 타게 되는 것 같아요. 캐릭터와 괴리가 있었던 적은 딱히 없었습니다. 다만 신경 쓰는 것은, 감정적으로 예민한 장면을 찍을 때 주변 스태프나 다른 배우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저는 주로 캐릭터와 동기화돼서 연기 하는 편입니다.

 

배제기: 저 같은 경우는 연기 전공자도 아니었고, 어떻게 보면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통해 연기를 하게 됐죠. 경험하지 못한 것을 연기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나이가 그리 많지도 않다 보니까요. 비경험에서 나오는 감정들을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연기 할 때는 근본적으로 집중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화를 내는 씬에서 화를 내야 한다는 초목적에 두지 않고, ‘나는 화날 때 어떻게 했지?’, ‘나는 화날 때 소리를 질렀나, 참았나, 참다가 소리를 질렀나?’ 하면서 내가 화났을 때를 상상하고 대입하여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갖고 있는 것과 동의어를 만들어가면서 작품에 접근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게 제일 연기를 사실적으로 나오게 하더라고요. 뭔가 만들어내기보단, 내가 갖고 있는 것을 토대로 플러스, 마이너스를 시키는 것이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김진모: 저는 좀 괴리감이 있었어요. 저와 종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단순히 접근하면, 종필이를 연기하다가 실제 제 모습이 보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흔히 말하는 서브 텍스트를 활용했어요. 종필이라는 인물에 대한 역사를 초등학교부터 만들어보고, 대인관계까지 꼼꼼히 적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물이 더 편해졌고 그렇게 작업을 했습니다.

 

오정석: 감독님께 질문드릴게요. 여러 소품이 영화에 들어왔는데 경만의 소품 중 손목시계가 눈에 띄던데요. 단순한 코디였을까요?

 

김록경: 단순한 코디는 아니고 촉박한 시간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이야기다보니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손목시계를 소품으로 활용했습니다.

 

오정석: 촬영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하준: 잔칫날 장면에서 실제 궁지 마을 어르신들께서 촬영에 협조를 해주셨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촬영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으셨으니 아이그, 앉혀 놓고 뭐하는 거야?”라고 하시면서 오셨는데, 제가 진짜로 사회를 좀 봐드렸어요. 그렇게 같이 놀았던 게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었어요. 스태프들은 거의 바람과의 싸움이었어요. 화환들이 계속 넘어져서 화환을 세우는 게 숙제였어요. 그날 아침부터 감독님이랑 오늘 하루를 잘 보내자고, 전쟁에 나가는 마음으로 나갔었는데 그래도 잘 마무리돼서 다행입니다.

 

배제기: 큰 에피소드는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정말 행복했던 것 같아요. 코로나 시기도 아니라 마스크도 안 쓰고 다녔고, 그 동네에 가장 좋다는 사우나를 갔었는데 그게 제일 생각이 나네요. 요즘 사우나를 못 가잖아요. 촬영하고 나서 사우나 가서 씻고 잤었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지금 시기가 힘들다 보니까요.

 

김진모: 저도 경만과 똑같은데요. 잔칫날 바람도 불고, 화환도 쓰러지는데 우여곡절 속에서 찍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영화 <잔칫날> 스틸컷

 

오정석: 감독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잔치에서 할머니가 손을 잡으면서 쓰러지는데, 이때 할아버지 얼굴도 비칩니다. 이 장면이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많은 궁금증이 들었다는 반응이 많아요. 추가 설명 부탁드려요.

 

김록경: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꿈꾸는 죽음이 뭘까 생각했을 때, 웃으면서 떠나가는 게 아닐까 했어요. 할머니가 꿈꾸어왔던 장면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오정석: 다음 질문입니다. “경만이 경미에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더불어 소주연 배우님 캐스팅을 어떻게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김록경: 경만이 경미와 이야기를 못 하는 것은, 처음에는 경미가 정말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경만이 알아서 할게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나 배달 아저씨를 통해 경만의 사정을 알게 되고, 경만과 다툰 이후에는 경미가 스스로 움직이게끔 설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그랬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말을 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또 주연씨 같은 경우에는, 배우분들을 찾던 중에 오디션을 하게 되었는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어요. 영화의 마지막에 아빠 흉내 내는 장면이 있는데요. 실제 영화에서는 울지 않았지만, 오디션장에서는 아빠 흉내를 내다가 우시더라고요. 그 모습이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영화에서는 마지막에서까지 경미를 울게 하고 싶진 않아서 그렇게 연출하진 않았지만 그런 감성들을 보면서 같이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오정석: 하준 배우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연기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극 중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을 보셨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도요.

 

하준: 어떤 특별한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억울해라고 속으로 되뇌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이 보통 그렇게 궁지에 몰리게 되면 오히려 별생각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멍해지는 상황도 있고요. 어떻게든 정신 차리자는 마음으로, 해결해내야 하는 것에 대해 집중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 가장 어려웠던 장면이 경찰서 씬과 염하는 씬이였습니다. 감정들을 쏟아내야 하니 부담이 컸어요. 실제 장례식장에서 염하는 촬영을 하다보니 들어갈 때부터 압박감이 있었고 그 씬 자체가 시간이 없어서 쫓기듯이 찍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시면 대사가 들릴 듯 안 들릴 듯 하는데, 계속 내가 미안하다는 대사가 반복적으로 나와요.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커서 그렇게 쏟아진 것 같아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부모님을 상실했을 때, 계실 때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때는 미안함이 가장 주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오정석: 감독님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경미는 패션 공부를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왜 이와 같은 설정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경만은 유명한 MC가 되는 게 꿈인지 궁금합니다.

 

하준: 유명한 MC가 되고 싶네요(웃음).

 

김록경: 유명한 MC가 되는 게 꿈이 맞고요. 경미는 이 친구가 뭘 하면 좋을까 계속 고민했었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 패션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어서 저도 관심이 있었어요. 결정적으로 경만이와 어떤 연관을 짓고 싶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경미의 노트를 보면 ‘mc경만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옷을 디자인해서 오빠에게 입혀주고자 하는 설정이 있었죠.

 

 

오정석: 배우분들이 각각 잔칫날에서 애정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준: 내가 이 부분 잘했다 싶은 장면은 없고요. 오글거려서 못 봐주겠다는 장면은 있습니다(웃음). 잔치 장면에서 제가 춤추는 장면은 보기 힘들더라고요.

 

오정석: 춤 잘 추시던데요(웃음).

 

하준: 개인적으로 경미가 향을 거꾸로 하는 씬을 가장 애정합니다. 경미가 너무 수동적인 게 아니냐는 의견을 종종 받는데요. 경미가 향을 거꾸로 드는 것이 물론 추상적인 행위이지만, 굉장히 큰 행동으로 느껴졌어요.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에요.

 

배제기: 저는 제 연기 너무 만족스러웠고요(웃음). 장난입니다. 저는 영화의 한 장면을 뽑기보다는, 영화 전반의 완성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또 처음 대본 리딩할 때, 하준 씨의 연기를 보고 정말 볼만한 영화가 나오겠다라는 기대를 했고 현장에서 완벽하게 경만이 되어있는 하준 씨를 보며 그냥 믿고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결과물을 봤을 때, 제가 대본을 보며 생각했던 경만의 이미지가 구현되어 있더라고요. 장면을 하나를 꼽기 힘들어요. 연속해서 인물들을 따라가고 감정을 교류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요. 이게 잔칫날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모: 한 장면을 꼽자면, 제가 나오는 장면은 아니고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경만이 배를 타고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고 경미는 활짝 웃은 채로 영화가 끝납니다. 그 모습을 보면 지난날 경미와 경만이 겪었던 과거도 보이고, 앞으로 경만과 경미가 겪어야 할 미래가 보이는 것 같아 뇌리에 많이 남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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