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2〉 리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대화법
*관객기자단 [인디즈] 염정인 님의 글입니다.
‘오늘’ 그리고 ‘우리’를 말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영화 〈오늘, 우리2〉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낸다. 쉽게 뭉뚱그릴 수 있는 관계에 균열을 놓았고, 낭만화 되기 쉬운 가족애에 입체감을 더했다. 〈오늘, 우리2〉에 속한 네 개의 단편들은 각기 다른 서사를 들고 관객에게 찾아온다.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는 이들 간의 엇나감은 그 자체로 ‘오늘 그리고 우리’를 대변한다.
양재준 감독의 〈낙과〉는 반복적으로 추락의 이미지를 보여 준다. 아들은 공시에서 떨어지고 아버지는 젊은 사람에게 밀려 실직자가 된다. 아버지는 떨어진 살구를 줍고 매대에서 밀려난 떨이를 사 온다. 평일 낮을 배회해야 하는 이들은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낸다. 데면데면 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밥상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마트 떨이들로 채워지는 밥상에 아들은 아버지를 답답하게 여긴다. 아들은 주워온 살구를 버리고 우리가 무슨 거지냐며 화를 낸다. 아버지는 네가 사와 보라고 맞받아친다.
이들의 또 다른 가족인 어머니와 누나는 처지가 다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누나는 어머니와 살아왔다. 이들 간의 멀찍한 거리는 누나의 결혼식 장면에서 구체화 된다. 폐백에서 아버지가 던진 대추는 모두 바닥에 떨어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들은, 아버지를 먼발치에서 따른다. 아들이 쉬면 아버지 역시 같이 쉬어간다. 아들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폐기 상품을 정리하는 아들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아버지는 나무에 달린 살구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른다. 이 모습에 경비가 달려와 아버지를 나무라지만, 금세 등장한 아들이 항변한다. 아들이 “살구 좀 따면 안 되냐”고 소리칠 때 아버지는 더 높은 곳에 있는 살구를 응시한다. 손을 뻗어보지만, 아버지는 나무에서 떨어진다. 아들은 아버지를 부축하고 떨어진 살구를 줍는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주워온 살구를 나눠 먹는 장면으로 극은 마친다. 많은 것들이 찝찝하게 남아있지만 적어도 마지막 장면은 위태롭지 않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도 보지 말라”는 아들 친구의 말도, “그런 거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는 아들의 말도, 그리고 “노력도 안 해봤으면서 어떻게 아냐”는 아버지의 말도 모두 그럴듯한 진실이다. 부딪히는 모든 말이 진실이 될 수 있는 세상에 산다. 하지만 현재를 지탱할 정도의 이해와 연결들은 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살구를 따기 위해 나무에 올랐던 아버지처럼, 주워온 살구를 베어 물게 된 아들처럼.
하루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정체감을 느낄 때가 있다. 어스름한 시간을 배회하는 기분이 들고 어딘가 희미해진 나를 만난다. 이나연 감독의 〈아프리카에도 배추가 자라나〉는 이러한 자각에 선뜻 말을 건넨다.
영화는 오랜 집에 모여 ‘완전히 떠나지도 정착하지도 못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이미 성인이 되어 따로 살던 이들은 12월 31일을 맞아 모인다. 아프리카로 떠난 엄마를 떠올리며 괜한 김장을 한다. 맏딸 ‘지혜’는 여전히 본가에 남아있다. 재건축으로 주변이 모두 공사판이 되는 와중에도 쉽게 짐을 싸지 못한다. 동시에 춤을 계속 춰야 할지 현실과 타협을 해야 할지 고민한다. 둘째 ‘지훈’도 일을 그만두기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생 막내 ‘지윤’은 친구와 같이 산다고 하지만, 남자친구와 같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같이 모여 살던 시절을 건너 각기 다른 삶으로 접어들어야 하는 시점에 와있다. 떠남과 정착. 둘 중 어느 하나를 완벽하게 선택할 수 없는 ‘우리’를 비추기도 한다. 엄마로부터 도착한 상자에는 아프리카 전통 의상이 담겨 있다. 이를 입은 세 남매는 환상의 시간으로 이동한다. 둔탁한 북소리가 들리고, 지혜의 춤은 시작된다. 엄마의 선물에 응답하는 세 남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방향 없는 몸짓으로 경쾌하게 화답한다.
영화에는 폐허 속에 핀 꽃이 등장한다. 그리고 세 남매는 이 꽃이 ‘저절로’ 핀 꽃이 아니라 누군가의 노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어쩌면 자신의 뿌리 또한 누군가의 애씀과 사랑에 기반한다는 믿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희미해진 ‘나’의 뿌리를, 그렇게 되찾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작은 틈이 전체의 균열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준섭 감독의 〈갓건담〉은 가족의 틈을 메우고자 했던 ‘준섭’의 노력의 여정이 담겨 있다. 준섭은 아빠가 다시 엄마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그것이 엄마의 쉰 번째 생일선물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아빠가 사는 홍천으로 떠난다. 하지만 홍천에서의 하루는 준섭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준섭은 아빠의 긴 머리를 잘라 엄마에게 보여 주면 일이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빠의 긴 머리에 집중한다. 괜스레 학교에 와야 한다면서 머리를 잘라달라고 한다. 아빠는 징크스가 있다고 안된다고 맞받아치지만, 아들의 말을 들어 준다. 하지만 아빠 집에 가서 ‘옥슬이’ 누나를 만나게 되며, 꺼냈던 양복을 집어넣고 머리를 자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아빠의 머리를 자르게 할 수는 있어도 엄마에게 돌아오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준섭은 집에 돌아와, 엄마의 쉰 번째 생일파티를 함께 한다. 엄마의 소원은 ‘아빠가 죽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준섭은 옥슬이 누나가 준 돈으로 갓건담을 산다.
준섭은 이 모든 여정을 묵묵히 감당한다. 옥슬이 누나를 미워하지도 않고 아빠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준섭은 아빠의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 준섭이 갓건담을 산다는 사실은, 부모님의 결별을 작은 ‘틈’ 즈음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 아닐까. 준섭은 홍천에서의 하루를 경유하며 ‘나’의 모든 소원이 ‘부모님의 재결합’이던 시절을 지나온 것이 아닐까.
여장천 감독의 〈무중력〉은 장애를 대상화하지 않는 시선을 보여 준다. 깜깜한 화면에서 들려오는 음성과 동화적인 그림을 삽입해, 장애를 전달한다. 극 중 ‘현수’에게는 시각장애인인 엄마 ‘현희’가 있다. 그리고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있다. 현수와 현희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할머니의 빈자리를 실감한다. 영화 〈무중력〉은 아들 현수와 엄마 현희의 대화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감각적인 통찰을 제공한다. 할머니를 보러 달에 가겠다는 현수는 엄마 현희에게 할머니의 생김새를 천천히 설명한다. 더는 할머니를 만질 수 없지만, 현수의 언어를 통해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을 통해 할머니는 여전히 현실에 존재한다. 가족들은 할머니의 보이지 않는 부피를 감당하고 있다. 〈무중력〉은 현실에 보이는 것들에 대한 맹신을 유보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실체를 고민하게 하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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