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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담쟁이〉: 유구한 사랑의 덩굴

by indiespace_한솔 2020. 11. 5.




 〈담쟁이〉  리뷰:  유구한 사랑의 덩굴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유진 님의 글입니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 마지막 구절이다. 시를 구심으로 두고 있는 영화가 있다. 한제이 감독의 퀴어 멜로 담쟁이,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 당시 영화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한 화제작이다. 누구보다 행복했던 은수(우미화) 예원(이연) 커플이, 갑작스럽게 닥친 사고로 이전과는 다른 일상을 겪으며 부딪히게 되는 현실의 벽과 장애물을 담담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예원이 직장에서 승진 소식을 들은 , 은수는 친언니 은혜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고로 언니는 홀로 키우던 수민(김보민) 남겨둔 세상을 떠난다. 사고로 다리가 마비된 은수의 곁에는 사랑하는 연인과 언니의 어린 조카가 있다.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은 채로 시작된 가족의 서사는 다소 직설적인 영화의 문법 속에서 담쟁이처럼 현실의 벽을 타고 오른다.




영화 관람 전 리뷰들을 가볍게 확인하며 리뷰들 간의 간극에 오히려 영화가 더 궁금해졌다. 아름답고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라는 평이 있는 반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연출이 직선적이라는  존재한다도대체 얼마나 폭력적이고 직선적이길래? 장애인, 여성, 동성애자, 아이, 대안가족이라는 많은 소수자성을 포괄하는 영화가 그렇게까지 투박할까? 현실에 절망하는 영화를 우려하며 영화를 감상한 뒤, 그것은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물론 연출적인 부분에서 가지 아쉬운 지점이 존재한다. 엄마를 잃은 아이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낯선 공간에서 배회하는 , 차별과 폭력을 전하는 메시지가 다소 단순하고 직접적인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현실의 조각들이다.


아픈 현실도 현실이다. 나는 오히려 영화가 꾸밈없이 담백한 시선으로 그런 가지 조각들을 이어 붙인 것이 나쁘지 않았다. 지금껏 녹록치 않은 현실을 그린 작품이 퀴어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없지만, 여전히 이런 시도는 어렵다. 그려내기에도 부담이 있고, 제작비를 투자 받기 어려운, 메이저하지 않은 이야기다. 그러니 우리가 알고 있는 슬픈 이야기를 반복한다고 말하는 실례가 아닐까. 나는 동성애자의 이야기, 대안가족의 이야기 앞에 다양성 영화라는 수식이 붙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기 전까지는 영화 약자들에게 주어진 서사와 설정을 섣불리 비판하지 않을 생각이다. 제도의 보호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는 영화는 언제나 소중하다.





하루아침에 휠체어 신세를 지게 은수에게도, 연인의 고통을 지켜봐야 하는 예원에게도, 엄마의 부재에 적응해야 하는 수민에게도 현실은 녹록치 않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그들을 살아가게 한다. 수민을 입양하려는 은수는 다리가 불편하다는 점과 동성애자라는 점이 결격사유로 작용해 입양 신청을 기각 당한 아이도, 연인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빨리 걸을 있게 달라고 요구한다담쟁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서로를 단단히 묶고 현실의 넘을 없는 벽을 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패배주의에 쉬이 빠지지 않는다. 예원이 은수에게 우리 변하는 없지?” 하고 안기는 장면은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는 같다. 현실이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는 변하는 없어. 곧은 심지가 애틋했다.





영화를 이끄는 동력은 사랑이다. 현실이 아무리 냉정하고 매섭고 또한 장애물로 가득한 것이더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이겨낼 것이라는 의지의 표상이다. 영화의 모티프인  담쟁이 마지막 구절 담쟁이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벽을 넘는 담쟁이 하나 은수이기도, 예원이기도, 수민이기도, 그리고 영화 담쟁이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그저 은수, 예원과 수민을, 그들의 유구하고 굳은 사랑을 응원하고 싶다. 수천 개의 담쟁이들이 넘을 없는 현실의 벽들이 무너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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