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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남매의 여름밤〉 인디토크 기록 : 실은 우리 가족도 그래

by indiespace_한솔 2020. 8. 27.



실은 우리 가족도 그래  〈남매의 여름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0년 8월 23(일오후 2

참석 윤단비 감독

진행 연진 마케터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유진 님의 글입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 등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주목을 받은 영화 <남매의 여름밤>. 개봉을 축하하며 인디토크를 진행하게 되었다배우들의 캐스팅 비화촬영 현장의 분위기와 윤단비 감독님의 영화 촬영 신념 등 깊고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관객들이 오픈채팅을 통해 전달한 질문들도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어서 더욱 유쾌한 만남이었다.






 

연진 마케터(이하 연진): 저는 이 영화의 마케팅을 맡고 있는 그린나래미디어 연진이라고 합니다. 감독님의 인사 먼저 듣고 이야기 나눠 볼게요.

 

윤단비 감독(이하 윤단비): 안녕하세요. <남매의 여름밤> 연출한 윤단비입니다. 시국이 어수선해서 우려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 같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나 나누고 싶었던 점들 많이 이야기해주세요.

 

연진: 영화를 촬영한 건 2018년으로 알고 있는데 시나리오를 언제 처음 쓰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윤단비:  시나리오는 20182월쯤 작업했고, 가족에 대한 장르적인 접근을 하는 걸로 방향성을 잡았어요. 그런데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벗어나 관습이나 작법대로만 이야기를 진행한다고 느꼈고 시나리오 수정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두 달 정도 시나리오 작업을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연진: 그 당시 나왔던 독립영화들이 장르적 성격을 가졌던 게 많았던 걸로 기억해요. <남매의 여름밤>은 마치 사건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작업을 진행하시면서 걱정하신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윤단비: 독립영화나 상업영화의 결을 벗어나서 다른 결의 영화를 만드는 게 걱정이 됐어요. 감정선이 고스란히 전달돼야 하는데 영화가 보시는 분들보다 감정이 앞서가면 어쩌지 싶더라고요. 그런데 촬영 현장에서도 그렇고 배우들과 스태프분들이 이야기에 믿음을 많이 가져주셨어요.

 

연진: 그러면 기존 시나리오에서 남은 것들이 얼마나 되나요?

 

윤단비: 캐릭터 이름 정도에요. 거의 남아 있는 부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연진: 시나리오를 쓰실 때 보통 장면을 먼저 쓰시나요, 혹은 틀을 먼저 잡고 장면을 구성하시나요?

 

윤단비: 먼저 큰 틀에서 생각했어요. 이 가족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헤어진다는 틀 안에서 이들이 겪는 사건과 감정들을 촘촘히 쌓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애도에 대한 마음을 영화에 담고 싶었고, 누군가에게는 위안이 되길 바랐어요.

 

연진: 인물들의 이름에도 의미를 넣고 싶으셨나요?

 

윤단비: 제 주변 사람들에게서 이름을 많이 가져왔어요. 옥주라는 이름은 제 후배의 이름인데, 어떻게 보면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참 귀한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유행과는 관계없는 이름이니까요. 그 친구에게 허락을 구하고 이름을 썼어요. 병기는 친구 아버지의 이름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놀림을 많이 받으셨대요. 그런 것들이 이 인물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연진: 그럼 이제 관객분들 질문을 읽어볼게요. 할아버지 역할 맡으신 김상동 배우님은 원래 연기자가 아니신 걸로 아는데 어떻게 연기를 이끌어내셨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하셨어요.

 

윤단비: 맞아요. 전문 연기자가 아니셔서 우려를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김상동 배우님을 만나서 살아오신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배우님의 손자분이 동주 나이 또래여서 애틋한 감정들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런 마음을 표현하려고 해주셨어요. 현장에서도 동주의 의자를 끌어주거나 동주를 안아주거나 그런 장면은 제가 디렉팅한 게 아니라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셔서 나온 장면이거든요. 그 마음을 포착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할아버지가 동주를 쳐다보는 장면도 디렉팅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연진: 다른 배우분들도 어떻게 영화 함께하게 됐는지 이야기 해주세요.

 

윤단비: 가장 먼저 캐스팅 된 배우는 병기 역의 양흥주 배우였어요. 병기는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인물이 아니라 그냥 옆집 아저씨 같고, 그러면서도 아저씨 같지 않은 캐릭터인데, 그런 느낌을 가진 배우분이셨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양흥주 배우님을 마주치게 돼서 작업을 함께 하자고 말씀드렸어요. 박현영 배우는 제가 평소에 워낙 좋아했어요. 역할에 국한 되지 않고 배우의 개성이 굉장히 두드러지거든요. 구교환 감독님께 박현영 배우님의 연락처를 전달 받아서 함께 하게 됐어요. 옥주 역의 최정운 배우는 <빛나는 물체 따라가기>라는 단편에서 보면 알 수 있지만 그 나이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박승준 배우는 전형적인 느낌에서 벗어나있고 주눅 들지 않고 연기할 것 같았어요. 양흥주 배우님과 닮기도 했고요.

 

연진: 병기 캐릭터가 밉지 않은 게 넉살이 좋고 배우님과 이미지도 맞아 떨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보통의 한국 영화에서 그려진 아버지의 모습과 달라서 아빠 병기의 캐릭터 연출이 중요할 것 같았어요.

 

윤단비: 이 인물이 가부장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영화가 불안하게 느껴지지 않길 바랐어요. 어떻게 보면 이 인물이 현실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어떤 분위기에서 위화감을 주거나 어린 남매에게 이혼에 대해 아픔을 토로한다는 식의 설정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선량한데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의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저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 인물을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병기를 악하게 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어요.

 

연진: 저는 영화를 보면서 만약 병기가 이 영화의 화자가 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윤단비: 아무래도 제가 살아왔던 과정이 옥주와 닮아 있다고 생각해서 옥주의 입장에서 어른들의 모습, 남매의 모습을 조명했어요. 성인 남매의 모습은 조금 더 객관적으로 담으려고 했어요. 제가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판단하는 게 맞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연진: 원래 옥주가 살던 집이 비워지는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해요. 또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집은 그대로인데 할아버지가 사라진 빈자리를 보여주는 듯하거든요. 이런 연출로 의도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윤단비: 공간이 주는 정서가 크다고 생각해요. 사라진 이후에도 시간은 존재하고, 시간이 존재함으로써 한 존재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공간을 비췄어요. 또 할아버지가 옥주의 맞은편에 많이 앉아 있거든요. 그래서 옥주가 더 많이 그 공백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연진: 할아버지가 떠나는 장면 등은 청소년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서 힘들어하진 않았는지 질문을 해주셨어요.

 

윤단비: 저의 원칙 같은 건데, 배우들에게 그들의 개인사나 감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들의 트라우마를 건드릴 수도 있으니까요. 상처가 영화 현장에서 노출되는 상황인데 감정까지 건드리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옥주가 부고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고모의 목소리는 영화에 들어가지 않지만 연기를 돕기 위해서 정말로 박현영 배우가 통화를 해주셨거든요. 그런 방식으로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옥주와 동주가 싸우는 장면은 찍기 직전까지도 둘이 친하게 붙어 있다가 그냥 승준 배우에게 '누나에게 가방을 뺏기지 말라'고 디렉팅했고, 정운 배우는 이미 감정을 잘 알고 있어서 대사에 얽매이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둘에게 충분히 동의를 구했어요. 승준 배우도 비슷한 터울의 누나가 있어서 이런 경험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그래서 둘이 싸울 때 대사에 없는 부분이 나오기도 했어요. 장례식장 장면에서는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제 장례식장에서의 경험을 얘기했고, 그걸 잘 이해해줬어요.

 

연진: 감독님의 작법이 캐릭터에서도 굉장히 잘 묻어나는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도 특정한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은 방식으로 영화를 찍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단비: 가족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떤 인물에 집중을 하면 인물의 내적인 이야기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관계를 통해 인물 각자가 유추되길 바랐어요. 연기자들에게는 캐릭터의 전사를 설명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부분은 생략을 했어요.

 

연진: 영화의 리듬도 색다른 게 옥주가 집이 망해서 할아버지 집에 들어갈 때 특이한 음악이 나오잖아요. 그때 감성적인 음악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런 음악을 넣으시는 부분에서도 관객분들에게 불안을 주지 않으시려고 하신다는 게 느껴졌어요.

 

윤단비: 보시는 분들의 감정보다 앞서가거나 감정을 강박적으로 주입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은 초반의 상황을 따라가고 있는데 음악을 통해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면 관객은 준비가 안 됐는데 앞서가는 거니까, 지양하고 싶었어요. 분위기가 무거운 상황에서 음악의 도움을 받아 감정을 고조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연출자의 개입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대부분의 음악을 영화 내부에서 들리는 사운드로 구성을 했어요.

 

연진: 엄마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옥주가 엄마를 꿈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셨어요.

 

윤단비: 아마 모두 이유를 아실 것 같아요. 동주보다 옥주가 엄마와 보낸 시간이 더 길잖아요. 그러다보니 엄마가 우리를 버렸다는 감정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에 비례하는 원망이요. 그래서 엄마를 원망하는 모습이 많이 비춰졌지만 꿈을 통해 엄마를 보고 싶었다고 인정한 것만으로도 옥주가 자신을 드러냈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영화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아이들에게 대신 하게 하는 게 별로라고 생각해요. 어린 캐릭터들이 나이답지 않게 성숙한 모습을 보이면 아이들이 실제로 저런가 생각해보게 돼요. 옥주도 그 나이대의 고민을 가진, 어떤 부분에선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진: 옥주가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장면에서도 감독님이 신경을 많이 쓰셨다고 생각했어요. 자칫하면 무거워질 수 있는 장면인데 문틈에 코끼리 인형을 넣어서 일상적이면서도 관객들의 마음에 여유를 주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할아버지와 옥주가 노래 미련을 듣는 장면에 대해서도 질문 주셨어요. 이 노래를 선택하신 이유도 궁금하고, 장면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세요.

 

윤단비: 저는 그 장면이 길어서 영화에서 음악을 듣는 장면을 이렇게 보여줘도 될까 고민했어요. 저도 이 장면을 좋아하는 마음이 복합적이거든요. 옥주가 할아버지의 시간을 지켜줬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주처럼 다가가서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옥주는 할아버지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잖아요. 그게 배려였던 거죠. 한편으로는 옥주가 그때 다가가서 할아버지와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언젠가는 죄책감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촬영감독님과는 멜로영화를 찍는 느낌으로 촬영을 했어요.

 

연진: 천천히 페이드 아웃 되다보니까 정말 꿈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 외에도 감독님께서 좋아하는 장면 있으신가요? 영화 속에서 좋아하는 장면과 촬영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장면 이렇게 두 가지 질문이 들어왔어요.

 

윤단비: 촬영하면서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두 장면인데요. 동주가 춤을 추는 장면에서 승준 배우가 촬영 직전까지 어떤 춤을 출 건지 안 보여줬거든요. 그래서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예상 밖의 춤을 춰서 다들 실제로 웃음이 터졌어요. 정말 재밌게 찍었어요. 또 한 장면은 택시를 타고 갈 때 동주의 머리를 옥주가 끌어당겨주잖아요. 그 장면은 승준 배우가 실제로 잠들어서 자연스럽게 정운 배우가 어깨에 기대게 해준 건데 그게 예쁘다고 생각해서 영화로 이어졌어요. 좋아하는 장면은 항상 바뀌는데 지금은 고모가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랑 옥주가 신발을 뺏어서 자전거 타고 오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고모가 담배를 피우는 장면은 고모로서나 대안적 엄마로서의 인물이 아니라 미정이라는 캐릭터의 애환이 보여지는 순간이었고, 옥주가 자전거 타고 가는 장면은 옥주의 감정에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힘이 강한 장면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진: 여러 가지로 힘든 와중에도 이런 자리가 마련이 돼서 다행이고, 감사하네요. 그럼 오늘 감독님 마지막 말씀 듣고 토크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윤단비: 이렇게 자리 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힘이 나네요. 감사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연진: 참여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남매의 여름밤> 끝까지 관심 가져주시고, 또 좋은 자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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