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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획]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인터뷰: 누구에게나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다

by indiespace_한솔 2020. 8. 3.


누구에게나 읽히고 싶은 욕망이 있다

 〈윤희에게〉 임대형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성혜 님의 글입니다.




지난 710일부터 12, 인디스페이스에서 '썸머프라이드씨네마2020'이 진행됐다. 올해의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는 여성 퀴어영화를 모아 많은 관객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지난 해 연말에 개봉하여 겨울 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윤희에게가 오랜만에, 그것도 여름에 극장에서 상영하며 이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임대형 감독의 작품을 오랫동안 좋아했던 마음을 담아, 감독과 만나 윤희에게뿐 아니라 단편영화 만일의 세계〉(2014), 장편 데뷔작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2016)(이하 메크모)까지 두루 이야기 나눠보았다.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며 이전으로부터 변화해나가는 모습, 동시에 그럼에도 변하지 않고 이어나가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로 윤희에게가 또 한 번 관객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관객들이 그러하듯, 감독님도 여름에 윤희에게를 상영하고 관객과 만나는 기분이 특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개봉한 지 8개월 정도 지났어요. 원래 종영하기 전 마지막 GV를 배우분들과 함께 하기로 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며 무산되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이지만 모두가 별 탈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윤희에게개봉 이후로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근황은, 책 읽고 영화 보고 술 마시고.(웃음차기작 구상도 하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는 윤희에게상영을 맞이하여 진행하게 된 것이기도 하지만, 이전 작품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만일의 세계부터 감독님 영화를 좋아했었는데요. 윤희에게가 감독님의 작품이란 것을 뒤늦게 알고 조금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전 작품으로 감독님을 접했던 관객으로서 윤희에게라는 이야기를 구상하며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용기를 냈던 순간이 있지 않으실까 생각했습니다. 그에 관해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윤희에게를 작업하기 위해 특별한 용기를 냈다기보다는 평소에 보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영화를 만들겠다는 어떤 결정적인 계기랄 것은 없었어요. 그래서 대가를 지불하고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죠. (대가를 지불했다고 함은 어떤 뜻일까요?) 영화 찍는 과정이 워낙 힘들었어요. 한일 합작 영화고 제가 해보지 못했던 작업이었기 때문에 아주 큰 도전이었습니다. 그게 아주 큰 대가를 지불한 것이 아닌가.(웃음지금 생각해보면 몇 년을 이 영화에 묶여있었으니까 특별한 용기를 냈다기 보다는 그런 각오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김희애 배우가 출연하는 퀴어영화라는 것보다 감독님과 김희애 배우의 협업에 더 놀랐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신 메크모기주봉 배우와 윤희에게김희애 배우 모두 특유의 대사 톤이 명확하게 그려지는 베테랑 배우이기도 한데요. 색이 뚜렷한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이들과 작업을 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색깔이 뚜렷하다는 표현이 재밌는 거 같아요. 저도 어떤 인상인 것 같은데, 김희애 배우님은 평소에 푸른색을 떠올렸고 기주봉 배우님은 회색을 떠올렸어요. 인상이니까 굳이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요. 작업하면서 두 분에게 일과 자기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두 분 모두 인생에 다 좋은 선배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영화에서 배우들의 색이 입혀지는 것, 다르게 말해 영화에 배우의 연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서 여쭤본 질문이기도 한데요. 배우분들의 연기가 더해져서 생각하지 못했던 느낌으로 연출이 된 장면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는 배우분들의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글을 쓰고 감독이 연출을 할 수는 있지만, 배우라는 존재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고요. 현장에서 바뀌기도 하고, 제가 계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배우분들이 대사를 어떻게 치느냐, 어떤 표정을 하느냐, 이런 부분은 예상이 안 돼요. 김희애 선배님은 워낙 프로페셔널하셔서 첫 테이크부터 모든 걸 다 쏟아 부으시는데, 그래서 제가 배우님의 작업을 잘 따라갈 수 있기를 바라며 배우는 자세로 임했어요. ‘윤희는 제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김희애 선배가 윤희였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함께 방향성을 고민하는 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단편영화 만일의 세계이야기를 잠깐 해보자면, 이 영화는 감독님의 리듬이 특별하게 살아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만일의 대사 중 작위적이지 않아? ... 필사적으로 보였어.’라는 부분이 이 영화의 전체와 맞닿아 있다고 느꼈는데요. ‘주희라는 인물이 유일하게 땅에 닿아있는, 자연스러운 존재이면서 또 필사적인 멜로영화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만일의 세계를 구상하신 계기나 어떤 포인트에서 이 영화가 시작되었는지 연출 의도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2013년에 작업한 영화인데, 과거에 작업한 영화를 이야기할 때 고통스러워요.(웃음언제나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면 엄청 한심하게 느껴지고 답답하기도 하잖아요. 그와 비슷한 느낌인 것 같아요. 그 당시에 비극이란 소재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고,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특히 열정적인 사람들이에요. 자기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인데, 그런 인물상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거 같아요.

 


만일의 세계메크모는 확실히 이어지는 느낌이 있는데요. 이는 쪼다같은 남자이자 예술가 지망생인 남성 인물 그리고 그 옆에 이성적이면서 담담한 여성 인물이 등장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두 남자 주인공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감독님께서 한심하다는 코멘트를 덧붙이신 것이 인상 깊었어요. 그럼에도 결국 두 작품을 통해 이런 인물과 관계를 그린 셈인데,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러한 두 사람의 관계성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남성 캐릭터에게 한심하다고 했던 건 거리를 두기 위해서 했던 것 같고요. 어찌 보면 자조이기도 한데, 사실 어떤 캐릭터가 마치 감독의 분신, 자아 인 것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고 싶어서 그런 코멘트들을 많이 덧붙인 것 같아요. 저와는 다른 인물이기 때문에.(웃음수많은 인물들을 만드는데 모두 조금씩 내 생각이 아닌 생각을 갖고 말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들이 저의 분신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편입니다.

 


윤희에게로 이런 관계의 계보가 끊어진 것 같습니다. 새봄과 경수의 관계, 그리고 경수라는 캐릭터를 그리면서 이전과는 다르게 접근하려고 하신 면이 있으실까요?

 

새봄과 경수의 관계성은 어떻게 보면 전작들에 등장하는 이성애 커플들의 관계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다만 경수 캐릭터는 관객들이 볼 때 너무 싫거나 혐오스러운 캐릭터로 보이지 않길 바랐어요. 현실적인 남성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런 캐릭터를 만들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새봄 캐릭터가 새로웠습니다. 감독님의 이전 여성 캐릭터들이 현실적이고 이성적이라면 새봄은 그와는 좀 달라서, 말씀대로 이전 작품들에서 관계성이 달라졌다기 보단 인물들이 달라진 면이 있는 듯합니다.

 

다행입니다. 김소혜 배우가 연기하면서 새봄 캐릭터가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캐릭터가 나왔어요. 그래서 배우의 영향이 절대적이라고 한 것인데요. 김소혜 배우가 가지고 있는 매력, 생동감, 생기가 새봄 캐릭터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 같습니다.

 


 


만일의 세계, 메크모, 윤희에게모두 여행이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메크모를 처음 봤을 때 좋았던 것은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서 영화를 찍는 장면들이었어요. 개인적인 이유이지만, 시외버스, 고속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 한 번쯤 지나치는 풍경이지만 그 풍경에 닿을 일은 없을 것 같은, 지나쳐가며 보는 풍경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혹시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메크모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 사람, 중요해 보이지 않는 장소,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소를 담으려고 했던 영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인상을 받으셨던 거 같아요.

 


장소를 헌팅하실 때 기준이 있으셨을까요? 메크모는 금산을 배경으로 하면서 금산 길목의 상징적인 인삼 동상조차 나오지 않죠.(웃음)

 

윤희에게를 찍을 때도 오타루에 상징적인 장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상징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평범한 장소를 찍겠다는 방향이 있었고요. 메크모때 장소 헌팅을 하면서 가장 크게 생각했던 것은 도로의 형태였습니다. 미국은 고속도로가 아주 길게 쭉 뻗어 있잖아요. 주로 직선의 길인데 한국은 굽이치는 길이 많아요. 그런 길을 담고 싶었어요. 인삼 동상 같은 상징물을 코미디 영화에서는 담을 법하지만 이 영화 정서에는 해가 될 것 같았어요. 되도록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곳, 흔적이 있고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이 있는 곳을 담으려 했어요. 메크모에서 아파트가 뒤로 비치는 택지 개발 지구에서 찍은 씬이 있는데요. 실제로 그 공간이 당시 개발되고 있던 무덤 터였어요. 제가 어렸을 때 비비탄 총 쏘면서 놀았던, 과거의 기억이 있는 공간이 바뀐 것을 보고 사라져 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발소도 점점 없어지고 있는 추세였고요. 그런 사라지는 풍경들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반면에 메크모속 단편영화인 사제폭탄을 삼킨 남자에서는 오히려 상징성이 큰 장소들이 등장해요. 국회의사당이나 교회 같은 건물들이 멀찍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죠. 찍지는 못했지만 여의도 황소 동상도 찍으려고 했었어요. 자본, 캐피탈리즘에 대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서(웃음). 그땐 모금산이 폭파하고 싶은 공간을 상상해봤어요. 정치의 중심이나, 증권가의 상징 같은 것들. 모금산이라면 이런 공간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찍었던 거 같아요.

 

 

동시에 세 편이 모두 겨울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재밌습니다. 우연이라기엔 겨울의 풍경을 너무나도 잘 드러나는 영화들인데요. 겨울이라는 테마가 감독님께 어떻게 작용하는지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덧붙여 윤희에게를 보고 오타루에 갔다는 후기를 감독님께서도 꽤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감독님께 오타루의 풍경은 어떻게 다가왔을지도 궁금해요.

 

겨울은 개인적으로 자책과 번민의 계절인 거 같아요. 다른 사람도 어느 정도 그렇겠지만, 주로 한 해 동안 어떻게 내가 한심하게 살았나를 돌아보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동시에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윤희에게를 찍기 전에 개인적으로도 오타루 여행을 갔었어요. 눈이 엄청 많이 내리는 관광지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조금만 걸어서 올라가면 눈을 치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더라고요. 관광지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살아가기도 하는 곳. 그런 인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타루에 가보고 놀랐던 것은, 마을은 다 오르막길에 있더라고요. 반대로 관광지는 모두 평지에 있고요. 이런 부분도 오타루를 배경으로 하는 데 영향이 있었을까요?

 

오타루가 워낙 관광지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까 새봄과 윤희가 여행을 간다는 컨셉과도 어울리는 곳인 동시에, 쥰과 마사코가 살고 있는 마을이라는 두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었어요. 관광지라서 맛집도 많고 테마파크처럼 꾸며진 랜드마크도 많고, 그러면서도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이자카야가 곳곳에 있고. 그렇게 뒤섞여 있는 점이 이 영화와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촬영지로 생각하신 곳도 있었을까요?

 

홋카이도 지역을 더 많이 다녀볼 계획이었는데, 아무래도 너무 시골로 들어가게 되면 촬영 여건상 어렵겠더라고요.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JR 기차를 타면 1시간 거리라서 촬영하기에 유리한 곳이었어요.

 


 


메크모이야기를 하면 예원자영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자영과 모금산의 관계는 어떤 케미가 느껴지기보다는 모금산이 자신의 일상을 깨고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에 의미를 가지고 봤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는 두 사람이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는(그래서 수영장에 소문이 나는) 관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요. 어쩌면 지역의 폐쇄성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감독님은 자영이란 인물이 어떤 의도로 필요하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기주봉 배우님과 자영 역을 맡은 전여빈 배우님에게 이 둘은 외로운 사람들이고, 그래서 그 외로움이라는 동질감으로 친구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보였으면 한다고 주문했던 기억이 나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친구 관계를 주변인들이 달갑지 않게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내면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악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주변 인물들이잖아요. 사실 개봉했을 때 두 사람이 친구가 된다는 것에 너무 이상주의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돌이켜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도 들고 그렇습니다. 두 사람처럼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 맥주 한 잔을 함께 마시면서 다육 이야기를 하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우정 관계가 과연 가능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이상적인 거겠죠.

 


예원은 고집 센 모금산과 스데반 부자 사이에서 이렇게 맞는 말만 할 수 있을까 싶은, 다시 봐도 좋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원의 모니터에 붙어있는 페미니즘 관련 스티커가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속 두 부자에 비해 짧은 분량이지만 두 부자 못지않은 이야기가 그려지는 인물입니다. 그런 디테일이 살아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영화 속에 예원의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아쉽게 느껴지는데요. 혹시 예원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예원 캐릭터의 가족 관계를 넣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시나리오 구성이 모금산-모스데반 부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예원의 비중이 어느 정도여야 할까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윤희에게의 경수와도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어찌 보면 경수가 메크모의 예원이 아닐까 싶어요. 결국에는 예원이라는 사람이 여행을 주도하고 운전대를 잡잖아요. 부자가 함께 여행을 찍는 그 여정은 예원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원 캐릭터는 조력자였다는 것에 나름의 반성이 있었어요. 그를 역전해본 것이 윤희에게의 경수 캐릭터였던 것 같아요.

 


메크모챕터 5 직전에 예원이 모금산의 방에서 일기장을 읽다가 모금산의 목소리로 챕터5가 이어집니다. 윤희에게에서 첫 시작이 쥰의 편지를 새봄의 목소리로 읽는 장면이라서 그런지 그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영화 모두 무엇을 읽는장면이 많다고 느껴지는데요. 이런 연출에 의도가 있으신가요?

 

가령 숨겨진 블로그에 자기 일기를 쓰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싶은 욕망이 있죠. 다른 이의 사적인 기록들을 읽는 것을 저도 흥미로워하고요. 나의 사적인 글들을 남이 읽을 때 되게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굉장히 감동적인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나를 타인한테 열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다 누군가에게 자기를 보여주고 싶어 하기 때문에요. 혼자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특히 나를 좋아하는 누군가 혹은 나를 이해해줬으면 하는 사람이 나의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이 다들 조금씩 있잖아요.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거 같고요. 얼마 전에 제 친구가 해준 이야기인데, 그 친구는 신문을 읽으면 항상 운다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신문에는 정말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있고 그 안의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그렇게 울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게 제가 픽션을 하는 이유인 것 같기도 해요.

 




외로움도 마찬가지로 작품 속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모금산, 그리고 윤희와 쥰까지 모두 외로운 인물로 그려지는데요. 과거의 기억으로 오랜 시간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어온 인물들이지만 외로움의 결이 두 영화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독님이 그려온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혹은 두 영화에서 외로운 인물을 그리면서 다르게 접근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영화를 만들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인물들이 너무 외로워 보인다.’ 그런데 주변에 똑같이 외로워하는 인물들이 있거든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고 외로움 자체는 누구나 크게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인물들을 그리며 크게 다르게 접근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윤희에게를 처음 봤을 때 윤희와 쥰의 관계만큼이나 윤희와 새봄의 관계에 많이 눈길이 갔습니다. 윤희에게를 보고 메크모를 다시 봤을 때 가족에 대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는 관계에 대해서 감독님이 반복적으로 스쳐 지나가듯 하는 대사들이 보이더라고요. 가족끼리 그냥 주고받을 수도 있는 것을 짐이나 부담스러운 것으로 여긴다든지 하는 대사들이 많았습니다. 감독님이 바라보는 가족에 대한 시선을 이야기 나눠주실 수 있을까요?


가족은 작은 사회인 것 같아요. 무조건적인 사랑은 세상에 없는 거 같고, 주면 돌려받고 싶은 게 사랑인 거 같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이란 존재가 완벽하지가 않고, 타인을 스스로를 모두 던져가면서 사랑하고 희생하는 건 성인(聖人), 그것도 미화된 이야기 속에나 있는 것이지 인간은 언제나 이기적이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가족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봤을 때 윤희에게에서 곱씹을수록 슬펐던 장면이 침대 장면에서 새봄이 엄마한테 내가 짐이었던 것 같아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더해 마지막 윤희가 쓴 편지에서 윤희가 새봄이에게 더 배우고 싶은 것이 없을 때까지 배우게 할 것이라고 말할 때 여러 감정으로 다가왔습니다. 감독님이 바라보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넘어서는 딸과 엄마의 관계를 그리셨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윤희와 새봄의 관계를 그리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이 있다면 궁금합니다.

 

윤희는 자기가 멸시받아오면서 살아온 삶을 새봄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새봄이 자신이 짐인 것 같다고 말한 게 충격이었을 거고요.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되는 삶을 살아왔다는 자책을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새봄과의 여행을 결심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멸시 받는 삶의 대를 끊기를 원하는 모습을 윤희와 새봄을 통해 그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윤희가 한 그 말은, 어찌 보면 동시에 윤희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일의 세계부터 윤희에게까지 세 영화 다 로드무비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세 영화 모두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공통점이기도 하고요. 로드무비의 구조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일단 저는 항상 떠나고 싶은 사람인 거 같아요. 항상 도망치고 싶고. 그게 머나먼 곳으로 떠나거나 깊은 산골에 가는 것을 말하는 건 아니고요. 평소에는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어디론가 떠나게 되면 다른 시각이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보이고 또 다른 풍경이 보이잖아요. 그래서 매력적이지 않나 싶어요.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차기작 계획은 있으신지, 있으시다면 어떤 이야기를 구상 중이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제가 최근에 에세이 아무튼, 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좋아서 적어놓은 구절이 있어요. “평일 한낮에 작고 낮은 산에서 보내는 지금 이 순간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지금 이곳에 없는 멀고 높은 산만을 바라보는 일은 좀 어리석지 않나. 작고 낮은 산부터 매일매일 오르고 오르다 보면 시간이 흘러 산이 나를 또다시 다른 산으로 연결해주겠지. 다른 세상으로 데려다주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날까지 묵묵히 내 앞의 산을, 내 몫의 삶을 또 올라야겠다. 그러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내리막도 만나겠지.” 책에 거의 마지막쯤에 있었던 글인데요. 저자분이 히말라야, 알프스 등 여러 산을 오르셨는데, 이 구절은 동네 뒷산을 오르면서 했던 생각이었어요. 저도 차기작에 대해 큰 욕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럴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매일매일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쓰자, 그러다 보면 어떤 게 생기겠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윤희에게도 그렇게 하다가 만들어진 영화이니까요. 요즘은 그런 과정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고민 중에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도 직접 이야기를 쓰실 계획이신가요?

 

열어놓고 있어요. 세상에 워낙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요. 원작 있는 소설을 받기도 하고 시나리오를 받기도 하는데, 좀 고민을 해봐야죠. 영화는 워낙 길게 작업을 하니까 자기 에너지를 거의 다 소진하며 하거든요. 그래서 찍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코미디를 좋아하고 시트콤도 많이 봐서 코미디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윤희에게를 만들면서 로맨스 영화를 제가 아무래도 잘 못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주력 장르가 아닌 것 같아요. 나름 웃기려고 유머러스한 순간들을 넣었던 것 같은데 그게 제 본능 같아요. 제게 남을 웃기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웃음진지한 사람이지만 본격적인 코미디 장르를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인데, 혹시 감독님 단편영화 레몬 타임은 볼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 또 있을까요?

 

2011년에 작업한 영화인데 제 비공개 유튜브 계정에 있기는 있어요. 근데 이러면 안 되는데, 저도 제 과거작을 보기가 너무 괴로워서.(웃음사람이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좀 더 나이가 들면 과거의 내가 했던 작업들을 과거의 나는 이렇게 생각을 했구나하고 조금 더 무던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러질 못해서 남들에게도 보여주기가 좀 부끄러워요. 그래도 저도 더 고민을 해보겠습니다.

 

 

오늘 간만의 상영임에도 인디스페이스 객석이 꽉 찼습니다. 윤희에게는 그만큼 언제든 사랑받는, 많은 이들의 올 타임 베스트영화인 것 같아요. 앞으로 새롭게 윤희에게를 비롯한 감독님 전작들, 그리고 어쩌면 다가올 차기작을 마주할 인디스페이스 관객분들에게 한마디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이 시기가 잘 지나가서 극장에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고요. 윤희에게관객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영화는 완성된 순간 감독의 손을 떠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윤희에게는 제 영화가 아니고 윤희와 쥰을 지지하고 애정해주시는 분들의 영화예요. 이 영화를 보실 때 그렇게 생각하고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감독을 지우고(웃음) 두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도 윤희에게같은 퀴어영화가 메인스트림에서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관객으로서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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