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 수 있어야 한다
〈담쟁이〉 한제이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보라 님의 글입니다.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21회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이었던 〈담쟁이〉가 인디스페이스의 ‘썸머프라이드시네마2020’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다. 일찍이 관심과 호평을 받은 덕에 영화는 이번 기획전에서 유일하게 2회차로 상영되었다. GV가 있었던 금요일 저녁 상영은 일찌감치 매진되었고, 팬들은 손수 만든 귀여운 굿즈를 공유했다. 〈담쟁이〉의 다정한 연인 은수(우미화)와 예원(이연)의 사랑은 영화 바깥에서 이토록 열렬하게 응원 받고 있었다. 이들의 사랑이 온당하다면 이들이 가족으로 살 수 있는 길 또한 더는 외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맞은 두 연인과 은수의 조카 수민(김보민)은 고작 함께 사는 것만이 가장 큰 바람이자 눈앞에 닥친 문제다. 영화는 전면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도 이 문제의식을 시종 잊지 않은 채 세 인물의 삶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담쟁이〉의 한제이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담쟁이〉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제가 무관중 온라인 상영으로 진행되면서 관객들과 대면할 수 없었는데요. 이번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가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나시는 자리인데 어떠신가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지 못해 배우, 스태프들 모두 아쉬워했어요. 저희 영화는 사운드나 화면 사이즈 등 여러 부분이 극장 상영과 적합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서 다들 설레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씨네21」과의 인터뷰([경기영상위원회②] 〈담쟁이〉 한제이 감독, 배우 우미화·이연·김보민 – 우리 그냥 ‘가족’하면 안 될까요?) 내용에 따르면, 감독님께서는 자신의 성적지향을 잘 모르던 개인이 상대를 만나 깨닫게 되어가는 이야기들을 “이제는 대부분이 아는 이야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부분이 공감되고 속이 시원하기도 했어요. 최근의 예 중에는 〈윤희에게〉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처럼 레즈비언의 고충을 다루고는 있지만 그들 내면에서는 이미 정체화가 되어 있는 인물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관객들이 그런 이야기를 더 원하는 것 같아요. 〈담쟁이〉는 이제 그러한 사회적 인식을 넘어 제도적으로 공평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차원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현실적인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혹은 이끌어내길 바라셨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이었나요?
기획의도가 ‘보통의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우리나라는 남녀가 결합되어야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국가잖아요. 스태프들과 ‘생활동반자법에 관한 내용이 기사에 한 줄이라도 나오면 우리 영화 성공한 거다’라는 이야기를 나눴었어요. 굳이 동성부부가 아니라 동성의 친구들끼리 살 수도 있고요. 생활을 함께 하는 사람이지만 장례식이라거나 위급 상황에서 면회를 간다거나, 저희 영화에서처럼 응급실에서 보호자를 대신하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현실적으로 생각한 부분은 생활동반자법이에요. 우리 영화에서는 동성부부를 다루고 있으나, 요즘은 여러 대안 가족 형태가 많이 존재하고 있잖아요. 함께 생활하고 정말 가족처럼 살고 있는 사람들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단지 부부는 남녀간의 결합이라는 헌법 때문에 모두가 동반자의 권리를 못 가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헌법 제 10조에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라고 명시되어 있는데요, 그런 법이라는 제도가 각 개인의 행복을 차단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에서 갑작스럽게 슬펐던 장면은 퇴원 후 은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직 휠체어가 낯선 은수와 예원이 현관문에서 우왕좌왕할 때였어요. 이 장면에서 눈물이 많이 흘렀습니다.
저도 이 장면 찍을 때 정말 슬펐습니다. 누구나 갑작스레 후천적인 장애를 가질 수 있고, 집 문턱조차 넘을 수 없는 상황들을 겪을 수 있는거잖아요. 그게 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겪는 일 일때, 어떨지 생각하며 사고 후 처음으로 함께 생활하던 공간에 들어오는 장면을 꼭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상이었던 공간이 낯설어졌을 때 느낄 감정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었거든요.
그 장면에서 은수라는 인물이 더 서글퍼 보였던 것 같아요. 창작하는 입장에서 성소수자 캐릭터를 다룰 때도 섬세한 결이 필요할 것 같은데, 거기에 후천적으로 장애라는 요소가 개입되었을 때 많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으셨을 것 같아요. 고민이 많으셨을 텐데, 이 부분에 있어서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길 바라셨나요? 은수가 어떤 인물로 비춰지길 원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주변에서도 우려를 했어요.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하는 게 아닌지. 그런데 저의 가족 중 한 분도 장애를 갖고 계시고, 후천적 장애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거니까요. 저는 〈담쟁이〉를 준비하기 전에 다리를 다쳐 몇 달간 깁스를 했어요. 그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함을 느꼈는데,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 살기에 너무 불편한 세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장애를 가진 개인에게 불편함을 떠안기는 사회에 어느정도 책임이 있지 않나 라고 묻고 싶었어요. 저희 영화는 장애를 아주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일상적으로 군데군데 은수가 장애를 가짐으로써 불편한 지점들, 예를 들어 은수가 학교에 교장 선생님을 만나러 가서 넘어진다거나 화장실에 제대로 못 간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리고 은수라는 캐릭터를 다룰 때는 장애를 가진 은수가 연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가장 큰 초점을 맞췄죠.
영화의 세 인물이 각각 대등하게 중요하지만, 감독님께서 이 인물들을 그려내면서 조금 더 마음이 기우는 쪽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혹시 조금 더 관심이 가는 인물이 있으셨을까요?
이게 정말 신기한데, 계속 달라졌어요. 초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수민이의 입장과 시선으로 썼어요. 그러다 수민이가 마지막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감정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자연히 은수와 예원과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은수와 예원의 비중이 늘어났고요. 그리고 프리 프로덕션 단계와 촬영 때는 예원이에게 가장 감정이입을 했는데, 촬영 막바지와 편집할 때는 은수가 이해가 되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영화를 여러 번 본 배우나 스태프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볼 때마다 감정이입 하는 인물이 달라진다고.
첫 장면은 수민이로 시작해서 한동안 수민이가 등장하지 않고 은수와 예원 이야기가 나오다가 시간이 조금 흘러야 수민이가 나오는데, 그럼 첫 장면은 처음부터 생각하신 건가요?
그렇습니다. 수미상관으로 수민이의 모습을 넣은 게 이 영화의 키 이미지였어요.
수민이를 연기한 김보민 배우를 보고 많이 놀랐어요. 은수와 예원은 성인이지만, 수민이는 어린아이라 결정권이 온전히 주어지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서글픈 인물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배달지를 보다가 은수의 방문 밖에서 “이모, 치킨 시켜 먹어도 돼요?”라고 하는 장면. 거기서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저희 스크립터도 그 장면 찍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찍고 나서 제가 오케이를 외치자마자 스크립터가 "수민이 다 먹어! (좌중 웃음) 양념, 후라이드 다 먹어…" 했죠.(웃음)
어린이인 수민이의 입장을 그리시는 것도 감독님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수민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은수, 예원, 수민이 함께 살지 못하게 되는 것은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했고, 수민이의 시선을 통해서 담고 싶었습니다.
어린이 배우와 작업하실 때는 성인 배우들과 다를 것 같아서, 디렉션이 궁금했거든요.
김보민 배우는 연출의 디렉팅을 받아들이고 현장에 임하는 태도가 능동적이고 프로 그 자체였어요. 디렉팅은 주로 극중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찾아보니 언니가 김시아 배우더라고요. 어쩐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미쓰백〉을 보고 캐스팅을 했거든요. 〈미쓰백〉에서 김시아 배우가 주인공이고, 김보민 배우는 잠깐 김시아 배우의 아역으로 나왔어요. 그때 김보민 배우의 눈빛을 보고 ‘언젠가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담쟁이〉는 물이 굉장히 눈에 띄는 영화였습니다. 물의 물성이나 이미지가 주는 느낌이 잔잔하지만 강렬했어요. 은수가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할 때 물을 그대로 맞잖아요. 이후에 두 연인이 욕조에서 목욕하는 장면도 있고요. 영화제목이 뜨고 나면 두 인물이 나오는 공간도 바로 목욕탕이죠.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 디폴트인 이성애중심의 연애관/연애서사에서 목욕탕은 함께 갈 수 없는 공간인데, 레즈비언의 결합은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쾌감이 있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목욕탕이라는 공간을 선택했어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애정행각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능 속의 불가능을 재확인하게 되는, 여러 층위의 어려움이 녹아 있는 공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화에는 바다도 등장하죠. 두 연인뿐 아니라 수민이가 둘 사이를 메우게 되면서 바다 앞의 세 여성이 매우 편하고 분방해 보였어요. 거기서 가족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물이 갖는 어떤 성질과 관련해 염두에 두신 이미지가 있으셨을까요?
캐릭터적 측면에서 은수는 나무와 흙, 예원이는 물과 바다라는 이미지적 설정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의상과 소품도 해당 설정에 맞춰 준비를 했어요. 저는 바다, 즉 물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 많은 것을 포용할 수 있고 유연한 느낌을 받는데, 예원이가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은수는 곧지만 물과 뗄려야 뗄 수 없는 나무나 흙 같은 이미지의 인물이라고 생각 했고요.
그 표현이 참 와닿네요. 나무는 뿌리를 내려야 하고 물은 흘러야 하니까요.
네. 그리고 목욕탕의 경우도 동성 연인은 ‘우리끼리만 갈 수 있다’는 자랑이 될 수도 있으면서도, 그게 너무 서글픈 자랑이잖아요. 남들은 공원에서 손도 잡고 다 하는데, 이들은 겨우 이것 가지고 만족을 하게 되고요. 저희 영화에 행복한 장면은 몇 개 없지만(웃음) 바다에 갔을 때만큼은 정말 가족처럼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바다는 넓고, 제한된 공간도 아니고 뭐든 다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거기에 흙도 물도 있으니 다 어우러진 느낌이고요. 그게 저희 영화의 주제와도 맞닿아 있더라고요. 다 사랑하고 살면 되는데 이들은 왜 그렇게 살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투영하고 싶었어요.
영화 안에서 “살아야지”와 같은 대사가 반복되잖아요. 〈담쟁이〉의 경우는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 안에도 여러 측면이 녹아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니까 삶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뜻도 있지만, 내 정체성을 지우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이게 사는 거다, 라는 성소수자로서의 의지가 있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장례식장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는 오히려 삶의 의지가 꺾일 수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대한 의지를 갖고 살길 바란다는 개인적인 소망이 담겨 있고요. 사회의 벽을 지금 당장은 못 넘더라도 언젠가는 서로가 연대해서 넘고 깨고 살아야지, 라는 의미가 있어요.
〈담쟁이〉 안에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있고,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지만…
다양한 가족형태에 대한 담론이 오가는 세상속에 살고 있으니 자연스레 정치적인 주제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추구하고자 할 때 부딪히는 문제들과 정치적인 요소들은 피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일거에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해요.
저도 노골적인 투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영화로 느껴지지 않았고, 그래서 좋기도 했어요. 그런데 동시에 이 안에 가지고 있는 의제가 분명히 있잖아요. 아시겠지만 성소수자의 권리 투쟁을 담은 영화들은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담쟁이〉의 인물들은 인정받기 위해 앞장서서 나서거나 싸우는 성향의 인물들은 아니죠. 오히려 결말에서는 권리를 약간 포기 혹은 유보하는 결정으로 향합니다. 물론 사회의 강제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요. 그런데 이 점이 퀴어영화로서 〈담쟁이〉를 조금 더 신선한 위치에 놓이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해요. 결말을 미리 생각해놓으셨나요?
결말부터 시작했어요. 사실 결말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수민이가 아예 사회가 말하는 이상적인 이성애 가족에게 입양이 되고 이 세 사람이 다시는 함께 살 희망이 아예 없는 결말이었어요. 그 장면을 실제로 찍기도 했고요. 화면상으로는 행복한데 이 세 인물에게는 너무 비극적이더라구요.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점점 이 세 인물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희망이 있는 결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결국 지금의 결말로 확정 짓게 되었어요. 그리고 누군가에겐 이들의 선택이 포기나 유보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고 앞으로 나서는 투쟁만이 투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담쟁이〉의 인물들은 지금은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본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는 인물들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할 거고, 그게 그들만의 투쟁이 아닐까 싶습니다. 느리지만 중단없이, 지속적인 투쟁이죠.
말씀해주신 두 결말을 들으니 저는 지금의 결말이 더 와 닿는 것 같아요. 정말 언제라도 그들이 모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것 같아서요. 덕분에 보면서 슬픈 장면도 많았지만 저를 힘들게 몰아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네. 저 또한 오히려 지금의 결말이 어쩌면 현실보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하시면서 감독님께서 개인적으로 좋으셨던 순간들이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저는 촬영할 때가 제일 좋았어요. 스태프들의 기술적인 면, 배우들의 연기, 이런 것들이 제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그대로 구현되는 그 순간의 희열이 굉장한데, 제가 영화를 하는 동력이기도 해요. 〈담쟁이〉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은수가 염을 하는 걸 보며 우는 장면이에요.
그 장면에서 우미화 배우의 연기가 정말 놀라웠어요.
두 테이크만에 갔어요. 모든 게 확 집중 되었거든요. 촬영감독님은 찍으시면서 카메라를 돌리고 싶으셨대요. 그 장면 찍은 후 참여했던 모두가 잠깐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할 만큼 힘들어했고요.
배우분들 캐스팅도 궁금해요. 어떤 이유로 이 배우들에게 각각의 배역을 맡기고 싶으셨나요?
은수와 예원은 정말 은수와 예원으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은수를 캐스팅할 때 제일 중요했던 건 눈빛이에요. 은수가 대사가 많이 없잖아요. 슬픔이나 사랑이나 이런 감정들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느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미화 선배님을 우연히 소개받고 연극을 보러 갔는데, 선배님이 대사를 하실 때 눈빛을 보고 ‘아, 은수다!’라고 직감했어요. 그래서 바로 같이 하자고 제안을 드렸죠. 예원 역할은 중성적인 마스크의 20대 배우를 염두하고 있었는데, 우미화 선배님과의 케미가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이연 배우와 미팅했을 땐 생각보다 더 어려 보여서 보류를 했죠. 그런데 한 달 동안 이연 배우가 머릿속에서 맴도는 거예요. 처음 만났을 때 3시간 정도 미팅을 했는데, 이연 배우의 성격이 예원이와 닮아 있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솔직하고 사랑에 대해 헌신적이 느낌이 있었고요. 그래서 이렇게 계속 생각난다면 같이 해야겠다 싶어 이연 배우에게 함께 하자 제안하게 됐죠.
두 배우님들께서도 실제로 많이 가까워지신 거죠?
많이 친하죠. 컷, 하고 난 뒤에도 은수와 예원인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게 너무 좋았고, 그 순간도 찍어서 영화에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밌었어요.
〈담쟁이〉를 연출하시기 위해 레퍼런스로 참고하신 영화들은 있으셨나요?
사실 시나리오 쓸 때는 참고한 영화가 없었어요. 다 쓰고 나서 수정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 받은 영화들은 있어요.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가 있었죠. 조금 다르긴 하지만 잠깐 떨어져 있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니까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도 있었고요. 오히려 촬영 레퍼런스로 본 영화가 있는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2017)예요.
아주 의외의 작품이네요.(웃음)
삶에 있어서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닥치면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을 때가 있잖아요. 저는 살아오면서 그런 것이 그 어떤 것보다 무섭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내용을 담고있는 몇몇 씬에서는 비현실적인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젊은 의사가 다가오는 장면 같은 경우는 의사가 신적인 존재처럼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연출했어요. 사회복지사들은 저승사자 같은 느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누군가를 죽여야만 저승사자가 아니라 삶에서 행복을 빼앗아가는 사회를 투영시킨 군소인물들이 저승사자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말씀해주시니 영화를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장면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젊은 여자 의사가 등장해 수민에게 말하는 장면에서 확실히 친절하고 좋은 말을 하고 있는데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고, ‘튄다’고 말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질적인 부분들이 있죠. 그 젊은 의사가 수민이의 이름을 알 리가 없잖아요. 돌아가신 수민이 엄마가 보내준 메신저의 느낌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젊은 의사에 투영하고 싶었어요.
예상 외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씀해주시니 납득이 가요.
사람들이 비현실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오히려 너무 다큐멘터리 같지 않게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씬에서는 정말 무서운 느낌이 들길 바랐고요. 이들한테는 자신들의 일상을 빼앗아가는 게 무엇보다 큰 공포일 것 같았거든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에요. 혹시 차기작 계획이 있으실까요? 또는 앞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이야기가 있다면 귀띔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웃음과 감동이 있는 가족 코미디를 쓰고 있습니다.
이번 썸머 프라이드 시네마에서 처음으로 관객들과 만나셨어요. 오늘 회차는 진작 매진이 되었고요. 〈담쟁이〉가 올해 안에 정식 개봉을 한다는 소식도 들었는데요. 오늘 〈담쟁이〉를 보러 온 관객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극장에 찾아와서 영화를 봐주신 관객분들께 감사합니다. 다양한 후기를 접할 때마다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담쟁이〉 재미있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반기에 개봉하면 극장에서 봬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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