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의 사랑〉 리뷰
에러를 인식한 뒤의 세계
- 우리는 모두 트루먼이자 라이어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예송 님의 글입니다.
속기사 지연(이주우)은 어느 날 업무 중에 이상함을 눈치챈다. 남들이 하는 말에 맞춰 타자 치기를 이어나가던 중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가 혹시 이세계의 선구자인가?" 내게만 전해지는 소리에 신의 계시인가 싶을 때쯤, 함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기묘하다. 완전히 내리지 못한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직전에 한 행동을 반복한다. 아주 짧은 순간을 반복하는 루프가 일정 시간을 점유한다. 마치 '에러'가 걸린 것처럼. 꽤나 익숙한 인상이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렉이 걸린다. 캐릭터가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나는 다음 행동이 이어지길 바라는데, 캐릭터는 더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기다려야 한다.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정된 캐릭터는 다시 제 행동을 이어간다. 하지만 내가 그 이상을 눈치챘으니 '에러'는 더 당돌하게 내 눈앞에 나타나고 만다. 그동안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이제서야 곪았던 내상이 드디어 외상으로 표상되기를 결심한 건지, 어림짐작할 뿐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에러'를 인식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만 유효해 보인다. '에러'가 벌어지지 않는 세상을 원하지만, 새로운 기기로 교체하는 강경한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 '에러'가 없는 세상을 진실이자 유일한 진짜로서 갈망할 뿐이다.

잠시잠깐의 에러가 걸린 세상 속, 그 이상함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를 '트루먼'이라 부른다. 지연은 에러가 끊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혼자만 트루먼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홀로 외로움에 대처해야 하는 그녀는 이 진실을 주변에 고해도 거짓으로만 판명되어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남에게는 거짓말일 뿐인 지연의 세계 전부는, 관계의 연약성을 들춰낼 뿐이다. 지연은 자신과 함께 '진실'을 공유할 이 세계의 트루먼을 찾기 위해 나선다. 그렇게 두 사람을 만난다. '에러'가 걸린 와중에 의지대로 움직여 쓰러진 지연을 일으켜 세운 현식(배유람)과, 질투에 눈이 먼 현식에게 트루먼이 맞는지 의심을 받는 그녀의 남자친구 문성(김신비)이다.

그들은 또 다른 트루먼을 찾기 위해, 그리고 에러가 없는 어떤 미지의 이상이자 진짜 세계로 가기 위해 동행한다. 하지만 유사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세 사람이라 할지라도 각자가 원하는 진짜의 삶은 다르다. 세 사람의 만남을 성사시킨 지연은 에러가 없는 세계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 '트루먼 소셜 클럽'에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일본인 트루먼에 의해, 에러가 존재하지 않는 뉴질랜드의 끝, 세상 밖의 그곳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현식과 문성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두 사람은 당장 자신에게서 벌어지는 에러를 멈추기보다, 지연을 중심에 두고 사랑싸움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현식은 거짓말까지 더해 지연과 함께 뉴질랜드로 떠나겠다고 선언하고, 문성은 이성적으로 외부인이 던진 그 말에 현혹되지 않기를 요청한다. 결국 트루먼이길 주장하는 세 사람은 각자가 개별의 세계 속에서 분명한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선택이 진실로 완성되기를 원한다.

〈트루먼의 사랑〉은 크게 3부로 나뉜다. 1부에서는 에러가 벌어지는 세상을 인식한 지연의 일상적 배경과 트루먼 세 사람의 만남이 나타난다. 여기서 그들은 각자의 진실된 세계를 잃어버린 채, 에러(가짜)로 점철된 세상에 절망한다. 다음은 지연을 필두로 진실된 세계를 찾기 위한 세 사람의 동행을 다룬다. 각자가 추구하는 진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서로의 진실을 잘 알고 있다고 가늠하다 결국 월권을 휘두르기 십상이다. 여기서 '트루먼 소셜 클럽'을 운영하는 라이어는, 트루먼들을 모아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전해지는 개체다. 라이어는 에러가 발생했을 시 자아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에러가 걸린 사람처럼 연기하며 일부러 반복된 행동을 한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음에도 반복을 선택하고, 군상 속에 녹아든다. 마지막 3부는 시간이 조금 지나 현식과 지연이 사라진 후의 문성이 주인공이 된다. 그는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두 사람을 추적하고 있다. 문성은 단서를 찾기 위해, 라이어라고 주장했던 '트루먼 소셜 클럽'의 운영자 희선(강진아)이 자신의 차를 박게끔 유도한다. 경찰인 그는 희선을 의심의 선상에 두고 취조한다. 그러나 희선은 사라진 두 사람과 얼마 전에도 연락을 했다고 전하며 상황을 무마한다. 그리고 여기서 문성이 뉴질랜드로 떠난 두 사람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묻자, 그녀는 그 선택은 그들만이 알 뿐이라고 전한다.

트루먼들이 트루한 삶을 찾기 위한 과정 속에서 라이어의 존재는 어떠한 역할을 할까. 각자가 자신의 세계가 진실이자 주인공이라 주장하는 와중에, 트루먼들은 에러에 속박되지 않는 자율적인 움직임에 의지해 뚜렷한 의견과 진취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남들이 수많은 반복적 행위를 하고 있음에도(에러적 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려워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대로 움직이기를 선호하고 트루먼이 되기를 선택한다. 물론 영화의 초반 지연이 가지고 있던 자신의 자율적 상태에 대한 울분은, 언뜻 보면 이를 선택했다고 보기 모호한 지점이 있다. 그러나 에러가 일회성이 아니었다는 점, 거슬리는 에러 행위를 지속해서 의식하고 있으며 결국 함께 자아를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섰다는 점에서 그녀가 트루먼이 되는 당위성이 발견된다. 즉 버그 걸린 오류를 의식한 순간, 우리는 버그가 없었던 그 전의 삶을 떠올리기 쉽지 않다. 거슬리기 시작한 이후 드디어 무명의, 무지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라이어들은 이와 반대로 자아가 존재하고 선택을 할 수 있는 자율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일삼으며 가짜들의 세상 속에 기꺼이 속한다. 일본인 트루먼의 말처럼 라이어에게서 도망쳐야 하는 이유는, 결국 라이어들은 반복에 익숙한 삶에 조응하고 있으며 트루먼들은 이미 벗어난 그 시절로 회귀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 아닐까. 이를테면 지연은 타인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 적던 속기사였고, 현식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가장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음식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패스트푸드점을 운영했다.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기보다는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따르던 업무를 했던 것을 상기할 때, 트루먼이 되고 싶었던 욕망이 발현된다는 것은 응당 당연해 보인다.

도심 속을 걷고 바다 위에서 뛰노는 것처럼 역동적인 움직임과 시간의 흐름이 도드라지던 영화 속에서, 유독 멈춰 있는, 서사의 진행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한 장면이 있다. 바로 세 사람이 바닷가로 놀러 간 이후 밤이 된 순간이다. 갑작스레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그들의 프레임 속으로 끼어든다. 은실(김현)은 청년들 사이에 침입하여 자신이 잡은 물고기를 들어 올려 보여준다. 그리고 정말 별 얘기를 이어간다. 그녀가 이해하는 세상의 법칙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은실은 오르가즘에 대해 설명한다. 최고의 오르가즘을 느꼈지만, 또다시 그것을 느끼기는 불가능하다는 것. 최상의 절정을 느끼는 순간을 또다시 겪어보기 쉽지 않다고 그녀는 전한다. 영화 속에서 은실의 갑작스러운 등장과 그녀의 대사는 트루먼이 되고 싶은 세 청년의 욕망과 닮았다. 그들은 (그들의 입장에서) 가짜가 판을 치고 있는 세계 속에서 진실을 구원해내야 한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에러가 더 이상 발현되지 않는 세상? 앞서 언급한 대로, 이상을 인식한 순간 내가 속한 세계에서 에러가 없는 순간을 다시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이제는 모기에 물려 간지러운 곳을 반복적으로 긁는 태도며, 물을 삼키려 목젖을 몇 번이고 내리고, 건조한 눈에 몇 번 눈을 깜빡이는 행위마저 의심되기 시작할 테다. 그렇다면 비관적이기만 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무슨 선택을 해야 할까. 과연 에러 없는 세상이란 가능한 것일까.

그 해답은 다시 돌아가, 세 사람이 함께 있을 때 에러가 벌어진 순간들을 기억해내야 한다. 에러 알림이 무한히 울리는 순간 세 사람은 서로의 곁에서 가끔은 트루먼으로 존재하는 듯하지만, 또 어느 날은 에러 속에 동화된다. 그들은 순간마다 가짜와 진짜 사이를 오가는 유동적인 존재다. 우리에게 진실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추상적이다. 도달 가능성이 불분명하다. 다만 그 진실에 대해 멋모르는 애착이 생긴 채 고달파지기 마련이다. 이 진실의 기운을 언뜻 본 순간 지연이 뉴질랜드로 떠날 추동을 얻은 것처럼, 문성과 현식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스스로 결정당하기 전, 선택의 기로에 서기를 반복한다. 떠날 것인가 혹은 남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은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문성은 대개 희선과 시간을 보낸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 모임에 희선을 부르기도 하며, 그녀가 운영하는 '트루먼 소셜 클럽'에 참여하기도 한다. 묘하게 이전과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목격하다 보면, 결국 그에게는 '관계'가 꾸준히 따라붙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관계가 꾸준히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우리는 서로가 떠드는 진실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개인의 진실만을 강요하는 주인공들이 각각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의 관계는 미로처럼 풀리지 않는 방향으로 얽힌다.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것 같은 간극이 뚜렷해진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걸까. 문성의 경찰서 안, 유모차 한 대가 들어온다. 잠시 조사받으러 간 아이의 엄마가 맡기고 갔다며 유모차를 데리고 들어오자 모두들 아이를 신경 쓰기 시작한다. 난로를 곁에 두고 시선은 아이에게로 고정된다. 이 어린아이에게도 도달 불가능성은 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보다도 중요하게 서로에게 다가가는 것을 우선에 둔다. 즉, 알아갈수록 경계의 벽이란 허물어질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한편, 그럼에도 우리는 미로같이 꼬여 있는 상대를 향해 배려하고 신뢰할 뿐이다. 서로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유념한 채, 서로의 진실을 묵인하지 않고 믿어줌으로써 그들의 관계는 유지된다. 물러서기보다는 걸음을 내디딤으로써 서로의 진실을 지켜낸다.

결국 진실이라는 것은 도달하기 쉽지 않다. 뉴질랜드로 떠난 지연의 소식이 닿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진실이 과연 어떠한 형태로,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아무도 모르며, 지연조차 진실을 새롭게 규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가 각자의 진실을 안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가 트루먼이자 라이어가 된다. 그러나 서로가 트루먼이기를 바라는 존중과 믿음 속에서 '사랑'이 탄생한다. 다를지라도 닮으려고 노력할 때, 진실의 궤가 사방으로 꼬여 진입조차 어려움에도 헤쳐나갈 때 기어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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