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단평'은 개봉작을 다른 영화와 함께 엮어 생각하는 코너로,
독립영화 큐레이션 레터 '인디즈 큐'에서 주로 만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붙은 이름
〈숨어드는 산〉 그리고 〈월남보살〉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주연 님의 글입니다.

“2020년, 대한민국은 제5공화국이다.” 모두를 긴장시키는 한 문장으로 영화 〈숨어드는 산〉이 시작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대한민국. 자유가 사라진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수경의 남편은 ‘빨갱이짓’을 했다는 이유로 쫓기다 종적을 감춘다. 그날 이후 수경의 삶은 완전히 달라진다. 언제 어디서든 도청과 형사들의 감시가 이어진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려면 통행 허가증이 필요한 세상. 어디에 가고 누구를 만날지조차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수경은 남편이 순천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길을 나선다. 하지만 순천으로 가는 길에도 형사가 따라붙는다. 수경에게는 남편을 찾아가는 일이지만, 국가에게는 감시해야 할 사람의 움직임일 뿐이다. 수경은 한 사람의 아내이자 곧 아이를 낳을 사람이고, 남편을 찾으러 가는 사람이지만 국가에게는 그보다 ‘빨갱이의 아내’라는 이름이 먼저다.
이 이름 하나가 수경의 삶을 따라다닌다. 어디를 가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모든 행동이 그 이름을 통해 해석된다. 수경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듯 〈숨어드는 산〉에서 무서운 건 감시만이 아니라, 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 수경과 달리, 〈월남보살〉의 수연은 자신의 배경에서 벌어진 일을 직접 풀어나간다. 수연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고등학생이다. 영화는 수연의 정체성을 무겁게 설명하는 대신, 수연에게 베트남 신이 들어왔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을 통해 풀어간다.
갑자기 생긴 문제는 ‘나는 한국인인가, 베트남인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끝나지 않는다. ‘베트남 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은 곧,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수연은 그 답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는다. 친구들과 직접 굿을 하면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해결할 방법을 찾아 나선다. 수연과 친구들이 직접 굿을 벌이는 상황은 황당하고 웃기지만, 그 안에서 수연은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간다. 한국인과 베트남인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대신, 마지막에는 두 신을 모두 모시는 선택을 한다.
수연에게도 ‘빨갱이의 아내’처럼 혼혈이라는 배경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수연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친구들과 방법을 찾아보며 자신이 살아갈 방식을 선택할 수 있었다. 주체적으로 움직여 결국 두 신을 모두 모시기로 한 수연을 보며, 수경에게는 이런 선택의 자유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인물이 누릴 수 있는 자유는 너무나 다르다. 이 차이를 생각할수록 〈숨어드는 산〉의 세계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영화 속 세상이 지금의 현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디즈 Review] 〈숨어드는 산〉: 그 시간, 그 공간 (0) | 2026.09.15 |
|---|---|
| [인디즈 기획] 〈착지연습〉 마민지 감독 인터뷰: 나아감의 기술 (0) | 2026.09.15 |
| [인디즈 소소대담] 2026. 8 영화로 나누는 일상 (1) | 2026.09.08 |
| [인디즈] 〈산양들〉 인디토크 기록: 누구에게나 산양의 시기가 있다. (0) | 2026.09.08 |
| [인디즈 단평] 〈트루먼의 사랑〉: 사랑이라는 오류 (0) | 2026.09.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