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드는 산〉리뷰: 그 시간, 그 공간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시간의 중첩
‘수경’과 ‘인혁’이라는 이름, 여순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순천이라는 장소, 좌익으로 몰려 산으로 숨어드는 사람까지. 〈숨어드는 산〉은 한국 현대사, 그중에서도 독재 시기의 중요한 사건들을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제5공화국의 독재가 2020년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설정은 생경한 그림을 가능케 한다. 우리가 매일 보는 평범한 2020년대의 길거리에 반공, 방첩 포스터가 붙어있고, 일몰 이후에는 통행이 제한된다는 안내 방송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것이다. 흑백의 스크린 위에서 시간의 중첩이 이루어진다.
최창환 감독의 〈숨어드는 산〉은 전두환 정권의 독재가 아직 끝나지 않은 2020년의 대구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대구시경 방첩대 형사인 ‘인혁’과 ‘상준’은 좌익 활동으로 수배 중인 ‘명훈’의 임신 중인 아내 ‘수경’을 감시하는 일을 맡는다. 힘겹게 생활을 이어가던 수경은 결국 남편의 소재를 형사들에게 알리기로 결심하고 함께 순천으로 떠난다. 일행은 합의 끝에 명훈이 산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곧바로 새로운 난관에 봉착한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자동차와 통합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인혁과 상준이 타고 있는 자동차다. 잠복근무를 설 때는 눈에 띄지 않는 흔한 자동차를 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형사들이 타고 있는 차는 2020년 기준으로도 단종된 지 15년은 족히 넘은 구형 세단이다. 당연히 길에서 자주 보이는 차종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해당 차종이 2000년대 중반 경찰차로 다량 납품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스럽게 당시의 경찰 이미지와 맞닿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방첩 현수막이 걸려있는 2020년의 거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2000년대의 자동차는 40여 년의 시간을 한 공간으로 통합한다. 시간 중첩의 층위가 한 겹 더 더해진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가 제작 시점에서 6년이 지나고 개봉하게 된 것 역시 묘하게 느껴진다. 영화의 제작과 관객과의 만남 사이에 판데믹이라는 거대한 시간의 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과 독재가 공존하는 세상을 그리는 영화에서, 시간의 중첩은 영화 외적으로도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주인공 일행이 자동차를 타고 있는 장면을 차량 정면에서 찍을 때마다, 카메라는 통상적인 구도보다 몇 미터 더 뒤에서 이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인물 중심의 서사에서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볼 때, 영화 내외부에 자리한 다양한 맥락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산의 공간성
영화의 제목만 보면 산에서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지만, 실제로 영화에 산을 배경으로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굳이 따지자면 오프닝과 후반부의 특정 장면 정도이다. 그렇다면 왜 산일까?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주 4,3 사건 당시 한라산으로 도망쳐 생활했던 이들이 먼저 떠오른다. 작중 명훈의 어머니는 명훈이 산에 들어간 것을 말해도 형사들은 그를 찾지 못할 거라고 확신한다. 결국 인혁 일행이 택한 방식도 수경의 목소리로 자수를 권하는 방송을 산에 송출하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산에 들어가 한 사람을 찾는 행위는 사막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그러니 산은 속세의 논리를 벗어나는 장소다. 도시에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도청하는 경찰도 산에 들어간 사람에게는 아무런 권력도 행사할 수 없다. 산 안에 건물이나 주소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정확한 위치를 특정 짓는 행위 역시 불가능하다. 수많은 나무와 풀을 지나 올라가면 또 똑같이 생긴 나무와 풀이 나온다. 흑백의 화면 속에서 위치의 구분은 더더욱 무뎌진다. 독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은 그런 통제 불가능의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의 끝에 가서야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산이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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