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옆의 사람들
〈콘크리트 녹색섬〉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6년 8월 22일(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이성민 감독, 우종영 나무의사
진행 이은선 영화저널리스트
*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기록입니다.
나무는 거기 있을 뿐이다. 말 없는 나무에게 각자의 의미를 품는 건 어쩌면 사람만의 기질. 누가 나무와의 시간을 애틋해하든, 누가 어떤 이름을 붙이든, 나무에겐 전혀 중요치 않다. 하지만 그런 나무에게조차 마음을 갖는 게 사람이라면, 그런 김에 ‘지킨다’라는 명목으로 조금 더 질척거려 봐도 되지 않을까? 어릴 적 보았던 나무들에게 10년을 바치는 사람처럼. 베어지는 나무를 보며 함께 상처받는 사람들처럼.

이은선 저널리스트(이하 이은선): 오늘 오신 관객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종영 나무의사(이하 우종영): 안녕하세요. 우종영입니다. 10여 년 동안 끈을 놓지 않고 줄기차게 한 가지 주제로 영화를 만드신 이성민 감독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 참석해 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이성민 감독(이하 이성민):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영화를 만든 이성민입니다. 오늘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은선: 영화에서 주민들이 나무들을 추억하면서 ‘손 내리는 나무’, ‘어른 나무’ 같이 각자의 이름들을 지어주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요즘 두 분의 몸과 마음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나무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성민: 일산에 있는 작업실 근처에 은행나무가 있어요. 개포동에 있던 은행나무들, 그리고 해외로 이주 간 나무들을 떠올리면서 그 은행나무에게 매일 오고 가며 인사를 하게 되더라고요.
우종영: 뉴스를 통해 다들 아시겠지만 부암동에 오래된 은행나무가 있어요. 그런데 미술관에서 농약을 쳐서 나무가 죽어가는 걸 주민들이 발견했고 그렇게 급히 연락을 받았어요. 가서 보니까 이미 상당히 상처가 깊고 살릴 확률이 높지 않았어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금까지 치료가 지연되고 있어요. 그런데 미술관에서 나무를 죽이려고 했던 그 죄목이 ‘재물손괴죄’라고 합니다. 이건 나무를 생명으로 보지 않고 단순히 물건 취급을 하고 있다는 거죠. 우리가 이런 관념과 인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 은행나무가 떠올랐습니다.

이은선: 이성민 감독님께서 어린 시절의 동네를 찾고 기록하면서 〈콘크리트 녹색섬〉이 완성되기까지 10여 년이 걸렸습니다. 한 대상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기록할 때 10년이라는 세월이 작업자에게는 어떤 시간인지 궁금해요.
이성민: 사실 시작은 정말 우연히 개포동에 갔던 건데요. 아직 남아 있는 풍경과 나무들을 보고 ‘이 나무들이 왜 다 사라져야 하지?’라는 질문을 쫓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저도 나무를 보면서 이렇게 많은 기억과 추억을 떠올리게 될지 처음엔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하는 의문으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고요.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끔 해줄 길라잡이가 필요해서 우종영 선생님과 만남을 청했어요. 여러 전문가분들을 만나 뵙고 책도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이걸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은선: ‘나무의사 제도’가 2018년에 도입된 걸로 아는데, 그 전부터도 우종영 선생님께서는 나무의사라는 직함을 사용하셨어요. 그 계기가 궁금해요.
우종영: 원래는 ‘수목 보호 기술자’라는 민간 자격증으로 나무병원을 운영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나무를 치료하는데 왜 의사가 아니라 기술자여야 하는지 의문이었어요. 사람도 나무도 다 똑같은 생명인데, 나무를 치료한다면 그것도 의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은선: 감독님과 선생님 두 분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이성민: 2018년에 개포주공아파트 주민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나무가 안타깝다는 의견도 물론 많았지만,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이 없지 않냐는 질문도 정말 많았고요. 나무들이 이미 충분히 다 산 것 같다는 의견, 우리나라 국토의 70%가 산이니까 잘라도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여러 입장을 듣다 보니 저 혼자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종영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제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큰 역할을 해주신 것 같아요.
우종영: 개포동에 처음 갔을 때, 서울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자연도가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어요. 이 나무들을 잘 보존하지 못하고 풍경이 사라져 버리면 우리에게 큰 상실감을 남길 것 같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 고향에 아주 큰 은행나무가 길 중간에 있었어요. 어느 날 그 동네에 갔는데 그 나무가 없어진 거예요. 길을 확장하면서 나무를 잘라버린 거죠. 제게 그 나무는 어떤 기준이었는데요. 그 나무로부터 10분 정도 걸어가면 누구네 집이 있었지 하는 식으로 기억해 왔는데, 그 기준점이 사라진 거예요. 고향에 가도 이젠 나의 좌표를 모르는 거죠. 풍경의 상실은 추억을 다 앗아가는 것과 같아요.

이은선: 어떤 대상을 오래도록 바라보면 그것과 나를 동일시하게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감독님께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그런 순간이 있었겠구나 느꼈어요. 예를 들면 영화에 이런 내레이션이 나와요. “나무는 매일 상실과 회복을 반복하며 성장한다. 과정이 지루하고 답답하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 더 잘 자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성민: 〈콘크리트 녹색섬〉을 작업하면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는데요. 때론 하는 일에 대해 의문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간절함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 나무들이 제게 그냥 나무가 아니게 된 거죠.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잘 안됐다’는 식의 결과로만 끝내고 싶진 않았어요. 결과만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을 더 잘 남기고 싶었어요. 그 과정에서 겪은 ‘상실’이 나무가 준 가장 큰 배움인 것 같아요.
우종영: 지구상에서 가장 인류에게 호의적인 생물체가 나무예요. 우리 동네에 전봇대가 100년째 있었다 하더라도, 그 전봇대 밑에서 술래잡기를 했더라도, 전봇대에 대해 이렇게 큰 의미는 안 가질 거예요.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느끼는 상실감은 대상이 나무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나무의 나이테를 디스크 LP판이라고 생각해요. 죽은 나무를 얇게 썰어서 턴테이블에 놓고 바늘을 얹으면, 나무가 살아온 세월 동안의 바람 소리, 새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모든 소리가 기록되어 있을 거라는 거죠. 그 나무 안에 나의 존재도 기록되어 있을 거예요.
이은선: 우종영 선생님의 〈나는 나뭇잎에서 숨결을 본다〉라는 책에서 ‘생태 언어’라는 개념이 재미있었어요.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일본어로 ‘코모레비’라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이를 ‘잎새빛’이라고 부르자는 제안을 하셨어요. 산의 능선이 겹쳐있는 걸 ‘산결’이라 부르면 어떨까 하셨고요. 나무를 지키려는 마음에 생태 언어를 붙인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주고 싶으신가요?
우종영: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이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벌목업자들이 나무를 자르려고 할 때 마을 주민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911 희생자 모임 협회를 찾아가 희생자 명단을 받아와서 전부 나무에게 붙여줬대요. 그랬더니 아무도 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고 지금까지 잘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가로수도 각자 이름을 가지면 좋겠어요. 가로수는 도시의 생태 노동자인데, 우리가 너무 소홀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가로수에 QR코드를 하나씩 붙여서 나무의 이름은 무엇인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나무들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관객: 잘 지켜질 줄 알았던 나무들이 지켜지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큰 상실감과 분노를 느꼈는데요. 감독님은 이 많은 일들을 현장에서 겪은 사람으로서 어떤 감정선을 경험하셨는지 듣고 싶어요.
이성민: 저도 정말 많은 감정을 느꼈는데요. 사실 강남구청 분들이나 벌목업체 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있어요. 그분들도 번거로우실 텐데 저와 대화를 해주셨고요. 그 덕에 어떤 이유로 나무를 지키는 게 어려운지 알 수 있었어요. 그 답을 듣고 앞으로는 어떤 다른 질문을 이어가야 할지 고민했고요. 그리고 우종영 선생님뿐만 아니라 많은 응원과 격려가 있었어요. 이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아닐까 생각이 들 때 함께 있는 사람들 덕분에 더 나아갔던 것 같습니다.
우종영: 저는 이 영화를 10년마다 한 번씩 보고 싶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더 어렸을 때의 추억을 그리워할 것 같아서요.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풍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은선: 〈콘크리트 녹색섬〉은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날 예정입니다. 우리 모두 나무에게 이름을 붙여줍시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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