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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회로〉: 미지를 기꺼이 마주하며

by indiespace_가람 2026. 7. 20.

〈회로〉리뷰: 미지를 기꺼이 마주하며

* 관객기자단 [인디즈] 남홍석 님의 글입니다.

 

영화 〈회로〉 스틸컷

 

Y2K

 

세기말의 공포는 디지털 기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속도 향상을 위해 연도 표기 시 끝의 두 자리만 기록하던 컴퓨터 날짜 시스템이 2000년에 접어들면 중대한 오류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대표적이다. ‘Y2K(Year 2000 Problem)’라고 불리던 이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등장했고, 한국에서도 여러 기업이 프로그래머를 모아 대책을 강구하고 생필품 사재기 현상이 일어나는 등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휴대전화나 가정용 인터넷이 보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Y2K의 공포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준 까닭은 ‘미지’의 감각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에게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미지의 감각을 전해준 단어는 무엇일까. 아마 ‘죽음’일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사후 세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존재하더라도 그곳은 영원한 고독이 아닐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첫 21세기 영화 〈회로〉는 대담하게도 컴퓨터와 죽음 사이 공통된 감각을 포착하는 작품이다. 호기심과 두려움이라는 두 기둥이 영화 전체를 감싸는 이해 불가능성의 장막을 지탱한다.

 

영화 〈회로〉 스틸컷

 

장막과 문

 

〈회로〉는 크게 두 이야기를 번갈아 가며 제시한다. 한쪽에는 식물을 파는 회사에서 일하는 ‘미치’가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종적을 감춘 동료의 집을 찾아가지만, 대화 중 잠시 자리를 비운 동료는 목을 매어 자살한다. 사건 후 회사의 다른 동료들도 하나둘씩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한쪽에는 대학생 ‘료스케’가 자리한다. 그는 컴퓨터를 잘 모르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인터넷을 시작한다. 료스케는 기이한 이미지와 유령에 대한 문구가 있는 사이트에 접속하는데, 그 이후로 컴퓨터가 제멋대로 작동해 두려워한다. 각자 흘러가던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후반부에 하나로 합쳐지고, 재앙의 규모 역시 점차 확대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에서 세계에 닥친 재앙은 그 원인과 법칙을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제시된다. 주인공들은 이해 불가능성의 세계에 갇힌 채로 파멸하거나, 그곳에서 탈출하려 든다. 이때 자주 등장하는 장치가 집 여기저기에 드리운 반투명한 장막이다. 장막은 경계를 형성하고 그 너머를 알 수 없는 곳으로 만든다. 집 안에 자리한 여러 장애물은 개인의 시야를 더욱 좁혀 불안과 고독의 감각을 강화한다. 한편 〈회로〉에서 문은 너무나 쉽게 넘나들 수 있는 경계로 그려진다. 미치는 화분 밑에서 열쇠를 발견해 잠긴 문을 열고, 료스케는 잠긴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봉인된 문은 저절로 열리기도 하고, 테이프만 떼어내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다. 이 세계에서는 얇은 실크 장막이 굳게 잠긴 철문보다 넘기 어려운 경계가 된다.

 

영화 〈회로〉 스틸컷

 

돌아가는 대신

 

열차, 자동차, 배... 주인공들은 재앙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한다. 이때 갑자기 멈추거나 시동이 걸리지 않는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이해 불가능성의 세계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계의 움직임조차 무화한다. 음료 자판기가 열려 있고, 안에서 음료수 캔이 우수수 쏟아진다. 비행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건물 위로 추락한다. Y2K의 악몽이 되살아난 것일까.

 

그러나 정지된 세계에서 더욱 강조되는 움직임은 인간 신체의 그것이다. 지하철 개찰구를 뛰어넘는 점프, 절박한 료스케의 질주, ‘진입 금지’ 경계를 넘어 끝을 알 수 없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영화는 “갈 수 있을 때까지” 먼 곳으로 나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막다른 길에서 돌아가는 대신 미지를 기꺼이 마주하겠다고 결정하는 인간. 구로사와 기요시는 미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20세기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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