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그림자 아이〉: 쓰이지 않은 이야기

by indiespace_가람 2026. 7. 20.

〈그림자 아이〉리뷰: 쓰이지 않은 이야기

* 관객기자단 [인디즈] 정다원 님의 글입니다.

 

 

상실은 아주 괴로운 일이다. 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그가 사라지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가며 쌓아갈 것이라 믿었던 수많은 시간과 아직 나누지 못한 이야기의 터전까지 한순간에 폐허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함께 맞이할 계절과 건네지 못한 말, 언젠가 도착하리라 믿었던 내일은 갑작스레 갈 곳을 잃는다. 그렇게 상실은 한 사람의 삶에 커다란 공허를 만들고, 남겨진 이를 미처 끝맺지 못한 시간 앞에 홀로 세운다. 하지만 폐허에도 생명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상실은 삶을 잠시 멈출 수는 있어도 끝내 단절시키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그림자 아이〉 리뷰

 

언니 수련과 함께 옥상에서 떨어진 뒤 3년 만에 깨어난 수안 앞에, 죽은 언니와 똑같은 얼굴을 한 재인이 나타난다. 재인의 얼굴은 수안에게 언니와의 시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만든다. 떠난 언니와 같은 얼굴로 웃고 말하는 아이가 눈앞에 있으니 수안이 재인을 수련의 자리로 끌어당기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금옥 역시 옛집의 대문 앞에서 재인을 처음 마주한 순간, 그 얼굴을 밀어내는 대신 끌어안는다. 그러나 익숙한 얼굴이 돌아왔다고 해서 사라진 사람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재인을 수련의 얼굴로만 바라보는 동안 재인이라는 아이의 이름과 시간은 보이지 않게 되고, 수안과 금옥은 떠나지 못한 시간 속에 머문다. 한 사람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마음은 그렇게 또 다른 한 사람을 그림자로 만든다.

 

금옥은 한 아이를 잃은 뒤 간신히 돌아온 수안마저 잃을까 두려워한다. 아이를 지키려 과거를 감추고 옛집에서 멀어졌지만 말하지 않은 일은 그림자처럼 모녀의 곁에 남는다. 반면 수안은 사라진 언니의 시간을 더듬기 위해 재인을 따라 옛집으로 돌아간다. 금옥이 달아나려 했던 자리로 수안은 되돌아가는 것이다. 수안 역시 언니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재인에게 다가가지만, 끝내 마주하게 되는 것은 돌아온 수련이 아니라 수련의 얼굴 뒤에 가려져 있던 재인이라는 아이다.

 

영화 〈그림자 아이〉 리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저주는 금옥의 어머니를 거치며 한 권의 동화책이 되었지만, 그 속에는 아무런 글도 없다. 아이들은 그림 사이의 빈자리를 각자의 상상으로 메우며 책을 읽는다. 처음에는 가족과 무관한 이야기처럼 보였던 저주는 뒤늦게 이들의 삶에 오래전부터 드리워져 있던 그림자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전해진 이야기라 해도 아직 문장으로 적히지 않은 책의 결말까지 정해진 것은 아니다. 같은 이야기를 물려받았다고 해서 같은 결말에 머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면 종종 그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를 찾는다. 하지만 삶은 사라진 자리를 다른 존재로 메우는 방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수련은 재인으로 돌아올 수 없고, 재인은 수련의 그림자로 살아갈 수 없다. 떠난 이를 돌아올 사람으로 붙잡지 않고 남아 있는 이를 그 자신의 이름으로 바라볼 때 멈춰 있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다. 그것은 상실을 극복하거나 폐허가 되기 전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다. 폐허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 채, 그 위에 새로운 터전을 만드는 일이다.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끝난 이야기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그 끝에서 아직 쓰이지 않은 다음 문장을 이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