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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생존법
〈이반리 장만옥〉 그리고 〈젖꼭지 3차 대전〉
*관객기자단 [인디즈] 강신정 님의 글입니다.
〈미생〉에 이런 대사가 있다.
“상대가 역류를 일으켰을 때 나의 순류를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보면 역류가 된다.”
누군가 나에게 반발할 때, 즉시 거세게 맞서기보다는 나의 흐름을 지켜내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겐 큰 타격으로 다가온다는 뜻이다. 좋은 말이지만 너무 어려운 일이 아닌가. 상대가 한 명이 아니라 세계의 다수라면 더욱이 그렇다. 많은 이들이 더 큰 역류로 강자를 이겨버리는, 이른바 ‘사이다 결말’에 열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순류를 유지하는 일은 힘겹고, 때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현실에 지친 이들이 이야기로 도망쳐올 때, 이야기가 해줄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누구보다 멋지게 순류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누구보다 시원하게 역류를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 역할을 용기 있게 해낸 두 이야기를 소개한다. 영화 〈이반리 장만옥〉과 〈젖꼭지 3차 대전〉이다.

〈이반리 장만옥〉은 중년 성소수자 ‘만옥’이 보수적인 고향 ‘이반리’에서 어떻게 순류를 지켜내는지 보여준다. 오랫동안 마을 이장을 도맡아 온 전남편의 횡포를 알게 된 만옥은, 새로운 이장 후보로 나선다. 도망치듯 이반리를 떠난 과거 탓에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는 꿋꿋이 당차다. 주민 한명 한명 찾아가 이야기를 듣고, 마을의 문제들을 직접 해결하기도 한다.
이런 씩씩한 순류는 역류가 커질수록 더 큰 빛을 발하는 법이다. 전남편의 아웃팅(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에 주민들이 만옥에게 등을 돌릴 때, 만옥은 싸우기보다 잠시 멈춘다. 그리고 춤추기로 한다. 만옥 뒤로 몰려오는 아군들은 무기 대신 깃발을 들고 있다. 만옥은 성소수자들을 이반리로 불러 모아 축제를 시작해 버린 것이다.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묻듯, 주민들도 어느새 그 속에 섞여 어울렁더울렁 춤을 춘다. 차가운 시선에도 자신 있게 웃어버리던 만옥다운 순류다.
지극히 낙관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결말이지만, 약자에게 이 정도의 안전한 통쾌함은 필요하다. 극장 밖의 역류에 대항하려면 극장 안에서 틈틈이 작은 웃음을 챙겨놔야 하는 법이다.

그에 비해 〈젖꼭지 3차 대전〉은 보다 강렬하게 역류를 일으켜 맞선다. 방송국 PD ’용’은 부장으로부터 젖꼭지에 모자이크를 입히라는 지시를 받는다. 모자이크의 대상은 오직 여성. 속옷을 입지 않아 비치는 여성 연예인의 젖꼭지, 육아 프로그램 속 (남자 어린이는 제외한) 여자 어린이의 젖꼭지, 게다가 ‘젖꼭지’라는 글자까지. 여성의 젖꼭지는 남성을 유혹하므로 모자이크해야 한다는 것이 부장의 주장이다.
현실의 부하직원이라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모자이크를 넣는 게 최선일 테다. 그러나 그건 이 영화의 태도와 거리가 멀다. 용PD는 부장의 역류에 더욱 황당한 역류로 맞선다. 남성의 젖꼭지는 물론, 동물의 젖꼭지, 캐릭터의 젖꼭지, 노출을 목적으로 한 프로그램 속 젖꼭지까지 모자이크 처리를 해버린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과감한 역류 덕에, 성(性)을 향한 모순적인 잣대가 선명하게 폭로된다. 이는 영화로서의 단순한 해방감을 넘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현실에서 다시 논의되도록 유도한다.
〈이반리 장만옥〉과 〈젖꼭지 3차 대전〉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세계의 역류 앞에서 약자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때론 역류를 일으키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순류를 지켜내야 할 때가 있다. 순류를 유지하고 싶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어 역류를 내뿜어 버리고 말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이 아프다. 내일은 내일의 역류가 온다는 것이 두렵다. 오늘도 한쪽엔 만옥을, 다른 한쪽엔 용PD를 품고 역류로 뛰어들 모든 약자들을 응원한다.
*영화 보러 가기: 〈젖꼭지 3차 대전〉(감독 백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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